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이 가족의 세부여행기(1)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 필리핀
여행기

서현이 가족의 세부여행기(1)

하로동선 0 3092
- 들어가며 -
 

해마다 겨울이 되면 이 땅의 추위는 참으로 혹독하다. 특히 올해는 그 정도가 심했는데, 지난 1월3일 내가 사는 동네(경기도 남양주시)의 아침최저기온은 영하 20.9도였다. 이런 날씨에는 따뜻한 남쪽나라가 그립고, 게다가 올해는 장인어른이 칠순을 맞이하는 해인지라 그걸 핑계로 어른 - 아이 포함해서 도합 17명이 길을 나서게 되었다.
 

경비는 그동안 처가쪽 네 자매가 다달이 10만원씩 모았던 돈이 몇 년 동안 쌓여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장소에 관해서는 좀 의견이 분분했다. 가족들 중 동남아 여행 경험이 가장 많은 내가 애초에 추천한 곳은 태국 [푸켓]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동남아에서 관광과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바로 푸켓이다. 단언컨대,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다!! (유감스럽게도 가 본 적은 없다. 나도 그냥 들은 이야기로 판단하는 것임) 그러나 일이 이상하게 되려는 건지 갑자기 어느 날인가 홈쇼핑을 보던 처가쪽 자매들이 쇼핑호스트의 꾀임에 넘어가면서 필리핀 세부로 결정되었고, “패키지 관광은 안 된다”는 나의 의견은 <무이자 할부 6개월의 놀라운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의견에 묻혀 버렸다.
 

여행의 즐거움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면 첫째는 여행 준비, 둘째는 본 여행, 셋째는 여행 후기 작성이라고 하는데, 다들 아는 바와 같이 패키지 관광은 <준비>라는 것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패키지를 가면서 사전 준비를 해서 아는 것이 많아지면, 공연히 가이드랑 마찰만 생길 뿐 하등 도움될 일이 없다. 그렇다 보니 여행 준비를 일상의 낙으로 삼으며 사는 나로서는 맥이 빠져 버렸다.
 

- 출발 -
 

1월 5일 토요일 아침.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출발시각이 저녁 7시 40분이니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일어나도 할 일이 없다. 공연히 마음만 분주해 있느니, 놀더라도 공항에 가서 노는 것이 낫겠다 싶어 낮 12시 반에 집을 나섰다. 공항버스 시각은 1시 25분이니 정류장까지 차 몰고 가서 짐을 내려놓고 아무데나 주차시켜놓고 돌아와도 넉넉할 시간이었다. 정류장에 짐을 부리고 아내는 주차하러 가고 없는데, 느닷없이 나타나는 공항버스. 이게 웬일인가해서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내가 어제 버스시각을 잘못 확인한 것이었다. 급하게 아내한테 전화를 하니, 막 동사무소에 주차를 끝낸 아내가 급하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횡단보도 신호등은 빨간색, 횡단보도를 지나 이리로 달려오면서 육교를 앞에 두고 잠깐 좌우를 살피더니 6차선 대로를 무단횡단하는 것이었다. 저렇게 하면 큰일나는데... 그러나 아직은 내가 자식이 둘이나 딸린 홀아비가 될 팔자가 아니었는지 무사히 귀환했다.
 

외곽순환도로를 통해 꼬박 두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의 활기찬 모습은 여느 때와 같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런 분위기는 참으로 여행자를 들뜨게 한다. 같은 공항이라도 입국장의 차분한 분위기랑은 사뭇 다르다.
 
238399361_72LYqWQ4_1-1_EC9DB8ECB29CEAB3B5ED95AD.jpg
 
파란색 전광판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그런지 저렇게 카트에 싣고 다니면서 태워주면 굉장히 즐거워한다. 점심은 간단하게 아내가 준비한 김밥으로 때우고, 남는 시간 내내 저렇게 카트 운행을 했다.

238399361_ok2K6yWH_1-2_EC9DB8ECB29CEAB3B5ED95AD.jpg
 
1층에 있는 실내정원이다. 참 예쁘게 꾸며져 있다. 이런 데를 오고 가면서 다른 가족들이 오기를 기다렸더니 하나둘씩 모여든다.
 

- 마티나 라운지 -
 

출국심사를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면세점마다 물건들은 가득한데, 내 주머니는 너무도 가볍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는 서운해서 아이들한테 초콜렛을 하나씩 사게 했다.
 

나한테는 <외환 크로스마일카드>가 있는데, 이 카드는 일상생활에서의 다른 혜택은 아무 것도 없지만, 사용 실적에 따른 항공마일리지 적립이 많고, 공항 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이 있다. 내가 간 곳은 마티나 라운지(Matina Lounge). 11번 게이트 맞은편에 있다. 여기를 가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인천공항 안에 트랜짓 호텔이 있다는 것. 마티나 라운지 바로 옆이다. 들어가면서 카드만 내밀었더니 비행기표를 보여 달란다. 이걸 모르고 안 가져오는 바람에 다시 다녀왔다. 귀찮지만 공짜라서 참는다.
 

여기는 이름은 라운지이지만 뷔페이다. 그것도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운영한단다. 음식의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맛은 아주 좋다.

238399361_CRoGklX1_1-3_EBA788ED8BB0EB8298EB9DBCEC9AB4ECA780.jpg
 
카드가 한 장 뿐이라 혼자서 왔더니 좋은 음식을 먹는데도 즐거움이 없다. 여기를 돈을 내고 들어오려면 10회권이 250불이다. 한번 먹는 값은 30불로 알고 있다. 솔직히 너무 비싸다...
조금 전의 귀찮음에 대한 보복(?)으로 가장 비싸 보이는 음식들만 접시에 담았다.

238399361_o9H2iE0t_1-4_EBA788ED8BB0EB8298EB9DBCEC9AB4ECA780.jpg
 
돼지갈비, 연어샐러드, 소라죽이다.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 뿐인데,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아 이 음식을 먹으려니 가족들이 눈에 선하고, 왠지 처량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면 아마도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먹었을 것이다.
 

- 출발 -
 

저녁 7시40분. KE631편이 계류장을 빠져 나간다. 드디어 출발이다. 이번 여행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점은 항공사가 대한항공이고, 기종도 보잉 747-400이라는 것이다. 재작년의 태국가족여행에서 아이들이 난생 처음으로 타 본 비행기는 보잉 737-800이었다. 이거는 원래 탑승인원이 126명인 737-400을 개조하여 크기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탑승인원만 190명으로 늘려 승객이 짐짝처럼 실려 가게 만든 비행기이다. 그에 비하면 오늘의 747-400은 점보 여객기로서의 위용을 과시하는 모습이다. 비록 지금은 에어버스 A380에 밀려난 신세이지만, 아직도 대한항공의 주력기이다.

238399361_fkwG317m_1-5_ED82A4ECA688EBB080-ED9684EBB284EAB1B0.jpg
 
정말 오랜만에 대한항공을 이용하면서 흐뭇했던 점은 내 아이들이 진정으로 대접받는다는 느낌이었다. 일단 아이들이 타니까 승무원이 작지만 “선물”이란 것을 들고 왔다. 기내식도 어린이의 경우에는 미리 예약이 가능했는데, 사진에서 보는 것은 햄버거이다. 식사를 마치면 좌석 앞의 개인모니터를 통해 <몬스터호텔> 같은 어린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저가항공에서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다. 역시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세상은 돈이 말한다는 점이다.
 

- 도착 -
 

비행기는 그렇게 4시간30분을 날아서 밤 11시 10분에 필리핀의 막탄-세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름은 “세부”이지만 공항은 실제로 세부 옆의 작은 섬 “막탄”에 있어서 이름이 이렇다) 비행기는 땅에 내렸지만 아직도 기내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도 몸에 느껴지는 더운 기운. 그것이 실제 상황인지 아니면 단지 기분인지는 가려낼 수 없었지만 하여간 기분은 날아갈 듯 즐거웠다.

238399361_DpnK3NoX_1-6_EBA789ED8384EC84B8EBB680EAB3B5ED95AD.jpg
 
입국심사를 마치고 공항 건물을 나서자 마주치게 되는 열대의 바람. 나는 진정 이 느낌을 사랑한다. 남들은 미국이 좋다 유럽이 좋다 말하지만, 그래도 나는 동남아시아가 좋다. 이윽고 가이드와의 짧은 만남이 있고, 우리 모두는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필리핀은 모두 7,10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섬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 그럼 1등은? 인도네시아입니다. 18,108개) 그 중 세부는 한 가운데쯤 위치에 있으며, 보라카이와 함께 필리핀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숙소는 소토그란데(Soto Grande) 리조트. 3성급의 싸구려 패키지의 전용 숙소이다. 공항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15분 남짓 걸렸다.

238399361_DAsfFWz5_1-7_EAB09DEC8BA4.jpg
 
방안은 근사하다. 우리 가족이 네 명이라고 옆에 엑스트라 베드도 놓았는데, 침대가 넓어서 아이랑 어른이 함께 자는 것도 가능할 정도이다.

238399361_UXkq14s0_1-8_EC82B0EBAFB8EAB5ACEC9798.jpg
 
필리핀에 온 기념으로 아내와 <산 미구엘>을 한 잔씩 나눴다. 여기에 오면서 마음먹은 것들 중 하나는 필리핀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맥주인 산 미구엘(San Miguel)을 실컷 마시는 것이었다. 오른쪽의 라이트보다 왼쪽의 필젠이 맛이 더 깊다.
 

사족:
1) 누가 그러더라구요. 관광은 사물을 눈으로 보고, 여행은 가슴으로 본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패키지는 관광인 것이고, 배낭은 여행인지도 모릅니다.
2) 비록 패키지관광이었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배낭여행의 느낌으로 쓰겠습니다.
0 Comments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