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8 (Hsip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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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8 (Hsipaw)

아랑다리 4 2218
시포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 인터넷은 갈수록 느리군요.

http://lkfar.tistory.com/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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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듯이 여행 또한 선택의 연속이다. 새벽녘부터 일어나서 고민을 한다. 인레호수를 이번 여행에 갈까, 말까. 원래 저번에 세웠던 계획대로 한다면 가는거였지만, 오늘 하루를 시포에서 조금 쉬면서 마지막 안녕을 고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5일 정도 남았기에 오늘을 여기서 보내게 되면 인레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

미얀마에 가장 유명한건 바간과 인레호수다. 그러하기에 미얀마에 오는 모두가 가는 곳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에게도 맞는 장소라는 말은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할때는 그 선택에 집중하는 것 보다 그로 인해서 잃게 되는 것을 감수할 수 있는지를 보는게 중요하다. 나는 인레호수를 안보고 가도 후회 안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시포를 이렇게 급하게 떠나도 후회 안할 수 있을까?

사실 어찌 보면 이미 답은 나와있을 수도 있다. 난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가서 만족한 적이 없다. 인도에서도 아그라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제주도 가서는 올레길을 오히려 피해다녔으며, 태국에서도 방콕을 제일 싫어했다. 이곳 미얀마에서도 바간이 어찌 보면 가장 안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것도 어찌 보면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 내 무의식적인 선입견 때문일까. 모르겠다.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인지 거의 두시간마다 깬것 같다. 5시쯤 일어나서 조금 있으니 22일에 베트남 하노이로의 비행기가 확정됐다는 메일이 온다. 노여사가 아침에 성공했는가보다. 자기도 일하느라 바쁠텐데, 역시 고맙다. 이로서 베트남도 이번 여행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빌어먹을 에어아시아의 10표 중, 9표를 썼다. 이정도면 선방한거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정상이면 그게 더 이상할거다. 진짜 삭신이 쑤신다는게 딱 이럴때 쓰는 표현이다. 발바닥은 그렇게 씻었어도 아직 새까만 흔적이 남아있고, 온몸의 근육은 주는 것도 없으면서 왜 이리 혹사시키냐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그 어떠한 것보다 가장 심각한거는 왼쪽 발바닥 한가운데 박혀 있는 좁쌀만한 가시이다. 이거 언제 박힌거지? 제대로 발을 땅에 댈 수가 없다.

일단 일어났으니 아침을 먹으러 올라가야지. 왼쪽 발을 최대한 안대면서 절뚝거리면서 옥상으로 간다. 이거 이러면 어차피 옵션이 없는거 아닐까? 그냥 여기서 하루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나저나 여기 핀셋이 있을까? 아침 다 먹으면 리셉션 가서 한번 물어봐야겠다.

역시 시간이 이른지라 사람이 거의 없다. 어제는 리셉션에 있던 아이들이 오늘은 여기서 음식을 만들고 서빙을 한다. 인도에서도 느꼈지만, 이곳도 업무에 비해서 일하는 사람이 과도하게 많다. 다 먹고 살아야지. 실제 데이터를 봐야 알겠지만 내가 느낀, 체험한 미얀마는 전체적으로는 다소 못 살아도 부의 불평형은 심해보이지 않는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고, 잃는게 있으면 얻는게 있는 법이겠지.

조식을 먹으며 이틀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옮긴다. 아 좋은 사진 많은데 이거 워낙 느리니 공유를 할 수가 있나. 카메라 SD카드의 용량이 슬슬 부족해진다. 물론 핸드폰에 있지만 그걸 믿고 사진을 지우는 바보짓은 이제 안한다. 일단 여기서는 어떻게든 버티다가, 방콕을 가면 월E처럼 주인 없이 외로이 홀로 있는 서울의 내 NAS에 사진을 넘기고, 그리고 나서 지워야겠다. 백업의 중요성!

여기 조식은 역시 맛은 별로다. 그래서 양으로 승부하나? 이것저것 먹을거는 풍성하다. 조금 먹고 있으니 니코가 상의탈의를 한채로 올라온다. 이놈들은 그냥 막 벗고 다니는구나. 니코한테는 악의가 없다. 그래도 가장 얘기도 많이 한 친구다. 어제 더워서 잠을 잘 못 잤단다. 난 에어컨이지롱, 하고 약올린다. 어쩌라는겨 라는 표정으로 얘네 공용 화장실, 욕실이 이곳 옥상에 있는지 씻으러 사라진다.

글을 쓰면서 결정을 내렸다. 인레호수는 안갈거다. 누가 나한테 '미얀마 갔다왔어?' 라고 물으면 '응, 난 시포 갔다왔어.' 라고 할테다. 에펠탑을 봐야 프랑스를 본게 아니고, 남산을 봐야 서울에 온게 아니다. 이곳에서 내 경험이 충만하다면 그 누구보다도 제대로 미얀마를 봤다고 자부해도 되지 않을까? 시포에서 미얀마의 반을 보내게 되는것 같지만, 후회는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못 있어서 아쉽다. 아직 관광지에 물들지 않아서 너무나도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 이 사람들이 인레호수 따위보다 훨씬 더 미얀마를 대표한다고 나는 믿는다.

오늘은 어제 해태가 나한테 강력추천했던 사원과, 조조가 강력 추천했던 Sunset Mountain을 가봐야겠다. 거기에 리틀바간이라는 곳도 이곳에 있다. 그러고보니 난 시포에서마저도 관광명소로 알려진 곳은 가지를 않았다. 그러면서 무슨 또 다른 명소를 보러 가겠다고 10시간 기차를 타고 가나. 여기서 하루 정도 더 보내고, 핀오린에서 하루, 그리고 마지막 이틀은 내가 제일 좋아했던 만달레이에서 보내면서 정리를 하는 것이 좋아보인다. 아, 오늘 환전도 필히 해야 한다.

일단 내려가서 핀셋을 좀 빌려봐야겠다. 이 발로는 걷기가 힘들다. 식사를 다 하고 니코와 이제 못 볼지도 몰라서 그래도 인사를 한다. 안전히 잘 다니렴, 밥 잘 챙겨먹고.

프론트에 가니 여자 스탭, 남자 스탭, 그리고 아기가 있다. 둘이 부부? 이 애기가 너희의 사랑의 결실이냐고 물으니 둘다 기분 나빠한다. 흠 몇년 후에 오면 커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군. 핀셋을 물으니 잠시 기다리라면서 여기저거 찾아보고 전화를 한다. 아기를 내가 안아주면서 기다린다. 이 애기 뭐 이리 진지해. 웃겨볼려고 우르르까꿍 필살기까지 쓰지만 미소도 안 보여준다.

열심히 찾더니 없단다. 정말 없나보다. 어쩔 수 없지. 손톱깍기로 뽑아야 할려나. 알겠다고 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모든 불을 다 켜고 손톱깍기로 시술을 시작한다. 소독도 하면 좋겠지만 귀찮다. 근데 이거 가시가 있는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걸을때마다 따끔거리고 작은 검은 점이 있어서 있나보다 했는데 또 보다보니 영 알 수가 없다.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보니 아까 그 스탭이 핀셋을 들고 서 있다. 어디서 또 끝내 구해왔나보다. 아 착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이제 핀셋으로 본격적으로 다시 작업을 해본다.

아 아프긴 한데 그냥 찔린 상처인지 가시인지 도통 모르겠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알 수가 있나. 에잇 몰러, 좀 찔러대다가 그냥 연고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버린다.

오늘은 어떻게 할까? 그냥 방에서 쉴까 싶다가, 그래도 마지막 날인데 근처라도 돌아보자 생각이 든다. 특히 해태가 강추했던 그 사원은 한번 가보고 싶다. 오후가 되면 햇빛이 강해질테니 오전에 한군대라도 가볼까 싶어서 나가보기로 한다.

이번에는 관심사병 발가락들에 테이핑을 아예 한다. 내 마트2 바지는 아직 안말랐기에 한국에서 입고 왔던 마크1 바지를 입는다. 아 이거 입으면 뭔가 멋이 안사는데. 어쩔 수 없다.

1층에 내려오니 이제는 친근해진 스탭들이 반긴다. 아침에 봤던 그 애기는 다른 스탭 품에 안겨있다. 여기 사장님 아이라더니 돌아가면서 애를 봐주나보다. 애기를 안아들고 어부바를 해주며 좀 놀아준다. 몇번 봤더니 그래도 이제는 희미한 미소를 보이는거 같기도 하다.

일단 11달라를 주면서 하루 더 연장해달라고 한다. 오늘은 외부로 돌아다닐거기에 에어컨이 필요없을거 같긴 한데, 실컷 네고 해놓고 마지막 날에 에어컨 빼니 얼마로 해달라고 다시 네고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전체 금액을 지불한다.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다, 어디를 가야 할까, 라며 스탭의 의견을 구한다. 지도도 하나 있으면 달라고 한다. 지도를 보면서 같이 얘기를 하다보니 뭐 작은 동네라 그런지 동선이 대충 그려진다.

일단, 무슨 왕궁이라고 되어 있는 곳을 가고, 더 쭉 가서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리틀바간을 간다. 다시 쭉 이쪽 거리로 돌아와서 환전을 하고 점심을 먹는다. 한낮에는 너무 더우니까 강가에 있는 유명한 카페에 들러서 커피나 한잔할까 한다. 서너시쯤 되면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해태가 얘기했던 그 사원으로 간다. 거기서 더위를 좀 식히다가 해질녘쯤 Sunset Hill에서 일몰을 본다. 그리고 돌아와서 맥주 한잔, 이보다 완벽한 시나리오는 없다.

지도를 왼손에 들고 터벅 터벅 길을 나선다. 어제와 다르게 앞에 따라갈 사람도 없고 뒤에서 미는 사람도 없으며, 반드시 가야 하는 길도 없다. 그냥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걸음을 이어간다. 가다가 좀 덥다 싶으면 그늘에 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본다. 선글라스를 끼고 걷다가 이 곳의 정취를 까만안경을 통해 보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가방에 집어넣는다.

앞에 어떤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손으로 밀면서 언덕을 올라가고 계신다. 이거 도와드리고 싶은데 너무 설레발일까? 좀 지켜보니 힘들어하시는거 같아서 용기를 내서 뒤에 손을 얹으며 도움이 필요하시냐는 눈빛을 보낸다. 아주머니 괜찮다고 절래 절래 고개를 흔드신다. 아 설레발 맞았구나. 그냥 가던 길을 간다.

어제 비가 좀 오더니 전체적으로 좀 시원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햇볕이 강렬하다. 이럴 줄 알고 선크림을 가지고 왔다. 시꺼머스로 변신한 이제와서 선크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그래도 화상을 입고 싶지는 않다. 어제 연고를 덕지덕지 발랐더니 그래도 따끔따끔한건 많이 가셨다. 더 심해지기 전에 서둘러 선크림을 꺼내서 이마와 목 뒤를 중점적으로 발라준다.

15분 거리라 했지만 그냥 천천히 걷다보니 30분쯤 지나서 첫번째 목적지인 왕궁에 도착한다. 하지만, 닫혀있다. 흠 여긴 아닌가보군. 뭐 말이 목적지지 그냥 와본거라 앞에서 좀 앉아있다가 다음 행선지로 출발한다. 이곳은 근데 뭐하는 곳이지?

나는 이런 자유로운 걸음이 좋다. 제주도에서 올레길이 싫었고, 이번 트래킹이 싫었던 이유도 남이 정해놓은 코스대로 가야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냥 내키는데로 가면서 이 곳이 나에게 주는 경험을 느끼는 것이 나에게는 이곳을 내 기억에 가장 잘 남기는 방법이다.

지도가 참 대충 만들었다. 이정표가 건물도 아니고 큰 나무란다. 다 큰나무구먼. 뭐 잘못 들어가도 큰 상관은 없기에 대충 어림짐작해서 길을 찾아간다. 이번에 갈 곳은 리틀 바간이다. 빅 바간 혹은 오리지널 바간은 나에게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작은 바간은 좋은 기억을 남겨줄려나.

좀 걷는데 집에 앉아있던 어떤 아저씨가 나보고 이 길이 아니라며 옆길로 가란다. 얘기도 안했는데 외국인 티가 나니까 알려주나보다. 그래, 아직 현지인까지는 아니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알려주셔서 고맙다. 봐라, 어떻게든 도착하게 되어 있다.

뭔가 사원들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온다. 이쪽에 사원들이 중점적으로 있나보다. 리틀 바간은 어떤거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보자마자 아 이놈이구나 싶다.

근데 이게 무슨 리틀바간이냐, 나노바간이라고 불러야겠다. 바간 스타일의 파고다가 3개 서 있는게 끝이다. 귀여운 규모에 살짝 미소가 지어진다. 어쨌든 오늘의 두번째 목적지도 도착!

여기 좀 앉아서 쉬다 갈까. 들어서니 개 한마리가 날 보더니 마구 짖는다. 여기 그래도 명색이 관광지인데 생소하다가 짖으면 어쩌냐. 하도 짖기만 하는 놈들을 많이 봐서 오히려 다가간다. 역시 도망간다. 이놈들 싸울 줄이나 아나?

여기 근데 앉을 곳이 마땅치 않다. 앉아서 책이나 좀 보다 갈까 했는데 그럴 곳은 아닌가보다. 그래도 구석에 앉을 자리를 하나 찾아서 자리를 잡고 키보드를 핀다. 저 놈의 개는 여기까지 따라와서 엄청 짖어댄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한번 스윽 본다. 아 민망하게, 이놈아 그만 짖어. 사람들에게 민망한 "밍글라바"를 시전한다.

여긴 하지만 역시 오래 앉아 있을 곳은 안된다. 이곳 관광지로 여기를 넣은것만 해도 시포가 참 관광하러 올 곳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뭐 난 나쁘지 않다. 그늘과 앉아 쉴곳만 있으면 옆에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한두시간 머물다 갈텐데 아쉽다. 게다가 옆에서 공사하는 소리가 계속 나서 오늘은 아닌거 같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돌아가는 길은 그냥 아무 길로 가볼까? 대충 방향만 가늠하고 길을 나서본다. 은행 가는 길에 숙소를 어차피 들려야 하니 들려서 해우소라도 들릴까 싶다. 아침에도 갔는데, 어제 너무 많이 먹었나. 민망하군.

뭔가 길을 걸어가고는 있는데 불안하다. 이 길이 맞을까? 왠지 이런 작은 길은 아니었는데. 뭔가 불안해서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이 스릴을 즐기기로 한다. 여기서 잘못 가봤자 어디로 가겠어.

하지만 역시 불안하다. 완전 반대 방향으로 가면 어쩌지? 왠지 맞는 방향인듯 한데 결국 의심병이 도져서 길에 있는 한 총각한테 물어보고 만다. "This way Sibaw?" 현지인들은 시포라고 안하고 시보라고 발음한다. 맞단다. 에잇, 괜히 물었다. 소심해가지구선.

같은 길인데 거꾸로 오니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갈때는 한참 간거 같은데 돌아올때는 역시나 얼마 안가서 바로 숙소가 보인다. 아 이 미스테리한 현상. 그냥 내가 길치인겐가.

일단 숙소로 돌아간다. 아침에 나간 애가 너무 금방 돌아오는듯 해서 프론트에서 뭐라 인사하기 전에 후딱 쏜살같이 지나가버린다. 방으로 오니 시원해서 좋다. 에어컨을 끄고 나갔는데도 아직까지 냉기가 남아있다.

아무래도 DNA(동남아) MK1은 여행 느낌이 안난다. DNA MK2 바지가 말랐기에 수선작업을 시작한다. 현재, 허리끈 부분이 뜯어져서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으면 바지가 흘러내리는 기능적 장애가 있다. 제주도에서 샀던 역사 깊은 바늘과 실로 꼼꼼하게 처리를 하고 싶으나, 귀찮아서 그냥 대충 처리해버린다.

시원한데 들어오니 게을러진다. 그래, 뭐 급하다고 바로 나가나. 좀 누워서 쉬다 나가야겠다. 에어컨을 킨다. 돈을 냈으니 최대한 활용해야지. 한 30분 자고 나갈까 했는데 잠이 안와서 그냥 카톡이나 하고 논다.

노여사가 일본에 안간다고 한다. 주변에 실제로 피폭 당한 사람이 있단다. 도시전설 아니냐니까 진짜 아는 사람이란다. 사실 후쿠오카는 전혀 상관없지 않나 싶긴 한데, 또 굳이 찝찝한 곳을 갈 필요는 또 전혀 없지. 그런데 어디로 가지? 내가 동남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동남아로 가는건 편도신공이 안된다. 중국이나 홍콩도 나름 괜찮겠지.

1시가 되니 슬슬 배가 고프다. 게을러서 죽었다는 사람은 들어본적이 없다. 내가 그 첫번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지. 슬슬 일어나볼까.

일어날때마다 온몸의 근육이 난리를 부린다. 발바닥 상처는 가시가 아니었는지 막상 아무렇지도 않은데 근육들이 문제다. 잠깐, 그러면 나는 발바닥에 찔려서 상처가 이미 난 곳에, 핀셋으로 찌르고 손톱깍기로 찢어가며 상처를 더 키운 셈이 되나.

비명을 질러대는 근육들을 무시하며 다시 밖으로 향한다. 일단 환전이 시급하다. 지금 수중에 키얏이 단 한푼도 없어서 아까 물도 못 사먹었다. 2번이가 가서 실패했는데,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시포 메인거리의 전경은 이제 너무나도 익숙하다. 호텔 바로 옆에 있는 현지인들 가득한 식당, 길 따라 내려가면 보이는 커다란 핸드폰 매장, 오른편에 있는 뭔지 모를 사원, 모두 몇일 안에 내 의식의 한구석을 차지해버렸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좀 아쉽다. 그래도 여기서 7일을 보냈으니 미얀마에서의 반을 보낸 셈이다.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머물다 보니 그리 되었다.

갑자기 미얀마 떠날 생각하니 또 울적해진다. 아 나는 너무 앞서나간다. 벌써 캄보디아 생각도 하고 있지 않나. 노여사한테 더 하드 트레인 받고 와야겠다. 미래를 사는 남자에게 현재를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다. 아직 미얀마에서 5일이나 남았고, 이곳 시포에서도 하루가 남아있다.

은행으로 가니 언제나 그렇듯이 경찰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준다. 이제 안 속아. 지난번 두번이나 경찰이 이리 행동하기에 문을 연줄 알고 들어갔더니 이미 매장 마감이었다. 차라리 앞에서 알려주지 왜 굳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문까지 열어주는걸까. 이곳 사람들의 성향이지 뭐. 물론 좋은 성향.

오늘은 아직 영업 중인게 틀림 없다. 시간도 1시반도 안됐고,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근데 도데체 왜 이리 스탭이 많은지 알 수가 없다. 스탭이 20명 정도인데 손님은 나 하나이다. 내가 들어가니 다 날 쳐다보면서 집중을 한다. 부담스럽다.

세번째 와서 그런지 그래도 알아보는듯 하다. 이제는 뭐 사전 작업을 할 필요도 없이 50달라를 주고 환전을 부탁한다. 굉장히 친절하게 받으면서 문서를 하나 작성해달라고 한다. 난 한명하고 얘기하는데 그 뒤에 4명이 구경하고 있다. 여기 손님이 오기나 하는걸까.

서류에 여권번호를 적는칸이 있다. 갑자기 등이 싸늘해진다. 환전할때 여권번호를 쓰지! 아 방에 놔두고 왔다. 나의 세번째 시도도 이리 허무하게 실패하는걸까? 환전하는게 이리 힘들지 정말 몰랐다.

내가 슬픈 눈으로 바라보니 스탭 여성분이 호텔이 어디냐고 물어본다. 븕은용, 레드 드래곤이라고 하니 전화를 한다. 다행히 그쪽에서 알려줘서 서류 작성을 무사히 완료한다. 하 그래도 이 더위에 숙소까지 갔다오지 않아도 되서 정말 다행이다.

환율이 1100키얏 정도이다. 사설 환전소에서 하면 1000키얏이니 10%가 차이나는 셈이다. 인도에서는 사설 환전소가 환율이 더 좋은데, 여기서는 정부 통제 때문인지 은행이 가장 깔끔하고 가장 환율도 좋다. 5000키얏 11장을 받으니 지갑이 두둑해진게 부자가 된 느낌이다. 숙박비는 달라로 계산한다면, 이걸로 미얀마를 떠날때까지 쓸 수 있겠지? 좀 남겨서 만달레이 마지막 식사를 게스트 하우스 스탭들한테 한번 쏠까나. 그정도 돈이 남을지는 모르겠다.

지갑이 배가 부르니 내 배가 고픈게 확연하게 느껴진다. 오늘 오후의 일정은 아무데서나 끼니를 떼우고 강가에 있는 유명 카페에 가서 날이 좀 시원해질때까지 책을 보는거다.

강가로 향하면서 식당을 찾아본다. 이쪽길은 처음 와서 그런가? 그렇게 많이 보이던 식당들이 눈에 안들어온다. 여기는 희한하게 찻집이 굉장히 많다. 식당처럼 보여서 들어가서 물어보면 차만 판단다. 그래도 파는데가 있긴 하겠지?

없다. 뭐지, 왜 식당이 없지? 결국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저 강가쪽에 조금 더 가면 있단다. 강가쪽으로 오기 전에 먹었어야 하나보다. 이쪽은 식당이 귀하다.

식당을 찾긴 했는데, 굉장히 비싸 보인다. 와인셀러를 미얀마에서 처음 본다. 여기 나같은 애들이 와도 되는걸까? 그래도 근처 다른 옵션도 없기에 일단 메뉴를 본다. 흠,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면요리면 2000키얏에서 2500키얏이면 먹을 수 있다. 샨누들이 1500키얏인걸 생각하면 비싸긴 하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말레이시아식 면요리가 눈에 들어온다. 태국식도 알겠고 미얀마식도 알겠는데 말레이시아식은 뭘까? 비싸서 못 가는 나라이니 한번 맛이라도 봐야겠다. 2500키얏이길래 이걸 주문하고 콜라 한잔도 같이 부탁한다.

콜라가 시원하다. 비싼 식당이라더니 냉장고도 좋은걸 쓰는 것이 확실하다. 음료 메뉴판은 보지도 않고 시켰는데 보니까 과일 주스도 콜라와 같은 1000키얏이다. 여기는 냉동고도 있는데 과일쥬스 시킬걸, 후회된다. 저번에 보보네서 시켰더니 그냥 망고를 갈아서 준거라 맛은 나쁘지 않은데 시원하지를 않아서 안시키고 있었다. 이놈의 콜라, 한국 가면 늘상 먹는걸 먹자니 뭔가 갑자기 억울하다. 그렇다고 물리 수도 없다.

조금 기다리니 요리도 나온다. 비쥬얼이 괜찮다. 비싼 식당이더니 쓰는 재료도 좋은가보다. 먹어보니 맛도 고급지다. 헌데, 태국 팟타이와의 차이점은 모르겠다. 당근이 들어간게 다른가?

그래도 맛있게 먹고 3500키얏을 지불한다. 훌륭한 한끼 식사였다. 생각해보니 이게 시포에서의 마지막 점심이다. 아 마지막이라는 말은 진짜 마지막 전에는 쓰지 말아야지.

나와서 원래 가려고 했던 카페를 보니 바로 옆이다. 론리에도 나온 곳인걸 보면 꽤나 유명한 곳 같은데 들어가니 주인 내외가 외로이 서있다. 비수기의 영향인가.

주인 아주머니가 영어를 꽤나 하신다. 남편은 못하는듯 싶다. 보보네랑 같은 시스템이군. 그래도 여기는 아저씨가 바리스타일을 하시나보다.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핸드드립이라도 하는걸까 싶었는데 아쉽게도 가루커피다. 뭐 그게 어디냐. 혹시 아이스도 되냐고 하니 된다고 해서 아이스라떼를 시키고 뒷편 마당으로 나와본다.

아니, 이 보석 같은 자리는 뭐지. 강가에 테라스가 넓게 펼쳐져 있고, 알리미늄 지붕이 곳곳에 배치되어 그늘을 형성한다. 그늘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펼쳐져서 고객들이 강가를 보며 커피 한잔을 즐길 수 있게 되어 있다. 서울 기준으로 치면 별 한개도 과하겠지만 시포에서 이런 곳을 찾으니 이곳을 이제 발견했다는게 억울할 정도다. 이 멍때리기에 최적인 시스템은 뭐다냐.

서양인들 한팀이 있길래 그 옆에 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조금 기다리니 여사장님이 커피를 가지고 오신다. 바나나케익도 하나 시켜서 같이 가져도 주신다. 근데 이걸 아이스라떼라고 해야 할까. 그냥 믹스커피에 우유를 부었다. 하긴 미얀마에서 얼음 동동을 바란 내가 문제겠지.

여기서 최소 2시간은 있어야겠다. 앉아서 글을 먼저 쓴 이후에 부모님한테 안부 메세지를 보낸다. 오늘이 어버이날이니 할 건 다 해야지. 근데 카네이션이 아닌 시꺼멓게 탄 아들 사진을 보내도 좋아하실려나. 그 이후에 책을 보기 시작한다. 오늘은 새 책을 핀다. 킨들에 미리 받아온 ''연금술사'의 첫 페이지를 핀다. 그러고보니 책을 3개나 시작하게 된건데, 여행 끝나기 전에 다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시간이 아직 많으니 이제부터라도 좀 열심히 봐야겠다.

이곳 책을 보기 최적의 조건인거 같다. 잠시 책에 빠져있다가 주변을 둘러본다. 강에서는 아이들이  강바닥에 있는 돌을 줏어담고 있고, 옆에 가게에선느 한 남녀 커플이 강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새의 지저귐과 저 멀리 어딘가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 말고는 바람소리만이 이곳에 존재한다.

'연금술사', 아직 극초반을 읽은거지만 좀 불편할 정도로 직설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로운 양치기를 원하지만, 좀 더 인정을 받는 제빵사가 되고야 만다. 언제든지 자기의 꿈을 펼칠 수 있지만 모두 너무 이른 순간에 포기한다. 꿈이 과연 그렇게 하고자 한다고 되는걸까?

예전에는 나도 그리 얘기를 했었다. 네가 꿈을 포기하는거지, 꿈이 절대로 너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많이 한말 중에 하나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난 지금,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일단 꿈이라는거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 소위 말하는 평생 여행 다니거나 세상을 바꾸는 변화를 만드는거 말고도 더 작은 범위에서 하지만 더 이루기 어려운 꿈들이 많다. 그리고 보통 꿈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이다. 평생 꿈을 쫓고 포기하지도 않았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죽기 직전에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꿈을 쫓는다는것은 일종의 미래를 사는 행위이다. 만약 아까 말한 꿈을 평생 이루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말할 수 있으려면 목표로서의 꿈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꿈을 가졌어야 한다. 성취하고 정복해야 하는 의미로서 꿈은 여러모로 위험하다. 현실적으로 실패할 확률도 크거니와 실패했을때 남는게 없다. 하지만 결과가 아닌 그 과정이 꿈이라 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실패 자체를 할 수 없다. 이미 그 길을 쫓는다는 것이 자기의 꿈을 이룬 셈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를 사는 것만이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그림을 그려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어'라는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하지만 '나는 그림 그리는 자체가 꿈이야. 그리는 순간이 너무 행복해', 이런 꿈은 직장인도, 전업 작가도, 그리고 전업 주부도 모두 충분히 이룰 수 있다. 물론 개개인에게 꿈이 갖는 의미에 따라 야망적인 꿈을 무조건 목표로 가져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이에게 행복은 쉽지 않은 선물이 되겠지.

책을 보고 있으니 슬슬 해가 질 시간이 다가온다. 아 뭔가 오늘은 액티브하게 움직이기가 싫다. 시포에서의 마지막 밤은 편안하게 있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이유로 사원은 패스하는걸로. 해태야 이해해, 형님은 체력이 안따라준다...

커피 값을 계산하고 숙소로 향한다. 지금이 4시 반이니까 대략 한시간 정도 쉬다가 선셋힐로 향하면 되겠다. 아 근데 갑자기 만사가 귀찮네?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이런 증상이 생긴다.

가는 길에 모모네를 기웃기웃 거린다. 안에 해태와 남편님이 있다가 나를 보고 반가워한다. 나도 무척 반갑구머잉.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들어가니 둘다 무척 좋아한다.

해태를 보자마자 "가나다라마바사"라고 하니 "아자차카타파하"라고 대답한다. 그래, 그래도 아직 잊지는 않았구나. 내가 그래도 이곳에 뭔가를 하나 남기고 가긴 가는군.

사실 딱히 할말이 있어서 들어온건 아니고 반가워서 들어온지라 조금 지나니 약간 어색해진다. 괜히 지도를 꺼내서 선셋힐 위치를 물어본다. 어차피 오토바이 택시 타고 가면 알 필요가 없긴 한데, 대화의 주제로서 좋다. 어디 어디 얘기하는데 귀담아 듣지 않는다. 내일 오전에 떠날때 꼭 들려서 인사하고 갈거라고 얘기하고 나온다. 마보사는 자나보다. 내일 아침에 인사하지 뭐.

숙소로 돌아오니 땀이 범벅이다. 그냥 살짝 돌아다녀도 이렇다. 카운터에 또 그 많은 스탭들이 모여있다. 여기도 4일째이다 보니 이제 다들 나를 보면 반가운 웃음을 짓는다. 지도를 피고 선셋힐로 갈려면 걸어서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니 2시간이란다. 헐, 갈때는 오토바이, 올때는 걸어올려고 했는데 이건 뭐지. 오토바이를 타도 30분이 걸린단다. 5초 생각하고 결정한다. 안가! 조조야 미안해...

그냥 방에서 내가 비싼 돈 내고 쟁취한 에어컨 바람이나 좀 쐬다가 시포의 마지막 저녁이나 먹으러 나가야겠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고 300키얏을 지불한다. 근데 여기 스탭들은 항상, 언제나 청소를 하고 있다. 그것도 물걸레질. 이거 미안해서 밟고 다닐 수가 있나. 두명이 청소하길래 뭘 맨날 청소하냐고, 한국에 내 방은 일주일에 한번 한다고 하니 아주 그냥 빵 터진다. 어? 이런 유머가 여기 스타일인가? 너무 좋아하길래 순간 당황하지만 뭐 잼있으면 된거지. 물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도 뒤에서 막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아 분명 그리울거다, 이 해맑은 웃음 소리.

방에 들어오자마자 에어컨을 키고 샤워를 하러 간다. 무의식적으로 물에 세제를 풀어 옷과 속옷을 던진다. 아니 이게 왠 깔끔한척. 어제 빨래를 엄청 했더니 몸에 익었나보다. 그래도 역시 빨래와 목욕은 할 수 있을때 해야 한다. 다니다 보면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널고 침대에 눕는다. 아, 좋다. 오늘 그래도 휴식은 충분히 취하는거 같다. 한번 무리했으면 이리 좀 쉬어줘야한다. 이러한 휴식도 여행의 일부다.

침대에 누워서 론리 플래닛을 좀 보는데, 허허, 보보네가 론리플래닛에 나오는 곳이었다. 이건 또 신선한 충격이구먼. 원래 이름이 'La Wun Aung'이고 24시간 영업이라고 쓰여있다. 여기 유명한 곳이었구나. 하긴 친절하고, 식사, 음료, 투어 모두 가능하니 그래도 작은데는 아닌가보다. 이름이 왜 다른지는 모르겠다. 여튼, 마보사,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오늘 낮에 점심 먹은데도 나온다. 뭐 여긴 유명해보였다. 그래도 90년 전통이 있는 집이라니 그건 또 놀랍다. 옆에 커피 마셨던 Black House야 추천해줘서 갔으니 유명하리라 생각했지만 내가 좋아했던 뒤 테라스를 묘사한거 보니 뭔가 신기하다. 동네 사람을 티비에서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느려터진 인터넷으로 두어시간을 카톡도 하고 여행기도 검색해본다. 이러고 있으니 잠시 이곳이 시포라는 사실을 잊는다. 그런데 난 왜 벌써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찾아보고 있는걸까? 뭔가 한국에서 그쪽으로 여행 가는게 아니라 미얀마 사는 사람이 캄보디아 여행을 찾아보는 느낌이다. 제대로 여행을 일상처럼 살고 있는건지도...?

7시니 밥 먹으러 가야지. 침대에서 나오자마자 온몸의 근육들이 질러대는 비명 소리에 잠시 잊었던 현실을 다시 찾는다. 혼자 다닌지 2주가 넘다 보니 혼잣말 하는 버릇이 생겼다. 바지를 입으면서 한 발을 들때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아이고고, 나 죽네."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웃겨서 뭔가 또 피식 거린다.

저녁 먹으러 어디 가지? 항상 가던 그 맥주집은 아웃이다. 게다가 오늘은 맥주가 안땡긴다. 꼭 맥주를 먹어야 하는 의무감이 있는 것도 아니지. 그 집 옆에 중식집이 괜찮아 보이던데 그리로 가볼까?

이 생각은 호텔을 나오자마자 바뀐다. 항상 앞에 만석을 유지하는 식당이 하나 있는데 아직 한번도 못 가봤다. 오늘도 지나보니 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그래, 그래도 숙소 바로 앞인데 떠나기 전에 한번은 가봐야지.

들어서서 메뉴를 보자마자, 왜 여기 사람이 항상 많은지 바로 깨닫는다. 보보네서 1000키얏에 먹었던 샨누들이 여기서는 500키얏이다. 놀라움에 그래도 비싼거 먹어볼까 싶어 뒤져봐도 제일 비싼게 500키얏이다. 이거 가격이 깡패인데?

좀 보다가 500키얏짜리 국물 없는 볶음 우동 하나와 300키얏짜리 만두로 결정한다. 미얀마에서는 종업원을 부를때 우리가 "여기요"하는 식으로 입술을 오므리고 "쯔읍" 소리를 낸다. 이게 은근히 어려워서 난 잘 못한다. 여기도 꼬마 어린이가 주문을 받고 있어서 불러서 주문을 한다.

주문하고 몇분 안지나서 음식이 바로 나온다. 흠, 다른 의미로 가격이 깡패다. 조리도 미리 해놓았는지 면은 불어 있고, 만두도 그저 그렇다. 뭐 우리나라돈으로 800원에 한끼를 해결하는거니 이 이상 바라는건 사치겠지.

나름 시포에서의 마지막 저녁으로 마음에 든다. 한곳에서 오래 머물면서 마지막 식사는 이곳 생활하는 사람들이 매일 먹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의미 있는게 어디 있으랴.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 또 맛있게 느껴진다. 괜히 호화로운 식단으로 안가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은근 기특한데?

키보드를 피면 언제나 주목을 받지만 여기는 이 꽉찬 식당의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뭐 한두번도 아니고 그냥 살짝 웃어준다. 시포에서의 최후의 만찬을 싹 비운다. 진짜 생각보다 맛있게 먹었다.

일어설까 하다 뭔가 아쉬움에 여기 전통 '샨누들'을 하나 더 시킨다. 아 이거 과식이다. 뭐 맥주를 먹는 대신에 먹는다고 생각하지. 그래도 아까 멈추는게 나았을려나? 덤은 언제나 안좋은 법인데. 어찌 보면 더 먹고 싶은거보다 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은거 같다.

한그릇 더 나온다. 가져다주는 애가 날 희한하게 본다. 나 돼지 아니야. 그렇게 보지마. 내가 생각해도 좀 독특하지만 나만의 작변인사야. 이거 근데 생각보다 맛있다. 500키얏 짜리라고 무시하면 안되겠다. 말린 고기 같지만 무려 닭고기까지 올라가고, 미얀마식 김치도 같이 준다.

역시 국물까지 싹 비운다. 뭐 국수니까 사실 좀 많이 먹어도 된다. 배가 든든하다. 계산을 하고 일어선다. 국수 두 그릇에 만두 하나까지 먹어서 1300키얏이다. 오늘 낮에 먹은 말레이시아 국수가 2500키얏이었던걸 생각하면 엄청 싸다. 역으로 점심이 비싼거였다고 하는게 맞겠다.

배도 식힐겸 시포의 밤거리를 한번 걸어본다. 하늘을 보니 의외로 별이 꽤나 보인다. 그러고보니 나는 왜 그 산골 오지에 힘들게 가서 별도 안보고 온걸까. 여유가 없으면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힘들어진다.

끝까지 쭈욱 걸어서 갔다올까 생각하다가 말기로 한다. 뭔가 억지로 호들갑스러운 이별을 만들 필요는 없다. 뭔가 그냥 지금 이대로의 덤덤한 마지막이 마음에 든다.

방으로 올라와서 에어컨을 키고 다시 샤워를 한다. 언제나 할 수 있을때 한번이라도 더 해야 한다. 짐을 싸놓을까 하다가 내일 그냥 싸기로 마음 먹는다. 뭐 어차피 5분이면 싼다. 아, 저 녹차는 조금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앞으로 한달을 들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는데 난 왜 덜렁 충동구매를 한걸까.

오늘 하루는 어찌 보면 정말 아무것도 한게 없다. 누구의 눈에는 이곳까지 와서 버리는 하루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난 여행에서 이런 쉬어가는 하루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액션 영화에서 액션만 계속 되면 무료해지듯이 (트랜스포머3...) 여행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날이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어찌 보면 장기여행자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닐까. 샤워를 할 수 있을때 하듯이, 호사도 누릴 수 있을때 실컷 누려보는거다.
4 Comments
데어데블 2015.05.09 02:03  
잠이 안와 그냥 습관처럼 태사랑에 들어와서
본 글이 책을보는것같네요.
나에게 여행은 어떤,무슨 의미인가 생각하게되네요
좋은글감사합니다
디아맨 2015.05.09 10:00  
미얀마 음식맛이 그리 좋지않다고 들엇는대..
아랑다리님 식성이 무척좋으신듯 ㅎㅎ
아디다스와초장 2015.05.10 14:03  
나만의 작별인사야.
저는 그 작별 의식이 뭉클해요.
필리핀 2015.05.11 20:25  
방콕이 태국 최악의 도시라는 데는 저도 동감합니다~ ㅎㅎ

근데 병원에 좀 가보시지... 아직 여행할 날도 마니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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