台北旅遊記 (下)
타이페이에서의 두번째 날. 이 날 일정은 고궁박물원 → 딴수이(淡水) → 예류(野柳) → 딴수이에서 저녁식사 → 미라마백화점(美麗華百樂園)에서 쇼핑입니다.
일정을 소화하기 전 아침식사부터 소화하려고 타이페이역 지하상가에 있는 빵집에서 갓 구워낸 빵을 삽니다.
타이페이역이라면 서울로 치면 서울역쯤 될 터. 평일 이른 아침, 편의점에 앉아 따끈따끈한 제과점 빵과 편의점 호빵통 같은 데에서 꺼내온 고기만두로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하며, 바쁘게 우유니 커피, 신문을 사서 출근을 서두르는 타이페이 직딩들을 보고 있으려니 상대적인 여유로 오히려 분주함 가운데에서 더 느긋해지는 마음의 평안, 휴가 왔구나 하는 기분을 느낍니다. 뚜에부치, 타이페이 직딩 여러분. 가끔 휴가 내서 광화문역 편의점에서도 아침 일찍 델리만쥬 씹어 먹으며 이 짓 한번 해 볼까나.
대북시내를 차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우뚝 솟은 모습을 보기 마련인 Grand Hotel(圓山大飯店). 어렸을 때 타이페이에 머물면서 어린 마음에도 한번 가서 묵어 봤으면 하는 경외의 대상이었는데, 결국 대만을 떠나오면서 우리 가족을 너무나 좋아해 주셨던 치과의사 부부께서 이곳으로 식사 초대를 해 주셔서 생전 처음 랍스터를 먹어 봤던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고궁박물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스린(士林)역으로 가는 MRT 안에서 보이는 그 웅장하고 도도한 모습이 여전하길래 참 반가웠습니다.
고궁박물원으로 가는 첫관문 스린(士林)역에 도착했습니다. 고궁박물원 홈페이지의 한국어 안내(http://www.npm.gov.tw/ko/visiting/transportation/transportation.htm)에 나와 있는대로 따라 버스를 잡아타면 됩니다.
우리식으로 치면 지선번스, 간선버스... 등 여러가지 종류의 버스들이 오고가고 정류장 표시도 많이 있습니다. 30번, 255번, 304번 등 여러대의 버스가 고궁박물원을 지나갑니다.
우리 부부는 마침 정류장에 서 있던 친절한 대학생들의 칭글리쉬 안내에 따라, 영어는 전혀 안되시지만 역시 친절하신 황백삼 아저씨가 모시는 마을버스 19번을 타고 고궁박물원으로 향합니다. 황백삼 아저씨, 젊어 보이시던데 모자를 벗으면 빛나는 머리가 드러나는 비밀을 당당하게 면허증에서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박명수, 흑채.. 뭐 이런 단어들 생각났더랬습니다.
8월 어느 화창한 날의 고궁박물원은 정말 끝내주게 더워 죽갔더랬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젊을 적 7,8월의 대만을 겪으시면서 너무 덥다는 호들갑을 평소 모습답지 않게 떠시길래, 맨손으로 시골집 장닭을 때려 잡고 실뱀을 철근같이 씹어 드시면서 달리는 해병대 수륙양용차에서 뛰어 내리시고 월남전도 참전할 뻔 했다는 사관학교 출신 역전의 용사가 뭔 엄살인가 싶었습니다.
등산하다가 넘어지면서 손을 잘못 짚는 바람에 작은 묘목이 손바닥을 뚫고 나와도 그저 무던하게 지혈을 한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나시던 양반이 괜한 엄살을 부리신 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더웠지요.
여름에 동남아 좀 다녀봤다고 대만의 여름을 깔본 우리 실수겠지요. 가을날씨 같던 겨울의 대만만 생각하고 왔더니 참 많이 더웠습니다. 물론 박물관 안은 너무나 깔끔하고 쾌적하고 좋습니다.
20여년전 와 보았을 때보다 규모가 더 커진 것 같진 않지만 수차례 리노베이션을 거듭한 듯,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만큼이나 깔끔하고 관람하기 편하게 잘 해 놨습니다. 박물관 내부에선 촬영이 불가했습니다. 어렸을 땐 와서 사진도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아마 규정이 바뀌었나 봅니다. 삼각대나 플래쉬를 금지하긴 하지만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장별로 사진촬영을 허락해 주어서 비록 삐꾸로 나온다할지라도 자기 사진기에 자기 손으로 좋아하는 작품을 담아갈 수 있게 하는 별 것아니지만 소소한 만족감을 선사해 주는 것과는 좀 비교가 되는 듯.
고궁박물원 정문에서 다시 버스를 잡아타고 스린역으로 돌아갑니다.
스린역은 그리 대단한 건 아닐지라도 곳곳에 커다란 벽화형식으로 대만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사진 찍을 거리만 눈을 희번덕거리는 자동디카 관광객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줍니다.
붉은색 딴수이(淡水) 노선을 타고 북쪽 종착역인 딴수이역으로 가서 점심도 먹고 예류로 가기 위해 다시 MRT에 오릅니다. MRT 티켓 뒷면은 갖은 디자인의 광고들이 있어서 하나하나 찍어서 간직하는 재미가, 일주일 여행 갔다 하면 보통 3천장은 기본으로, 8기가 SD카드를 가득 채워 오는 아내의 막촬욕심을 충족시켜 주는군요.
MRT를 기다리는 동안 플랫폼의 딱 우리네 고딩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타이와니즈 고딩들, 그리고 어릴 때 묵었던 타이페이의 한 아파트와 아주 흡사한 3,4층짜리 쇠창살로 뒤덮인 추억의 대만 연립주택.
아침부터 찜통 뙤약볕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진 아내. 시원한 MRT 에어컨 바람을 쐬다 보니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구 당신 나 만나서 고생하느라 머리가 다 허옇게 세었구려. 뒤통수는 아예 구미호 털마냥 반짝반짝 빛나네 그려.
딴수이 노선의 끝자락에 다다르면서 역간 거리도 길어지고, 왠지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듯한 삘이 느껴지는 풍경이 나오는 걸 보니 딴수이역에 다 왔나 봅니다.
허기로 눈이 뒤집혀 MRT에서 내려 우리 부부가 헐레벌떡 찾아 들어간 곳은 딴수이역에서 나와 물가를 따라 걷는 큰 길가 말고 그 뒷쪽으로 이어지는, 우리네 동네 상가거리와 흡사한 공명거리(公明街).
그 중에서도 들어가면 별거별거 다 팔 것처럼 보이는, 꼭 전국 어딜가나 하나씩은 있는 박리분식삘이 나는 Quickly라는 가게에 들어갑니다.
호오- 정말 잘 들어왔네요. 딴수이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유부만두 아게이(阿給)와 이 곳 명물이라는 유환(漁丸)탕과 통자이미까오(筒仔米糕-찹쌀통밥)까지 한큐에 맛볼 수 있었습니다.
아게이를 아케이드라고 표현하신 건 무지의 소치인지, 쥔장의 센스인지 분간은 안되었습니다.
짜자앙-! 주문하신 딴수이 서민음식 3종 세트 나왔습니다 해. 통자이미까오(筒仔米糕)는 찹쌀에 땅콩, 계란 이런 게 들어있고 우리나라 팥밥 먹는 기분으로 은근 옴라이스 맛 나는 소스 묻혀 가며 파 먹다 보면 안에 양념한 돼지고기 같은 것도 나오는 참 멋진 넘.
유환탕은 그냥 그냥 생선완자국이긴 한데 우리 부부가 향채를 건져내지 않고 먹은 최초의 음식일 듯. 시원한 맛이 약간 느끼할 뻔도 한 찹쌀통밥과 잘 어울렸습니다.
항상 우리 부부가 중국요리를 묘사할 때 잘 쓰는 표현, "오향장육 냄새난다." (오묘한 그 맛을 이해 못하는 무식한 표현임을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유부당면만두라 할만한 딴수이 명물 아게이(阿給)가 좀 그런 맛이었습니다. 꼭 먹어보리라 했던 아게이보다 생선완자탕과 찹쌀통밥에서 더 성공한 케이스.
더워서 나가기도 귀찮다, 여보 여기서 디저트까지 다 때립시다. 역시 저렴한 가격의 팥빙수를 주문합니다. 아... 왜 우리나라에선 대만의 박리분식에서도 만들어 내는 이 보송보송하고 알갱이라고는 씹히지 않는 빙수 얼음을 만들지 않은 것이냔 말이다!
연유와 팥만 듬뿍 올렸을 뿐인, 떡도 젤리도 없는 팥빙수가 대만의 땡볕에 상처받은 심신을 위로해 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얼음의 승리.
배도 불리우고 땀도 식히고 公明街의 시장통도 설렁설렁 구경을 하다가 예류로 가기 위한 버스를 타려고 다시 딴수이MRT역 건물에 맞닿아 있는 버스장류장으로 돌아옵니다.
몇번 버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쉬고 계시는 버스 운전사분들 중 아무나 붙잡고 예류(野柳)라고 쓴 것 또는 관광책자 사진을 보여 드리면 저거 타라고 알려주십니다. 진산(金山)을 들러서 최종적으로 찌룽(基隆)항으로 가는 버스인데 버스 경유지 안내표 중간에 野柳라고 쓴 것이 보입니다. 30분 간격 배차라고 하는군요.
대만 왔을 때 애플망고 양껏 먹자! 가격도 가격이지만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대만산 애플망고는 70-80%만 익었을 때 수입을 들여와서 후숙한 것임에 비해 대만에서 직접 사는 애플망고는 100% 완숙되었을 때 출하한 것이므로 신선도나 맛이 더 뛰어날 수 밖에요.
우리나라 지방 시골길을 달리는 완행버스 같은 분위기가 확확 나는 찌룽 가는 버스는 관광객다운 촌티를 팍팍 내는 사람들이라곤 우리 부부 밖에 없이, 네이티브들만 태운채 트로트디스코메들리 같은 노래 테이프를 틀어서 쿵짝쿵짝 뿅뿅뿅하는 전자드럼 리듬에 맞추어 그림 같은 바다 풍경을 옆으로 하고 신나게 달립니다.
커다란 용기 끝까지 채워온 애플망고를 찻간에서 다 먹어갈 무렵, 디스코메들리 실은 완행버스는 어느 한적한 어촌에, 여기가 예류야 하면서 우리 부부 둘만 덩그러니 내려 놓고 제 갈 길을 갑니다.
이렇게 따로 완행버스 타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평일이긴 하지만 예류가 갖는 이름값에 비하면 좀 같이 내리는 사람들이 있을 법도 한데 둘만 내리고 보니, 그리고 눈에 보이는 사람도 거의 없고 하니 좀 황당한 기분입니다.
여기 예류 맞아? 의심될 만큼 너무나 평범한 어촌 마을이지만 학교 같아 보이는 건물 벽에 저 유명한 여왕바위의 모습이 새겨진 모자이크 장식을 보니 아 맞게 왔구나 싶네요.
'野柳地質公園'이라는 표지판을 지나 입장권(성인50元)을 끊고 들어가 보니 익히 사진으로 봐 왔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 집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대만여행을 할 때 찌룽항에서 까오슝까지 정말 명소란 명소는 거의 다 가 봤더랬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버섯돌이들이 오직 풍화와 침식이라는 자연의 힘으로만 인해 만들어진 이 기괴한 예류란 곳은 꼭 데려가 주실 줄 알았는데 끝내 함께 와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던 곳이었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버지가 형과 제게, "너희들 놀이공원 갈래, 야류갈래?" 그래서 어린 마음에 놀이공원 갈래요!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스타워즈의 배경(카파도키아)이 떠오른다는 어느 책자에 써 있던 말에 공감이 됩니다. 가끔씩 눈에 띄는 관광객들만 아니라면 이름모를 어느 혹성에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군요.
예까지 왔는데 조금씩 침식해서 본래 모양을 잃어가고 있다는 여왕바위 한번쯤 찍어 줘야지요. 남들은 여왕바위랑 뽀뽀하는 사진 잘도 찍두만 이거 각 맞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왕바위랑 뽀뽀하는 사진 찍기는 실패.
단체관광객들은 오전에 치고 빠지신 이유에서인지 드문드문 대만분들로 보이는 관광객들 말고는 거의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류의 바위들로 인해 잔잔하고 얕은 바다가 확보되어서 안전하게 엄마와 아이들이 물놀이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규모는 그렇게 크지는 않고 스타워즈 배경 같은 황량한 버섯돌이 지역 옆으로 푸르른 풀밭이 이어지고 있어서 이채롭습니다.
예류공원의 홈페이지는 http://www.ylgeopark.org.tw 중국어로 나와 있고 영어섹션도 있지만 아직 영어 페이지에는 정보라 할만한 것이 매우 없습니다.
예류공원에서 나가는 길 쪽으로 건어물 상가가 있습니다. 가격은 그리 센 편은 아닌 것 같구, 기념으로 하나쯤 사 가도 괜찮을 듯 싶군요.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오후의 예류를 뒤로 하고, 아마 우리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버스가 떠난 듯, 무려 30분을 꼬박 채워서 버스를 기다린 끝에 찌룽에서 딴수이로 돌아가는 완행버스를 잡아 탈 수 있었습니다.
역시 디스코메들리가 쿵짝쿵짝 울려대는 버스를 타고 서둘러 딴수이로 오려했던 이유는 환상적이라는 딴수이의 일몰을 구경하기 위해서 였지요.
금요일 저녁, 주말의 시작이라 그런지, 한산하던 한낮의 예류와 달리 딴수이 거리는 멋진 노을과 복작거리고 들뜬 이 거리의 무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들고다니는 오징어 구이가 넘 맛있어 보여 로컬 연인처럼 보일 요량으로 하나 삽니다. 소스에 조미료를 아끼지 않고 썼는지 정말 입에 착착 달라 붙는 것이 건강은 둘째 치고 입에는 참말로 맛있두만요. Finger Licking Good! 이란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 땅콩이랑 맥주 고파.
정작 보려고 했던 선셋은 좀 늦게 도착한 바람에 십분 즐기진 못했지만...
스파이더맨이 쇼윈도에 달라 붙어 이상한 짓을 하고,
터키아이스크림 아저씨가 능숙한 만다린으로 아이스크림 줄까말까 손님을 골려 먹으며 (어쩜 그렇게 명동의 터키아이스크림 아저씨와 하는 짓이 똑같은지!!) 아이스크림을 파시고, 그 옆으로 장사 잘하는 터키 아저씨를 보면 심통이 나는지 인상 팍 쓰고 파리 날리시는 냉차 아줌마가 안쓰러우면서도 그 대조에 재미가 나는... 꼭 일몰 말고도 딴수이는 전철 몇정거장으로 타이페이에서 와 볼 수 있는, 바다와 싸고 맛난 음식, 재미난 볼거리로 가득한 즐거운 곳이라 생각됩니다.
오징어구이 한봉지는 애피타이저였을 뿐. 저녁식사로 더 배울 채우려 들린 곳은 딴수이역 앞의 요시노야. 싱가폴, 홍콩, 상하이 여행 중 각 도시의 요시노야를 다 가 보았는데, 딴수이역전 요시노야가 걔 중 최악. 고기 비린내 때문에 역해서 먹기 힘들었습니다. 생각난 김에... 상하이 난징루 요시노야가 가격대비라든가 맛 등등 최고였다우.
요시노야에서 상처 받고 (그래도 일단 배에는 다 집어넣었지만) 터덜터덜 MRT 타러 오는 길에 딴수이역사에 입점해 있는 OTEN이란 빵집을 보고 눈이 번뜩!! 게다가 사람들도 많아!! 맛있는 덴가바!!!
얼른 빵 몇개를 삽니다. 오오 빵봉지도 열라 샤방 감각적. 브래드톡 같은 멋진 프랜차이즈의 발견이 될 듯.
허겁지겁 먹느라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찹쌀만주는 꽉 찬 속에 흡족한 사이즈 등등 아주 멋진 수준. 으음, 담에 다시 가면 또 사먹어야지.
딴수이역에서 붉은색 딴수이MRT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찌안탄(劍潭)역에서 내립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미라마백화점(美麗華百樂園)에 가기 위해서 입니다. 건물 옥상에 대관람차가 있는 약간 특이한 곳이지요. (http://www.miramar.com.tw)
찌안탄역에서 미라마백화점까지는 무료셔틀버스가 운행합니다.
(http://www.miramar.com.tw/5service_s3.php#top2)
건물 옥상에 어떻게 저 거대한 대관람차를 올렸을까, 운행하다가 우지끈 뚝딱 하고 떨어지는 거 아냐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만큼 보는 마음이 위태위태합니다.
이 관람차는 이름하여 美麗華摩天輪. 평일 기준 성인 일인당 150元이니 썩 싼 편은 아닙니다만 저거 똑 떨어져서 찻길로 대굴대굴 굴러댕기기 전에 얼른 싹 타 봐야지요.
관람차 안은 열대야 속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기다린 수고를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연인들로 북적북적) 일거에 날려줄만큼 냉방이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자고로 제일 무서운 탈 것이 대관람차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리 부부. 롤러코스터는 순식간에 끝나지만 얘는 천천히 사람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지 않습니까. 하지만 겁에 질려 관람차 흔들거릴까봐 엉덩이도 함부로 꼼짝 못하는 상황 하에서도 밖으로 보이는 타이페이의 야경은 입장료가 하나도 아깝지 않게 할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저 멀리 101빌딩도 눈에 들어옵니다. 무서워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길었던 체공(?)시간. 타이페이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 바라보는 아름다운 야경. 유리창 안으로 물방울이 맺힐 만큼 시원하고 쾌적했던 내부. 여러가지로 한번쯤 미리마백화점에서의 쇼핑과 함께 즐겨볼만한 경험이라고 봅니다.
관람차 내부가 어찌나 시원했던지 문열고 나오는 순간 열대야의 공기와 기계에서 나오는 열기로 훅 찜통 기운이 느껴지면서 요런 표정 자연스레 나옵니당.
아트리움구조로 되어 있는 백화점 부분은 늦은 시각 탓에 많이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크기나 점포수, 입점 브랜드 등이 그냥 보통의 대형백화점 정도인 듯.
특히 두개의 백화점 동 중 Family Hall 쪽에는 까르푸가 있어서 신나게 먹거리 쇼핑을 할 수도 있습니다. 까르푸에서 간단히 쇼핑을 마무리하고 다시 찌엔탄역으로 돌아가는 무료 셔틀 버스 막차(밤10시반)에 몸을 싣습니다.
다음날 아침, 인천행 비행기가 뜨기 전 얼른 중정기념관을 지나 딘타이펑 본점에 가서 아점을 찍고 오기로 합니다.
MRT 탔으니 마눌님, 티켓 뒷면 찍기, 잊으실리 없지요. 8기가 중에 아직 남은 50메가 마저 찍으시구려.
지하이지만 넓직하게 탁 트인 느낌을 주는 중정기념관(中正紀念堂)역사입니다.
웅장하고 멋진 중정기념관은 여전히 그 자리에 흰색 건물에 짙은 파랑의 기와 지붕을 얹고 그 멋진 모습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청량감을 주는 중정기념관 건물의 배색과는 달리 왜 이리 8월의 대북 날씨는 아침부터 이디지도 푹푹 찌는지...! 아빠, 대만 날씨가 뭐 더워? 라고 어릴 때 그랬다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무더위로 막 때리시는 것 같아서 아빠 죄송해요 안 덥게만 해 주세요 싹싹 빌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동안 여행 다니면서 뚜벅이 생활했던 것 비하면 딘타이펑까지 걸어서 가는 길이 그리 멀지도 않건만, 어우 가기 싫어 나 몰라 그러구 이렇게 앉아서 쉬기를 수차례.
무척 잘 정돈되고 관리되고 있는 중정기념관의 이 화사한 꽃도,
아름다운 후원의 연못도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왜!? 더워서!!
그 나마 이렇게 울타리를 따라서 긴 회랑이 있어 더위를 약간이라도 피하면서 걸을 순 있었는데... 그 사이에 춤 연습하시는 어르신들을 뵈니 갑자기 짜증이 납니다. 아 더워 죽겠는데 왜 부둥켜 안고 춤질이세욧 춤질은!!! 이민용 감독의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가 생각나면서 덥다 보니 괜히 취미생활 잘 하시는,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멋지고 건강한 어른들께 짜증이 다 나네요. 이 모옷~난 놈!
덥고 그러면 그냥 좀 지나가지, 마치 만병통치될 것처럼 해 놓은 지압길 안 넘기고 사뿐히 즈려밟으려다가 짜증 게이지 만땅 채워버린 백동이. 당신 왜 내가 이거 걷는다 그럴 때 안 말렸어!! 괜히 아내에게 화풀이... 모옷~난 놈!
나를 숙연케 하신 할머니. 뭘 쏼라쏼라 하시면서 막 나눠주시는데 받고 보니 교회 전도지입니다. 저도 서울에서 온 크리스챤입니다, 영어로 말씀드렸더니 알아 들으시고는, 하하하! 파안대소하시며, "할렐루야!" 날려주십니다. 참... 더운데 고생하십니다. 땀을 줄줄 흘려가며 기쁨으로 전도하시는 대만 할머니를 뵙고 나니 참 도전도 되고 짜증도 잦아 드는 듯.
울타리 밖으로 나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중정기념관 담벼락을 따라 한참을 (실은 짧은 거리... 체감상 길었다는 말입니다) 걷다 보니 드디어!!!
딘타이펑 간판이 눈 앞에 띠융-! 푸하하하. 고진감래구나. 입맛도 안 날 줄 알았는데 저 눈에 익은 간판을 보자 다시 mouth-watering 실시!
세계적인 레스토랑답지 않게 생각보다 좁은 실내 2층으로 올라가 일단 무엇보다 샤롱바오를 먼저 주문합니다. 안 믿어 줄까봐 명함 들이밀고 인증샷.
앗뜨뜨!! 호오~ 호오~ 불어가며 먹는 이 맛.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말이 다 들어맞는 건 아닌 듯. 기네스를 파이낸스센터 벅멀리건스에서 먹는 맛과 런던 금융가 시티의 바에서 먹는 맛이 틀리듯, 명동에서 먹는 샤오롱바오와 딘타이펑 본점에서 먹는 샤오롱바오는 완젼 틀리더군요.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여튼 최고의 샤오롱바오였습니다.
다음으로 새우훈툰만두탕. 국물이고 만두피고 만두속이고 그냥 다 맛있당께요. 담백하면서도 짜지않고 뒷맛 개운한, 아점으로 먹기에 참 든든하고 실속있습니다.
한국사람은 밥심. 국 나왔으니 밥도 고파서 새우볶음밥도 하나 시킵니다. 간단한 음식이지만 샤오롱바오와 만두국에 스트레이트로 얻어 맞아서인지, 볶음밥도 심심하고 단순하면서도 균형이 잘 맞는 식감과 맛에 반합니다.
디저트로는 팥앙금 로보스비. 마치 국물로만 승부하는 우직한 곰탕집처럼 곱게 내린 팥앙금과 얇고 쫄깃한 만두피만으로 우직하게 정면 승부한 듯한 맛입니다. 식당의 명물로 시작해서 밥과 국으로 배를 채우고 달콤하고 담백한 깔끔한 디저트 마무리. 아주 훌륭한 한끼 식사였습니다.
아까 들어올 땐 덥고 배고파서 보이지 않던 광경들이 배불러서 나갈 때 되니 눈에 들어오네요. 통유리로 처리한 모습에서 위생과 실력에 대한 이 식당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듯.
배의 여유가 있었다면 하나 사 먹어 보고 싶었던 복숭아 만두. 안에 복숭아 들었을까? 웩- 복숭아맛 만두면 그게 대관절 무슨 맛이야? 하지만 오늘 식사에 보여주었던 이 곳의 공력은 설사 저 안에 진짜 복숭아 조각이 들었더래도 멋진 맛의 조화를 보여주었으리라 하는 신뢰를 갖게 합니다.
이 때까지 가 본 곳 중 가장 더웠던 8월의 타이페이. 더워서 그랬는지 2박3일의 일정이 그 이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원한 공항에 들어서고 보니 땀흘리며 다녔던 기억도 이제는 다 즐거운 추억이 되었을 뿐.
인천↔타이페이↔방콕 왕복, 총 4번의 비행 중 무려 3번이 테리야키치킨누들이라는 똑같은 메뉴가 나온 공포의 에바항공. 인천으로 돌아갈 때 우리 부부를 너무나 기쁘게 해 주었던 건 전혀 다른 메뉴, 칠리소스생선튀김이 나왔다는 것. 우왕, 진짜 맛있더라 ㅠㅠ
낮게 드리운 오후의 햇살을 머금은 구름 위를 날아가다가,
어느새 정겨운 우리 산하가 드러납니다. 피서를 위해 정말 잘 다녀온 여름휴가였습니다. 휴가지가 피서지였단 말이 아니고, 찜통 대만을 다녀오고 보니 서울이 얼마나 시원한 곳인지 알게되었다는 의미에서 피서를 위해 잘 다녀왔다는 것이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