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1 (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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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1 (바간)

아랑다리 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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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집착이 시작된거 같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 계속 다운로드 상황을 본다. 여행와서 이게 뭐하는거지. 이게 아닌데...

다행히 에버노트는 로그인에 성공한다. 어제 썼던게 다 살아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간 중간에 백업이 됐는지 어ㅗ느정도 살아있다. 밤새 티스토리 어플도 설치가 잘되고, 크롬도 성공한다. 아무래도 저녁에 사람이 안쓸때가 속도는 더 잘나오나 보다.

5시가 되니 애들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나도 오늘은 해돋이를 보러 가야겠다. 이들의 눈에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까? 하루종일 스마트폰만 잡고 있는게... 나도 이건 영 아니지 싶은데 말이다.

5,000원을 주고 자전거를 하루종일 임대한다. 그래봤자 아마 해돋이와 일몰만 보지 싶다. 어제 기분이었으면 한낮에도 좀 다녀볼텐데, 지금은 엄두도 안나고 의욕도 사실 없다.

그래도 큰길을 새벽에 달리니 기분은 좀 풀린다. 그러고 보면 여행 와서 일몰은 봤어도 해돋이는 처음 보는거다. 왜지? 항상 일찍 일어났는데도 뭔가 예전처럼 해돋이에 의미를 적게 부여한거 같다. 여행 자체를 즐기게 된건지, 아니면 무심해진건지 모르겠다.

혼자 새벽 길을, 해 뜨는 방향을 응시하며 간다. 어디서 봐야 할지 몰라서 가다가 좋은 장소가 나오면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근데 막혀 있던 시야가 뚫리면서 보니, 이미 해가 반 정도 떠 있다.

일찍 나온거 같은데 이게 늦게 나온거란 말인가. 5시반에 나오면 충분할지 알았는데 아닌가보다. 마음이 급해져서 계속 들어갈 자리를 찾는데 다행히 때마침 우측으로 작은 길이 열리고 안에 제법 괜찮아 보이는 사원이 모습을 나타낸다.

그 길로 들어선다. 사실 다른 선택권이 있지도 않다. 조금 들어가니 일출을 보러 온 다른 사람들도 보인다. 뭐 그래봤자 3명 정도다. 왠지 그쪽에 합류하고 싶지가 않아서 왼쪽의 논두덩이로 들어간다. 이 전기 자전거가 안좋은 길에 약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크게 한번 넘어진다. 어제 넘어진거까지 총 두번 넘어졌다. 스쿠터 탈때는 한번도 안그랬는데, 확실히 차체가 약해서 그런지 더 약하다.

사실 좀 크게 꽈당했는데 저쪽에서 서너명이 내가 괜찮은지 지긋이 쳐다보고 있으니 아프다는 티를 못 내겠다. 아무렇지도 않은척 일어난다. 지금은 내 기분도 일반적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약해보이기 싫다.

조심히 논두렁이를 벗어나서 나도 그냥 그 세명이 들어간 사원으로 들어가본다. 해는 계속 올라오고 있다. 마음이 급해질 수 밖에 없다. 들어가면서 보니 이미 해의 꼬리가 지평선을 올라섰다.

3명은 보니까 한 탑의 옥상에 올라가 있다. 어떻게 올라간건지는 모르겠다. 왠지 저쪽으로 가면 안될듯 해서 옆의 탑으로 들어가서 올라가는 길을 찾아본다. 안보인다. 이거 이러다 쇼는 끝나버리겠다. 일단 그냥 아무데나 털썩 주저 앉아서 해를 지켜본다. 이미 사전적인 의미의 해돋이는 지나갔을지 모르나 여운은 남아있다.

머리 속이 복잡하지만 해를 보고 있으니 또 마음이 좀 진정된다. 뭐 사실 그래봐야 핸드폰 하나 잃어버린것 뿐인데, 뭐 이리 호들갑이냐. 만약 글을 안쓰게 되면 압박감에서 벗어나서 더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도 있는거지 뭐. 지나면 다 추억이다. 인간은 모두 좋게 포장하기 때문에 지금의 이 순간도 분명히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거다. 마음을 편하게 갖자.

좀 생각하며 앉아있다가 너무 더워지기 전에 갈려고 일어선다. 뒤를 보니 3명은 다 가고 없다. 저기 한번 들어가볼까? 그 자리 진짜 명당 같았는데 혹시 내일 올지도 모르니 한번 찾아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들어간다.

길이 없다. 어디지? 왼쪽으로 자그마한 출입구가 있긴 한데 막다른 길 같은데. 혹시 몰라서 플래쉬를 키고 보니 올라가는 길이 있다. 여기 숨어있었더군. 굉장히 좁고 높은 계단을 올라선다. 당연히 안전장치 이딴거는 없기 때문에 조심하며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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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올라서니 시야가 확 넓어진다. 밑에서는 해돋이가 모니터로 보는 영화 같았다면 이 위에서는 아이맥스다. 아 여기 좋은데? 해는 이미 떴지만 잠시 앉아서 지켜본다. 생각해보니 여기가 이렇다면 이곳에 정말 숨은 명당이 많겠다. 정마 예전 인도 오르차의 판박이다.

넓게 펼쳐진 장관을 바라보다 내려온다. 너무 뜨거워지기 전에는 돌아가야겠다. 하지만 지금이 아침 6시반, 아직 시간이 너무 많다. 여기까지 온 김에 어제 못 갔던 올드 바간이나 가볼까? 거긴 뭐가 있을려나.

그쪽 길로 나서본다. 역시 곳곳에 엽서에서 봤을 듯한 멋진 사원과 탑들이 퍼져 있다. 중간에 아주 큰 탑이 보이길래 멈춰서 한번 올라가본다. 역시 올라가는 길이 좁고 가파르다. 여기는 올라가기 위해서 만든걸까, 올라가지 말라고 이리 해놓을걸까.

위에서 보는 바간의 모습이 참 멋지다. 조금 위태위태하지만 앉아서 잠시 있는다. 이 멋진 도시인 바간은 나한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짜증나고 괴로운 도시로 기억에 남을까, 아니면 나름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었던 추억의 도시가 될까.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

뭔가 더 둘러보고 싶은 욕구가 사라졌다. 전기자전거를 왔던 길로 되돌린다. 오는 길에 경찰서에 들려서 내 번호를 알려주고 온다. 역시 기적은 생기지 않겠지.

더워서 일단 방으로 들어온다. 이제 어플도 다 받았겠다, 글을 한번 써볼까? 키보드를 펴고 글을 쓰려 한다. 첫 단어 두어개를 쓰자 재부팅이 되어버린다. 허 뭐지. 어제 현장에서 키모드가 블루투스로 붙는 것만 확인했지, 실제 타이핑은 지금이 처음이다. 아 큰일이다. 이러면 이걸 산게 의미가 없어지는데.

아직 9시가 안되서 조금 기다려본다. 9시가 되자마자 다시 싸들고 어제 샀던 곳으로 간다. 이거 교환 될까? 안해준다고 해도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확인 못한 내가 잘못이니. 카톡도 등록되고 다 됐는데 키보드만 안된다. 나에게는 키보드가 전부인데.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와 처녀가 다시 날 맞이한다. 이제는 서로 보자마자 웃는다. 역시나 바로 어제 그 키다리 아저씨를 불러온다. 셋이 모여서 또 다시 상황을 설명한다. 한참을 듣더니 다른 걸로 시도를 해보자고 한다.

어제 사려고 했던 7만원짜리를 붙여본다. 좀 자세히 보니, 램은 거의 다 512메가라 같은데 어제 산놈이 1.3GHz 듀얼코어, 더 싼놈이 쿼드코어다. 이건 CPU 문제인듯 하다. 역시 잘 된다. 아 더 싼놈으로 갔어야 했다.

아저씨한테 더 싼걸로 가는 대신 차액은 받지 않겠다고 한다. 미안해서 8기가 SD카드도 하나 5000키얏에 산다. 생각보다 전자제품이 비싸진 않다. 아저씨 흔쾌하게 바꿔주신다. 어찌 보면 바간에서의 내 기억은 이 아저씨로 인하여 그나마 좋게 남을 거 같다.

이제 다시 다 설정. 어제 저녁에 다 한걸 다시 하자니 한숨부터 난다. 그래도 한번했던거라 쉽게 된다. 단, 문자 인증이 안되서 카톡은 안되는데, 뭐 이건 괜찮다. 안되는 것이 단절에 더 좋을듯 하다.

에버노트로 썼던 어제 부분을 드디어 마무리하고 올린다. 올리고 나니 속시원하다. 그리고 앉아서 좀 쉬면서 책을 보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점심은 크게 탐험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어제 먹었던 그곳으로 그냥 간다.

역시나 밥은 그냥 그렇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맛이 없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좀 제대로 하는데서 먹어봐야겠다. 한끼라도 맛있게 먹고 싶다.

돌아오니 다들 누워서 쉬고 있다. 낮 시간에는 더워서 돌아다니기가 힘들다. 나도 누워서 한숨 잠든다. 그래도 여기 뭔가 잠은 잘온다. 에어컨도 그렇고, 룸메이트들도 코도 안걸고 잠자기 좋은 환경이다.

4시가 되어서 다 일어난다. 나도 이제 해돋이를 보러 나가봐야겠다. 괜히 해매지 말고 첫날 보았던 그곳으로 가고 싶다. 가는 길에 데이터도 충전해야겠다. 아직 설정이 다 안끝났는데 벌써 다 써버렸다. 그 아저씨, 날 보고 또 웃겠군.

내가 찾아갔을때는 이미 키다리 아저씨 등이랑 같이 모여있다. 여기 복덕방 같은 곳인가? 괜히 오해할까봐 손을 막 흔들며 들어간다. 이번에는 다른 구매하러 온거에요, 손님입니다! 알겠다고 막 웃으신다. 여기 있으면 뭔가 마음이 편해진다. 그만큼 미얀마 사람들이 착해서겠지.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의 교류를 할 정도로 친해지질 못했던 거고 말이다. 3,000키얏으로 400메가 정도의 데이터를 산다. 속도가 엄청 느려서 그거 이상 쓰기도 힘들다. 인사를 하고 나온다. 내일 떠나기 전에 들려서 인사를 하고 가야겠다.

전기자전거에 올라타고 길을 나선다. 새로 산 핸드폰을 왼쪽, 카메라를 오른쪽에 넣고 길을 달린다. 약간 둔턱이 있어서 지나간다. 옆에 사람이 "할로"를 외치는데 무시하고 간다. 근데 가다보니 뭔가 어색해서 보니 왼쪽에 핸드폰이 떨어졌다. 돌아보니 어린 아이가 줏어서 나에게 달려오고 있다.

겁자기 깨닫는다. 어차피 잊어버릴거였구나. 그냥 그때 잊어버린것 뿐이지, 나의 성격의 인과를 봤을때 걔는 내것이 아니었다. 줏어서 달려오는 아이를 보니 뭔가 현지인들을 조금이나마 의심하고 불신했던 내 자신에 대해 또 반성하게 된다. 완전히 100%, 내 잘못인데 괜히 남이나 의심하고.

근데 처음에 봤던 강이 어딘지 전혀 감이 없다. 아직 시간이 좀 이르니까 그냥 대충 가볼까. 골목길로 땡기는데로 가다보니 결국 또 그 큰길이 나온다. 무슨 모든 길은 이길로 연결되어 있는건가. 어쩔까? 또 올드시티를 가? 하지만 뭔가 나에게 바간은 그 사원들과 전혀 상관없는 곳이 되었다. 온 김에 경찰서나 들리도록 하자.

경찰서에 가서 정보를 조금 업데이트하러 왔다고 한다. 막 뒤지시는데 전에 작성한게 없다. 아, 아마도 찾기는 힘들겠구나. 뭐 어차피 기대는 하지 않지만 가끔 5년 후에 잃어버린 물건이 돌아오는 그런 영화도 있으니 한번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종이를 못 찾아서 그냥 다시 쓴다. 이번에는 조금 부담을 느끼시라고 약간의 보고서 형태로 쓴다. 그래봤자 그냥 나열이지만.

이름 : 이경훈
국적 : 한국 (남쪽)
보고 : 올드바간으로 가는 길에 삼성 노트4를 분실하였음
번호 : 092-###-#### (~5/12)
이메일 : leekh@me.com
주소 : **********, 서울, 한국
* 혹시라도 찾게 되면 메일을 주시거나 저 주소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모여있던 사람들, 경찰인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이런 저런 관심을 갖는다. 다음에 어디로 갈거냐 묻길래, 사실 확실하진 않지만 Kalaw로 간다고 한다. 이제 거기로 가야겠네. 그쪽 경찰서에도 연락하겠다고 한다. 내 번호를 다시 한번 알려준다. 그래도 이리 관심을 가져주니 좋다. 근데 진짜 누가 경찰이지?

출발하기 전에 지도를 잠시 본다. 그래도 마지막 일몰은 마음이 편한 곳에서 보고 싶다. 우연히 찾아갔지만 정말 아름다운 일몰을 선사했던 그곳. 찾아보니 대충 감이 잡힌다. 전기 자전거에 다시 올라서 출발한다.

가다가 샛길이 보이길래 일단 또 가본다. 배구를 하던 지난번 애들도 보이고, 엄청난 높이의 네트로 족구를 하는 신기한 광경도 본다. 역시 공 하나만 있으면 하는 운동이 좋다. 이런 곳에서도 모두가 즐길 수 있으니.

좀 더 샛길이 보이길래 들어가본다. 여기는 뭐지? 가니 강이 나온다. 일몰이 있던 그곳이다. 내려가보니 애들이 수영도 하고 있고 배가 낚시도 하고 있다. 아, 아름답다. 뒤에서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는 해와, 산과 강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잠시 앉아서 있는다. 나는 결국 하루를 허비한거다. 시간을 허비한게 아니라 마음을 허비했다.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리 마음 졸이고 했는지, 만약 필요하면 사면 되고, 아니면 말면 될것을. 하루를 쓴거는 아깝지 않은데 그 하루동안 잠시 여행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앉아있으니 다시 마음이 여행자로 돌아온다. 이제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을거 같다. 어제 안떠나고 하루 더 있기로 하길 잘했다. 강에서 헤엄치는 아이들이 "할로"라고 외치길래 "밍글라바"라고 대답해준다. 이곳 사람들 너무 해맑다. 인사하면 무조건 웃으면 인사를 돌려준다.

근데 여기 오래 있기는 좀 그렇다. 사방이 쓰레기다. 나름 장소를 잡아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여긴 아니다. 왼쪽을 보니 그때 그 사원이 보인다. 멀리서 봐도 멋있다. 그래, 다시 저기로 가자. 바간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편했던 곳.

전기자전거를 타고 가니 금방이다. 내려서 익숙하게 신발을 벗고 올라간다. 오늘따라 사람이 매우 많다. 오늘 무슨 날인가? 생각해보니 금요일 같기도 하다. 그래도 요일을 잊고 있는거 보니 여행자가 맞긴 하다

자리를 잡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모여들다. 한명이 오더니 갑자기 우루루 와서 나를 애워쌌다. 왜 이러는거지? 지금 이 순간 나를 약 20명이 둘러싸고 있다. 아 이제 갔다. 아니다, 다시 왔다. 다른 애들이... 이러면 쓸말이 생각 안나는데. 애들아 무서워.... 아 이제 진짜 갔다. 후...

미얀마에서 첫 한국인을 여기서 만난다. 한국말이 들리길래 보니 어르신 4분이 가이드랑 같이 오셨다. 이 사원이 나름 유명한 사원인가보다. 근데 설명 듣고 가신다. 아니 이 좋은 일몰을 왜 안보고 가시지. 여기까지 오셨으면 그래도 좀 있다 가시지. 안타깝다. 이건 가이드의 문제다. 아 강가쪽에 유명한 식당이 있던데 거기서 보실려나? 그래도 거기서 보는거랑 여기서 보는거랑 다른데...

또 다른 아이가 옆에 와서 보길래 카메라를 주고 날 좀 찍으라고 시킨다. 수줍어하면서 찍는다... 내가 찐따처럼 나왔다. 눈도 감고 있고, 야 잘 좀 찍지. 아 마음의 여유가 진짜 완전히 돌아왔다. 아까 경찰서 들린게 마지막 마무리였나보다. 내일 떠나면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 여행복 MK3나 한번 준비해볼까?

아직도 해는 중간에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어야 하나보다. 하지만 조금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슬쩍 엊그제 그 자리로 가본다. 아직은 아무도 벽에 안 앉아있다. 내가 올라가면 다들 또 올라오겠지?

한번 했던 일이라 그런지 눈치 안보고 올라가 앉는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앉아서 그냥 멍하니 해를 바라본다. 역시 내가 올라가니 한둘 올라와서 자리를 잡는다. 이래서 처음 행동을 하는 용기가 중요하다.

앉아서 멍 때리고 있으니 많은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집착이 문제다. 그 집착을 버리면 편해지는데, 그걸 버리는게 너무나도 어렵다. 그깟 물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안다치고 다니는게 어디냐. 거꾸로 카메라를 잊어버렸으면 그 사진이랑 어떻게 할 뻔했나.

남들과 같아야 한다는 집착. 내 친구는 어디서 얼마를 버는데 나도 그만큼은 벌어야 하지 않겠냐는 집착. 나름 명문대를 나왔으면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집착. 현실의 수 없는 집착에서 나는 과연 내 자신을 지키고 있는걸까. 집착은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닌 눈앞에 당장 처리해야 하는, 당장 비교되기 싫은 일을 하게 만든다.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여행은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를 계속해서 발견해가는 과정인가보다. 머리 속에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냥 내 물건이 아니었던거다. 오히려 얘 때문에 또 내 자신을 좀 더 다스리게 되었으니 고맙다. 게다가 계속 쓰고 싶었지만 못 썼던 트루 핫핑크 핸드폰도 써보게 되었다. 유니크한 "Bought in Myanmar, Made i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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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구름에 가려져서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상적인 일몰은 보지 못할거 같다. 그래도 괜찮다. 뭔가 마음이 편해졌다. 내려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여유가 생겨서 주위를 둘러보고 사람들에게 "밍글레바"라고 인사를 나눈다.

전기자전거를 몰고 숙소로 돌아온다. 오늘 저녁은 뭔가 맛있게 먹고 싶다, 아니 먹을듯 하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어제 핸드폰 판매 아저씨가 알려줬던 곳으로 간다. 어제 문 닫아서 못 갔는데, 오늘은 열었을려나?

역시 문 닫았다. 좀 아쉽지만, 뭐 다른데 가지. 큰 길로 가서 사람이 좀 많은 곳에 아무데나 들어간다. 뭔지 모르지만 커리 뭐시기를 시키고 물을 같이 시켰다가 맥주로 바꾼다. 마지막 밤인데 맥주 한잔 해야지.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음식이 나온다. 역시 밥과 커리, 조촐한 한상이다. 거기에 마늘, 고추 소스를 준다. 밥을 한숫가락 뜨고, 그 위에 정체 모를 고기와 커리를 얹고, 마늘, 고추 한조각씩 얹는다. 입을 크게 벌려 한입에 집어넣는다.

맛있다. 미얀마 와서 거의 처음으로 진짜 맛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향신료가 강하거나 그런 느낌이 아니라 순수하게 맛있다. 이게 내 마음이 열려서 맛있는건지, 실제 맛있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맛있다.

정신없이 다 비운다. 맥주도 벌컥벌컥 마신다. 처음으로 일하시는 분에게 맛있다가 미얀마어로 뭐냐고 물어본다. "깝..." 뭐라고 하셨는데 잊어버렸다. 아 이놈의 기억력.

밥 다 먹고 여운을 즐기고 있는데 옆에 왠 동양 남자애가 혼자 왔다. 슬쩍 말을 걸어보니 홍콩사람이다. 혼자온 사람들은 말을 걸면 누구나 다 좋아한다. 내가 먹은거 맛있었다고 추천하고, 내가 아는 바간에서의 노하우를 조금 전달해준다.

이제 돌아가야지.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선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핸드폰 판매하는 곳 처자가 마감을 하고 있다. 낮에 왔을때 둘이 아버지, 딸이라고 물어봤다가 아주 민망한 상황이 왔었다. 부부란다. 여자가 훨씬 젊어보이는데... 아저씨 능력 좋다.

원래 음료라도 하나 사가지고 가서 인사하려고 했는데, 내일 일찍 떠날지도 몰라서 들린다. 부인이 아들인지, 동생인지 항상 떠도는 아이와 함께 마감을 하고 있어서 내일 떠난다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한다. 반가워하는 눈빛으로 인사를 받아준다. 이래저래 여기 신세를 많이 졌다. 어찌 보면 내 바간에서의 추억은 이곳과 해지는 곳을 본 그 사원 둘 뿐인거 같다. 제주디마레.

이제 바간에서의 마지막 정리를 끝낸거 같다. 마음을 비우고 나니 아까는 굉장히 안좋아보였던 곳들도 다 정이 간다. 갑자기 하루 더 있을까 생각이 들다가 이내 생각을 지워버린다. 나름의 깔끔한 이별이다. 더 이상 있는 건 영화에서 깔끔한 엔딩이 끝난 후에 또 다른 얘기를 시작하는거일거다. 내일 떠나자.

돌아오는 길에 마음을 먹는다. 원래는 Kalaw로 가서 Inle Lake로 가려고 했는데 생각을 바꿔서 Hsipaw로 가련다. 국민코스를 가면 지금의 흐름에서 뭔가 크게 변화가 없을듯 하다. 어제 머물렀던 Ostello Bello의 느낌이 나지 않을까. 차라리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으로 가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보고 싶다. 아직 10일이나 있으니, 거기로 가서 또 다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 이유로 내일 다시 Mandalay로 돌아가고자 한다. 오자마자 나에게 가장 좋은 기억을 심어줬던 Ace Star Hostel도 다시 가고 싶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재정비를 하고 북쪽으로 출발하자. 뭔가 다시 새로운 여행에 들뜬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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