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함께 하는 북경여행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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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하는 북경여행기(3)

하로동선 2 2020
- 천안문 광장 -

쇼핑센터 때문에 기분은 많이 상해버렸지만 아직도 우리에겐 진행해야 할 일정이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향한 곳은 [천안문 광장]. 처음에 차에서 내렸을 때는 ‘광장’은 커녕 ‘마당’도 안 보였는데, 알고 보니 외부 차량은 광장의 옆을 지날 수는 있어도 주․정차는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차에서 내린 다음에는 걸어야 했다. 비단 천안문 광장만이 아니라 북경에 있는 대부분의 관광지는 지하철이나 버스로 연결되어 있어서 좋기는 한데, 워낙 넓기 때문에 걷는 거리가 매우 길다. 다행히 8월말이라 여름 햇살이 한풀 꺾여서인지 그런대로 견딜 만 하다. 조금만 일찍 왔다면 무더위에 엄청 고생했을 듯.

드디어 우리의 눈앞에 천안문 광장이 위용을 드러낸다. 총 면적 44만 평방미터(약15만평)의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라고 하는데… 넓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선지 광장 자체에서는 큰 감흥이 와 닿지 않는다. 어쩌면 이 순간에 나는 어렸을 때 보았던 [여의도 광장]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나이가 30대 후반이다 보니 여의도 광장이 지금처럼 ‘공원’으로 꾸며지기 이전의 모습을 분명히 기억할 수 있다. 그나마 내가 초등학교 때는 이름도 [5․16광장]이었다. 저 멀리 국회의사당이 민간인과는 철저히 격리된 채 떨어져 있고, 그 외에는 정말 아무런 볼거리도 없이 그저 넓기만 했던 시멘트 콘크리트 광장. 하지만 그 여의도 광장도 넓이만으로는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오늘날 천안문 광장의 중심에는 [인민영웅기념비]가 서 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중국의 독립을 일구어 낸 일반 국민(인민)들의 공적을 기념하는 비석으로 앞면은 모택동 주석이, 그리고 뒷면은 주은래 수상이 각각 친필로 쓴 휘호가 적혀 있다. 천안문 광장의 중심은 곧 중국 대륙의 중심을 의미한다고 볼 때, 이 비석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이념 속에서 ‘인민’이 차지하는 ‘지체’가 느껴진다. 아울러 광장의 전면에는 천안문이 그 위용을 과시하는 가운데, 왼쪽에는 우리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인민대회당]이 있고, 오른쪽에는 [중국 국가박물관], 뒤쪽에는 [모택동기념관]이 있다. 하지만 늘 시간에 쫓기고 있는 우리들이 이 엄청난 건물들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방향을 바꿔가면서 단체사진을 찍는 일 뿐이다.

- 자금성 -

광장을 지나 지하도를 건너 올라오니 텔레비전에서 숱하게 보아온 것처럼 모 택동 주석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 [천안문]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성의 외곽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넓이가 52m인 해자(垓字)를 만들고 그 위에 다리(금수교)를 놓았다. 천안문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정문으로 모두 5개의 입구를 가지고 있는데, 옛날에는 각각의 문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의 품계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중앙의 문은 황제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1949년 10월1일. 모 택동 주석이 역사적인 중화인민공화국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곳도 천안문의 문루(門樓)이다. 대장정을 끝내고 마침내 뜻을 이룬 그가 중국 인민들을 향해 포효했을 모습을 상상하면, 나 역시도 지금 저 문루에 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지금도 15위안만 내면 바로 가능하다는데… 하지만 늘 일정에 쫓기는 우리와 같은 패키지 팀에게는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다. 아쉽지만 인정해야 할 것은 패키지 관광으로 와서 어떤 ‘감흥’을 갖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자금성은 넓다. 면적이 72만 평방미터이니 24만평 규모이다. 그 안에 있는 전각은  9천여 칸. 갓 태어난 아기가 각각의 방에서 하룻밤만 자며 옮겨 다니더라도 한번씩 다 자고 나면 27살이 된다. 이 엄청난 규모의 궁전은 1406년에 명나라의 황제 영락(永樂)이 14년에 걸쳐 완공했다고 하며, 그 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에 이르기까지 약 500년 동안 24명의 황제가 거쳐 갔다.

짧은 기간동안에 무리하게 짜여진 일정 때문일까? 늘 시간이 부족한 우리 패키지 팀에게는 찬찬히 궁 안을 둘러 볼 여유조차도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슨 경보경기라도 하듯 빠른 걸음을 재촉 당했다. 세상에 살다 살다 이런 여행은 처음 해 보는 것 같다. 난 그 와중에도 감흥을 느껴보려고 걸음을 늦추고 괜히 마음이 급해져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학생들을 제지해 본다. “야! 니네 여기 다시 오기가 쉬울 것 같애? 왔으면 좀 제대로 보라구!!” 하지만 아이들은 오늘따라 유달리 더운 날씨에 점점 맥이 풀려가고 있다.

태화전(太和殿). 우리 경복궁의 근정전에 해당하는 자금성의 핵심 건물이다. 하지만 자금성의 다른 곳에서도 그랬지만 이곳에도 ‘웅장함’만이 있을 뿐 ‘아름다움’은 없다. 황색으로 칠해진 지붕은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여러 군데에서 칠이 벗겨져 있고, 그 위로는 잡풀들이 자라고 있다. 다만, 이 거대한 고궁 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은 ‘그 옛날 이곳을 찾았던 우리의 사신들이 이 웅장함 앞에서 얼마나 기가 죽었을까?’ 하는 부분이다. 물론 우리의 경복궁도 원래는 전각만 7천여 칸에 달했으니 결코 작은 규모였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우리 역사에서 경복궁을 궁궐로 사용한 기간이 얼마나 되었던가… 아무튼 하루 종일 보아도 시원치 않을 할 자금성 관광은 북쪽의 신무문(神武門)을 빠져 나오면서 불과 1시간여 만에 끝나버렸다.

- 후통 인력거 투어 -

중국에서는 큰 도로를 다제(大街)라 하고, 주택가의 작은 골목길을 후통(胡同)이라 부르는데, 북경에만 큰 후통이 3,0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구궁(자금성)에 황제가 살았다면 후통에는 관리부터 서민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다. 이 집들의 구조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이유로 사합원(四合院)이라 부른다.
내가 특별히 후통을 알게 된 것은 영화 [북경 자전거]를 보고나서부터였다. 도시 빈민들의 서글픈 이야기들을 담담히 그려나간 이 영화의 이미지가 너무 깊숙이 각인되었기 때문일까? 이곳에만 가면 지금도 영화 속 주인공인 ‘구웨이’와 ‘지안’이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했었다.

자금성을 빠져 나오니 도로 건너에 [경산공원]이 있다. 원래는 이 곳 역시도 훌륭한 관광지인데, 지금 우리의 목적지는 인력거를 타는 것이다. 따라서 경산공원의 담장을 따라 좀 걸어야 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밀려드는 똥냄새와 지린내. 같이 걷던 학생들은 코를 쥐며 유난을 떠는데, 내가 맡아봐도 좀 심하다 싶다. 내가 “어디에 화장실 문이 열렸나?” 하니 같이 가던 애들 왈. “문 쯤 열렸다고 이 정도 냄새가 나겠어요?” 한다. ‘그렇다면 담장 옆으로 난 이 잔디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크크. 암튼 원인불명이다.

이윽고 나타나는 인력거의 행렬. 여행사 관계자가 미리 요청해 놓은 결과로 30대에 가까운 인력거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초등학생들부터 차례로 두 명씩 승차. 나는 맨 나중에 함께 간 우리 학교 학생하고 인력거에 올랐다. 드디어 출발…
언뜻 보면 베트남의 [시클로]하고 비슷한 느낌인데, 시클로는 운전사가 뒤에서 페달을 밟는 반면 여기 인력거는 운전사가 앞에 있다. 따라서 운전사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아주 큰 체격은 아니지만 팔과 다리에 힘이 넘쳐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함께 탄 녀석이나 나나 한 체중하는 몸. 둘을 합치면 얼추 쌀 두가마 무게가 되는 상황이니 제 아무리 힘이 좋은 운전사도 힘에 부치기는 마찬가지이다. 앞의 어떤 이는 초등학생 꼬맹이만 둘을 태웠는데, 이 사람은 왜 이리 복도 지질이도 없어서… 나야말로 초등학생하고 탔어야 했는데…

후통 인력거투어는 북경 서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력거 두 대가 교행하기도 힘든 좁은 골목에 좁은 대문들이 줄지어 있고, 각각의 대문 안으로는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골목에서는 사람들도 더러 눈에 띄는데, 남자들은 대개 웃통을 벗은 모습이다. 여럿이 몰려서 탁구도 치고, 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화투 같은 것도 하고, 아니면 그냥 작은 의자에 앉아 바람을 쐬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는 활력이 없다. 인력거 30여 대가 그들의 앞을 지나건만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있을 뿐이다. 너무나 많은 관광객이 지나다녀서일까? 아니면 관광객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 오히려 무안한 것은 내 쪽이다. 남의 사생활을 이렇게 들여다봐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내가 탄 인력거가 맨 뒤에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일도 있었다. 골목길을 유람하고 있는데, 뚱뚱하고 다소 미련하게 보이는 웬 남정네가 걸어 나오면서 그들의 말로 뭐라고 뭐라고 떠들며 인력거를 가로 막는 것이다. 이 사람 역시 웃통은 벗은 상태인데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상황을 판단컨대 뭔가 시비를 거는 모습이다. 나는 순간 당황. 하지만 운전수는 아무 말 없이 핸들을 꺾으며 외면한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건 무기력함, 그리고 대꾸할 기력조차도 없는 고단한 일상의 무게였다.

- 북경 서커스 -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서커스 공연 관람이다. 인력거 투어를 마치고 다시 어디론가 향하더니 마침내 도착한 곳은 서커스 극장. 그냥 외관상으로만 보아도 낡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이런데서 하는 공연이 오죽할까?’ 하는 의문마저 생긴다. 그냥 추측컨대 여기도 일반 손님들은 오지 않는 패키지 전용 극장인 것 같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관객에게 틀어주는 노래가 대장금과 명성황후의 주제곡 내지는 한국의 발라드 곡이다.

서커스의 내용은 그냥 그랬다. 난 원래 서커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많이 불쌍해 보여서 그들의 연기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사실 나나 그들이나 어차피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것은 매한가지인데, 저런 경지에 이르렀다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 가이드 조 명걸 -

저녁을 먹고 일찍 방으로 들어왔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힘들기도 하지만 어른들끼리의 여행이라면 밤에 술도 마실 수 있고, 아니면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고 발마사지 같은 걸 받으러 다닐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인솔자의 입장이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침대에 엎드려서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메모하는데(그 메모들을 바탕으로 지금 이 여행기를 쓰고 있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보니 보온병이 텅텅 비어 있다. 그래서 물 받으러 프런트로 내려갔는데 거기서 우연치 않게 가이드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에 와 보지 않은 중국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만 가면 거지 한 명, 쓰레기 하나가 없는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해서 되물어 보니, 오늘날 중국 사람들 중 일부는 한국 드라마에 너무 빠져 있어서 드라마 속의 모든 상황이 바로 한국의 오늘을 보여주는 것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우습다기보다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씁쓸해진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나는 서양 사람들 특히, 미국, 유럽, 호주, 뉴질랜드에서 온 백인들을 보면 그들의 고향집은 모두 드넓은 푸른 초원을 가진 으리으리한 저택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반면에, 같은 아메리칸이나 유러피안이라 해도 흑인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름은 조 명걸. 나이는 27세. 어제부터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현지가이드이다. 원래 북경 태생이냐고 물으니, 자신은 흑룡강성 출신으로 북경에 온 지는 8년 되었고, 가이드 일을 한 지는 얼마 안 되서 우리들이 자신의 세 번째 손님이라고 했다.
가끔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랑 달라서 버스 안이 뒤집어지도록 웃은 적도 있지만, 그래도 그는 정말 순박한 교포 청년이다. 그는 단지 입으로만이 아니라 손님을 위해서 땀 흘리며 몸으로 뛰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족:
1) 천안문 광장을 뒤로 하고 지하보도를 건너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잘 정리되어 있는 관광지가 아닌, 그야말로 북경 시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다잘란 시장]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곳에서 그들과 정을 나누며 만두나 호떡으로 끼니를 해결해 보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2) [북경자전거]는 왕소수 감독의 2001년도 영화입니다. 제가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지안’역을 맡은 [이빈]이란 배우의 외모와 연기입니다. 정말 잘 생겼고, 또 멋지더군요.
3) 우리는 왜 해외교포들을 부를 때 재미동포, 재일동포라고 잘 부르다가 중국동포들은 조선족이라고 부를까요?
4) 전에 상해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밤늦게 남선생님들하고 남경로에 갔다가 그냥 아무 술집에 들어가서 한 잔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말이 안 통하니까 자리를 잡고 앉아서 주문하는 것조차도 힘들었는데요, 그 때 테이블 저 쪽에 앉아있던 손님 한 분이 우리들이 하는 말을 듣고는 조용히 종업원들을 불러서 우리를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나중에야 알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아니 어떻게 한국말을 이렇게 잘 하세요?”
그랬더니 그 분 말씀이 “아, 저는 교폽니다.” 그러더군요.
그 때 저는 “예?”하고 되물었습니다.
5) 저는 그 분으로부터 스스로 “조선족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말귀를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생각했죠. ‘조선족’이라는 말은 ‘한족’들이 자신들과 구분하여 소수민족인 우리 교포들을 부를 때 쓰는 말이구나. 하고요.
6) 어쩌면 우리들도 무의식중에 그들을 ‘우리’가 아닌 ‘조선족’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7) 중국교포 3세인 조 명걸 가이드님의 연락처는 130-11883931입니다. 혹시 필요하신 분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선생(제가 거기서 그 친구를 부른 호칭)은 비록 많이 알지는 못하더라도 성심성의껏 여러분들을 도울 것입니다.
8) 오늘은 우리 학교의 3학년 애들 입니다. 자금성은 곳곳이 공사중입니다.
2 Comments
강쥐 2005.09.06 13:08  
  북경 자전거 그 영화 좋아해요. 정말 자전거 한대 사주고 싶게 만드는 영화죠.
그리고 조선족이 맞는말 갖은데요. 그 사람들은 중국인민이고 단지 종족이 조선족인거죠.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로 그 국적을 가지면 그나라 사람인거죠.가끔 조선족을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조선족 가이드들한테 중국 흉보는 분들 계시던데 정말 큰 실수 하기는 것 같아요
하로동선 2005.09.09 00:59  
  아.. 그렇군요. 그 사람들의 국적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전 그냥 교포라는데만 신경을 써서요.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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