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와 항주1- 소주의 한산사 풍교에서 장계의 풍교야박을 노래하다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소주와 항주1- 소주의 한산사 풍교에서 장계의 풍교야박을 노래하다

baikall 0 3590

중국배낭여행7- 소주의 한산사 풍교에서 장계의 풍교야박을 노래하다

1월 14일(금) 우시(무석) : 삼국성 - 장거리버스 - 소주 : 한산사(풍교)



c7-3.jpg


상해 양자호텔은 아침을 주지 않는데.... 여기 우시(무석) 오미호의
수수호텔에서 다시 묻는다.


c7-5.jpg


자오찬 빠오쿼 쭈수 페이리마 朝餐包括住宿費里嗎 아침 줍니까?

包括 빠오쿼 줍니다.

그런데 잘못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1인분만 준다네???

c7-4.jpg



이유는 모르겠다만... 여기 우시(무석)의 수수호텔은 1인분(?)은 준다기에 집사람더러 가서 먹고 오라 이르고,


c7-2.jpg


난 상해에서 처럼 햇반을 전기남비에 끓여 멸치와 김, 김치로 잘 먹는다.

집사람이 쌀 죽에다가, 대잎에 싼 찹쌀밥이 맜 있었다나...

자랑만 하지말고 하나 가져오지 않고서는....


c7-16.jpg



버스로 싼궈청(삼국성)에 이르니 입장료는 35원이다. 여기도 TV 영화 촬영한 곳인 데, 전 중국인의 관심이 대단했던지 건물과 배들이 제법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다.


c7-6.jpg



단체관광객은 경내가 넓은 탓으로 장난감 같은 차로 이동하는걸 부럽다 할 필요야 없겠지...

c7-10.jpg


느긋이 걸으며 여유작작 마음 편하게 구경하는 맛은 모를테니 말이다.

손권의 궁궐도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고, 주유의 수군진지엔 전함이 몇척 실하게 만들어져 있다.

c7-7.jpg


조조와 주유의 수군진지를 보다가 한가닥 의문이 들었다. 유비나 공명등 촉나라의 진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삼국지의 주인공이 유비로 되는 바람에 은연중 우리가 촉한편에 서게되는 것이다.


c7-9.jpg



따지고 보면 "적벽대전"조조의 위나라와 손권의 오나라 사이에서 벌어졌던 것이니 촉한은 권리주장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공명의 동남풍을 기원하는 제사 와 안개속 화살 수집은 소설가의 부풀려진 허구인 것을....

c7-8.jpg


주유의 수군진지를 지나 태호(우시나 소주는 이 호수 연변에 있다) 가 아닌 내륙의 조그만 연못에 조조와 주유의 수군선단이 미니어쳐로 만들어져 있다.

이 꼬맹이들이 전투장면에 나오는 그 거대한 전함들이라니..... 영화라는게 다 그런게 아니겠는가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끌며 K1번 버스로 시내로 나오면서 택시의 클랙션소리를 애써 외면해본다. 독한 놈들이라 할려나...

장거리 버스정류소에 화장실은 무료인데 여기도 문이 없어 다 보여주어야 한다!!



c7-11.jpg


30원에 버스표를 끊어 쑤저우(소주)를 향해 달린다. 도시를 벗어나니 온 들판이 수전(水田)인데 산하나 보이지 않는다.

여기도 개발바람이 불어 공장이며 집들이 들어서느라 어수선한 느낌도 든다

물의 도시라는 흔적은 얼른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소주는 공업도시인 것이다!


버스정류소에서 삐끼들을 억지로 물리치고 지도를 한 장 샀는데 화장실을 물으니 이 친구가 끝까지 따라와서 가리켜 준다.

칭원 처수오 짜이날 厠所 在 哪儿 ?

이 사람아 그만, 네 장사나 해야지? 호기심이 너무 많아 걱정되네...


스취안로(十全街 십전가) 왕스위안(망사원)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탈수 있는지 난감하다.

택시를 탈수도 있으나 처음 도착하는 도시에선 가급적이면 버스를 고집하는 것은 고생은 되도 그 도시의 지리를 익히고자 함이다!


몇 번이나 묻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8번이 없기에 되돌아 가서 마침내 평문(기차북첨)에서 55번 버스를 타니 7번째 정류소가 망사원이다. (다른 버스는 화차역-평문-기차역)


망사원 옆 십전가와 봉황가가 교체하는 네거리에 한국음식점 한양관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찾아 점심으로 우동을 먹었는 데...

한국 TV가 나오는 연유를 묻는다는게 그만 ... 일어서 나와버렸네...

우시에서 좋은 호텔에 묵었기로 여기서는 도미토리에 묵어서 돈을 절약하려고 난위안빈관을 찾으니 ‘게스트하우스’라고 쓴 글귀가 반가우면서도 마음에 걸린다.

아니나 다를까? 수위실에서 불러세우더니 방이 없단다. 두 번째 카드로 건너편의 난린판덴으로 갔더니 이번에는 무려 500원을 달랜다!!

프론트의 아가씨에게 좀 싼 호텔을 소개해 달랬더니 동오반점이라 하는데 소주대학 부설이라나..

지도에 표기해 달래서 들고는 호텔을 찾아 십전가를 걸어가는데.....


한국 음식점이 네거리에 한청(서울) 이라고 그럴듯하게 꾸며진 곳 말고도 흐름한 곳이 하나더 보이는데 (한양관과 한청은 손님이 많으나 이곳은 한산함) .....

이곳 용수산 식당안에서 김치를 담고 있다. 판매도 하는양... 보이네!

c7-12.jpg


도중에 십전가의 흐름한 가게에서 비단으로된 스카프를 15원씩에, 윗옷 모양의 핸드폰 집을 개당 5원씩에 사는데....

값을 자꾸 깍으니 여자는 목을 치는 시늉 을 하고, 남자는 손으로 땅바닥을 친다.


그러니까 더 이상 깍아 팔면 장사하는 사람은 죽는다는 소리요, 이 가격이 땅바닥 가격으로 다 내렸다는 소리일테다!!

한참동안 정신없이 웃었다. 이 화상들의 하는 짓을 보고 어찌 웃지 않을 도리가 있나......


쑤저우 판덴을 지나 5분을 더 걸어서 정말 대학 구내에 동오반점 호텔이 있는데 트윈에 280원을 부른다.

교수타입의 일본인등 외국인이 더러 보이는데 검소한 곳이라는 인상이 든다.

짐을 던져놓고 얼른 나와 택시를 잡으니 한산사까지 22원이나 나온다(기본10원)


책에는 입장시간이 4시 30분까지 라는데 벌써 4시 40분... 입장을 할수 있을런지 적이 걱정이 된다.

그 와중에서도 운하에 걸려 있는 운치 있어 보이는 아치형의 석교를 보고 가슴이 설레인다.

바로 그 유명한 풍교 이다!! 확인할 겨를도 없이 20원에 한산사에 입장하니.....

c7-13.jpg


*** 쑤저우시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한산사 옛날 사진입니다 ***

마침 종루에서 그 유명한 한산쓰(한산사)의 종이 울린다. 정말 듣기에 청아한데 종소리는 긴 여운을 끌며 어두워지는 거리의 골목길을 빠져 나가는구나.

종루와 종각의 루는 2층을 뜻하고 각은 1층을 말한다는 데, 2층에 오르려면 시주를 해야 한단다.

그리고 본당에서 예불이 시작되는데, 염불소리가 우리네 산사의 것인양 듣기에 무척 가슴에 와 닿는다.

정말 가슴에 저려 오는 것은 잠시후 풍교를 볼수 잇다는 설레임과 어둠이 내리는 이국땅이기 때문일까?

절은 평지의 주택가에 노랑색 칠을한 담으로 둘러졌는데, 경내가 비교적 넓으며 큰 탑이 당나라때 창건된 절 답게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고풍스러운 종루는 생각보다는 높이가 낮으나 그런대로 사람의 발길에 닳은 듯하고....

지붕 처마 또한 아름답기 그지 없다! 듣던대로 지붕에 손오공 일행의 서유기 조각이 앙증맞게 앉아 있다.


내 키보다 훨씬 큰 양초가 무수히 늘어선 가운데, 한산사 4계절을 찍은 칼라사진들이 60여점이나 전시되어 있어.....

4계절 춘하추동의 여러 모습중에서도 눈에 덮인 한산사를 볼수 있어서 의외의 수확이라 해야겠다!


c7-14.jpg


창건 1,500년제를 거행한 사진의 화려한 모습과 참가한 군중과 중요 인물들에서 사회주의 국가치고는 불교의 비중이 대단하다 해야하나.. 아님 관광수입을 겨냥한걸까?


절은 5시가 되니 문을 닫는데 절 앞 아치모양의 다리에 올라서니 정말 다리밑에 나룻배가 한척 메여있다.

집사람에게 여기가 그 풍교 (단풍나무 다리) 라고 감회를 나타낸다.


달지고 까마귀우는 어두운밤, 찬서리 하늘에 가득한데

강가의 단풍, 고깃배의 불빛에 시름안고 잠드네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들려오는

야밤중 종소리 나그네 뱃전까지 들려오네‘


장계"풍교야박" 시 를 목청을 가다듬어 읊어 보는데...... 고소성은 소주의 옛 이름인데.... 운하는 대답이 없다!!

그저 묵묵히 흘러갈 뿐이네.... 어둠속에서 가슴 가득 그 옛날의 일을 회상해 본다.


과거에 낙방하고 돌아오는 사람의 심정이 오죽하겠나... 마치 내가 뱃전에 누워 물결에 일렁이는양....

c7-15.JPG


위 시에 나오는 종은 1,400년전의 당나라때 만들어 졌는데 후대에 왜구가 약탈해 갔다고 한다. 참 왜구!!! 대단한 세력이다.

그래서 이토오 히로부미가 사죄의 뜻으로 새로 종을 만들어 보냈는데 절에서는 대웅보전 안에 보관하고, 1907년에 새로 종을 주조하여 저 종루에 달았단다.

뒤돌아서면서 새삼 문학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천수백년전 장계의 시 한수가 오늘에 이르러 얼마나 많은 세계인들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 한수가 있어 외국인을 구름처럼 모을수 있다면....


당나라시절 일본의 스님들이 구도의 길을 얻기위해 이역만리 찾아온 이 한산사에...

수백년후인 명나라 말기에는 왜구들의 떼를 지어 휩쓸며 약탈을 하고...

그 수백년후에는 카메라를 메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일본인들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밤도 늦었고하여 큰거리를 걸어나와 대로를 조심스럽게 무단횡단(!)하여 ‘하산교’에서 버스를 타니 퇴근시간인양 복잡하기 그지 없다.

번화가라는 관첸제( 觀前街 관전가)에 내리니 생각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상해를 먼저 보았기 때문이리라.


구경을 마치고 자전거 인력거를 교섭하니 20원 달래기에 타지 못하고 택시로 왔는데 기본요금인 10원이 나온다.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

c7-1.jpg



0 Comments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