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윈난성 5편]장족의 고향 샹그릴라를 찾아서
이 여행기는 작년 10월 중순 휴가를 사용하여 일주일 동안 윈난성 여행을 하면서 그 때 그 때의 느낌과 일정을 적은 여행기입니다. 다소 저의 개인적인 부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제가 제 자신(토미)을 바라보며 적은 내용으로 꾸며서 조금 이상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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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샹그릴라인가? 중국 윈난성 기행!
전체 일정
10월 08일 MU2004 2240 // 인천–쿤밍 // 76GH
10월 09일 MU5917 0830 // 쿤밍-리지앙-챠오터우-후타오샤(호도협) // 차마객잔
10월 10일 후타오샤(호도협) // 티나게스트 하우스
10월 11일 후타오샤(호도협)-챠오터우-중띠엔-송찬린스-비타하이(벽탑해)-중띠엔 // 영생빈관
10월 12일 중띠엔-공항-장족마을-중띠엔 // 영생빈관
10월 13일 중띠엔-리지앙 꾸청(古城) // 국제청년객잔
10월 14일 리지앙-수허 꾸청(古城)-리지앙-터미널 // 쿤밍행 야간 워푸(침대 버스)
10월 15일 쿤밍-76GH-차(茶)시장- 시내-화조시장-76GH
10월 16일 MU2003 0220 // 쿤밍-인천
[image]map.gif[/image]
2005 12-Oct
영생빈관 - 야크바 - 공항(장족 마을) - 야크바 - 영생빈관
※사용 경비(인민폐 위안)(203元)
아침(야크바 라면) - 18
빵차(장족마을 - 중띠엔) - 10(현지인 5)
저녁 - 20
마사지 - 50
카푸치노(중띠엔 꾸청) - 10
영생빈관 - 80(욕실 포함 트윈 룸, 전기 장판, 핫 샤워, TV, 수건, 비누, 샴푸, 칫솔, 치약, 뜨거운 물 제공, 조식 불포함, 자정에 문 닫음)
택시(시내 - 공항) - 15
역시 중띠엔의 아침은 달랐다. 한 겨울 내무반에 혼자 잤던 느낌이다. 건조함에 코, 목은 다 말라 비틀어지고 추위 또한 이불과의 이별을 서운하게 만들어 준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난 토미, 몸 상태를 체크하고 중띠엔에서 1박을 더하기로 마음 먹었다. 대충 따스한 물에 몸을 씻고, 일박을 더한다고 얘기하고 야크바로 향했다.
가는 길 속, 아침 중띠엔의 모습은 이곳이 진짜 샹그릴라가 아닌가 싶다. 엷은 안개사이로 광주리를 옭아 메고, 아이의 손을 잡고 나서는 장족들의 모습이 너무나 정겨운 곳, 여기가 바로 장족들 마음속의 이상향인 샹그릴라로 느껴졌다.
야크바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빠오처(빵차) 일일 대여에 대해 알아봤다. 더친 근처의 똥찬린스까지 가서 경치 구경하고 오는 길에 장족 마을에 들려 사진도 찍어주고 그들의 모습을 남기기까지, 우선 시간만 해도 왕복 9시간이 걸리고, 요금도 비싸게 불러 난감했다. 결론은 장족 마을 탐방에 너무 멀리 가다 보면 정작 중요한 그들의 생활을 느낄 수 없기에 한국인 신혼 부부와 무작정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중띠엔 시내에서 사탕과 과자를 산 후 택시를 타고 중띠엔 공항으로 갔다. 기사한테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고 하였으나 공항에서 길이 끝나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공항에서부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장족(티벳족) 가족들은 다같이 밀 타작을 하고 있었다. 외지인이 가장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들을 섭렵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사탕을 준비했고, 더불어 즉석 카메라로 어르신들의 마음을 사기로 했다. 역시 적중했다. 안 그래도 호의적이라는 장족은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고, 우리도 최대한 예의를 차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중간중간 만나는 장족들에게 중국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니하오’로 시작하여 그들과 교감을 할 수 있었다.
[image]1012_01.jpg[/image]
<<첫번째 만났던 장족(티벳족) 가족의 모습>>
다음으로 들어간 곳이 아이들이 나와 놀고 있는 장족 집! 그 집 안에는 예순이 넘으신 할머니도 계셨다. 처음에는 그 할머니가 우리를 약간 귀찮아 하는 듯 보였으나 이내 즉석카메라의 능력을 발휘하여 가까워 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13살 소년의 영리함으로 분위기는 더더욱 좋아졌다. 나중엔 할머니가 계속 사진과 캠코더 영상에 주목하며 찍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막내, 10살 코흘리개는 토미를 은근 슬쩍 보다가 같이 쳐다보면 쑥스러워 얼굴도 못 들곤 한다. 과연 토미가 느끼려고 하는 모습이 이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순박함과 꾸밈없는 모습, 토미를 자꾸 아시아에 묶어두게 한다. 그곳에서 베풀어준 수유차, 수유치즈와 속이 빈 찐빵, 그렇게 입맛에 맞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토미의 마음을 따뜻함으로 채워 주었다.
[image]1012_02.jpg[/image]
<<두번째 만났던 할머니와 손자 장족(티벳족)의 모습>>
그곳을 나와 약 30분 이상 무작정 걸었다. 이곳은 확 트인 시야 덕분에 눈앞에 가까워 보이긴 하나, 잡힐 듯 잡힐 듯 상당히 멀리 있다. 다음 마을에서 장족 아낙네들이 힘든 노동을 하기에 잠시 인사를 나누고 나니, 그들의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장족의 집을 가더라도 집 앞에는 덩치는 산만한 사나운 개가 우리를 먼저 맞이하고 있다. 그곳 또한 예외는 아니었으며 우리도 답례를 해 주었다. 그 집은 1층은 화장실과 돼지 우리가 있고, 2층은 그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갓 돌 넘은듯한 아기와 남자들이 있었다. 장족의 풍습은 논, 밭 어디를 가더라도 여자들이 거의 모든 바깥 일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집의 할머니도 일하다 말고 설명해 주느라 우리와 같이 2층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호의적인 그들은 또 음식을 주려고 한다. 주는 것마다 모두 마다 할 수도 없고, 먹는 것을 남길 수도 없어 극구 사양하고, 그들의 영양 간식 수유차, 치즈대신 일반 차를 먹으며 통하지 않는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그들과 마음만은 통했다.
장족의 집에 대해 좀 더 얘기하자면 항상 중앙에 난로가 있어 그곳을 중심으로 앉고, 그곳에서 음식도 조리한다. 그리고 난로 위에는 수유 원액을 두고 굳게 만들기 위한 망이 놓여 있다. 아마 난로에서 나온 연기와 열기로 굳게 만드는 모양이다. 이번엔 그들의 방도 보았다. 한 쪽 칸의 침대는 음지라 그런지 쌀쌀하고, 반대쪽엔 잘 숙성된 수유 치즈가 메주마냥 잘 놓여져 있다.
[image]1012_03.jpg[/image]
<<세번째 만났던 장족(티벳족) 가족의 모습과 주변 풍경>>
그들과도 감사의 말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니, 다음 마을이 눈 앞에 보이긴 하나 걷기에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신혼 부부는 반대쪽 중띠엔으로 돌아가고 토미는 그 길로 더 멀리 마을로 향했다. 그러나 한참을 걷다 끝이 없음을 느꼈고 무엇보다 중간중간 놓친 그들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기도 해서 왔던 길로 방향을 돌렸다. 그래서 현재 토미는 잠시 지나가며 인사를 나눴던 장족 아낙네들과 밭에서 여러 이야기도 나누고 사탕도 주고, 사진도 찍어 주고 있다. 지금 글을 정리하고 있는 이 시간까지 한 시간 이상 그들과 함께 한 것 같다. 지금 같이 있는 장족 아낙네의 사이는 42살의 시어머니와 23살의 며느리 관계이다. 회화 책에 나와있는 몇 개의 단어로 그들과 교감하며, 며느리 보고 예쁘다고 하니, 시어머니가 뾰로통 하길래 이내 토미의 엄마도 주름살이 있고, 나이도 많다. 그리고 엄마의 모습이 여자의 모습보다 더 예쁘다고 하였다. 물론 시어머니가 이해를 했을는지 모르지만... 이후 시어머니는 토미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며, 몇 살이냐, 부인은 있느냐, 아이는 있느냐를 계속 물어본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토미에게 자꾸 다가오며, 학자 같다고 한다. 아마 토미의 모습이 장족에게 인기가 있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믿거나 말거나 겠지만...
그들은 계속 일을 하고, 토미는 글쓰기와 명상에 잠겨 있다. 근처에 택시도 버스도 없고 물론 가게도 없으며, 말 통하는 이 아무도 없다. 그러나 멋진 하늘과 끝없는 지평선, 따사로운 햇살, 여유로운 장족 마을의 풍경, 무엇보다 그들이 있고 토미가 있기에 너무 행복한 순간이다.
한참 글을 쓰고 이젠 가야 할 시간이라 생각하여 떠나려 했다. 그러자 시어머니 되는 분이 자꾸 토미를 보고 자고 가라고 한다. 일하다 말고 붙잡는데 하는 수 없이 차 한잔 얻어먹겠다고 얘기하고 그들의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며느리는 밭에서 일을 하고 시어머니와 손자 아기가 토미를 그들의 집으로 인도하였다. 원래 토미의 목표도 장족 마을에서의 숙박이었지만, 고도 적응과 큰 일교차에 감기 증세가 있어 아주 큰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들의 호의를 거절하였다. 아마 후에 아주 아주 큰 아쉬움으로 남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번 체험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그들 삶 속에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는지 많이 느끼고, 배웠으며, 향후 배낭 여행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자신 있게 그들의 삶 속에 토미의 삶을 살짝이라도 담글 수 있을 것 같았다.
[image]1012_04.jpg[/image]
<<네번째 만났던 시어머니와 며느리 장족(티벳족)의 모습, 할머니가 토미의 중국어 회화책을 보고 신기해 하고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들의 집도 다른 장족과 큰 차이 없이 앞마당, 잠자는 곳, 부엌 겸 거실로 이루어져 있다. 토미는 자연스레 부엌으로 초대되어 앉았다. 처음에는 토미를 꺼리던 손자 아기도 점점 마음을 열더니 자꾸 장난을 거는 것이다. 역시 아이들의 마음, 동심은 전세계 공통인 듯 하다. 그 와중에 할머니라고 하기엔 모호한 시어머니가 수유차를 주고 바로 닭의 뱃속에서 가져온듯한 계란을 삶고 있다. 그냥 앞마당에 키운 닭에게서 나온 순수 자연란이었다. 너무 맛있게 먹고 앞마당에서 잠시 바람을 쐬었다. 그러고 얼추 5시가 넘어서 가려고 하는데 계속 토미를 잡고 자고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두 아들이 있고, 그들의 방에 침대 세 개가 있어 침대 하나를 나보고 쓰라며 애원을 하였으나 역시 몸 상태가 문제였다.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려워 그 자리에서 수유차를 더 달라고 하여, 고산병 약을 먹고는 몸이 안 좋다는 것을 표현해 주었다. 너무 미안했고, 아쉬웠다. 만약 토미가 시간이라도 많았다면 다음날 와서 몸살을 앓더라도 머물고 싶었다. 옷과 가방을 챙겨 시어머니, 손자 아기와 함께 며느리고 일하고 있는 밭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한참을 기다린 후 지나가는 빠오처(빵차)를 타고 중띠엔 시내로 돌아 왔다.
[image]1012_05.jpg[/image]
<<야크바의 여사장님과 너무 호의적이고 친절한 일하는 친구>>
야크바에서 한국인 신혼 부부와 다시 재회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을 공항으로 떠나 보냈다. 그들은 오늘밤 쿤밍으로 간다고 하였다. 이제 다시 토미는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혼자가 되는 쓸쓸함보다 장족 마을에서의 아쉬움이 더더욱 컸다. 저녁 먹기는 좀 이르기에 야크바에서 추천을 받아 근처 사우나로 갔다. 그러나 사우나가 아니었다. 한참 안되는 말로 사우나, 마사지 했더니, ‘OK’ 하길래 그런 줄 알았으나 역시 마사지만 받고, 사우나 자체가 뭔지도 모르는 분위기였다. 대략 신통치 않은 마사지 받고 야크바로 돌아오니 티벳 지역을 여행 하고 온 한국인 여행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간단히 맥주도 하고, 식사도 하고, 한국에서 여자 친구가 챙겨준 초콜릿과 사탕도 나눠 주었다. 많은 여행 이야기와 티벳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묶고 있는 꾸청(古城)의 게스트 하우스 구경을 했다. 쌀쌀한 날씨에 그리 따뜻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아늑하고,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저렴한 곳이라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이 추천하는 꾸청(古城)의 분위기 좋은 바에서 카푸치노 한 잔 마시고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토미의 숙소 영생빈관으로 돌아와 샤워 후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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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영상 위주로 하여 사진은 조금 질이 떨어지고 양이 적네요. ^^;;
대신 촬영한 영상은 KBS '세상은 넓다'에 방영되었습니다. 화질은 조금 떨어져도 영상은 ☞여기
그 밖에 토미의 여행 기록은 저의 홈페이지에도 있습니다. http://www.travelov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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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샹그릴라인가? 중국 윈난성 기행!
전체 일정
10월 08일 MU2004 2240 // 인천–쿤밍 // 76GH
10월 09일 MU5917 0830 // 쿤밍-리지앙-챠오터우-후타오샤(호도협) // 차마객잔
10월 10일 후타오샤(호도협) // 티나게스트 하우스
10월 11일 후타오샤(호도협)-챠오터우-중띠엔-송찬린스-비타하이(벽탑해)-중띠엔 // 영생빈관
10월 12일 중띠엔-공항-장족마을-중띠엔 // 영생빈관
10월 13일 중띠엔-리지앙 꾸청(古城) // 국제청년객잔
10월 14일 리지앙-수허 꾸청(古城)-리지앙-터미널 // 쿤밍행 야간 워푸(침대 버스)
10월 15일 쿤밍-76GH-차(茶)시장- 시내-화조시장-76GH
10월 16일 MU2003 0220 // 쿤밍-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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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2-Oct
영생빈관 - 야크바 - 공항(장족 마을) - 야크바 - 영생빈관
※사용 경비(인민폐 위안)(203元)
아침(야크바 라면) - 18
빵차(장족마을 - 중띠엔) - 10(현지인 5)
저녁 - 20
마사지 - 50
카푸치노(중띠엔 꾸청) - 10
영생빈관 - 80(욕실 포함 트윈 룸, 전기 장판, 핫 샤워, TV, 수건, 비누, 샴푸, 칫솔, 치약, 뜨거운 물 제공, 조식 불포함, 자정에 문 닫음)
택시(시내 - 공항) - 15
역시 중띠엔의 아침은 달랐다. 한 겨울 내무반에 혼자 잤던 느낌이다. 건조함에 코, 목은 다 말라 비틀어지고 추위 또한 이불과의 이별을 서운하게 만들어 준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난 토미, 몸 상태를 체크하고 중띠엔에서 1박을 더하기로 마음 먹었다. 대충 따스한 물에 몸을 씻고, 일박을 더한다고 얘기하고 야크바로 향했다.
가는 길 속, 아침 중띠엔의 모습은 이곳이 진짜 샹그릴라가 아닌가 싶다. 엷은 안개사이로 광주리를 옭아 메고, 아이의 손을 잡고 나서는 장족들의 모습이 너무나 정겨운 곳, 여기가 바로 장족들 마음속의 이상향인 샹그릴라로 느껴졌다.
야크바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빠오처(빵차) 일일 대여에 대해 알아봤다. 더친 근처의 똥찬린스까지 가서 경치 구경하고 오는 길에 장족 마을에 들려 사진도 찍어주고 그들의 모습을 남기기까지, 우선 시간만 해도 왕복 9시간이 걸리고, 요금도 비싸게 불러 난감했다. 결론은 장족 마을 탐방에 너무 멀리 가다 보면 정작 중요한 그들의 생활을 느낄 수 없기에 한국인 신혼 부부와 무작정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중띠엔 시내에서 사탕과 과자를 산 후 택시를 타고 중띠엔 공항으로 갔다. 기사한테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고 하였으나 공항에서 길이 끝나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공항에서부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장족(티벳족) 가족들은 다같이 밀 타작을 하고 있었다. 외지인이 가장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들을 섭렵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사탕을 준비했고, 더불어 즉석 카메라로 어르신들의 마음을 사기로 했다. 역시 적중했다. 안 그래도 호의적이라는 장족은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고, 우리도 최대한 예의를 차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중간중간 만나는 장족들에게 중국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니하오’로 시작하여 그들과 교감을 할 수 있었다.
[image]1012_01.jpg[/image]
<<첫번째 만났던 장족(티벳족) 가족의 모습>>
다음으로 들어간 곳이 아이들이 나와 놀고 있는 장족 집! 그 집 안에는 예순이 넘으신 할머니도 계셨다. 처음에는 그 할머니가 우리를 약간 귀찮아 하는 듯 보였으나 이내 즉석카메라의 능력을 발휘하여 가까워 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13살 소년의 영리함으로 분위기는 더더욱 좋아졌다. 나중엔 할머니가 계속 사진과 캠코더 영상에 주목하며 찍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막내, 10살 코흘리개는 토미를 은근 슬쩍 보다가 같이 쳐다보면 쑥스러워 얼굴도 못 들곤 한다. 과연 토미가 느끼려고 하는 모습이 이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순박함과 꾸밈없는 모습, 토미를 자꾸 아시아에 묶어두게 한다. 그곳에서 베풀어준 수유차, 수유치즈와 속이 빈 찐빵, 그렇게 입맛에 맞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토미의 마음을 따뜻함으로 채워 주었다.
[image]1012_02.jpg[/image]
<<두번째 만났던 할머니와 손자 장족(티벳족)의 모습>>
그곳을 나와 약 30분 이상 무작정 걸었다. 이곳은 확 트인 시야 덕분에 눈앞에 가까워 보이긴 하나, 잡힐 듯 잡힐 듯 상당히 멀리 있다. 다음 마을에서 장족 아낙네들이 힘든 노동을 하기에 잠시 인사를 나누고 나니, 그들의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장족의 집을 가더라도 집 앞에는 덩치는 산만한 사나운 개가 우리를 먼저 맞이하고 있다. 그곳 또한 예외는 아니었으며 우리도 답례를 해 주었다. 그 집은 1층은 화장실과 돼지 우리가 있고, 2층은 그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갓 돌 넘은듯한 아기와 남자들이 있었다. 장족의 풍습은 논, 밭 어디를 가더라도 여자들이 거의 모든 바깥 일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집의 할머니도 일하다 말고 설명해 주느라 우리와 같이 2층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호의적인 그들은 또 음식을 주려고 한다. 주는 것마다 모두 마다 할 수도 없고, 먹는 것을 남길 수도 없어 극구 사양하고, 그들의 영양 간식 수유차, 치즈대신 일반 차를 먹으며 통하지 않는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그들과 마음만은 통했다.
장족의 집에 대해 좀 더 얘기하자면 항상 중앙에 난로가 있어 그곳을 중심으로 앉고, 그곳에서 음식도 조리한다. 그리고 난로 위에는 수유 원액을 두고 굳게 만들기 위한 망이 놓여 있다. 아마 난로에서 나온 연기와 열기로 굳게 만드는 모양이다. 이번엔 그들의 방도 보았다. 한 쪽 칸의 침대는 음지라 그런지 쌀쌀하고, 반대쪽엔 잘 숙성된 수유 치즈가 메주마냥 잘 놓여져 있다.
[image]1012_03.jpg[/image]
<<세번째 만났던 장족(티벳족) 가족의 모습과 주변 풍경>>
그들과도 감사의 말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니, 다음 마을이 눈 앞에 보이긴 하나 걷기에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신혼 부부는 반대쪽 중띠엔으로 돌아가고 토미는 그 길로 더 멀리 마을로 향했다. 그러나 한참을 걷다 끝이 없음을 느꼈고 무엇보다 중간중간 놓친 그들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기도 해서 왔던 길로 방향을 돌렸다. 그래서 현재 토미는 잠시 지나가며 인사를 나눴던 장족 아낙네들과 밭에서 여러 이야기도 나누고 사탕도 주고, 사진도 찍어 주고 있다. 지금 글을 정리하고 있는 이 시간까지 한 시간 이상 그들과 함께 한 것 같다. 지금 같이 있는 장족 아낙네의 사이는 42살의 시어머니와 23살의 며느리 관계이다. 회화 책에 나와있는 몇 개의 단어로 그들과 교감하며, 며느리 보고 예쁘다고 하니, 시어머니가 뾰로통 하길래 이내 토미의 엄마도 주름살이 있고, 나이도 많다. 그리고 엄마의 모습이 여자의 모습보다 더 예쁘다고 하였다. 물론 시어머니가 이해를 했을는지 모르지만... 이후 시어머니는 토미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며, 몇 살이냐, 부인은 있느냐, 아이는 있느냐를 계속 물어본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토미에게 자꾸 다가오며, 학자 같다고 한다. 아마 토미의 모습이 장족에게 인기가 있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믿거나 말거나 겠지만...
그들은 계속 일을 하고, 토미는 글쓰기와 명상에 잠겨 있다. 근처에 택시도 버스도 없고 물론 가게도 없으며, 말 통하는 이 아무도 없다. 그러나 멋진 하늘과 끝없는 지평선, 따사로운 햇살, 여유로운 장족 마을의 풍경, 무엇보다 그들이 있고 토미가 있기에 너무 행복한 순간이다.
한참 글을 쓰고 이젠 가야 할 시간이라 생각하여 떠나려 했다. 그러자 시어머니 되는 분이 자꾸 토미를 보고 자고 가라고 한다. 일하다 말고 붙잡는데 하는 수 없이 차 한잔 얻어먹겠다고 얘기하고 그들의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며느리는 밭에서 일을 하고 시어머니와 손자 아기가 토미를 그들의 집으로 인도하였다. 원래 토미의 목표도 장족 마을에서의 숙박이었지만, 고도 적응과 큰 일교차에 감기 증세가 있어 아주 큰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들의 호의를 거절하였다. 아마 후에 아주 아주 큰 아쉬움으로 남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번 체험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그들 삶 속에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는지 많이 느끼고, 배웠으며, 향후 배낭 여행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자신 있게 그들의 삶 속에 토미의 삶을 살짝이라도 담글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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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만났던 시어머니와 며느리 장족(티벳족)의 모습, 할머니가 토미의 중국어 회화책을 보고 신기해 하고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들의 집도 다른 장족과 큰 차이 없이 앞마당, 잠자는 곳, 부엌 겸 거실로 이루어져 있다. 토미는 자연스레 부엌으로 초대되어 앉았다. 처음에는 토미를 꺼리던 손자 아기도 점점 마음을 열더니 자꾸 장난을 거는 것이다. 역시 아이들의 마음, 동심은 전세계 공통인 듯 하다. 그 와중에 할머니라고 하기엔 모호한 시어머니가 수유차를 주고 바로 닭의 뱃속에서 가져온듯한 계란을 삶고 있다. 그냥 앞마당에 키운 닭에게서 나온 순수 자연란이었다. 너무 맛있게 먹고 앞마당에서 잠시 바람을 쐬었다. 그러고 얼추 5시가 넘어서 가려고 하는데 계속 토미를 잡고 자고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두 아들이 있고, 그들의 방에 침대 세 개가 있어 침대 하나를 나보고 쓰라며 애원을 하였으나 역시 몸 상태가 문제였다.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려워 그 자리에서 수유차를 더 달라고 하여, 고산병 약을 먹고는 몸이 안 좋다는 것을 표현해 주었다. 너무 미안했고, 아쉬웠다. 만약 토미가 시간이라도 많았다면 다음날 와서 몸살을 앓더라도 머물고 싶었다. 옷과 가방을 챙겨 시어머니, 손자 아기와 함께 며느리고 일하고 있는 밭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한참을 기다린 후 지나가는 빠오처(빵차)를 타고 중띠엔 시내로 돌아 왔다.
[image]1012_05.jpg[/image]
<<야크바의 여사장님과 너무 호의적이고 친절한 일하는 친구>>
야크바에서 한국인 신혼 부부와 다시 재회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을 공항으로 떠나 보냈다. 그들은 오늘밤 쿤밍으로 간다고 하였다. 이제 다시 토미는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혼자가 되는 쓸쓸함보다 장족 마을에서의 아쉬움이 더더욱 컸다. 저녁 먹기는 좀 이르기에 야크바에서 추천을 받아 근처 사우나로 갔다. 그러나 사우나가 아니었다. 한참 안되는 말로 사우나, 마사지 했더니, ‘OK’ 하길래 그런 줄 알았으나 역시 마사지만 받고, 사우나 자체가 뭔지도 모르는 분위기였다. 대략 신통치 않은 마사지 받고 야크바로 돌아오니 티벳 지역을 여행 하고 온 한국인 여행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간단히 맥주도 하고, 식사도 하고, 한국에서 여자 친구가 챙겨준 초콜릿과 사탕도 나눠 주었다. 많은 여행 이야기와 티벳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묶고 있는 꾸청(古城)의 게스트 하우스 구경을 했다. 쌀쌀한 날씨에 그리 따뜻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아늑하고,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저렴한 곳이라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이 추천하는 꾸청(古城)의 분위기 좋은 바에서 카푸치노 한 잔 마시고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토미의 숙소 영생빈관으로 돌아와 샤워 후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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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영상 위주로 하여 사진은 조금 질이 떨어지고 양이 적네요. ^^;;
대신 촬영한 영상은 KBS '세상은 넓다'에 방영되었습니다. 화질은 조금 떨어져도 영상은 ☞여기
그 밖에 토미의 여행 기록은 저의 홈페이지에도 있습니다. http://www.travelov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