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이 가족의 세부 여행기(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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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이 가족의 세부 여행기(4.끝)

하로동선 4 3294
- 아침 -
 

1월 8일 화요일. 오늘도 어김없이 6시에 눈을 떴다. 다른 가족들 깨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니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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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리핀의 계절은 건기이고, 우리와 같은 겨울이다. 겨울이라고 해 봐야 우리한테는 여름날씨이지만 낮기온이 30도를 크게 웃돌지 않고 간간히 바람도 불어서 수영하다가 물 밖으로 나오면 약간 서늘하다. 건기라고 해도 “스콜”이 있을 수는 있는데, 오늘은 오전에 수영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약간 걱정이 된다. 이곳은 외부와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수영도 못하게 되면 정말로 할 일이 없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이들과 산책을 했다. 아이들은 좀 귀찮아했는데, 내가 식사를 하고 나면 산책을 하는 것이 <선진국 스타일>이라며 설득을 했다. 어차피 여행지가 아니면 평소에는 하지 않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식사를 하는 동안 하늘은 개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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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으로 나왔다. 아침부터 현지인들이 방카를 타고 물고기를 잡아와서 정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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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크기가 생각보다 작고, 비린내도 진동하는 가운데, 별로 위생적으로 보이지도 않아서 저것을 어떻게 먹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데, 이곳 사람들의 고단한 생활을 엿보는 것같아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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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이제 막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한 해변의 풍광은 참으로 아름답다. 낮게 드리운 구름과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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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있어서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사진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 왔을 때부터 경비원의 모습을 찍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댈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저렇게 허리에 권총을 찬 사람보다는 가슴에 소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좋은데, 지금은 아쉬운 대로 어쩔 수 없다.
 

- 체크 아웃 -
 

오전에는 내내 수영을 하고, 오후 1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벌써 이곳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3박5일의 패키지 관광은 이렇게 일정이 너무 짧은 것도 흠이다. 비싼 항공료를 감안하면 한번 나왔을 때 무조건 오래 있는 것이 이익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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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이다. 그냥 돈만 두고 나오기가 그래서 과자랑 음료를 놓았다. 저 음료는 MUG라는 이름의 Root Beer이다. 저게 우리나라에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술을 먹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맥주맛을 내면서도 알콜이 들어있지 않은 맥주다. 나도 궁금해서 몇 개 샀는데, 맛은 어렸을 때 먹었던 <지미신>이라는 감기약하고 비슷하다. 사실 저것은 아무도 안 먹어서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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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관광에 나서기 전에 로비에서 아이들만 모아서 한 컷 담아봤다. 원래는 어른들까지 단체티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쓸데없는 낭비같아서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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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관광에 앞서 점심은 <고동리>라는 한국음식점에서 했다. 메뉴는 우리나라 마트에서 세일할 때 파는 냉동삼겹살이다. 가게 앞에는 저렇게 기타 장수가 나와 있다. 사실 세부의 특산품가운데 하나가 기타이다. “세부기타”는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있다고 하며, 실제로 근처에 유명한 기타 공장도 있어서 견학도 가능하다. TV에서 보니 기타공장에 가면 기타들이 장인들에 의해 얼마나 공들여서 만들어지는지를 볼 수 있다. 물론 사진 속의 저런 것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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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탄섬과 세부섬을 잇는 다리 - Marcelo Fernan Bridge - 를 건너 세부섬으로 진입했다.
 

- 세부섬과 필리핀의 역사 -
 

세부섬은 세계사의 측면에서 보아도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장소이다. 다름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에 성공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태평양을 건너 상륙한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중남미의 산살바도르에 도착한 이래 1498년에는 “바스코 다 가마”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으며, 1521년 4월 21일에는 마젤란 함대가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세부섬에 도착한다. 침략자 마젤란이 원주민들에게 요구한 것은 스페인 왕에 대한 조공과 가톨릭으로의 개종. 다른 족장들이 마젤란 군대의 무력 앞에 힘없이 무릎을 꿇는 가운데 막탄섬의 추장 라푸라푸는 이를 거부하였다. 마침내 4월 27일. 마젤란은 라푸라푸와의 일전을 위해 함대를 이끌고 막탄섬으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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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군사력에서는 마젤란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던 라푸라푸. 하지만 그에게는 지혜가 있었다. 라푸라푸는 해안 경사가 완만한 지역을 결전지로 선택하고 때를 기다렸다. 4척의 배에 모두 270명을 태우고 온 마젤란. 그러나 그의 범선은 썰물이 되자 개펄 위에 올라앉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었으며 해안까지의 거리가 멀어서 함포사격도 불가능하였다. 아울러 갑옷으로 무장한 그의 병사들이 갯벌로 뛰어들자 발이 뻘 속에 푹푹 빠지면서 기동력도 둔화되었다. 이렇게 된 스페인 군대를 향해 원주민들의 화살이 날아들고, 결국 스페인 군대는 궤멸되었으며, 마젤란은 죽임을 당한다. 대부분이 사망한 스페인 군대는 한 척의 배에 18명만이 살아남아서 퇴각한다. 그러나 이들이 본국에 무사히 도달함으로써 세계 일주 항해는 마무리 되었고, 필리핀의 존재가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1543년. 스페인의 빌라로보스(Vilalobos)가 다시 필리핀을 침공하여 성공한 다음, 스페인 국왕 필립2세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필리피나스”로 명명한다. 이어 1565년에는 원정대장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pi)”에 의해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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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년 4월 21일에 이 땅에 상륙한 마젤란은 십자가를 꽂았는데, 그것이 바로 <마젤란 십자가>이다. 원본은 저 나무십자가 아래의 상자에 보관되어 있고, 지금 보이는 것은 모조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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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형식으로 된 천장에 그려진 벽화도 꼭 보아야 할 포인트. 1521년에 필리핀 최초의 가톨릭교도가 된 추장 “라자 후마본”과 800명에 이르는 그의 추종자들이 세례를 받는 모습이다.
 

마젤란 십자가에서 바로 옆 건물로 발걸음을 옮기면 산토 니뇨(Santo Nino) 성당이다. 1565년 3월 16일 레가스피 원정대는 세부 인근의 보홀섬에 상륙한다. 그는 추장 “시카투나”와 혈맹관계를 맺어 배후를 든든하게 한 다음, 4월 27일에 세부섬을 공격한다. 온 마을을 불태우며 잿더미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단 한 집만이 불타지 않고 남았다고 한다. 이에 그 집은 라자 후마본의 아들의 집이었으며, 내부를 수색하니 그 옛날 어머니 “주아나 여왕”이 마젤란에게서 세례 선물로 받은 아기 예수상이 나온 것이었다. 바로 그 집터에 세워진 교회가 오늘날의 산토 니뇨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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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구역으로 들어가면 먼저 눈에 띄는 곳은 기도할 수 있는 곳이다. 여러 사람들이 초를 켜고 각자의 소원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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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건물의 밖은 이렇게 사람들과 장사꾼들로 북적인다. 여기서 앞으로 계속 진행하면 <콜론 재래시장>이 나온다. 우리는 옆문으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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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이 시간에 미사가 있을리는 없으니 저들은 모두 관광객이다. 1565년에 건축가 “우라덴타”에 의해 세워진 성당은 이후에도 3차례나 더 화재가 났으며, 현재의 건물은 1737년에 재건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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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전면의 모습이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십자가 예수상 위에 있는 것이 불타지 않고 남았다는 아기 예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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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천장에 그려진 그림도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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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밖으로 나오면 볼 수 있는 조형물이다. 불타지 않고 남은 아기 예수상이 성당과 함께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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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바로 옆에 있는 학교이다. 평일이라 운동장에 애들이 많다. 관광지도 좋지만 사실은 저런 곳에 들어가서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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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맞은편의 이곳은 세부 시청이다. 주변에 상인들도 많고 관광객도 많고.. 하여간 여기가 세부의 중심가인 모양이다.
 

- 필리핀의 근 현대사 -
 

패키지 관광이라 시내 유적지 관광은 이것으로 끝이다. 원래는 <성 페드로 요새>도 가야 하는데, 우리의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가이드 얼굴을 보면 말을 하기가 싫다. (나처럼 치밀하지 않은 다른 식구들은 아예 모르는 모양이다) 사실 아까부터 가이드는 쇼핑센터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패키지 관광이니까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닌데, 그래도 직접 대면을 하자니 참으로 민망하다.
 

1565년에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고, 이후 300여 년간 이들의 지배를 받는다. TV에서 보았던 산 카를로스 대학의 한 여학생은 스페인 지배가 미개한 상태의 필리핀을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 대해 치를 떨며 분노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라 의외였다. (산 카를로스 대학은 1595년에 필리핀에 세워진 최초의 대학이다)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맞선 여러 독립투사들이 나오는데, 그 중 대표자는 호세 리잘(Jose Rizal)이다. 이 분이 처형된 12월 30일은 필리핀의 국가 공휴일이다. (이 분에 관해 더 알고 싶으면 마닐라에 있는 산티아고 요새에 가봐야 한다. 에효...)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필리핀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모진 고난을 겪은 것이 현대사의 줄거리이다. 독립을 약속받았던 미국에 의해 배신당하고, 1898년 12월 10일에 체결된 파리조약에 의해 필리핀은 다시 미국의 식민지가 되고, 그 댓가로 미국은 스페인 정부에 2천만 달러를 준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폭격기들이 진주만 공습에 이어 필리핀에 있던 미군의 클라크 공군기지를 무차별 공습한다. 극동 주둔 미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도 속수무책인 상황인지라 결국 이듬해 3월 17일에 그는 병력을 이끌고 호주로 철수한다. 이로써 필리핀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도망치면서도 입은 살았는지 맥아더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I shall return"
 

1944년 10월 20일. 650척의 전함과 4개 사단 병력의 미군은 필리핀의 레이테에 상륙한다. 어쨌든 맥아더가 약속은 지킨 셈이다. 파죽지세로 일본군을 몰아낸 필리핀에는 마침내 자유가 찾아오고, 1946년 7월 4일에 완전한 독립국가가 된다. 독립운동가출신의 초대 대통령 에밀리오 아귀날도(Emilio Aguinaldo) 이후 우리와 친숙한 이름으로는 라몬 막사이사이(7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0대), 코라손 아퀴노(11대), 피델 라모스(12대), 아로요(14대) 등이 있으며, 현재는 베니그노 니노이 아퀴노 3세(코라손 아퀴노 아들)가 하고 있다.
 

내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TV속의 한 장면. 비행기 트랩을 내려온 한 남자가 옆 사람이 쏜 권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연일 TV를 통해 보도되었으며, 이 모든 장면이 TV를 통해 중계되고 있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1983년 8월 21일에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희생자는 미국에서의 망명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 정적을 이런 방식으로 뻔뻔스럽게 살해하고, 암살범을 군경으로 하여금 현장에서 사살하도록 하여 완전범죄로 만들도록 지시한 장본인은 마르코스 대통령이었다. 이 사건은 같은 시기에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국외로 추방되어 미국에서 망명중이었던 김대중 의원을 떠 올리게 했었기에 더욱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던 것 같다.
 

- 민속공연 -
 

가이드가 고대하던 쇼핑에서 17명이란 대가족이 올려준 실적은 실로 초라해서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실망한 가이드는 마지막 쇼핑 장소인 라텍스 매장을 아예 생략한다. 졸지에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저녁식사를 위한 장소로 이동했다.
 

레드코코 레스토랑. 여기도 로컬 레스토랑은 아닌 것 같고, 보아하니 <하나투어>에서 만든 곳 같다. 하여간 우리나라 여행사들은 대단해... 또 다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한식도 필리핀식도 아닌 국적불명의 희한한 음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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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한적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허허벌판에 이런 음식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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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단지 조개탕의 국물을 먹었을 뿐이다. 미안하지만 이건 음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쓰레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다만 볼거리 면에서는 괜찮았는데, 나는 이곳에서 필리핀의 전통 춤 Bamboo Dance를 보았다. 언젠가 TV에서 방영되는 것을 보며, 그때도 신기하다는 느낌을 가졌는데, 오늘 이렇게 보니 참으로 반가웠다. 이 춤의 유래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설이 있는데, 하나는 대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스페인 감독들의 채찍을 피해 원주민들이 요리조리로 피해다닌데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공연이 모두 끝나면 관객들이 나와서 간단하게 대나무 춤을 배워볼 수도 있다.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얼른 나가서 해 보았는데, 기본 리듬은 3박자의 단순한 형태였다. 그 단순한 리듬에 기교가 더해지면서 묘기와 같은 춤이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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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순서는 디스코 타임이다. 여행자들이 나와서 댄스타임을 가졌다. 나도 모두와 함께 나와서 놀았는데, 내가 결혼하고 12년이 지나는 동안 이렇게 놀아본 적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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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서는 젊은 남녀들이 나와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춤으로 보여줬다. 난 싸이의 말춤을 여기서 처음 보는 것 같았는데, 참으로 볼만했다. 특히 몸매가 날씬한 아가씨들이 추니까 더욱 보기에 좋은 것 같았다.
 

- 돌아오기 -
 

저녁식사와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마사지집이다. 원래 여행상품에는 발맛사지가 들어있었는데, 이게 전신맛사지로 업그레이드 된 것을 우리가 돈을 더 주고 스톤맛사지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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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도 그럴듯하고 내부도 깨끗하다. 여기는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노아 맛사지>란 곳인데, 패키지 손님만 받는 곳이다. 옵션 가격은 대단히 비싸서 스톤 맛사지는 2시간 걸리고 120불이다. 스톤 맛사지는 나도 처음 받아봤는데, 오일을 선택한 다음, 그걸 온 몸에 바르고 뜨거운 돌로 문지르는 것이다. 뜨거운 물로 가열된 돌의 온도는 80도라는데, 돌은 비열이 작은 물질이기 때문에 열은 생각처럼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물은 같은 80도일 때 달걀을 삶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열을 가지고 있지만, 돌은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만족도인데, 나는 괜찮았다. 다른 사람들은 좀 세게 해달라고 부탁할 것을 그랬다고도 했다. (이건 맛사지 시작할 때 선택이 가능하다) 난 만족도는 괜찮았는데, 솔직히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태국에서 퇴폐 맛사지가 아닌 다음에 이렇게 비싼 맛사지도 있을까? 렛츠 릴렉스나 헬쓰랜드 같은 좋은 맛사지 가게에 가도 스파가 아닌 그냥 오일맛사지는 천밧 정도면 가능하지 않나? 1,000밧 = 30불이다.
 

이로써 모든 일정은 끝났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막탄세부공항. 처음에 올 때는 몰랐는데, 공항은 규모가 매우 작고, 입국장과 출국장이 옆으로 나란히 붙어 있다. 그러니까 처음에 우리가 여기 도착해서 가이드를 만난 곳이 출국장이었다.
 

가이드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내가 생각할 때 우리의 가이드(이름=노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인원만 많지 별로 수익이 나지 않는, 쉽게 말해 “영양가”라고는 없는 손님들 17명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텐데 그래도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해냈다.
마지막에 우리가 공항에서 검색대로 들어가는데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인사도 예의바르게 했다.
“아버님, 어머님. 건강하세요”
언뜻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솔직히 저렇게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나를 포함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제대로 안하고(또는 못하고)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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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이라고 안에 들어왔는데, 면세점이라고는 달랑 지금 눈에 보이는 저것이 전부이다. 게이트도 딱 한군데라서 헷갈리고 말고 할 일도 없다.
 

그렇게 다시 4시간을 날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밤 12시가 넘어 비행기를 타니 아이들은 모두 피곤해서 곯아떨어진다. 특별히 주문한 기내식(핫도그)도 그냥 버려지고... 저럴 바에는 <대한항공>이 필요없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는 그래도 아침이나 먹고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출국장으로 올라왔다. 아직은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인데도 공항에는 어디론가 떠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고 간다. 그 모습을 본 아내 왈
 

“아.. 나도 어디든 떠나고 싶다..”
 

방금 돌아왔으니 남들 같으면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고 할 것 같은데, 지금도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천상 나의 아내가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을 보면서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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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아이들은 너무 추운지 저렇게 되었다. 바깥기온은 영하 10도.
 

사족
 

1) 둘쨋날 호텔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종업원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만 해도 경비원들이 총을 차고 다니는 모습에 적응이 안된터라 이런 걸 물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그렇게 위험하냐고. 그랬더니 그가 말하더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그러면서 필리핀 사람들은 “hospitable"하다고 말해줬습니다.
 

2) 필리핀하면 제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세 가지입니다. 프레디 아귈라, 매니 파퀴아오 그리고 산 미구엘. 제가 프레디 아귈라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는 곧바로 히트곡 “Anak”의 첫소절을 불러주더군요. 이 노래는 1978년에 발표된 곡으로 필리핀의 토속어인 따갈로그어로 불렀는데도 빌보드 싱글 차트 5위까지 올랐었습니다. 프레디는 자신이 가수 생활을 통해 번 돈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아낙학교>를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필리핀의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이후에도 훌륭한 삶을 사시는 분입니다. 젊은 친구의 나이로 추측컨대 이 노래가 나왔을 때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이 노래는 <가족>에 관한 곡이라면서 말하면서 스스로 가슴 뭉클해 했습니다.
 

3)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프로복서 매니 파퀴아오는 플라이급부터 시작해서 라이트 미들급에 이르기까지 8체급을 석권한 <신화>입니다. 친구는 파퀴아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지난달에 있었던 경기를 언급하며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파퀴아오가 마르케스에게 6회 KO로 무너졌거든요. 경기 자체는 근래에 보기 드문 명승부였습니다. 5회까지는 파퀴아오가 이기고 있었는데요... 결국 파퀴아오의 시대도 이렇게 저물어가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업적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합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사족인데요, 오늘날의 파퀴아오를 있게 한 원동력은 바로 <줄넘기>였다고 합니다.
 

4) 저와 저의 가족은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소득은 앞으로 다시는 “패키지 관광을 가자”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된 것입니다. 요즘도 토요일 밤만 되면 케이블 방송에서는 <무이자 10개월의 놀라운 혜택>을 누리라고 유혹합니다만, 이제 아내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그동안 우리 가족이 해 왔던 배낭여행들이 얼마나 유익하고 보람된 것이었는지를 확실히 깨달은 모양입니다.
 

5) 끝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여행기 작성을 마치고 나니 좀 섭섭하네요. 어디 가서 산 미구엘이나 한 잔 하고 싶습니다.
4 Comments
삶을 여행처럼 2013.02.20 17:38  
하로동선님 즐거운여행기(?) 잘 봤습니다^^
작년 태국. 캄보디아 여행기도 잘보고

저도 몇년째 태국만 가다가 3월 세부로 여행갑니다.

자유여행이라 천만다행이네요(?)^^
하로동선 2013.02.20 22:40  
하하... 자유여행이라고 하시니 정말 부럽습니다. 즐거운 여행 하시고, 살아있는 여행기 부탁드립니다.
하얀하늘 2013.05.14 21:06  
2년전 두달간 세부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세부 풍경을 보니 참 반갑네요.
마사지 가격은 참^^;;;
세이브모어 반대편에 싸고 괜찮은 마사지샵이 있는데‥
물론 패키지라 시간내기도 힘드셨겠네요.
다음엔 꼭 자유여행으로 가보세요.
밤늦게만 돌아다니시지 않는다면 치안은 특별히 걱정안하셔도 됩니다. 세부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서 필리핀에서도 치안이 괜찮은 곳으로 꼽힙니다.
어쨌든 반갑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로동선 2013.06.28 13:16  
진작에 하얀하늘님 같은 분의 말씀을 들었다면 숙소에서의 밤이 그토록 적적하진 않았을겁니다. 아쉽네요... 괜히 겁만 잔뜩 먹고 갖혀 지냈거든요... 말씀 감사합니다. 또 다른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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