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옌꾸전(靑岩古鎭 : 청암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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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옌꾸전(靑岩古鎭 : 청암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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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여행 15일째

 

아침 일찍 일어나 고성을 둘러볼 생각입니다.

7시 30분에 숙소를 나섭니다.

 

입장료 30원은 성안에 있는 몇 군데 내부로 들어가는 비용이고 고성만 돌아보는 것은 무료입니다.

돌로 쌓은 돌담길을 걷는 맛이 특별합니다.

우선 우리 숙소가 동문 밖에 있어서 외곽길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갑니다.

오른쪽에 동문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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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밖으로 난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걷습니다.

아래 사진이 보이는 집을 보고 귀신이 사는 집인지 알았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월하의 공동묘지'에 나온 귀신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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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라 다니는 사람조차 별로 없습니다.

무척 한가하게 산책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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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이 끝나는 곳에서 남문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그러니 우리는 남으로 내려와 지금 서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성벽 위로 난 길을 따라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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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보이는 누각이 남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집의 담장이 돌을 쌓아 만든 담장이군요.

정말 돌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여 쌓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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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 위에는 남쪽을 향하여 대포가 걸려있습니다.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는 사대도 중간중간 만들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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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박살내기 위한 대포입니까?

이 고성이 만들어진 이유가 군사요충지라...

중국은 워낙 넓은 땅으로 중원의 힘이 지방마다 미치지 못하였기에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런 둔보를 많이

만들었고 오히려 그런 혼란했던 모습이 지금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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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옌 안에는 원래 이런 패방이 8개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3개만 남았다고 합니다.

충효나 장수, 정절 등을 기리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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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끝으로는 길이 끊어져 있는 듯합니다.

그만 고성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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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 아래로 내려와 문밖을 바라봅니다.

개 한 마리만 성 밖을 지키고 있습니다.

개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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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은 내부가 평평하지 않습니다.

가운데가 높고 남북으로 낮은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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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엉덩이를 그렇게 높이 쳐들고 있는 자세가 얼마나 힘든지 아니?

힘들어 입까지 벌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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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사용된 돌이 바로 푸른 색의 돌이라는 청암(靑岩)이라서 마을 이름도 그렇게 지었나 봅니다.

아침부터 집 앞의 돌을 정성 들여 닦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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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며 돌은 더욱 아름다운 색깔로 변해 마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듭니다.

이른 아침에 오래된 마을을 산책한다는 일은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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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는 사용할 연료로 직접 연탄을 만들어 때나 봅니다.

그러기에 아침 일찍 마을구경을 하다 보니 연탄가스의 매캐한 냄새가 무척 기분을 나쁘게 합니다.

우리 어린 시절에 누구나 연탄가스의 아픈 추억 하나쯤 지니고 살아갈 겁니다.

밤에 가스에 중독되어 차가운 마당에 널브러져 김칫국물 마셔본 분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얼음이 둥둥 떠있던 동치미 국물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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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특징 중 하나가 종교전시장이라는 겁니다.

우선 이곳은 기독교 예배당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사랑 愛를 창문에 붙여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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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음식점에서 사용할 배추절임 같습니다.

칭옌은 두부, 족발 등 몇 가지 음식으로도 유명한 곳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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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칭옌꾸전은 옛날 모습을 지닌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많은 관광객이 모여듭니다.

그러나 이 마을은 아름다움 만큼 아픈 과거가 있는 과거의 마을입니다.

그리고 푸른 돌로 지어진 집과 담장으로 말미암아 칭옌(靑岩)이라는 이름의 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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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것은 종교 전시장이라는 점입니다.

작은 마을에 천주교, 기독교, 도교, 불교가 모두 함께 동거하기에 사교합일의 마을이라고도 한답니다.

세상에 4개의 종교가 이곳 칭옌의 영광을 기원하니 저절로 발전할 것 같습니다.

이곳 주민은 천국 아니면 극락을 골라갈 수 있는 특혜를 받고 살아갑니다.

 

아닙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요.

너무 지나치면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습니다.

서로 미루다 보면 위급할 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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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불교 천주교 기독교 도교의 모든 교가 있어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이곳만큼은 아무 문제 없을 듯 합니다.

칭옌꾸전은 누가 세상의 챔피온이 되더라도 걱정없는 영생을 얻는 블랙홀입니다.

아니군요? 힌두교나 이슬람이 세상을 지배하면 개털신세가 되겟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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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칭옌꾸전의 아픈 과거를 한 번 건드려볼까요?

아편전쟁으로 영국과 청나라가 한 번 세게 붙었다죠?

그때 청나라 흠차대신인 임칙서가 밀수한 아편을 불태우고 아편의 수입이나 유통을 금함으로 아편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서안 비림에 있는 비림(碑林)이라는 현판을 쓴 사람이 임칙서라고도 합니다.

이 사람이 한성질하는 친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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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서구의 압력에 전쟁의 책임을 임칙서 등 몇 사람에게 지우고 귀양보내게 되었습니다.

임칙서는 귀양가는 길에 억울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서안을 지나던 중 비림 현판에 글을 쓰게 되었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너무 억울한 기분이 들어 비림의 현판 글씨 중 비(碑)자의 오른쪽 위의 획을

획~하고 날려버리고 썼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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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빠도 시안(서안:西安)에 잠시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와야겠어요.

위의 사진이 바로 획이 없는 비림의 碑라는 글자입니다.

나중에 결백이 증명되고 귀양에서 풀리면 그때 돌아와 제대로 점을 쓴다고요.

꾸며낸 이야기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는 그 후 결국, 귀양에서 돌아오다가 병으로 죽었다는군요.

아마도 홧병일겁니다.

저런 마음으로 분노를 가슴에 담아두고 살면 오래 살지 못합니다.

임칙서가 성질 죽이고 인간의 삶은 Dust in the wind라고 생각했더라면 마음이 조금은 편하지 않았을까요?

살다보면, 힘든 일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 일에서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정말 별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 맞아~ 우리의 삶이란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와 같은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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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지간, 청나라는 영국에 패하고 굴욕적이고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을 맺으며 아마도 물 좋은 홍콩을 할양하고

광저우 외 몇 개의 항구를 개방한다는 것이 주된 조약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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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서구 열강은 하이에나떼처럼 청나라로 몰려들어 서로 조약을 맺습니다.

사실 말이 좋아 쌍방합의하에 조약이지 사실은 요구사항을 나열히고 도장 찍었다는 말입니다.

한 번 무너지 개방의 뚝은 일거에 무너지지요. 

이때 종교도 함께 물밀듯이 몰려들었겠지요.

원래 나라가 힘이 없으면 이렇게 아무나 달려들어 물어뜯게 마련입니다.

대부분 남이 사냥한 고기를 훔쳐먹는 하이에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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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보이는 표시가 베이지에(배가:背街)라는 여기서는 유명한 골목길입니다.

칭옌을 오면 누구나 걸어보고 누구나 사진 찍는 곳입니다.

골목길이 별로 길지는 않지만, 조금 특이한 골목입니다.

젠장... 칭옌은 이런 뒷골목조차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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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에 골목 초입에 저우언라이(주은래:周恩來) 아버지가 살았다는 집이 있습니다.

이것도 관광지라고 돈을 받고 들여보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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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 문표를 사야 한다고 하네요.

지금 출근해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기웃거리고 통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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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명나라 홍무 10년,

이곳 칭옌은 지리적인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군인들의 주둔지로 시작된 척박한 땅 구이저우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칭옌서구 열강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군사가 머물던 주둔지였는데, 그곳에 계속 눌러앉으라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마을 이름도 칭옌바오(청암보:靑岩堡)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러니 군사도시인 셈이지요.

제가 확인해보니 아직도 황제의 철군명령서가 도착하지 않아 그냥 머물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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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청나라 함풍 원년, 칭옌에도 서구의 종교가 들어오며 프랑스의 주교가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외래 종교를 배척하지 않았고 서서히 천주교를 믿는 사람도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어디 좋은 일만 있었겠습니까?

 처음에는 외국문물에 대한 문화적 충돌이 생기고, 그다음에는 정치적 충돌이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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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주민은 서양종교에 반감을 갖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교회당을 불 지르고,

고유 전통문화를 어지럽히는 서양인들은 물러가라고 외쳤답니다.

결국 칭엔쟈오안(靑岩敎案)이라 불린 파문이 일어났다는군요.

원래 유교에 뿌리를 둔 사상과 서양종교의 충둘은 피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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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터진 것은 함풍 11년 단오절.

마을 사람들은 고유풍습에 따라 동네를 돌던 중 수도원 문 앞에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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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청암고진을 더 돌아보겠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힘든 장애물에 부딪혀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은

결코 부끄럽거나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장애물에 부딪히고 넘어지는 일 자체가

성공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행기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아도 읽는 분이 바르게 읽어주시면 되기에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여행 중에 힘들고 어려운 일에 낙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게 바로 여행의 본질이니까요.

 


2 Comments
곰돌이 2011.03.22 13:30  
가인님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제가 배우는게 참 많습니다 ^^*
佳人1 2011.03.23 08:53  
여행이 주는 혜택이겠지요.
여행을 하다보니 그곳을 알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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