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기록하다...중국]04, 13 -홀로 거리를 걸으며 생각하다.
04, 13 -홀로 거리를 걸으며 생각하다.
이 동네는 아마도 물값보다 맥주값이 더 싸지 않을까 생각한다. 간밤에 맥주를 사와서는 마시지않고 홀로 놔두고 잠이 들었다. 나는 목이 답답하여 물 대신에 맥주로 적신다. 그리고 느긋하게 진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무엇이든 많이 보려했든,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다. 난 아주 늦게 일어나 다시 거리를 걷는다.
난징에서 그렇게 볼 것이 없나고 묻는다면, 난 이 거리가 가장 볼 것이 많다고 동문서답하며 들려줄지 모른다. 거리를 걸으면서, 내 옆을 스치고 지나는 이들을 통해 난 사람을 보고, 오늘의 중국을 생각하곤 한다. 중국은 한 때, 너무나 앞선 나라였는데 지금은 잠시 세계경제에 밀려나 있다가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난 그 잠시가 서구의 산업화와 세계 강탈, 그리고 맑스로 대변되는 공산 사회에 대한 이상향에 갇힌 아주 짧은 세기라 말하고 싶다. 긴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고, 오늘의 중국을, 역사의 전부라 말하면 내일의 중국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난 중국이 침체된 이유 가운데 하나를 '공산사회'에 대한 그들의 선택 혹은 집념에서 그려본다. 흔히 자본주의와 반대개념으로 공산 사회를 쉽게 떠올리며, 맑스는 자본주의 내부적으로 심한 부패에 이르면 자연히 도태되고 공산사회가 열린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레닌은 자본주의 도태에 살짝 손을 댄 것인가, 아니면 무르익지 않은 모순을 그가 억지스레 만들어내어 홀로 공산사회를 건설하였는가?
어떠한 사회이든 개개인의 역량을 믿지 않고, 위에서 가두려하거나 계획한다면, 그 사회는 둔화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실수는 한 사람의 가치보다 열 사람의 나눔을 더 높이 평가하여, 이를 다시 한 사람이 계획하려 한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무한한 가치를 살피고 복돋아 주어야하며, 열에 읽곱 여덟이 힘들다면 이를 잘 나누거나 격려해야 함이 국가이다. 하지만 예전에 중국은 이를 통제하고, 억제하기만 했었다. 난 이를 우리나라의 교육으로 되짚어 본다. 선생은 아이의 가능성과 그네들의 특성을 기르기 보다 한 가지의 교육으로 모든 잣대를 삼는다. 아울러 선생은 절대전능한 신이 되어 서른 명이든 마흔 명이든 모든 아이들을 홀로 이끌어 간다. 그네들의 잠재적 가능성과 열정을 복돋아주지 못하는 것은 공산주의와 크게 닮아 있다는 생각이다.
배낭 여행을 하며 홀로 거리를 걸으면, 참으로 쓸데 없거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내 머리는 무수히 읽어온 책들의 숲을 다시 헤집고 있으며, 내 눈은 내가 보고 있는 거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 한다. 그리하여 난 거리를 걷고 있지만 눈으로 거리를 보는게 아니라 머리로 걷게 된다. 이때 내 성찰의 깊이는 평소에 어느 만큼의 책들 속에 거닐었는가에 달려 있다.
두 번 째 배낭 여행, 난 참 신기하게도 이 걸음 걸이가 낯설지 않음에 잠시 놀랐는데, 그건 처음 배낭 여행길 위에서 내 머리는 다시 걷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난 두 번 째 마저 황무지 같은 길을 걷는게 아니라, 계속 걷고 있던 길 위에 다시 서게 된 것이다. 우리의 기억 저장소는 신기하게도 어떠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면 거미줄철머 아주 빠르게 뻗아낙 다양한 생각을 불러내게 하곤 하는가 보다.
내가 보고, 느끼고 혹은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은 분명 마침표를 찍었지만 언제든지 그네들은 다시 내게 달려와 이야기를 들려줄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배낭 여행, 관광지에 대한 깊은 열정도 좋지만 무작정 거리를 걸어봄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여행을 하기 앞서 수 많은 책들을 머리 속에 삼켜 넣으면 좀 더 다른 여행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난 길 위에서 혼자 생각하고, 혼자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