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12편 로터스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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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12편 로터스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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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0대 중반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던 막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부득이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2007년 7월 15일 출발하여 파키스탄의 라호르 - 라왈핀디 - 탁실라 - 칠라스 - 훈자를 거쳐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타고 7월 27일 중국으로 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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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나의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2007년 7월 20일

 

라왈핀디에서의 둘째날 - 유네스코 문화유산 로터스 요새

 

 

지나간 밤은 악몽(惡夢)이라고 표현할 만한 밤이었다. 험하다고 하는 인도를 갔을 때도 이러한 밤은 없었다. 에어컨이 없는 ‘파퓰러 인’에 ‘한증막’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내 방에는 복도 쪽으로 밖에 창문이 없다. 출입문을 열어 놓을 수는 없으나 창문은 활짝 열어 놓았다. 그러나 창문을 열어도 바람 통하는 곳이 없다. 아니 바람 통하는 곳이 있다고 해도, 이 밤은 움직이는 바람 자체가 없다. 그저 유일한 바람이란 천정에 돌아가는 팬이 일으키는 바람이다.

 

온갖 냄새로 오염된 공기는 이제 공기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습도 100%를 자랑한다. 흔히들 밤이 되면 기온이 내려간다고 하지만, 한낮동안 달구어진 열기가 밤이면 집안으로 스멀거리며 스며드는가 보다. 여행자가 떠나 거의 비어있는 게스트 하우스는 침침하고 괴괴하기까지 하다. 옷을 벗어도, 이불을 걷어차도 방법이 없다. 마지막으로 홑이불을 물에 적셔 그 위에 누워보았는데 생각에는 참신하고 멋진 아이디어였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새벽녘에는 전기까지 나가 버렸다. 팬마져 돌지 않는 게스트하우스에 남아 있기 보다는 차라리 밖이 나을 듯해서 옷을 차려 입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사장에게 물어서 메모를 해 둔 대로 걸어서 로터리까지 갔다. 도로에는 몇몇 사람들이 오가고 있으며, 로터리에 나오니 꽤 번듯한 도로에 커다란 건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괜찮아 보이는 호텔들도 몇 개 보였다. 로터리에서 스즈키를 타고 ‘스완’버스스톱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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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왈핀디 파퓰러 인 근처의 로터리, 여기서 스완가는 버스를 탔다.





어떤 인터넷 정보에서 ‘스완’에서 로타스 요새가 있는 ‘디나(DINA)’가는 버스가 없다고 했는데 파률러 사장은

 

“스완 버스스톱에 가면 ‘디나’가는 버스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버스정거장을 찾아가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어떤 버스는 정류소로 들어가지 않으니 잘 물어봐라.”

 

라고 메모를 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긴 다리를 건넌 곳에서 차장은 ‘스완’이라고 내려 주었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버스정거장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인지 제복을 입은 사람이 보여 ‘버스스톱’을 물어보니 한쪽 방향을 가리키는데 어디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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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왈핀디 외곽의 ‘스완 버스터미널’ 주 간선도로에서 떨어진 개울가에 자리 잡고 있다.





“이리와 봐 저기 개울 건너편에 주차장이 보이지 않아? 저기가 ‘스완 버스터미널’이란 말이야. 저기 저 구멍으로 들어가 지하로 길을 건너가면 저리로 갈 수 있는 다리가 있어 그리로 가면 되”

 

하고 손을 끌고 가서 알려 주었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 지하통로를 건너가니 큰 다리 아래 작은 차나, 사람들이 건너는 오래된 다리가 또 하나 있었다. 다리 건너에는 꽤 많은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버스는 많지 않고 거의 대부분이 미니버스이거나 ‘이스타나’같은 크기의 버스들 이었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스즈키들이 주차되어 있다.

 

“헤이 어디가려고 하니?”

“디나 간다.”

“디나 가는 버스는 저쪽에 서 있다. 저리로 가라.”

 

몇 대의 버스가 출발선에 서있다. 그리고 각각의 버스 옆에는 작은 버스표를 파는 부스가 있기에 ‘디나’가는 버스를 물어 보았더니 한곳을 가리킨다.

 

“이거 ‘디나(DINA)’가는 버스냐?”

“그래 맞다 이제 바로 출발한다.”

“디나 가자. 그런데 꼭 ‘디나’에서 내려줘야 한다. 로타스 요새를 가려고 한다. 거기서 내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알았다. 이 버스는 ‘디나’가 종점이다.”

 

물론 파키스탄 버스가 바로 출발한다는 것은 거짓말인 것을 알고 있다. 파키스탄 버스는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버스에 탄 사람의 숫자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이니까.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출발하였다. 시간은 8시 15분 이었으니 게스트하우스를 출발한지 1시간이 되어서 였다.

 

‘디나’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린 것 같다. 론리 플레닛에는 라왈핀디에서 ‘디나’까지는 86km라고 나와 있다. 지도를 보면 ‘디나(DINA)’는 라왈핀디와 라호르를 잇는 중요한 간선도로상의 마을이었다. 그런 것이 대우가 건설한 고속도로가 새로 개통되면서 많은 차들이 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되면서 조금은 소외되기 시작한 마을인 것 같다. 그래도 이 도로는 아직 라호르로 가는 중요한 도로로 교통량이 많다. 버스에는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고 하였는데, 어느 마을에 도착하니 거의 모든 사람이 내렸다. 버스에는 나 혼자 타고 조금 더 가 유턴을 하여 내려 주었다. 버스 운전사는 내가 ‘로타스 요새’에 가기 편하도록 내려준 것이니 처음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몇 대의 뚝뚝이 말을 걸어온다.

 

“어디 가냐?”

“로터스 포트에 간다. 얼마냐?”

“로터스에서 1시간 구경하고 300루피 달라.”

“300루피는 너무 비싸다. 깍자.”

“안 된다 로터스까지 가는데만도 200루피는 줘야한다. 거기까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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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모습의 로터스 요새의 성벽





이렇게 흥정하고 있는데 잘 되지 않는다. 뭔가 믿고 있는 구석이 있는지 협상에 적극적으로 덤비지 않는다. 아마도 어느 정도 묵계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이때 한 사람이 팔을 잡아끌었다.

 

“그래 뚝뚝이 타지 말고 이 버스를 타라. 곧 간다. 이것 10루피 밖에 안한다. 왜 비싼 뚝뚝을 타려고 하냐?”

 

갈등이 생겼다. 뚝뚝을 탈까? 노선버스를 탈까? 망설이는데 버스의 앞문을 열어주며 이 자리에 타라고 까지 한다. 파키스탄에서 운전수 옆자리는 정말 VIP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여자들만이 운전수 옆자리에 앉을 수 있는데, 외국인인 나에게 자리를 내준 것은 정말 특별하게 대접해 준 것이다.

 

그러나 ‘곧 간다.’는 말은 거짓말로 버스는 한 20분은 더 있다가 갔다. 그동안 달궈진 천장에서 내리쬐는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머리로 받고 있자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계속 뚝뚝을 흥정해서 갈걸 그랬나.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얼마라도 깎아주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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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요새가는 버스, 외국인이라면 한번은 타 보고 싶은 마음이 부쩍 일어난다. 그러나 두 번째는 아닐꺼다.




 

버스는 그들이 버스(BUS)라고 말해서 버스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만약 그들이 버스라고 하지 않았다면 뭐라고 불러야할지 난감했을 거다. 그것은 그냥 탈것이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전통의 방식으로 꾸민 그것은 외국인이라면 한번 타 보고 싶어지기도 하는 온갖 방법으로 알록달록 꾸민 것이다. 그러나 기본 틀은 트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시끄러운 엔진룸이 앞으로 나온 형태의 트럭으로 운전석에도 최소한의 계기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아마 있던 계기도 이제는 고장나 없어졌을지 모른다. 앞과 뒤는 분리되어있어, 사람들은 뒤쪽으로 나있는 문으로 만 승하차 한다. 내가 이렇게 설명을 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트럭이다! 그것도 1960년대에 생산되었음직한. 차를 이루고 있는 철판의 두께보다 차에 칠해진 페인트가 더 두꺼운….

 

운전대 바로 앞에는 차의 운전수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일곱 살 정도 되는 아들을 본넷트위에 올려놓고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 운전수는 대기업 CEO로 취임하는 신임사장과 같이 으쓱하는 미소가 솟아나고 있다. 아마 이 버스를 구입해 기쁜 마음을 찍은 것이리라. 그런데 그것이 불과 3-4년 전쯤의 일같이 보인다.

 

이 버스는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지 때가 되니 출발한다. 경치 하나는 막히지 않고 시원스러운 도로를 달려 굽이굽이 계곡 아래를 내려가기도 하고, 작은 개울을 건너기도 하면서 달려가는데, 왜 그런지 점점 황량한 사막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주변의 풍경들은 점점 푸른빛이 없어지고, 모래 속에 자갈이 파묻힌 것 같은 그런 돌들이 나타난다. 마치 우리나라 경상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추가령지구대’라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바위들 같다. 아니 마이산을 이루고 있는 자갈덩이 같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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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길이 끝나면서 성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린 버스는 커다란 성문을 들어간다. 그곳엔 마을이 숨어있었다. 밖에서는 미처 발견할 수 없는 나즈막한 집들이 높은 성벽에 가려져 숨어 있다가 나타난다. 그러나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버스는 서지 않고 계속 골목길을 꼬불꼬불 달려간다. 그러다 마을을 통과하고 ‘여기가 마을의 끝이 아닌가?’하는 지점에 세워준다.

 

버스에 몇 명이 타고 있었는지 앞 뒤가 분리되어 잘 알 수 없었는데, 하여튼 나머지 사람들이 여기서 모두 내린다. 여기가 어딘가? 어디긴 로터스 성안 마을이지. 그러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로 가긴 우선 앞으로 가야지.

 

버스에서 내리니 쓸쓸하고 황량하다. 누가 이런 곳을 구경하러 오는가? 할 정도로 볼거리가 없었다. 앞으로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유적인 듯한 성의 일부가 검은 모습을 하고 담담하게 서있다. 오른쪽으로는 조금 가꾸어진 공원이 보이고 그 너머로 웅장하게 높은 성벽이 보인다. 성벽은 일단 10미터는 훨씬 넘을 듯 한 높이다. 그저 꽉 막아선 느낌 밖에는 없다. 어찌 되었던 구경을 해야지.

 

옆에 구멍가게 같은 것이 있는데, 아직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디나’가는 버스는 언제 있냐? 물어보니 오후에 한번 있다고 한다. 뭐 오후에나 있어? 이런! 난감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돌아가지? 그러나 일단 도착했으니 구경을 해야겠다고 음료수 한 병을 들고 일어섰다.

 

왼쪽으로는 잔디 위에 시멘트로 납작하게 지은 건물이 몇 채 줄지어 있다. 얼핏 보아도 시멘트로 지은 것 같은 정감이 가지 않는 모습인데, 주변에 철망을 쳐 놓아서 처음부터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오른쪽으로는 공원 같은 풀밭을 지나 그 끝에는 높은 검은색의 성벽이 둘러져 있는데 위압감이 느껴졌다.

 

길은 정면으로 나 있어 일단 그쪽으로 갔다. 주차장이 나오고 앞쪽으로는 성문 같은 것이 있는데 한 녀석이 뛰어 나온다. 벌써 척 보면 안다. 행색은 주차장 관리인 같은데 나를 반기는 것을 보면 입장권을 파는 것이다.

 

“200루피다.”

 

다짜고짜로 입장권의 금액부터 부른다. 입이 싱글벙글인 것을 보면 나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짐작이 간다.

 

“여기 뭐가 볼게 있다고 200루피나 되냐.”

“왜? 볼 것 많다. 성문도 있고, 모스크도 있고, 우물도 있다. 외국인도 많이 구경 온다.”

“외국인? 외국인이 왔냐? 어디?”

“하여튼 여기저기 보면 많이 있다. 200루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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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요새 ‘소홀게이트(Sohail Gate)’





이미 각오하고 있던 것이라 200루피를 주니 꼬깃꼬깃한 입장권을 한 장 준다. 그러며 성문 쪽을 가리켜 주며

 

“저리로 가면 박물관이 있다.”

 

앞쪽으로 웅장한 성문(城門)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손바닥만 한 파란색 간판이 가파른 계단옆 벽에 붙어있는데 ‘셔 샨 슈리 기념관(Sher Shah Suri museum)’이라 쓰여 있다. 이것이 바로 ‘소홀게이트(Sohail Gate)’로 현재 로터스 성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복원되었다는 곳이다. 사실 로터스성에서 관광객이 구경할 곳이 있다면 이곳 밖에는 없을 듯하였다. 그러니 입장권도 이 앞에서만 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작은 기념관이 나타났다. 나름대로 문 앞에 벤치도 하나 가져다 놓고, 무언가 문화(culture)라는 말을 생각나게 하려고 한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이 뜨거운 햇빛아래 그 벤치에 앉을 사람이 누구겠는가?

 

성벽에 마련된 공간과 성문위의 공간을 활용하여 꾸민 기념관에는 ‘가치 있는’ 기념물은 없었다. 그저 이러한 공간 하나 없으면 무료할 것 같아 구색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정도 밖에는 더 이상의 의의가 없었다. 아니면, 성안의 이곳저곳에서 수시로 발견되는 문화적 보관가치는 없는 유물들을 모아놓은 창고정도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마 로터스 요새에 대하여 많은 공부를 하지 않고 구경을 간 사람들은 여기에서부터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로터스성과 이 성에 왕국을 세웠던 ‘셔 산 수리’에 대해 알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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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요새를 건축한 사자왕 ‘셔 샨 슈리(Sher Shah Suri)-인터넷에서 받음





이 요새(要塞)는 1540년대에 ‘셔 샨 수리(Sher Shah Suri)’가 건설한 것으로 파키스탄의 역사 건축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요새로 평가받고 있다. 성의 둘레가 약 5Km정도 되는 이 요새는 유(U)자형으로 휘돌아 흐르는 강을 배경으로 그 언덕위에 지어졌다. 깊은 골짜기와 강이 침략하는 적을 잘 막아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따라서 적에게 한 번도 점령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

 

12개의 문과 68개의 보루를 갖춘 최강의 요새로, 성벽의 높이는 10-18미터이며 성벽의 폭은 13미터가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각각의 문(gate)들은 자기들이 있는 위치에 따라 가장 방어하기 좋은 모양으로 독특하게 건축되어 있어 축성(築城)양식의 연구에도 큰 가치가 있는 성(fort)으로 되어있다.

 

미국에서 발간된 「세계역사속의 명장(名將) 100인(人) ‘100 GREATEST GENERALS THROUGHOUT HISTORY’」이란 책속에 98위에 랭크되어있는 - 물론 서양인의 시각으로 저자가 아는 한계 안에서 지은 책이라 특별한 가치는 없다. 어찌되었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끌어온 책이다. - ‘셔 샨 수리(Sher Shah Suri)’는 아프칸땅에 수리(Suri)왕조를 세운 인물로 그의 용맹성에 따라 ‘라이온 킹’이라고 불리고 있다. 어릴 적 이름은 ‘Farid Kakar’로 1472년 펀잡(punjab)지방의 영주(estate)인 ‘하산 자기르(Hasan Jagir)’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수리족의 ‘아브라힘(Ibrahim)’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계모에 의해 견제를 받게 되어 가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커다란 도움이되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이때 축성(築城)학을 공부하여 훗날 로터스요새 같은 훌륭한 건축물을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20대의 나이에는 부친의 명으로 돌아와 잠시 작은 땅을 맡아 다스리기도 하였으나, 다시 가족을 떠나게 되었다. 당시 ‘바부르(Babur)’가 세력을 모아, 지금 인도의 델리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잡고 있던 ‘로디(Lodi)왕조’와 투쟁할 때 ‘바부르’를 도와 여러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특히 아그라에서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고 한다.

 

‘바부르’가 아그라에 무굴제국을 세우고 황제로 즉위하자, ‘셔 샨 슈리(Sher Shah Suri)’도 ‘바부르’의 후원아래 ‘사사람(sasaram)’으로 복귀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인도의 델리 부근에서부터 지금의 라호르를 거점으로한 펀잡지역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서 ‘셔 샨 슈리(Sher Shah Suri)’는 점점 세력을 넓혀가며 튼튼한 기반을 쌓았다.

 

‘바부르’ 사망 후 아그라에서 델리 쪽으로 거점을 넓히려는 무굴제국의 2대 황제 ‘후마윤(Humayun)’과 충돌을 하게 되고, 세력 확대의 필요성을 크게 느낀 ‘슈리(Suri)’는 멀리 벵골지역을 정벌하여 왕의 항복을 받고 병합하였다. 그리고는 당시에 유래를 찾기 힘든 벵골에서 라호르까지 1500킬로미터에 이르는 하이웨이를 개척하였다. 이때가 ‘셔 샨 슈리(Sher Shah Suri)’의 최고의 전성시기였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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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셔 샨 슈리(Sher Shah Suri)’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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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 산 수리의 딸-princess-과 시녀, 왜 특별하게 공주의 상을 전시했을까? 뭔지 중요한 인물이었을 텐데 지식이 짧아서 알지 못하였다.






이때 ‘슈리왕국’은 동부 벵골에서부터 Agra(아그라), Burhanpur(부한푸라), Jodhpur(조이다푸르), Chitor fort(치트로성), Lahore(라호르)에서 Multan(물탄)까지를 아우르고 있었다.

 

1539년과 40년에는 무굴제국의 ‘후마윤(Humayun)’을 압박하여 챠우사(Chausa)와 칸나우자(Kannauj)에서 싸워 크게 이겼다. 이 전투의 결과로 ‘후마윤’은 델리를 떠나 아프칸의 ‘카불(Kabul)’로 망명하게 되었다. 당시 카블은 무굴제국의 근거지라 할 수 있었으며, 터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1544년 ‘셔 샨 슈리(Sher Shah Suri)’는 각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토 일각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러 원정을 떠났다. 반란군을 정벌하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주둔지에서 일어난 원인모를 화약창고 폭발사고로 인해 ‘슈리왕조’를 연 사자왕(獅子王) ‘셔 샨 슈리(Sher Shah Suri)’는 1545년 5월 22일 사망하게 된다.

 

‘셔 샨 슈리(Sher Shah Suri)’의 무덤은 지금 인도의 델리에서 멀지 않은 곳 ‘사사람(sasaram)’에 있다고 하는데 인도를 여행할 때 이러한 정보를 알지 못해 찾아보지 못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내용도 파키스탄 여행 당시에는 알지 못하고, 돌아와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찾고 덧붙여 알게 된 것이다. 아마 이 내용을 먼저 공부하고 로터스 성을 갔다면 훨씬 더 감동적으로 보았을 것이다.

 

전시실에는 성의 개략적인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미니츄어(miniature)가 있어 처음 방문자에게 도움을 준다. 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철옹성(鐵甕城)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역과, 그 구역과는 또다시 성벽과 성문으로 나누어진 약 1/5-1/6 정도 되는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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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의 전시물, 성의 대강 모습을 알 수 있는 미니츄어





성의 넓은 쪽에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가이드북에 보니 아직도 3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의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 같이 고지식하게 버스 정류장에서 바로 들어온 사람만 입장료를 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마을의 어디에선가 내려서 성벽 쪽으로 접근해서 돌아온다면 입장료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버스종점에서 내려서도, 나같이 주차장 쪽으로 가지 않고, 마을 쪽으로 조금만 걸어간 다음 성벽으로 접근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괜히 볼 것도 없는 곳에 200루피를 투자할 필요 없이. - 쪼잔한 생각일까? 마음대로 해석하시길.

 

마을은 모여 있고, 성벽 쪽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 풀과 나무만 자라고 있다. 그 사이 사이에 묘지, 모스크, 또는 형장(刑場) - 옛날에 사용했던 사형장을 복원(復元)했는지 표시가 되어있다. - 등이 있다. 또 성벽 가까이 이상한 구조물이 있는데 그림으로서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성을 축조한 연대가 편년으로 기록되어있는데 이 구조물을 완성한 햇수가 기록된 것으로 봐서는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이 부근의 성곽을 구경하고, 강변 쪽으로 내려가 - 사실 로터스성은 사방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할 수 있다. - 구조물을 확인하고 구경을 한 다음, 다시 올라와 성의 다른 부분을 봐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렇게 봐도 성의 전모(全貌)에 비하면 1/10은 커녕 한 1/20정도 보는 것이 될 것 같다. 계획을 세웠으니 움직여야 하겠는데 마음과는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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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비늘과 같이 굽이치고 있는 로터스 성벽 - 여장이 특히 발달해 있다.





검은색 돌로 쌓여진 성은 높이에 있어서나 넓이에 있어서나 모두 거대하였다. 틈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성벽은 깨어진 돌과 접착력 있는 흙을 섞어 채워 넣었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성이라고는 대부분 경사면에 의지해 쌓은 산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아주 다른 양식이다. 우선 평지에 솟아있으므로 그 높이가 무척 높다. 평균 10미터가 된다고 하면 3층짜리 건물의 옥상보다도 높은 것이다. 꼭꼭 짜 맞춘 우리의 성벽도 천하무적이지만 평지의 성은 수레 등 공성(攻城)장치(裝置)의 접근이 쉬워 공격하기가 용이(容易)하므로 성벽을 더 치밀하게 쌓아야 한다. 또 성문(城門)도 두껍고 육중하게 만들 뿐 아니라, 성문성채도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성문으로 접근한 적을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양쪽에 치(峙)도 발달해 있다. 이런 것을 고루 갖춘 것이 로터스 성이라고 한다.

 

마을길을 따라 강변 쪽으로 내려갔다. 약간 경사진 길인데 말이 길이지 그냥 사람들이 조금 많이 다닌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그 끝에 음료수를 파는 가게가 두 개나 있었다. 노인네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얼른 일어나 선풍기를 켠다. 그리고는 와서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그래도 여기를 찾는 사람이 있기는 있는 것 같다. 이렇듯 반기는데 무심히 그냥 지나갈 수 있을까? 선풍기 앞 의자에 앉아 음료수 한 병을 주문하고 주변을 돌아봤다.

 

노인의 집은 바로 앞인 듯 했다. 가게는 집 앞 마당에 천막을 친 것이리라. 냉장고가 아닌 아이스박스 속에서 꺼낸 음료수가 차가운 것은, 얼음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밖의 기온이 너무 더워서일께다. 어디서 얼음을 구해 아이스박스 속을 채울 수 있을까? 그래도 주변을 흐르는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고 편안했다.

 

노인은 준비한 책을 내 앞에 가져다 펼쳐 놓는다. 마음에 들면 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흘깃만 보아도 조잡한 인쇄술에 제본은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 나는 집에 돌아와 이때 내 행동을 후회했다. 왜 책 겉만 보고 내용은 생각하지 않고 거절했는지, 지금 내가 로터스성에 대해 자료를 구하고 싶어도 얼마나 어려운가? 책의 내용을 확인하지 못해도 개요만이라도 보고 구입했었다면 내가 찾는 책인지도 모르는데, 그때 조금 흥미를 가지고 그 책을 넘겨 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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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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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 보니 크기가 만만치 안은 포스가 느껴진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앞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건축물을 향해 갔다. 앞서 뮤지엄에서 성을 쌓은 연대표에 저 건축물의 공사연도가 기록되어 있어 무엇인가 꽤 중요한 것임을 말하는 것 같았다. 멀리서 보아 긴 직사각형으로 지면에 바짝 붙여서 만든 것으로 그 꼬리는 거의 성벽 가까이 까지 이어져 있었다.

 

앞서 예닐곱 명의 파키스타니들이 여러 가지 색깔의 옷을 입고 음료수 가게 앞을 지나갔다. 대부분 여자어린이였고, 어른은 한두 명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 건축물은 우물(baolis)이었다. 로터스 성은 강이 휘돌고 있는 높은 언덕위에 지어진 견고한 요새다. 평소에 우물이 어떤 형태인지 모르지만, 건기에 지하수면이 내려가면 주변의 토질로 보아서 우물은 물이 마를 것 같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 판 우물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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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내려가는 계단으로 이루어진 로터스 요새의 우물




 

 

1 Comments
Lucky 2011.01.29 11:11  
로터스 요새의 뒷 부분이 어떤 이유에선지 업데이트 되지 않았습니다. 부득이 13편의 앞부분에 올려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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