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에서 만난 사람들 5: 타이페이 시내에서 만난 정직한 상인들
타이완에서의 나의 체재 일정이 아주 짧았을 뿐만 아니라 원래 쇼핑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의 성격 때문에, 내가 타이완에서 많은 상인들을 만나본 것은 결코 아니다. 고작해야, 길거리에서 음료수나 과일을 파는 행상들과 야시장에서 만나본 상인들 몇 명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타이완 사람들의 정직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할 만큼 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동남아 국가에서 외국인들에 대한 바가지 요금이 심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외국인에게 바가지가 심하기로 널리 알려진 베트남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라오스는 물론이고 관광 대국임을 자처하는 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를 것 없다.
그래서 동남아 국가에서 외국인을 주로 상대하는 상인들과 거래를 할 때에는 약간의 흥정의 기술이 필요하다. 일단 상인들이 부르는 호가에서 좀 깎아달라고 했다가 그들이 호가를 내리면 조금 더 알아보고 사겠다고 하고 뒤돌아선다. 그러면 상인들의 호가가 뚝뚝 떨어지는게 보통인데, 이런 과정을 몇차례 하게 되면, 나중에는 손님이 뒤돌아서도 그들도 더 이상 잡지 않는 가격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이 가격에 물건을 사는게 잘 알려진 흥정의 요령이다. 이런 식으로 물건을 사면, 처음 그들이 불렀던 가격의 절반이나 심하면 1/3 가격에 물건을 사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할 만큼 동남아 국가들에서 외국인에 대한 바가지 요금은 심한 편이다.
그러나 타이완에서는 이러한 흥정의 기술이 통하지 않았다. 외국인을 위해 특화된 시장으로 만들었다는 화시지에 야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기념품 가게에서 그런대로 맘에 드는 소품이 있길래 가격을 물어본 다음 조금 깎아달라고 했더니, 그 상인은 처음부터 싸게 부른 것이라며 그 이하로는 팔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더 구경해보고 사겠다고 하고 뒤돌아서려 했는데도, 그러라고 하더니 전혀 잡을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뒤돌아서서 몇 군데 더 가격을 알아봤는데, 가게마다 가격이 비슷했을 뿐만 아니라, 처음 들렀던 점포의 상인이 불렀던 가격이 정말로 가장 싼 가격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것을 통해, 타이완에서는 처음부터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부른 다음 많이 깎아주는 척하는 식으로 물건을 팔지 않는다는 심증을 갖게 되었다.
나를 더 놀라게 했던 것은 사람들이 붐비는 시내 중심가의 한 이면도로변에 있는 한 허름한 과일 주스 가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은 한쪽으로 작은 점포가 있기는 했지만, 좌석은 물론 없고, 길가에 선반을 내어놓고 그 위에 각각 다른 여러가지 과일들로 만든 쥬스가 든 커다란 용기들을 올려놓고 과일 쥬스를 판매하는 노점이나 거의 다름없는 허름한 가게였다. 나는 갈증도 해소할 겸, 처음보는 특이한 색깔의 과일 쥬스 맛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서 이곳에서 쥬스 한 잔을 주문했다. 값이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쯤 했던 걸로 기억되는데, 계산을 할 때 나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 노점이나 다름없는 이 허름한 가게에서,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계산을 하자마자 즉석에서 전산처리가 된 영수증을 발급해서 내게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공장에서 제조번호가 찍혀서 나온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고 현금 장사여서 세무당국에서 수입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전혀 없고, 게다가 손님이 영수증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들은 성실하게 그들의 수입을 누락없이 자동으로 세무 당국에 신고하고 있는게 아닌가?
이에 반해서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금 장사를 하는 개인 사업자들이 소득을 누락하는 일은 다반사고, 그 이외에도 카드깡이나 허위 계약서 작성 등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해서 소득을 축소하고, 의사나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 중 제대로 세금 내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재벌이나 대기업들도 편법이나 탈법을 통해 세금을 줄이는 것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심지어 절세의 기술인 양 미화하고 있는게 솔직히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니던가?
무엇이 타이완과 우리나라 사이에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가? 법과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운영하고 집행하는시스템 상의 잘못인가 아니면 우리네 도덕성이 원래 그들만 못한 것인가? 이런 어려운 질문에 대해 이글에서 답하고자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 작은 사례를 통해서.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고 은근히 얕잡아봤던 타이완에 대해서, 최소한 도덕적으로는 그들이 우리보다 몇 수 위인 나라이며 국민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타이완에서도 내가 바가지를 쓴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 적이 한번 있었다. 타이페이 시내의 한 과일 노점상에게 과일을 사먹었을 때의 일이다. 과일을 산 뒤에 얼마냐고 물었더니 노점상 아주머니가 한참동안 대답을 안하고 얼마라고 말할까 갈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속으로 '이크, 드디어 바가지를 쓰는구나'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처럼, 그것은 외국인 여행자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여행자 요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참 만에 얼마라고 가격을 말하길래, 나는 그 돈을 아주머니에게 지불하고 나서도, 약간은 바가지를 쓴게 틀림없지만 더 이상 개의치 말자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스린 야시장에서 비슷한 과일을 사먹어봤는데, 오히려 그 노점상 아주머니가 판 가격이 훨씬 저렴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돌이켜 보니까, 그 아주머니가 값을 말할 때 한참동안 생각을 했던 것은, 내가 오해했던 것처럼 바가지를 씌우기 위해서 잔머리를 굴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단순히 영어가 서툴렀기 때문에 영어로 값을 계산하고 말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었던 것 같다.
인간은 이렇게 오해도 잘하고 실수도 많이 하는 존재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나는 이 노점상 아주머니의 사례를 통해서, 그 다음부터는 타이완에서는 노점상 상인들에게서도 결코 바가지를 쓰는 일이 없을 것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
비록 짧은 기간 동안 만났던 소수의 상인들을 통해서였지만, 그들은 '타이완은 정직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고 일반화해도 그다지 틀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내게 깊이 각인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