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배낭여행4 - 노신공원의 무도회와 태극권에 몰두한 사람들
주가각 - 상해체육관 - 외탄의 야경 - 노신공원(홍구공원) - 예원
상해 근교의 대관원과 물의 도시 주지아지아오(주가각)를 보고 다시
상해로 돌아와 상하이티위창(체육관) 종점에 내린다.
저녁때가 되어 마침 보이는대로 일식집(한식겸용)에 들어서니 청소
하던 종업원들이 뭐어라 중국어로 난처해 한다.
왜 그럴까? 말은 한마디도 못해도 듣는것이며, 특히 눈치하나는
빠른 집사람이 아직 영업시간이 안된 것 같다고 한다.
미안해하는 여종업원들을 뒤로하고 나오다 보니 현관에 5시부터
라고 영업시간이 적혀 있다
기다리면서 보니 2008년 올림픽을 기념하는 12-3 종목 선수들
모형이 연결된 모습의 조형으로 미루어 올림픽에 거는 기대를 알수
가 있겠다.
지하철을 바꾸어 타면서 다시 외이탄(외탄)으로 가니 휘황찬란한
야경이 사람의 넋을 빼는것도 같다.
캠코더로 촬영하는데 겨울밤이라 그런지 손이 시리다. 100여가
지나 되는 푸둥쪽 대형 전광판의 그림이 예술성도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난징둥루(남경동로) 야경도 더했으면 더했지 훌륭한데 모든 건물
들이 함께 참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기사정이 풍부한 것일까?
조명기술은 우리보다 한수 위라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1월 12일(수) 상해 (노신공원- 예원- 임시정부- 서커스관람)
런민광창(인민광장) 지하철역 1호선에서 2호선으로 가자면 긴
통로를 한참 걸어야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한 탓인지 일방
통행이 되어있다.
또 지하철 모든 역이 한 곳에서 양방향으로 탈수 있어 방향을 잘못
탔다 싶으면 어디서든 내려서 반대방향의 차를 탈수 있으니 땅덩어리
넓은 나라는 지하도 넓게 파서 만드는 모양이다.
2호선 종점인 중산공원역에 내렸는데 3호선 전철인 밍쭈센(명주선)은 바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책에서 읽었기로, 지상으로 나와 밖으로 나가려다 혹시나 싶어 어떤 청년에게 “ 칭원, 밍쭈센 짜이 날”
하고 물었더니 2층으로 올라가란다.
바로 2층이 탑승장인데(요금 3원) 누가 연계가 안된다 했나? 아마
다른 역에서 그렇다는 뜻이었을까?
‘홍구족구장역’에 내려 축구장을 한바퀴 도는데 구석마다 전축을
틀어놓고 댄스를 가르치는 광경이며 "태극권"을 하는 모습들이 자못
흥미롭다.
이 중국무술의 이름이 왜 우리나라 "태극기의 태극" 이라고 쓰는지
예전에는 당혹감을 가진적이 있다.
그건 태극기의 태극이 우리나라 고유의 것인줄 잘못 알았던 것이니..
태극기는 1876년 강화도 운양호 사건시 일본 군함에 일본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발포했느냐는 일본측의 항의에 조선의 대신들은
국기의 의미를 몰라 무척 당혹했다고 한다.
하여 1882년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에 갈때 우리네 집 대문에도
흔히 그려져 있던 태극에, 중국의 8괘중 건,곤,리,감 4괘만을 취하여
처음으로 그렸다는게 정설이다.
잘 알다시피 태극은 음양을 뜻하는 것으로 천지, 남여, 암수를 뜻
하는데 2천수백년전에 중국의 주나라 역경에서 처음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는 동양철학의 정수로서 이에 바탕한 태극권은 강약과 움직임과
멈춤이 조화를 이루는 운동인 것이다.
곧 치아는 강하나 썩기 쉬운데 비해 혀는 부드러우나 부러지지
않는다는 원리에 맞추어 천지의 기운을 우리 몸속에서 운행시키는
무술운동이다.
태극권은 멀리 6세기경 양나라 한공원이 시조라고 하는데 당나라
시대를 거쳐 송나라시대에 진희이의 태극도설을 채용하여 원나라
장삼봉이 대성했다고 전한다.
우슈의 6가지 종목중 하나로 24개의 동작은 무술이라기 보다는
심신을 단련하는 운동에 가깝다.
‘노신공원(예전의 홍구공원)’에 들어서니 입장료를 받는곳에
한글로 윤봉길의사의 ‘매헌’은 10원 추가라고 적혀 있어 12원을
내고 입장하는데 종이에 뭘 한참 적어준다!
여기서는 노인들이 곳곳에 떼를 지어 댄스를 추거나 태극권을
하고 있는데, 우리네 지하철이나 공원에 무료히 앉아 있는 노인들
의 멍하고 맥이풀린 모습에 비하면 훨씬 활기가 넘치고 생기가
있는게 이런 모습은 배워볼만 하다.
한 곳에 2-3백명이 모여 뭐어라 이야기들을 하는데 소리가 들리
지 않는다. 어라 저게 뭘까?
가까이 가니 이른바 벙어리되는 분들이 수화로 얘기를 하시는데
침을 튀기는양 너무도 대화에 열중해 있는 모습이 숙연하기도 하다.
처음보는 남녀 노인들이 공원에서 음악에 맞추어 지르박이나
블루스등 춤추는 모습은 보는것만으로도 참으로 흥이난다. 또 줄을
지어 동작을 맞추어 태극권을 수련하는 모습외에도 ....
물통을 들고 다니며 대형 붓으로 시멘트 도로에 붓글씨를 쓰는
사람, 나무 막대기를 돌리며 무술 연습하는 사람, 비파를 연주
하는 사람 건너편에는 눈을 지긋이 감고 아코디언 악기를 켜는
사람등...
또 우리네 장기판의 "빰 맞으며 훈수하는" 소란 스러움 대신에
탁자에 4명이 둘러앉아 마작하는 곁에는 7~8명이 둘러 섰는데도
숨소리 하나없이 적막한 것이 자못 엄숙하기조차 하다!!
다시한번... 중국의 노인들은 늙어서도 참 시간활용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하는 것이 참으로 부럽다!!! 우리 노인들도 이런 것들
을 배워야 할텐데....
옛날 일제시대에 만장절날(일본천황생일) 윤봉길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투척했을 당시의 이름은 홍구공원 이었다.
이름이 노신공원으로 바뀐후에는 연못까지 파고 다리를 놓고 연꽃
이며 조경을 했는데 나무들이 수백년은 된양 깊은 숲속을 느끼게 하는
데 벤치도 많아 여유를 느끼게 한다. 참으로 휴식하기 좋은 곳이다.
우리네 이광수에 해당되는 ‘IQ정전’의 저자 노신의 박물관은
8원을 받는데 민족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의 저서와 흉상이며 젊은이와 토론하는 모습이며 사진등 참으로
많은 유물들이 수집되어 있었다.
또한 일제에 항거하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많은 사진등이며 기록물들...
노신에 대해 쓴 각 나라의 책들만도 족히 300여권은 될법하다.
그런데 정작 손님들이 없어 썰렁한게 의아롭다.
겨울이라 그런걸까?
드디어 안쪽 깊숙이 윤봉길 의사에 ‘매정’에 이르니 무심한
중국 노인들이 양지바른 곳에 둘러서서 얘기 나누느라 바쁘다.
1932년 이곳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제 천장절행사에 폭탄을
투척했던 윤봉길의사의 거사를 중국어와 한글로 쓴 현장비가
서있는데 이것도 국교정상화가 되었기로 가능했던 일이리라!
2층 매헌은 문이 닫혀 있어 폐쇄된줄로 착각할뻔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혹시나 싶어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가 문을 두드리니....
왠 시커먼 남자가 반가이 웃으며 문을 열어준다. 평소 찾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리라...
"조국에 한몸 바치는게 부모에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 이라는
선생의 편지에 온 몸이 숙연해진다.
선생의 발자취며 이 일로 인해 임시정부가 장개석의 중국정부에서
인정을 받아 이후 크게 도움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우선은 일제에 쫃기어 임시정부가 수없이 장소를 바꾸어
가며 도망길에 올라야 했으니....
그 도망친 여정이 지도로 나와 있다.
직원이 서투르나마 한국말을 할수 있어서 여러 얘기를 들을수가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나오다 보니 1층에 여직원이 두명 앉아
있는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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