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간의 동남아시아 여행> 만개의 봉우리 숲, 완펑린(万峰林)
오랜만에 화장실도 없고 창문도 안으로 난 20원짜리 보통 방에서 잠을 자다 잠을 설쳤습니다. 동짠 앞, 어두워져 그냥 보이는 대로 들어간 여관에서 싼 맛에 선택한 방이었는데, 사실 TV에 선풍기, 수건에 물수건까지 있을 건 다 있었습니다. 달라진 건 스스로였는데, 옛날같으면 감사하며 잤을 것을 이젠 왠지 뭔가 불안해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친절하지만 껄떡거리는 버스 기사가 "여관은 안전하지 않으니 웬만하면 호텔에 가"라고 말했던 것이나, 안으로 난 창문, 밤새 울리는 계단을 뛰어다니는 소리, 괜히 불안한 돈 가방. 안전. 전에 혼자 여행 다닐 때에는 복대라도 차고 잤지만, 지금은 복대도 없고.
그러나 밤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괜히 잠만 못 잤을 뿐이었습니다. 미지근한 물에 몸을 대충 씻고 버스표를 끊으러 갔습니다.
원래 네이버 카페에서 몇몇 소개글을 읽고 알게 된 치우베이(邱北)현의 푸저헤이 풍경구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치우베이 가는 표를 끊어 뒀는데,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버스 떠나기 두 시간 전에야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침대버스였던 것입니다.
중국의 침대버스는 더럽고 냄새나기로 유명해서, 중국사람들도 여간해선 잘 타지 않습니다. 게다가 치우베이까지 아무리 오래 가도 7~8시간이면 갈텐데, 6시에 출발하면 분명 새벽 1~2시에 도착할 거고, 그 밤에 여관을 찾아 헤멜 자신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처음 가는 도시인데.
그래서 20퍼센트의 환불수수료를 감수하고 그냥 뤄핑(罗平)까지만 가기로 했습니다. 치우베이는 나중에 생각하자고 하고.
아침을 대충 먹고 완펑린으로 가니 풍경구는 정말이지 너무 한적했습니다. 나후이 마을은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지만, 표를 사고 풍경구 안을 관람하는 기다리자니 정말 그 넓은 곳에 여행객이 나 하나 뿐이었습니다. 겨울이라 그런 건가요, 아님 원래 이렇게 파리 날리는 장사인가요?
41원짜리 관람차는 족히 열다섯 명은 탈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지만, 오직 나를 위해 시동을 걸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터무니없는 가격에 말문이 막혔지만, 그 큰 차에 혼자 타게 되니 차를 전세낸 것 같아 갑자기 즐거워집니다. 차에는 기사 말고 가이드도 딸려 있었는데 이번엔 제 전속 가이드가 된 거였습니다.
제 전용 차량들입니다. 하지만 여기 열 명씩 태우고 각각 41원씩 받는다면, 정말이지 칼만 안 들었지 강도라 할 겁니다.
씽이가 원래 소수민족자치주의 소속도시지만, 완펑린 안의 나후이마을은 대부분이 부이족(布依族)과 먀오족(苗族)이라고 합니다. 산도 있고 물도 있어 산을 좋아하고 산에 살려 하는 먀오족과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부이족이 같이 지내게 된 거라고.
먀오족은 대부분 산속에 마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분지 내의 마을은 대개 부이족이라는데 산으로 난 한갈래 작은 길을 가리키며 가이드는 "저 길이 먀오족이 자신들의 근원인 산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척박한 구이저우 성 내의 다른 곳과는 다르게, 카르스트 지형이라 토양도 비옥하고 수량도 풍부해 물산이 풍부한 곳이랍니다. 사진으로는 광시성의 구이린이나 양수오와도 비슷하게 생겼지만, 직접 보면 그 느낌은 좀 다릅니다. 광시성 쪽은 비옥한 평지 위에 불룩 솟은 산들이 이어진 느낌, 여긴 울퉁불퉁 산지 속에 얼마 안되는 분지형 평지가 자리한 느낌.
끝없는 봉우리들 사이에 나후이 마을이 있습니다.
완펑린에서 가장 유명한 팔괘 모양의 논입니다. 중심부에서 물이 솟는다네요.
아침 내내 안개가 끼어서 사진이 흐립니다.
멀리서 보기보다 직접 안에 들어가서 보고 싶어서, 나후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관람차에서 내려 오른쪽 길로 들어가려 하자, 가고 싶은 데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관람차 기사 아저씨가 웃으며 다시 다가옵니다. 그 전에 밥이나 같이 먹자는 걸 사양하고 들어온 마을.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멀리서 보는 모습과 직접 마을로 내려가서 보는 것은 좀 달랐지만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마저 주위의 풍경과 너무 잘 어우러져 있어서, 제게는 여전히 풍경 같았습니다..
바쁘게 땅을 가는 모습, 그 옆에서 아이를 보는 아이, 빨래하는 아낙, 수다스러운 개울가, 게으른 울음을 우는 소, 낯선 손님을 보고도 멀뚱멀뚱 쳐다보는 강아지...... 모두 우리 곁에 있었던 모습들이 아닌가요? 할머니가 논에서 일할 때 논두렁을 뛰어다니면서 놀던 기억이 났습니다. 비료포대를 깔고 눈덮인 산길을 슬로프삼아 내려오던 기억도. 동네에서 들려오는 억양이 센 사투리마저도 강원도의 굵고 억센 사투리를 닮은 것 같습니다. 타향에서 고향을 찾는 나. 아마 한국에 이렇게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을이 남아 있었으면, 주변에 펜션이며 가든이 성황을 이뤘을텐데. 그 생각을 하자 왠지 가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여길 배경으로 삼겹살을 구워 상추에 싸서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을까 생각하는 나는 왠지 부끄럽지만 왠지 정말 간절해집니다. 삼겹살은 지금도 갑자기 먹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