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를 빙자한 주뇽이의 북경여행기(1)
-시작하며-
"여행"을 떠난다는 것만큼 기대되는 일이 또 있을까?
작년 봄 어느 날 우연히 학교에서 받아본 공문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2008학년도 수퍼영재사사교육 지도교사 공모" 내가 속해있는 경기도교육청 산하에는 총 12,040명의 초,중,고 학생들이 영재교육원과 영재학급에서 영재교육을 받고 있는데 그들 중 110명의 학생과 55명의 선생님들을 따로 선발하여 "슈퍼영재"라 이름짓고 1:2 사사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그냥 시큰둥한 내용이었는데 세부사항의 이런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교사 전원 선진국 체험연수"
'우하하!! 뭐 이런게 다 있는감?' 이것은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연수가 아닌가 싶어 얼른 신청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것 같다. 암튼 지도교사로 최종 선정되기까지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결과를 기다렸는지 심지어 도교육청 장학사님께 문의전화까지 드렸었다.
그동안 영재교육에 몸 담아온 공적으로 다행히 지도교사로 선발되었고, 인근 학교의 학생을 받아 지도하였다. 주제는 "비싼 건전지는 싼 건전지에 비해 어떤 점에서 좋은가?"이다. 이를 위해 전기에 관한 이론을 가르치고 실험도 하여 지난 12월초에 최종적으로 보고서까지 제출하였다.
그럼 남은 것은?
그렇다!! 선진국을 체험하는 것이다.
-출발과 도착-
중간에 3시반에 깨서 깜짝 놀라 시계를 보았다. 혹시 늦은 것이 아닐까... 어젯밤 1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으니 4시간이나 잤나? 정확히 4시반에 핸드폰 알람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평소에 출근을 좀 이렇게 해 봐라...)
세수하고 나와서 아내가 차려준 아침상을 받았다. 아무리 출장이라해도 혼자만 떠나는 여행은 늘 미안하다.
아침 5시50분에 공항버스에 올랐다. 내가 사는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이고 버스는 구리시를 지나 서울을 가로질러 인천공항까지는 2시간이 좀 넘게 걸릴 것이다.
탈 때는 거의 빈차 상태여서 자가용처럼 좋았는데 돌다리(구리시)를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자리도 없다. 처음에는 '불경기라면서 해외여행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많나?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김포공항에서 내렸다. 월요일이라서 멀리 출장가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공항에 오긴 하였으나 핸드폰을 안 가져와서 모이는 장소를 알수가 없다. 장소에 관한 내용은 문자메시지로 받았는데... 이런... 아내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아침부터 혀를 차고 서있는데 앞에 걸어가는 여자아이와 엄마에게서 어째 영재냄새가 좀 났다. 해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11시40분 인천 출발. 2시간의 비행끝에 북경의 서우두국제공항에 도착. 입국심사를 받고 나와보니 하늘은 온통 뿌옇다. 아직 황사철이 아닌데 대기가 이래서야...
이번 연수에는 학생 98명과 교사 30여명이 함께 했다. 원래는 일본이나 싱가포르 중 한군데로 가려했으나 환율이 급등하여 이미 편성된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된지라 연수장소가 중국으로 변경된 것이다. 우리들은 각각 4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이동하였으며 나에게는 3명의 인솔학생이 배정되었다. 평소에는 40명씩도 데리고 다녔는데 3명 정도야 껌이지...
마침내 버스가 출발하고 본격적인 북경관광(?)이 시작되었다. 차창밖 뿌연 하늘 밑으로 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인구대국인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되는 가운데 멀리 냐오차오와 선수촌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작년에 행해진 북경올림픽의 개막식이 얼마나 장대했던가!! 특히 컴퓨터 자판 하나하나에 사람이 들어가서 춤을 추듯 연기한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비록 들어가보지 못하고 이렇게 멀리서 바라만 보는데도 그날의 감격이 느껴진다.
-평양옥류관-
그런 생각에 젖은 가운데 도착한 곳은 왕징에 있는 [평양옥류관]. 간판에서 보듯 북경의 이곳은 북한 정부에서 해외에 파견한 평양냉면집 가운데 1호점이다. 비슷한 곳이 다른 사회주의권 국가들에도 있지 아마? (예를 들어 캄보디아)
평소에 정말 오고 싶었던 곳이라 밖에서 사진 몇 방을 찍은 후 잰걸음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수백명은 족히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컸고 앞에는 무대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간단한 공연이 펼쳐졌다.
음식은 평양냉면을 주요리로 하여 다른 반찬들이 올려져 있었는데 다른 반찬은 다 공짜로 리필이 되지만 김치는 돈을 따로 내야한다고 해서 좀 신기했다. 냉면은 조미료를 거의 넣지 않은듯 담백하고 수수하였다. 주위에서는 이것보고 맛이 없다고 난리들인데(실제로 아이들은 거의 다 남김) 내 압에는 너무나 잘 맞고 좋았다. 그동안의 내 경험으로 보면 비싼 음식을 먹으면 이렇게 맛이 다 밍밍했다. (내가 먹은 음식 중 가장 기록적으로 비싼 것은 63빌딩 부페에서 1999년 12월 5일에 먹은 정식으로 1인분에 19만9천원짜리인데, 이것도 맛은 밍밍했다. 음식값만 둘이서 자릿세랑 세금 포함 42만4천원 나왔었다. 이런 짓은 결혼하면 정말 못하는 행동임)
반찬들은 떡, 김치, 잡채 등이 있었는데 그 중 특별히 눈에 띈 것은 떡볶이였다. 저거는 내가 국민학교 때 학교 앞에서 팔던건데... 허허... 북한에도 저런게 있었나? 남-북한이 분단된지 60년이 넘었고 그동안 거의 각자 알아서 살아왔는데 음식이 저렇게 우연히 일치할 수 있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이때까지 난 궁중떡볶이의 존재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해서 종업원에게 말을 시켜봤다. (사실은 이렇게 해서라도 말이 하고 싶었다)
"저... 있잖아요. 북한에도 떡볶이가 있나요? 허허..."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종업원 아가씨의 얼굴은 아주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아주 차갑게 대답했다. "네"
나는 너무 머쓱해져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주위의 선생님들은 이런 나를 쳐다보고..
"아니.. 떡볶이가 있냐는게 나쁜 말이야?" 한참 후에 내가 한숨을 쉬며 주변에 물었다. 난 북한을 절대 무시하려 했던게 아니고, 그냥 북한 사람들이 너무 반가웠고, 내가 국민학교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것이 북한에도 있는 게 그저 신기했을 뿐이고, 무엇보다 떡볶이가 뭐 대단하게 비싼 고급음식도 아니고...
"궁중떡볶이도 있잖아요." 옆에 있던 김선생님이 한마디 하신다. 그러면서 아무튼 내가 실수한거라고 했다.
그래도 식사를 마친 후에는 잊지 않고 그네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들에게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거쳐가는 관광객 중 하나이겠지만 나에게 그녀는 내가 그동안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북한사람이었다.
-사족-
1. 지난 2001년 겨울에 아내와 방콕에 갔을 때 지도상에서 방콕에 북한대사관이 있음을 보고 살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냥 택시타고 가서 문 열고 들어가면 월북이구나 생각하니 아찔하더군요. 제게 있어서 반공교육은 정말 골수에 사무친 모양입니다.
2.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북한 사람을 만나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저와 같은 교사라면 더욱 좋을겁니다. 어렸을 때는 반공교육을 받았던 우리 세대가 정작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북한을 동경했던 기억도 함께 가지고 있거든요. 저는 1989년에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는 모습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사상이란게 무엇일까요?
3. 지금도 우리집 책꽂이에는 "북한의 사상"이라는 책이 꽂혀 있습니다. 당시에는(아마 지금도) 저게 금서여서 소지하는 것 자체가 범죄였습니다. 어렵게 책을 구해서 가방에 넣고 집에 오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하지만 20여년 전 저는 정말로 주체사상이 알고 싶었거든요.
"여행"을 떠난다는 것만큼 기대되는 일이 또 있을까?
작년 봄 어느 날 우연히 학교에서 받아본 공문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2008학년도 수퍼영재사사교육 지도교사 공모" 내가 속해있는 경기도교육청 산하에는 총 12,040명의 초,중,고 학생들이 영재교육원과 영재학급에서 영재교육을 받고 있는데 그들 중 110명의 학생과 55명의 선생님들을 따로 선발하여 "슈퍼영재"라 이름짓고 1:2 사사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그냥 시큰둥한 내용이었는데 세부사항의 이런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교사 전원 선진국 체험연수"
'우하하!! 뭐 이런게 다 있는감?' 이것은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연수가 아닌가 싶어 얼른 신청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것 같다. 암튼 지도교사로 최종 선정되기까지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결과를 기다렸는지 심지어 도교육청 장학사님께 문의전화까지 드렸었다.
그동안 영재교육에 몸 담아온 공적으로 다행히 지도교사로 선발되었고, 인근 학교의 학생을 받아 지도하였다. 주제는 "비싼 건전지는 싼 건전지에 비해 어떤 점에서 좋은가?"이다. 이를 위해 전기에 관한 이론을 가르치고 실험도 하여 지난 12월초에 최종적으로 보고서까지 제출하였다.
그럼 남은 것은?
그렇다!! 선진국을 체험하는 것이다.
-출발과 도착-
중간에 3시반에 깨서 깜짝 놀라 시계를 보았다. 혹시 늦은 것이 아닐까... 어젯밤 1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으니 4시간이나 잤나? 정확히 4시반에 핸드폰 알람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평소에 출근을 좀 이렇게 해 봐라...)
세수하고 나와서 아내가 차려준 아침상을 받았다. 아무리 출장이라해도 혼자만 떠나는 여행은 늘 미안하다.
아침 5시50분에 공항버스에 올랐다. 내가 사는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이고 버스는 구리시를 지나 서울을 가로질러 인천공항까지는 2시간이 좀 넘게 걸릴 것이다.
탈 때는 거의 빈차 상태여서 자가용처럼 좋았는데 돌다리(구리시)를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자리도 없다. 처음에는 '불경기라면서 해외여행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많나?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김포공항에서 내렸다. 월요일이라서 멀리 출장가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공항에 오긴 하였으나 핸드폰을 안 가져와서 모이는 장소를 알수가 없다. 장소에 관한 내용은 문자메시지로 받았는데... 이런... 아내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아침부터 혀를 차고 서있는데 앞에 걸어가는 여자아이와 엄마에게서 어째 영재냄새가 좀 났다. 해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11시40분 인천 출발. 2시간의 비행끝에 북경의 서우두국제공항에 도착. 입국심사를 받고 나와보니 하늘은 온통 뿌옇다. 아직 황사철이 아닌데 대기가 이래서야...
이번 연수에는 학생 98명과 교사 30여명이 함께 했다. 원래는 일본이나 싱가포르 중 한군데로 가려했으나 환율이 급등하여 이미 편성된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된지라 연수장소가 중국으로 변경된 것이다. 우리들은 각각 4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이동하였으며 나에게는 3명의 인솔학생이 배정되었다. 평소에는 40명씩도 데리고 다녔는데 3명 정도야 껌이지...
마침내 버스가 출발하고 본격적인 북경관광(?)이 시작되었다. 차창밖 뿌연 하늘 밑으로 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인구대국인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되는 가운데 멀리 냐오차오와 선수촌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작년에 행해진 북경올림픽의 개막식이 얼마나 장대했던가!! 특히 컴퓨터 자판 하나하나에 사람이 들어가서 춤을 추듯 연기한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비록 들어가보지 못하고 이렇게 멀리서 바라만 보는데도 그날의 감격이 느껴진다.
-평양옥류관-
그런 생각에 젖은 가운데 도착한 곳은 왕징에 있는 [평양옥류관]. 간판에서 보듯 북경의 이곳은 북한 정부에서 해외에 파견한 평양냉면집 가운데 1호점이다. 비슷한 곳이 다른 사회주의권 국가들에도 있지 아마? (예를 들어 캄보디아)
평소에 정말 오고 싶었던 곳이라 밖에서 사진 몇 방을 찍은 후 잰걸음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수백명은 족히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컸고 앞에는 무대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간단한 공연이 펼쳐졌다.
음식은 평양냉면을 주요리로 하여 다른 반찬들이 올려져 있었는데 다른 반찬은 다 공짜로 리필이 되지만 김치는 돈을 따로 내야한다고 해서 좀 신기했다. 냉면은 조미료를 거의 넣지 않은듯 담백하고 수수하였다. 주위에서는 이것보고 맛이 없다고 난리들인데(실제로 아이들은 거의 다 남김) 내 압에는 너무나 잘 맞고 좋았다. 그동안의 내 경험으로 보면 비싼 음식을 먹으면 이렇게 맛이 다 밍밍했다. (내가 먹은 음식 중 가장 기록적으로 비싼 것은 63빌딩 부페에서 1999년 12월 5일에 먹은 정식으로 1인분에 19만9천원짜리인데, 이것도 맛은 밍밍했다. 음식값만 둘이서 자릿세랑 세금 포함 42만4천원 나왔었다. 이런 짓은 결혼하면 정말 못하는 행동임)
반찬들은 떡, 김치, 잡채 등이 있었는데 그 중 특별히 눈에 띈 것은 떡볶이였다. 저거는 내가 국민학교 때 학교 앞에서 팔던건데... 허허... 북한에도 저런게 있었나? 남-북한이 분단된지 60년이 넘었고 그동안 거의 각자 알아서 살아왔는데 음식이 저렇게 우연히 일치할 수 있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이때까지 난 궁중떡볶이의 존재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해서 종업원에게 말을 시켜봤다. (사실은 이렇게 해서라도 말이 하고 싶었다)
"저... 있잖아요. 북한에도 떡볶이가 있나요? 허허..."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종업원 아가씨의 얼굴은 아주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아주 차갑게 대답했다. "네"
나는 너무 머쓱해져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주위의 선생님들은 이런 나를 쳐다보고..
"아니.. 떡볶이가 있냐는게 나쁜 말이야?" 한참 후에 내가 한숨을 쉬며 주변에 물었다. 난 북한을 절대 무시하려 했던게 아니고, 그냥 북한 사람들이 너무 반가웠고, 내가 국민학교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것이 북한에도 있는 게 그저 신기했을 뿐이고, 무엇보다 떡볶이가 뭐 대단하게 비싼 고급음식도 아니고...
"궁중떡볶이도 있잖아요." 옆에 있던 김선생님이 한마디 하신다. 그러면서 아무튼 내가 실수한거라고 했다.
그래도 식사를 마친 후에는 잊지 않고 그네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들에게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거쳐가는 관광객 중 하나이겠지만 나에게 그녀는 내가 그동안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북한사람이었다.
-사족-
1. 지난 2001년 겨울에 아내와 방콕에 갔을 때 지도상에서 방콕에 북한대사관이 있음을 보고 살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냥 택시타고 가서 문 열고 들어가면 월북이구나 생각하니 아찔하더군요. 제게 있어서 반공교육은 정말 골수에 사무친 모양입니다.
2.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북한 사람을 만나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저와 같은 교사라면 더욱 좋을겁니다. 어렸을 때는 반공교육을 받았던 우리 세대가 정작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북한을 동경했던 기억도 함께 가지고 있거든요. 저는 1989년에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는 모습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사상이란게 무엇일까요?
3. 지금도 우리집 책꽂이에는 "북한의 사상"이라는 책이 꽂혀 있습니다. 당시에는(아마 지금도) 저게 금서여서 소지하는 것 자체가 범죄였습니다. 어렵게 책을 구해서 가방에 넣고 집에 오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하지만 20여년 전 저는 정말로 주체사상이 알고 싶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