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협 트래킹 '홀로 걷는 나그네 마음'(5)
‘꺼벙이’ 의 중국 운남성 배낭여행기(5)
홀로 걷다.
06-03-29 7:00시, 일조권을 상실한 창문은 아침이 오는지 가는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간단한 짐을 챙겨들고 조용히 숙소를(林林 G.H)를 나선다. 예약도 없이 무작정 리장(麗江)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후탸오샤(虎跳峽) 트래킹 일정은 이번여행의 일순위로 홀로 걷는 외로움과 즐거움의 백미를 동시에 맛보기 위한 선택이었다.
예약도 없이 무작정 나온 무모함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매표에 애를 먹는다. 이리저리 창구를 옮겨 다니며 복무원(버스터미널 직원)을 붙들고 물어물어 겨우 표를 구하고 나니 바로 출발이다. 장시간 산행에도 불구하고 아침식사를 해결할 시간이 없다. 미니버스는 진사장(金砂江)협곡을 끼고, 때로는 험준한 고갯길을 빙글빙글 돌아간다. 간밤에 잠을 설쳐, 비몽사몽간에 호도협(虎跳峽)입구‘챠오터우’까지 다다르니 2시간이 걸렸다.
[image]MY-4-1말두필.JPG[/image]
트래킹을 위한 인원은 서양인 3명, 중국인 4명의 젊은이들뿐이다. 50元 입장료에 입구 구멍가게에서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 출발한다. 멀리보이는 깊은 협곡과 높은 산을 보니 가슴이 확 열린다. 무슨 연고로 먼 곳까지 외로운 걸음을 왔단 말인가. 산에도, 협곡에도 길이 있다. 천천히 걸어도 숨은 쉽게 차오르고 근육은 쉽게 피로를 느낀다. 표고 차 때문일까. 같은 차에서 내린 중국인 젊은이 남여 4명은 조금씩 걸음이 줄어든다.
마부는 그들의 뒤를 졸졸 따라 간다. ‘힘들면 타겠지’‘계속 따라와 봐라 타고가나’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볼만하다. 차츰 기온이 올라 반팔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호흡을 조절하며 천천히 적응해간다. 깎아지른 절벽의 허리를 끼고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실지렁이 꿈틀거리듯 뽀얀 길이 굽이져 보인다. 윤곽만 희미하던 ‘옥룡설산’의 위용이 거리를 더해 갈수록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해온다.
구름 모자를 벗고 살짝 돌아섰던 모습도 좀더 뚜렷하게 보여준다. 희끗희끗한 첨탑 모양, 높은 바위산의 위용은 내 생전 처음이니 마냥 가슴이 울렁거린다, 물컹 가슴에 잡히는 무엇이 있으니 별난 중년의 과민성 외로움 이지 싶다.
습관처럼 잰 걸음으로 걷다가도 아지 못하는 사이에 멈추어 서서 계곡을 보고, 눈을 들어 희뿌연 산을 무념하게 바라본다. 걸음에서 눈을 떼면 몸이 뒤뚱거린다. 위엄 있는 산의 정기에 압도되어 내 눈은 사정없이 먼 곳을 따라간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면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아니하리니... ”
같이 출발한 동행들을 지나친지 오래다. 지나쳐 가는 이도 마주 오는 사람도 없다. 이 광막한 산중에 홀로 걸으니 더욱 왜소해지는 느낌이다. ‘챠오터우’를 출발한 지 한 시간이 넘었다. 폭 들어간 산허리에 조그만 마을이 보인다. ‘나시’(naxi G.H)산장이다.
[image]MY-4-2호도마을.JPG[/image]
마당을 들어서자, 자주색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소수민족 처자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여인은 뜨거운 차를 마당 가운데 식탁에 내다준다. 그녀는 바쁘게 집안일을 보면서도 다 마신 찻잔에 다시 물을 따라준다. 한참 쉬었다가 일어나 짐을 꾸리며 머뭇거리자 그냥가라고 손짓하며 마당을 거쳐 다른 길로 올라가는 길까지 안내해준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면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아니하리니... ”
산을 오르는 모든 발길은 반드시 이 산장의 집 마당을 거쳐 들고 나가게 되어 있으니 여인의 뜨거운 차 한 잔에 나그네는 목을 적시며 복을 빌지니 ‘여인이여 가(家)내에 평안 있으라’. ‘나시’산장 역시 그러하길 빈다.
가장 힘든 고개라는 24밴드가 시작 된다. 숨은 쉽게 차오르고 땀은 쉴 사이 없이 흐른다. 걷는 것 이라면 그래도 자신했는데. 호흡과 근육에 산소공급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래도 잠간만 걸음을 멈추면 금방 땀은 숨어버리고 호흡도 평온해 진다. 바람이 인다. 산천은 건조하고 거기 마른풀들은 힘없이 흔들린다.
천길 낭떠러지에는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어울려 계곡을 타고 올라온다. 거대한 ‘옥룡설산’은 점점 바른 면면을 보여준다. 뒤를 보니 아득한 저쪽 산허리에 마부를 대동한 몇몇 일행이 점점이 움직인다. 힘든 24밴드의 된 고개를 간식으로 준비한 과자를 물고 올라간다. 산길을 지키는 노점 어린소년의 물 한 병도 힘이 된다.
어느새 고개도 넘었다. 안온한 마을이 나타나니 길가에는 마른 고목이 힘없이 반겨준다.
산장 ‘차마객잔(茶馬客棧)’의 국수 한 사발에 상념 한 덩어리
차마객잔(茶馬客棧). 반대로 올라온 한 팀의 일행이 둘러앉아 쉬고 있다. 사람보기 어려운 산중에 인적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장독대 위 전망대에서 하염없이 ‘옥룡설산’은 바라본다.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구름이 덮였다 지나가고 밝은 해가 비추다 사라지는 변화무쌍 모습이다. 아침식사도 건너뛴 채 올라온 허기에 속이 아리다. 고민스러운 메뉴판을 뒤적이다 만만한 누들스프(닭국수)를 찍었다.
[image]MY-4-3차마먼산.JPG[/image]
맛은 논할 처지가 아니다. 국물도 남김없이 마시는 나의 식욕이 의아한지 지켜보던 색안경 사나이는 눈이 마주치자 흠짓 먼 산을 바라본다. 주문을 받고 처리하는 그 색안경의 정체가 무얼까? 까만 등산복 차림에 덥수룩한 수염이지만 도시적 분위기에 미남이건만 어찌 이 산중에 기거할까. 색안경은 고감도 니콘 카메라로 ‘옥룡설산’ 촬영 구도를 잡기도하고, 작은 주전자에 우려낸 누런 찻물을 쉴 사이 없이 마셔댄다.
왠지 범접하기 어려운 그의 도도함이 전혀 밉지 않다. 색안경에 가려진 눈과 표정이 사뭇 궁금하다. 색안경은 정말 현명한 선택으로 자연과 한 몸이 되기 위해 산을 벗하며 옥룡의 휘하에 거하는 걸까. 색안경이 앉은 작은 대나무 의자가 너무 부럽다. 당장 한 순간도 어디로 갈지 몰라 부침(浮沈)하는 나의 길에 비하면 말이다. 아서라. 나그네의 마음은 너무 간사 하다.
(※후문에 의하면 그는 나와 같은 국적에, 입적(入籍)한 승(僧) 이라는... 메모하는 내 수첩을 다 훔쳐보지는 않았을까?)
다시 걷는다. 오후의 기온은 살며시 떨어진다. 바람은 조금씩 세게 불어 거친 황토바람을 일으킨다. 길은 비를 본지 오래인 듯 발이 닿는 순간 밀가루 같은 분말을 일으킨다. 신발은 빨간 황토 빛으로 물들었다. 내리막길은 수월하지만 점점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은 몸의 중심을 잡아 흔든다. 굵은 모래는 사정없이 안면을 때린다. 잠시라도 눈을 감으면 험준한 계곡이 발밑에 도사리고 있다.
[image]MY-4-4노인.JPG[/image]
산장 ‘하프게스트하우스’. 지나는 인적은 아무도 없고 대대적인 증축공사가 한창이다. 쥔장은 몹시도 바쁜 모습이다. 주문한 차 한 잔을 가져다주고는 영판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색 바랜 모시 천에 희미한 글씨로 적힌 메뉴판이 바람에 사정없이 날아간다. 따듯한 생강차 한 잔에 ‘옥룡설산’ 장관을 담으려 해도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생각에 잠겨 골몰하다 찻값도 못 치르고 오다 다시 되돌아간다.
염소목동과 나뭇짐 할머니
책자에 의하면 호도협 트래킹은 1박 2일 코스로 산장에서 1박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는데 나는 너무 서두른 것은 아닌가. 혹자는 말하기를 “호도협 트래킹을 하루에 주파하는 미치광이...” 운운이며,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한다”라고 했거늘. 나는 그들의 중론과 충고를 기억하며 그나마 나무와 바위만 이라도 주의 깊게 살펴야겠다. 혼자 걷는 잇점을 살려 되도록 많은 영상을 가슴에 새기며 마음을 열어 사물을 느끼기로 한다.
길은 점점 낮은 계곡 쪽으로 돌아내려가고 멀리 말끔한 포장길과 반듯한 건물이 보인다. 떼를 이룬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염소는 안중에도 없는지 목동의 시선은 계곡 넘어 맞은 편 설산을 붙박여 있다. 신물이 나도록 보고 살았을 그 산에 아직도 볼 것이 있을까. 볼수록 정이 든다는 것은 이를 두고 이름인가.
[image]MY-4-5하프진져티.JPG[/image]
염소목동을 바라보며 걷는 내 발아래로 불쑥 나타나게 있으니 엉성하게 묶인 나뭇짐 이였다. 체구가 작은 할머니는 나무단속에 폭 파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소수민족 전통 복장에 마른 삭정이 나뭇단을 놓고 쉬고 있다. 할머니의 골 깊은 주름에선 또 다른 인생의 계곡이 느껴진다. 소라처럼 말린 할머니의 등에 나뭇단이 업힐 수 있을까.
“니하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허물어진 입 주변에 환한 웃음이 돈다. 나는 할머니의 나뭇단을 업는 시늉을 했다. 할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의아해 하더니 이내 알아차린 듯 손사래를 친다. ‘나그네는 어여 가라. 어여 가라’고 손을 내둘린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푸석푸석한 손을 자꾸 내둘린다.
한 참후에 돌아보니 나뭇단과 하나가 된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종내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말라 자연에 귀화할 나의 먼 미래를 보듯, 나뭇짐을 향해 ‘짜이젠(再見)’을 외친다.
뒷간의 창틀에 걸린 옥룡설산 수묵화
5:00. 산길은 끝났다. 에둘러온 산이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중도협 깨끗한 포장길 변에 위치한 ‘티나게스트 하우스’는 텅 비어 있다. 인적 없는 ‘티나게스트 하우스’의 뒷간(변소)을 빌린다.
[image]MY4-6설산.JPG[/image]
근심을 떨어버리는 그 작은 공간에 철학이 있다. 창살도 없이 직사각형으로 뚫린 해우소(解憂所) 창은 캔바스다. ‘옥룡설산’이 한 폭의 그림으로 창틀에 걸려있다. 등 뒤로 박히는 그 환한 그림의 환영에 못 이겨 엉거주춤한 자세로 돌아앉는다. 육신의 속을 비우면서 또 다른 마음을 채우는 자연 친화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
넘어가는 해는 아직 멀었고 길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는데 돌아가는 차는 없다. 필담도 통하지 않는 빵차(包車) 기사는 무려 80위안을 요구한다. 어디 가서 밤을 보내도 마찬가지 아닌가. 해가 있을 때가지 ‘하바’마을 쪽으로 걸어간다. 간간히 마을은 보이지만 인적은 없다. 속을 비운 탓인지 허기가 느껴진다. 쉬어 가야겠다.
몸을 맡기면서 마음을 주지 못한, 나의 실체가 스러지는 밤
한참을 걸어온 우디(woody G.H)의 하룻밤 숙소는 20위엔(2,600원)이다. 그 많은 객실에 나 혼자뿐이다. 여장도 풀기 전에 허기를 채우고 전망 좋은 원두막에서 흐르는 시간을 가늠한다. 밤을 재촉하는 바람과 계곡에서 올라오는 웅장한 물소리가 들린다. 바람은 뒤 죽은 듯이 잠잠해 폭풍전야를 연출하다가 일시에 몰려와 여린 호두나무 가지를 사정없이 흔들고 간다.
주위는 사위고 마지막까지 희뿌연 설산의 빛을 유지하던 산의 고고한 자태도 결국 빛을 잃어갔다. 어둠은 금방 마을을 덮어 간다. 밤바람을 피해 방으로 들어왔지만 빛은 없다. 무슨 영문인지 전기불은 안 들어온다. 10여 가구 남짓 마을 전체에 빛은 없다. 천장에 달랑 매어 달린 알전구는 면구스러운지 엉성한 창문 틈으로 밀려온 바람에 흔들린다.
장작불 피워서 데웠다는 샤워장 물은 온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냉냉하다. 그나마 나오는 물도 병아리 오줌처럼 쫄쫄거린다. 촛불을 가져다주는 소녀를 붙잡고 물어봐도 영판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좀더 철저한 자연의 적응과정이라면 버려야 하는 건지. 설산은 하늘의 경계를 허물기가 아쉬운지 바람을 일으키며 촛불을 흔들어 놓고 간다. 얼마만의 촛불인지.
별은 낮게 내려온 하늘에 환하게 걸려있다. 하늘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니 투명하고 많은 수효가 보인다. 일정한 비추임보다 반짝이는 밝기의 조절이 선명하다. 아무도 없는 마당에 고개가 저리도록 하늘을 본다.
종일 산을 에둘러온 피곤함도 잊고 별 잔치에 취해 있던 시간이 얼마였을까. 방을 돌아가니 방문이 잠겨 있다. 허술한 시건장치에 자동잠금장치는 분명 아니었는데 난감했다. 텅 비었던 맞은편 방에는 아까 보았던 청년들이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웅성거리고 있다. 난처한 내 입장을 애기해도 통 반응이 없다.
길 건너 신축건물에 기거하는 주인 ‘마~(엄마)’를 깨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대뜸 드라이버와 망치를 들고 나선다. 익숙한 솜씨로 창문 틈에 덧댄 쫄대를 떼어내고 유리를 들어낸다. 잠긴 방문은 쉽게 열렸지만 나는 그 순간부터 청년들이 두려워진다. 별일 없었다는 듯이 내일 아침 고쳐준다는 ‘마~“의 변명이 내게 무슨 소용인가.
말을 시키면 수줍어하며 피했던 청년들이었지만 산 아래 혼자뿐인 여행객에 대한 탐심은 없을까. 어눌한 내 심경을 듣고 있던 ‘마~“는 미련 없이 돌아간다. 문명의 때를 벗은 환상적인 별 잔치에서 추락하는 기분이다. 현실을 직시해야하는 극히 대조적인 순간이다. 소지한 노잣돈을 이틀 동안 신었던 양말 속에 분산해 빨래 줄에 걸쳐두고 얼마는 자연스러움을 가장해 책장에 놓아두는 촌극을 벌였으니.
잠들지 않은 밤, 불면증의 병인은 내 안에 존재한 불신이었다. 순수한 자연에 몸을 맡기면서 정작 마음을 주지 못한, 나의 실체가 스러지는 밤. 그 환한 별들에게, 청년들의 순수한 눈동자에 얼마나 송구했는지.
계/산/서
차비(림림-시외터미널) 13元, 차비(리장-호도협) 17元 , 입장료 (호도협) 50元, 간식 (챠오터우:음료+과자) 4元,
중식(차마객잔:국수5+물4+차2) 11元, 숙박비(우디 G.H) 20元, 석식(위구르식 샌드위치 외 ) 18元,
일계 :133元 (17,290원)
이 글은 3/25~ 4/2 까지 중국 운남성을 다녀온 ‘꺼벙이(주종천)’의 배낭여행기입니다
홀로 걷다.
06-03-29 7:00시, 일조권을 상실한 창문은 아침이 오는지 가는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간단한 짐을 챙겨들고 조용히 숙소를(林林 G.H)를 나선다. 예약도 없이 무작정 리장(麗江)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후탸오샤(虎跳峽) 트래킹 일정은 이번여행의 일순위로 홀로 걷는 외로움과 즐거움의 백미를 동시에 맛보기 위한 선택이었다.
예약도 없이 무작정 나온 무모함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매표에 애를 먹는다. 이리저리 창구를 옮겨 다니며 복무원(버스터미널 직원)을 붙들고 물어물어 겨우 표를 구하고 나니 바로 출발이다. 장시간 산행에도 불구하고 아침식사를 해결할 시간이 없다. 미니버스는 진사장(金砂江)협곡을 끼고, 때로는 험준한 고갯길을 빙글빙글 돌아간다. 간밤에 잠을 설쳐, 비몽사몽간에 호도협(虎跳峽)입구‘챠오터우’까지 다다르니 2시간이 걸렸다.
[image]MY-4-1말두필.JPG[/image]
트래킹을 위한 인원은 서양인 3명, 중국인 4명의 젊은이들뿐이다. 50元 입장료에 입구 구멍가게에서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 출발한다. 멀리보이는 깊은 협곡과 높은 산을 보니 가슴이 확 열린다. 무슨 연고로 먼 곳까지 외로운 걸음을 왔단 말인가. 산에도, 협곡에도 길이 있다. 천천히 걸어도 숨은 쉽게 차오르고 근육은 쉽게 피로를 느낀다. 표고 차 때문일까. 같은 차에서 내린 중국인 젊은이 남여 4명은 조금씩 걸음이 줄어든다.
마부는 그들의 뒤를 졸졸 따라 간다. ‘힘들면 타겠지’‘계속 따라와 봐라 타고가나’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볼만하다. 차츰 기온이 올라 반팔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호흡을 조절하며 천천히 적응해간다. 깎아지른 절벽의 허리를 끼고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실지렁이 꿈틀거리듯 뽀얀 길이 굽이져 보인다. 윤곽만 희미하던 ‘옥룡설산’의 위용이 거리를 더해 갈수록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해온다.
구름 모자를 벗고 살짝 돌아섰던 모습도 좀더 뚜렷하게 보여준다. 희끗희끗한 첨탑 모양, 높은 바위산의 위용은 내 생전 처음이니 마냥 가슴이 울렁거린다, 물컹 가슴에 잡히는 무엇이 있으니 별난 중년의 과민성 외로움 이지 싶다.
습관처럼 잰 걸음으로 걷다가도 아지 못하는 사이에 멈추어 서서 계곡을 보고, 눈을 들어 희뿌연 산을 무념하게 바라본다. 걸음에서 눈을 떼면 몸이 뒤뚱거린다. 위엄 있는 산의 정기에 압도되어 내 눈은 사정없이 먼 곳을 따라간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면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아니하리니... ”
같이 출발한 동행들을 지나친지 오래다. 지나쳐 가는 이도 마주 오는 사람도 없다. 이 광막한 산중에 홀로 걸으니 더욱 왜소해지는 느낌이다. ‘챠오터우’를 출발한 지 한 시간이 넘었다. 폭 들어간 산허리에 조그만 마을이 보인다. ‘나시’(naxi G.H)산장이다.
[image]MY-4-2호도마을.JPG[/image]
마당을 들어서자, 자주색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소수민족 처자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여인은 뜨거운 차를 마당 가운데 식탁에 내다준다. 그녀는 바쁘게 집안일을 보면서도 다 마신 찻잔에 다시 물을 따라준다. 한참 쉬었다가 일어나 짐을 꾸리며 머뭇거리자 그냥가라고 손짓하며 마당을 거쳐 다른 길로 올라가는 길까지 안내해준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면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아니하리니... ”
산을 오르는 모든 발길은 반드시 이 산장의 집 마당을 거쳐 들고 나가게 되어 있으니 여인의 뜨거운 차 한 잔에 나그네는 목을 적시며 복을 빌지니 ‘여인이여 가(家)내에 평안 있으라’. ‘나시’산장 역시 그러하길 빈다.
가장 힘든 고개라는 24밴드가 시작 된다. 숨은 쉽게 차오르고 땀은 쉴 사이 없이 흐른다. 걷는 것 이라면 그래도 자신했는데. 호흡과 근육에 산소공급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래도 잠간만 걸음을 멈추면 금방 땀은 숨어버리고 호흡도 평온해 진다. 바람이 인다. 산천은 건조하고 거기 마른풀들은 힘없이 흔들린다.
천길 낭떠러지에는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어울려 계곡을 타고 올라온다. 거대한 ‘옥룡설산’은 점점 바른 면면을 보여준다. 뒤를 보니 아득한 저쪽 산허리에 마부를 대동한 몇몇 일행이 점점이 움직인다. 힘든 24밴드의 된 고개를 간식으로 준비한 과자를 물고 올라간다. 산길을 지키는 노점 어린소년의 물 한 병도 힘이 된다.
어느새 고개도 넘었다. 안온한 마을이 나타나니 길가에는 마른 고목이 힘없이 반겨준다.
산장 ‘차마객잔(茶馬客棧)’의 국수 한 사발에 상념 한 덩어리
차마객잔(茶馬客棧). 반대로 올라온 한 팀의 일행이 둘러앉아 쉬고 있다. 사람보기 어려운 산중에 인적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장독대 위 전망대에서 하염없이 ‘옥룡설산’은 바라본다.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구름이 덮였다 지나가고 밝은 해가 비추다 사라지는 변화무쌍 모습이다. 아침식사도 건너뛴 채 올라온 허기에 속이 아리다. 고민스러운 메뉴판을 뒤적이다 만만한 누들스프(닭국수)를 찍었다.
[image]MY-4-3차마먼산.JPG[/image]
맛은 논할 처지가 아니다. 국물도 남김없이 마시는 나의 식욕이 의아한지 지켜보던 색안경 사나이는 눈이 마주치자 흠짓 먼 산을 바라본다. 주문을 받고 처리하는 그 색안경의 정체가 무얼까? 까만 등산복 차림에 덥수룩한 수염이지만 도시적 분위기에 미남이건만 어찌 이 산중에 기거할까. 색안경은 고감도 니콘 카메라로 ‘옥룡설산’ 촬영 구도를 잡기도하고, 작은 주전자에 우려낸 누런 찻물을 쉴 사이 없이 마셔댄다.
왠지 범접하기 어려운 그의 도도함이 전혀 밉지 않다. 색안경에 가려진 눈과 표정이 사뭇 궁금하다. 색안경은 정말 현명한 선택으로 자연과 한 몸이 되기 위해 산을 벗하며 옥룡의 휘하에 거하는 걸까. 색안경이 앉은 작은 대나무 의자가 너무 부럽다. 당장 한 순간도 어디로 갈지 몰라 부침(浮沈)하는 나의 길에 비하면 말이다. 아서라. 나그네의 마음은 너무 간사 하다.
(※후문에 의하면 그는 나와 같은 국적에, 입적(入籍)한 승(僧) 이라는... 메모하는 내 수첩을 다 훔쳐보지는 않았을까?)
다시 걷는다. 오후의 기온은 살며시 떨어진다. 바람은 조금씩 세게 불어 거친 황토바람을 일으킨다. 길은 비를 본지 오래인 듯 발이 닿는 순간 밀가루 같은 분말을 일으킨다. 신발은 빨간 황토 빛으로 물들었다. 내리막길은 수월하지만 점점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은 몸의 중심을 잡아 흔든다. 굵은 모래는 사정없이 안면을 때린다. 잠시라도 눈을 감으면 험준한 계곡이 발밑에 도사리고 있다.
[image]MY-4-4노인.JPG[/image]
산장 ‘하프게스트하우스’. 지나는 인적은 아무도 없고 대대적인 증축공사가 한창이다. 쥔장은 몹시도 바쁜 모습이다. 주문한 차 한 잔을 가져다주고는 영판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색 바랜 모시 천에 희미한 글씨로 적힌 메뉴판이 바람에 사정없이 날아간다. 따듯한 생강차 한 잔에 ‘옥룡설산’ 장관을 담으려 해도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생각에 잠겨 골몰하다 찻값도 못 치르고 오다 다시 되돌아간다.
염소목동과 나뭇짐 할머니
책자에 의하면 호도협 트래킹은 1박 2일 코스로 산장에서 1박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는데 나는 너무 서두른 것은 아닌가. 혹자는 말하기를 “호도협 트래킹을 하루에 주파하는 미치광이...” 운운이며,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한다”라고 했거늘. 나는 그들의 중론과 충고를 기억하며 그나마 나무와 바위만 이라도 주의 깊게 살펴야겠다. 혼자 걷는 잇점을 살려 되도록 많은 영상을 가슴에 새기며 마음을 열어 사물을 느끼기로 한다.
길은 점점 낮은 계곡 쪽으로 돌아내려가고 멀리 말끔한 포장길과 반듯한 건물이 보인다. 떼를 이룬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염소는 안중에도 없는지 목동의 시선은 계곡 넘어 맞은 편 설산을 붙박여 있다. 신물이 나도록 보고 살았을 그 산에 아직도 볼 것이 있을까. 볼수록 정이 든다는 것은 이를 두고 이름인가.
[image]MY-4-5하프진져티.JPG[/image]
염소목동을 바라보며 걷는 내 발아래로 불쑥 나타나게 있으니 엉성하게 묶인 나뭇짐 이였다. 체구가 작은 할머니는 나무단속에 폭 파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소수민족 전통 복장에 마른 삭정이 나뭇단을 놓고 쉬고 있다. 할머니의 골 깊은 주름에선 또 다른 인생의 계곡이 느껴진다. 소라처럼 말린 할머니의 등에 나뭇단이 업힐 수 있을까.
“니하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허물어진 입 주변에 환한 웃음이 돈다. 나는 할머니의 나뭇단을 업는 시늉을 했다. 할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의아해 하더니 이내 알아차린 듯 손사래를 친다. ‘나그네는 어여 가라. 어여 가라’고 손을 내둘린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푸석푸석한 손을 자꾸 내둘린다.
한 참후에 돌아보니 나뭇단과 하나가 된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종내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말라 자연에 귀화할 나의 먼 미래를 보듯, 나뭇짐을 향해 ‘짜이젠(再見)’을 외친다.
뒷간의 창틀에 걸린 옥룡설산 수묵화
5:00. 산길은 끝났다. 에둘러온 산이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중도협 깨끗한 포장길 변에 위치한 ‘티나게스트 하우스’는 텅 비어 있다. 인적 없는 ‘티나게스트 하우스’의 뒷간(변소)을 빌린다.
[image]MY4-6설산.JPG[/image]
근심을 떨어버리는 그 작은 공간에 철학이 있다. 창살도 없이 직사각형으로 뚫린 해우소(解憂所) 창은 캔바스다. ‘옥룡설산’이 한 폭의 그림으로 창틀에 걸려있다. 등 뒤로 박히는 그 환한 그림의 환영에 못 이겨 엉거주춤한 자세로 돌아앉는다. 육신의 속을 비우면서 또 다른 마음을 채우는 자연 친화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
넘어가는 해는 아직 멀었고 길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는데 돌아가는 차는 없다. 필담도 통하지 않는 빵차(包車) 기사는 무려 80위안을 요구한다. 어디 가서 밤을 보내도 마찬가지 아닌가. 해가 있을 때가지 ‘하바’마을 쪽으로 걸어간다. 간간히 마을은 보이지만 인적은 없다. 속을 비운 탓인지 허기가 느껴진다. 쉬어 가야겠다.
몸을 맡기면서 마음을 주지 못한, 나의 실체가 스러지는 밤
한참을 걸어온 우디(woody G.H)의 하룻밤 숙소는 20위엔(2,600원)이다. 그 많은 객실에 나 혼자뿐이다. 여장도 풀기 전에 허기를 채우고 전망 좋은 원두막에서 흐르는 시간을 가늠한다. 밤을 재촉하는 바람과 계곡에서 올라오는 웅장한 물소리가 들린다. 바람은 뒤 죽은 듯이 잠잠해 폭풍전야를 연출하다가 일시에 몰려와 여린 호두나무 가지를 사정없이 흔들고 간다.
주위는 사위고 마지막까지 희뿌연 설산의 빛을 유지하던 산의 고고한 자태도 결국 빛을 잃어갔다. 어둠은 금방 마을을 덮어 간다. 밤바람을 피해 방으로 들어왔지만 빛은 없다. 무슨 영문인지 전기불은 안 들어온다. 10여 가구 남짓 마을 전체에 빛은 없다. 천장에 달랑 매어 달린 알전구는 면구스러운지 엉성한 창문 틈으로 밀려온 바람에 흔들린다.
장작불 피워서 데웠다는 샤워장 물은 온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냉냉하다. 그나마 나오는 물도 병아리 오줌처럼 쫄쫄거린다. 촛불을 가져다주는 소녀를 붙잡고 물어봐도 영판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좀더 철저한 자연의 적응과정이라면 버려야 하는 건지. 설산은 하늘의 경계를 허물기가 아쉬운지 바람을 일으키며 촛불을 흔들어 놓고 간다. 얼마만의 촛불인지.
별은 낮게 내려온 하늘에 환하게 걸려있다. 하늘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니 투명하고 많은 수효가 보인다. 일정한 비추임보다 반짝이는 밝기의 조절이 선명하다. 아무도 없는 마당에 고개가 저리도록 하늘을 본다.
종일 산을 에둘러온 피곤함도 잊고 별 잔치에 취해 있던 시간이 얼마였을까. 방을 돌아가니 방문이 잠겨 있다. 허술한 시건장치에 자동잠금장치는 분명 아니었는데 난감했다. 텅 비었던 맞은편 방에는 아까 보았던 청년들이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웅성거리고 있다. 난처한 내 입장을 애기해도 통 반응이 없다.
길 건너 신축건물에 기거하는 주인 ‘마~(엄마)’를 깨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대뜸 드라이버와 망치를 들고 나선다. 익숙한 솜씨로 창문 틈에 덧댄 쫄대를 떼어내고 유리를 들어낸다. 잠긴 방문은 쉽게 열렸지만 나는 그 순간부터 청년들이 두려워진다. 별일 없었다는 듯이 내일 아침 고쳐준다는 ‘마~“의 변명이 내게 무슨 소용인가.
말을 시키면 수줍어하며 피했던 청년들이었지만 산 아래 혼자뿐인 여행객에 대한 탐심은 없을까. 어눌한 내 심경을 듣고 있던 ‘마~“는 미련 없이 돌아간다. 문명의 때를 벗은 환상적인 별 잔치에서 추락하는 기분이다. 현실을 직시해야하는 극히 대조적인 순간이다. 소지한 노잣돈을 이틀 동안 신었던 양말 속에 분산해 빨래 줄에 걸쳐두고 얼마는 자연스러움을 가장해 책장에 놓아두는 촌극을 벌였으니.
잠들지 않은 밤, 불면증의 병인은 내 안에 존재한 불신이었다. 순수한 자연에 몸을 맡기면서 정작 마음을 주지 못한, 나의 실체가 스러지는 밤. 그 환한 별들에게, 청년들의 순수한 눈동자에 얼마나 송구했는지.
계/산/서
차비(림림-시외터미널) 13元, 차비(리장-호도협) 17元 , 입장료 (호도협) 50元, 간식 (챠오터우:음료+과자) 4元,
중식(차마객잔:국수5+물4+차2) 11元, 숙박비(우디 G.H) 20元, 석식(위구르식 샌드위치 외 ) 18元,
일계 :133元 (17,290원)
이 글은 3/25~ 4/2 까지 중국 운남성을 다녀온 ‘꺼벙이(주종천)’의 배낭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