영남 아가씨!
소년의 기억,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니까 내나이 열세살때 인가 보다. 내가 살던 농촌 부락에서 내가 다니던 읍내에 있는 국민 학교 까지는 거리가 약 십리가 넘는 길이었고 키가큰 우리 아버지가 새로난 신작로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해도 한시간은 족히 걸어가야 하는 거리 였는데 열세살 소년의 걸음으로야 한시간 삼십분은 해찰 하지 않고 걸어가야 우리 부락 마을에서 십리가 넘는 국민 학교에 갈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농촌 부락에서 읍내에 있는 국민학교를 가려면 두갈래 길이 있었다. 그중 한갈래 길을 말해 보자면 우리 부락 마을을 나와서 길옆으로 논들이 펼쳐진 오솔길을 사이로 걸어 가다가 오르막 오솔길을 오르면 왼쪽으로 넓은 밭이 펼쳐져 있었고 오른쪽 으로는 아주 오래된 소나무 사이로 묘지가 군데 군데 보였었다. 이야트막한 고개 이름이 솔정지 였는데 솔정지 고개를 넘어 가면 논과밭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보또랑에서 흘러 들어 오는 물줄기가 좁은 수로를 따라 졸졸졸 흘러 가는게 보였었다. 그리고 좁은 수로 뚝방을 따라 가다 보면 넓다란 냇가가 나오는데 넓다란 시냇물을 보를 막아 보위로 넘실 넘실 시냇물이 흘러가고 냇물 위로 물고기가 파닥파닥 뛰어 오르는게 보였었다. 맨발 검정 고무신에 넘실대는 보뚝을 걸어서 건너가면 바로 학평 마을 방앗간이 나오고 요란한 방앗간 발동기 소리를 들으며 지나가면 방앗간 입구에 돼지막이 있는데 돼지막 안에는 보기에도 엄청 살찐 꺼먹 돼지 두마리가 배때지를 바닥에 늘어뜨리고 연신 꿀꿀 거리고 있는게 보였었다. 그리고 방앗간 앞마당에는 종섭이네 방앗간집 숫놈 말이 보이고 아침 일찍 방아 찧으러 엄마 따라온 동네 아이들이 숫놈 말에서 한발짜국 물러나 앉자 말을 보고 닭잡아 줄께 좆나와라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종섭이네 방앗간을 지나면 신작로가 나오는데 가끔씩 오가는 버스가 지날때 마다 뿌옇게 먼지가 온사방으로 흩어져 한동안 앞이 잘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신작로 바로 옆에 앞을 못보는 장님이 살고 있는 집이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뭣모르는 철부지 장난으로 장님집 앞을 지나치며 장님집 문, 닥종이로 문종이를 바른 문에다가 돌을 집어 던지면 안에서 장님 부인이 코먹은 소리로 밖으로 나와 코를 홱 풀면서 사팔진 눈동자로 아이들을 바라 보며 꼬시랑 꼬시랑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깨에 걸쳐맨 책보따리를 뛰뚱거리며 도망을 간다. 신작로를 한참 따라 가다보면 빠알갛게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오른쪽으로 야트막한 야산에 공동 묘지가 군데 군데 펼쳐져 있는게 보이고 신작로 옆으로 작은 보,수로가 흘러가는 사이로 아주 조그만 필용이네 점빵이 자리 잡고 있다. 학교를 오고가다 군침을 흘리며 점빵 안을 들여다 보면 진열된 물건이라야 껌,눈깔사탕,빵,그리고 학용품이 전부 였다. 그런데 학교를 오고가며 점빵을 바라보며 내가 제일 먹고 싶은것은 하얀 크림이 잔뜩 발라져 있는 20원 짜리 빵이였다. 필용이네 점빵을 지나면 신작로 좌우로 미루나무 가로수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쭉쭉 뻗어 있었다. 그리고 미루나무 아래에는 신작로 좌우로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살랑거렸다. 어느 가을날 감이 빠알갛게 부락 마을마다 탐스럽게 익어 갈무렵, 학교가 파하고 우리 부락 홍식이와 함께 가을 하늘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거리는 신작로 미루나무 가로수 앞을 지나 집으로 돌아 갈때 였다. 미루나무 가로수길 앞에서 하루에 몇대 안다니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양지 소골 청년과 아가씨가 보였다. 이제 나이가 스물 갓넘은 두사람은 애인 사이로 보였는데 양지 소골 청년은 고향을 떠나 객지 밥을 먹고 있는듯 보였고 오랜만에 객지를 떠돌다 만난 애인을 데리고 고향집을 왔다가 다시 객지로 돌아가는듯 보였다. 그런데 아가씨는 말소리 억양이 우리와는 아주 딴판이었고 우리 고장 사람이 아닌것은 확실 하게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영남 사투리로 보아 고향이 대구쪽 아닐까 짐작을 해본다. 그런데 화장 진한 아가씨 모습은 우리가 맨날 우리 부락에서 보던 꼬질 꼬질한 농촌 아가씨 모습과는 천질 차이로 보였다. 새파란 아이섀도우 까만 눈동자!빨간 립스틱 입술! 미니 스커트속 하얀 허벅지,쏟아져 넘칠듯한 풍만한 가슴, 영남 사투리를 쓰며 그랬어예, 저랬어예, 말을 하며 웃을 때마다 입가에 보조개가 오물오물 거리는데 열세살 소년의 마음속에는 잔잔한 파도가 밀려와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말 지금도 또렷이 각인된 난생 처음 진하게 맛아본 향수 냄새는 열세살 소년의 순정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기에 충분 했다. 가을 하늘 한들한들 살랑거리는 코스모스길을 걸어가며 집에 올때 까지, 열세살 소년의 마음속에는 신작로옆 코스모스길 미루나무 가로수길에서 보았던 영남 아가씨 생각 뿐이었다. 그후에도 학교를 오고 갈때 미루나무 가로수 앞을 지날때면 으례히 예전에 보았던 화장 진한 사투리 쓰던 영남 아가씨 모습을 떠올리며 열세살 소년은 영남 아가씨 누님을 그리워 하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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