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를 빙자한 주뇽이의 북경여행기(5)
-만리장성-
강의를 마친 오후에는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북경시의 도심을 벗어나니 차창밖으로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동안 보아왔던 마천루들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장성에 가까이 이르자 눈 앞에 산들이 보이는데 산에 나무가 없는 것이 좀 특이하고 지형도 좀 색다른 모습이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거용관 장성. 현재기온이 7.2도라니 겨울치고는 이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장성에 오르지 않은 사내는 장부라 부를 수 없다."는 모택동의 글귀가 보인다.
이곳 거용관의 장성은 상당히 가파른 산비탈에 세워져 있어서 오르는 게 보통의 고생이 아니었다. 물론 오르는 와중에 뒤를 돌아보면 멋진 풍광들을 볼 수 있기는 하다. 가이드는 봉수대 3개를 다녀오라는데 그러기엔 시간과 체력이 모두 달린다. 결국은 그냥 2개에 만족.
-명13릉-
장성에서 내려와 향한 곳은 명13릉이다. 우리의 동구릉처럼 명나라 황제 13위의 묘소인데, 오늘 보는 것은 그 가운데에서 정릉이다. 내가 사는 고장에는 동구릉(태조 이성계 포함 9분)과 홍유릉(고종과 순종)이 있고 처가 동네에는 서오릉(장희빈 포함 5분)이 있어서 무덤이라면 충분히 익숙한데, 솔직히 처음에는 '남의 산소에 뭐 볼게 있겠나?' 하는 마음으로 갔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다.
처음에 본 이런 비석에는 아무런 글귀가 적혀있지 않다. 정릉의 주인공은 신종(주익균)인데 평소에 주색에만 빠져 있었던 까닭에 48년 동안 재위했어도 적을 것이 없었다고 한다.
비석을 지나 더 들어가면 멀리 큰 건물이 보이고 주변은 이렇게 고즈넉하다.
특별히 주변에 건물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당시에 세워졌던 목조건물들이 1644년 이자성의 난 때 농민군에 의해 불탔고, 이후에 재건된 것은 1914년의 방화로 인해 모두 불탔기 때문이라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엄청나게 웅장한 규모의 명루가 나타난다. 이것이 불타지 않은 이유는 석조건물이기 때문인데, 그 앞에 서서 바라보노라면 황제의 힘이 느껴진다.
명루의 옆을 돌아 올라가면 오늘의 하이라이트 [지하궁전]이 나타난다. 지하 27미터의 깊이에 약 400평의 넓이로 만들어진 이곳은 '무덤'이라기 보다 말 그대로 '궁전'의 모습이었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한참 내려가면(아파트 9층 높이) 이와 같이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안에 들어가면 황제의 옥좌를 비롯한 여러 부장품들을 볼 수 있는데, 지하에 이런 곳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마냥 신기했다. 석실 내부에는 붉은색의 관이 3개 놓여 있는데 가운데의 가장 큰 것이 황제의 것이고, 나머지 2개는 황후의 것이라고 한다.
저녁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는 가운데 능을 내려오니 풍광 한번 기가막히게 좋다.
강의를 마친 오후에는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북경시의 도심을 벗어나니 차창밖으로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동안 보아왔던 마천루들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장성에 가까이 이르자 눈 앞에 산들이 보이는데 산에 나무가 없는 것이 좀 특이하고 지형도 좀 색다른 모습이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거용관 장성. 현재기온이 7.2도라니 겨울치고는 이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장성에 오르지 않은 사내는 장부라 부를 수 없다."는 모택동의 글귀가 보인다.
이곳 거용관의 장성은 상당히 가파른 산비탈에 세워져 있어서 오르는 게 보통의 고생이 아니었다. 물론 오르는 와중에 뒤를 돌아보면 멋진 풍광들을 볼 수 있기는 하다. 가이드는 봉수대 3개를 다녀오라는데 그러기엔 시간과 체력이 모두 달린다. 결국은 그냥 2개에 만족.
-명13릉-
장성에서 내려와 향한 곳은 명13릉이다. 우리의 동구릉처럼 명나라 황제 13위의 묘소인데, 오늘 보는 것은 그 가운데에서 정릉이다. 내가 사는 고장에는 동구릉(태조 이성계 포함 9분)과 홍유릉(고종과 순종)이 있고 처가 동네에는 서오릉(장희빈 포함 5분)이 있어서 무덤이라면 충분히 익숙한데, 솔직히 처음에는 '남의 산소에 뭐 볼게 있겠나?' 하는 마음으로 갔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다.
처음에 본 이런 비석에는 아무런 글귀가 적혀있지 않다. 정릉의 주인공은 신종(주익균)인데 평소에 주색에만 빠져 있었던 까닭에 48년 동안 재위했어도 적을 것이 없었다고 한다.
비석을 지나 더 들어가면 멀리 큰 건물이 보이고 주변은 이렇게 고즈넉하다.
특별히 주변에 건물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당시에 세워졌던 목조건물들이 1644년 이자성의 난 때 농민군에 의해 불탔고, 이후에 재건된 것은 1914년의 방화로 인해 모두 불탔기 때문이라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엄청나게 웅장한 규모의 명루가 나타난다. 이것이 불타지 않은 이유는 석조건물이기 때문인데, 그 앞에 서서 바라보노라면 황제의 힘이 느껴진다.
명루의 옆을 돌아 올라가면 오늘의 하이라이트 [지하궁전]이 나타난다. 지하 27미터의 깊이에 약 400평의 넓이로 만들어진 이곳은 '무덤'이라기 보다 말 그대로 '궁전'의 모습이었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한참 내려가면(아파트 9층 높이) 이와 같이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안에 들어가면 황제의 옥좌를 비롯한 여러 부장품들을 볼 수 있는데, 지하에 이런 곳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마냥 신기했다. 석실 내부에는 붉은색의 관이 3개 놓여 있는데 가운데의 가장 큰 것이 황제의 것이고, 나머지 2개는 황후의 것이라고 한다.
저녁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는 가운데 능을 내려오니 풍광 한번 기가막히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