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기행
작년 5월부터 대구 매일 신문에 여행기 기고를 시작 한 이후
1년 동안 월 2회씩 꼬박 거르지 않고 원고를 써왔다.
처음 신문에 내 글이 나온다는 신기함과 흥분으로
보잘 것 없는 졸필이지만 나의 대견함을 내 스스로 자위하면서
시작한 글이 이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지금부터 해외 여행기는 신문사에서 외국으로 파견 나간 기자가
원고를 쓰기로 해서 졸지에 짤 린 것이다.
한편으로 섭섭하기도 하고,
또 한편 으로는 시원하기도 하다.
원고를 미리미리 준비해서 전해 주면 되는데
2주마다 한 번씩 마감 2,3일 전에 텅 빈 머리를 쥐어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즐겁지만,
알량하나마 매월 원고료로 들어오는 10만원이 사라지는 아쉬움과,
뭔가 즐거운 일거리를 하나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도 있다.
저번 주 보낸 원고인데 나오지 않는 바람에 이렇게 올린다.
누구나 여행을 좋아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동경에만 그친다.
그냥 배낭만 하나 달랑 메고 떠나 버리면 될 것 같은 것이 여행이지만
막상 떠나려 하면 수많은 조건들로 아예 배낭을 집어 들지도 못 하게 만든다.
그 많은 조건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돈이다.
혼자서 자주 여행하는 필자를 가족들이 곱게 볼 리는 만무하다.
이제는 아내가 이해를 잘 해주지만 아이들이 가끔씩 깊은 태클을 걸어온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족 여행하기로 하였으며, 가장 중요한 금전적인 부담이
적은 노선을 택하여 여행지를 고르다 보니 선박을 이용한 백두산 여행으로 택했다.
속초에서 선박을 이용하여 러시아 최남단인 자루비노항을 거쳐 중국 훈춘을
통해 들어가는 긴 여정이지만 빠듯한 여행경비로 다녀 올 수 있는 훌륭한 코스이다.
대구서 아침 일찍 속초까지 가야하는 부담을 줄이러,
강원도 홍천에 있는 친구 별장에서 하루를 묶고 다음 날 여행길을 나섰다.
이 노선을 운항하는 동춘 페리호는 650여명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노래방, 오락실, 면세점, 목욕탕등이 갖추어져 있는 대형 여객선이다.
속초에서 출발한 배는 하룻밤을 꼬박 지나 다음날 아침에 러시아 자루비노항에 도착했다.
승객들은 일부 러시아 관광객 과 대부분의 보따리 무역상들이 이용하는 듯 했다.
배에서 내린 일행은 입국장 건물이 창고 같아서 의아해 했는데,
원래 이 항은 화물을 취급하는 항구였는데 한국의 여객선이 운항하게 됨에 따라
창고를 개조하여 국제 여객터미널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입국 수속을 받아서 중국 훈춘시로 들어가기 위해 1시간여를 버스로 이동하여
다시 출국 수속을 받고 또 다시 중국 입국 수속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이것 또한 느긋한 여행자만이 맛 볼 수 있는 여유로움으로 돌리며 즐기기로 했다.
훈춘에서 곧바로 삼합이란 곳으로 들렀다.
이곳은 중국 러시아 북한 영토가 서로 맞대어 있는 트라이앵글 지역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동해 바다가 보인다.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두만강 끝을 사이로 두고
러시아와 북한 국경이 맞대어 있기 때문에 중국은 바로 코앞에 바다를 보고도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만약 일부라도 중국 땅으로 만들었다면 중국의 동해 진출에 중요한 항구가
되었을 것이며 나처럼 여행객들에게는 러시아로 돌아가는 불편은 훨씬
덜수 가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도문으로 내려와 도문대교에 올라보니 다리 한가운데 줄을 그어 국경을
표시하고 있다. 한 발자국만 넘으면 바로 북한이다.
도문강에서 대나무로 엮은 뗏목을 타고 강 건너 바로 북한 땅까지 스치듯 지나간다.
강 건너 북한 땅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무성한 잡초 이외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단동에서는 배를 타고 신의주 쪽으로 바짝 붙어 가면 북한 동포들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는데 여기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도문강을 뒤로 하고 허기를 달래려 길가의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다.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나와 한국말을 알리없는 식당주인에게 음식 주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불안과 겹쳐있다.
이 런 상황을 가끔씩 겪는 필자는 나름 노하우를 발휘 해 본다.
주위로 빙 둘러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들 중 괜찮아 보이는
몇 가지 요리를 주문했는데, 이럴 땐 양해를 구한 뒤 음식의 맛을 보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냥 나의 눈짐작만 믿은 채 주문했다.
그 중 계란을 삶아서 반으로 잘라놓은 음식을 2개나 시켰는데,
다른 음식은 그런데로 먹을 만 했지만 그 음식은 도저히 먹지를 못해 모두 남겼다.
중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이 음식의 정체는 오리알인데 삶아서 소금에 재여 놓았다가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도저히 짜서 입에 넣지를 못 했다.
아내가 왜 못 먹을 음식을 2개나 시켜 버리느냐며 잔소리를 한다.
난들 진작에 알았다면 왜 시켰겠는가. 하지만 이럴 땐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다.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2,750m)이며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부른다.
꼭대기는 1년 중 8개월 이상 눈에 덮여서 희게 보이기 때문에 백두산이라 부른다.
천지를 둘러싼 16개의 봉우리는 대부분 깎아 세운 듯한 절벽으로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예로부터 한민족에 의해 신성시 되어 왔으며, 중국 사람들도 백두산 천지와
중국 제일 서쪽에 위치한 천산산맥에 있는 천지 두 곳을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되어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찿고 있으며 곳곳에서 소원을 비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처음 백두산 정상에 올라 섰을 때 무거운 안개로 뒤덮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우리가 흔히 사진에 접하는 백두산 천지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왔지만 멀리 이국땅에 와서 이 번 여행 중에
가장 큰 볼거리를 놓친다는 생각에 그저 하늘만 원망스러웠다.
.
1시간여가 지났지만 도통 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신비스런 천지의 모습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자꾸 머리를 때린다.
특히 부정한 자가 올라오면 천지의 모습은 영영 감추어 버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 몰래 지갑에 약간의 돈을 훔쳐 하루 동안 영화도 보고
돈을 물 쓰듯(?)하고 혼날까봐 두려워 밤늦게 겨우 집으로 돌아가
종아리에 병장 계급장을 여러개 달고서야 용서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후 살면서 별로 부정한 일을 저지른 기억에 없는데 괜히 가슴 졸인다.
갑자기 와~ 하는 함성에 놀라 고개를 드니,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장엄한 천지의 모습을 보여 준다.
큰 빗자루로 구름을 한 쪽으로 밀어내듯 지나가고 맑은 하늘에
나타난 천지의 모습은 장엄하다 못해 경외 스럽기 까지 하다.
필자는 몇년전에 중국 최고 서쪽 우루무치에 있는 천산산맥의 천지도 가 보았었다.
천산의 천지는 천산산맥의 만년설에 둘러 쌓여 포근한 어머니 같은
여성스러운 풍경이라면,
백두산 천지의 모습은 광활한 황야에 우뚝 혼자 서서 비바람을 호령 하는 듯한
강렬한 남성적인 인상을 받는다.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척박한 땅이지만,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비한 기를 느끼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려오면서 장백 폭포의 웅장함에 다시 한 번 놀란다.
폭포서 흘러 내려오는 물은 시리도록 차지만 영험한 천지 물이
하나의 가닥이 되어 한반도에 정기를 뿌려준다는 생각에
왠지 숙연해 지기도 하다.
내려오는 중간에 간헐천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물에 익힌
삶은 계란의 맛은 출출함을 달래주는 최고의 군것질이다.
중국은 근래 들어와 소외된 소수민족들을 달래기 위해
다양한 정책 기조를 내놓고 있는데 그 중에 소수민족 자치구에서는
중국어와 현지어를 같이 배우며 사용하고 있다.
간판들을 표기 할 때에는 중국 글씨를 위쪽에 그리고 현지어는 바로 밑에
중국 글씨보다 크기를 작게 표기하는데,
조선족 자치구인 연길만큼은 유일하게 그 반대로 표기를 한다면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연길서 유명하다는 진달래 식당에 가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냉면을 말끔히 비우고 숙소로 향했다.
다음 날, 윤동주의 모교로 유명한 용정에 있는 대성 중학교를 들렀다.
대성 중학교는 현재 용정 제일 중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1921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학교이기도 하지만,
그 중 김일성도 있어 역사의 아이러니함을 느끼기도 한다.
문익환 목사와 정일권 국무총리 모교이기도 하다.
신관과 구관이 나뉘어 있는데 신관에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구관은 윤동주 시인의 자료와 항일 독립 운동의 각종 자료들이 전시 되어 있다.
그리고 구관 앞에는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인 “서시”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이릴 적 시험에 늘 상 나오는 단골 메뉴인 서시를 혼자 조용히 읊어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있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