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8편 와가보더 국기하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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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8편 와가보더 국기하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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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0대 중반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던 막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부득이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2007년 7월 15일 출발하여 파키스탄의 라호르 - 라왈핀디 - 탁실라 - 칠라스 - 훈자를 거쳐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타고 7월 27일 중국으로 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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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나의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2007년 7월 17일

 

라호르에서의 둘째날 - 와가보더의 국기하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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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신상(神像). 머리가 파손되었지만 자세는 ‘두르가’





박물관을 나와 잠시 방향을 가늠했다. 어느 쪽으로 가야 될 것인가? 그러다 왼쪽은 아까 릭샤를 타고 온 방향이었으니 오른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약 5분여를 걸어가니 어느 곳인지는 모르겠는데 커다란 나무아래 자리를 잡고 과일쥬스를 팔고 있는 가게가 있다. 마치 노천카페 같은 모양을 되어있는데 꽤 이름이 있는 집인지 간판도 제법 신뢰를 준다. 시원할 듯한 - 전혀 시원하지는 않은 - 자리에 앉아 과일 쥬스를 주문했다. 아는 과일도 많지 않고, 그 중 망고가 만만해서 망고 쥬스를 선택했다.

 

자, 박물관까지 보았고. 이제 무엇을 할까? 바로 민박집으로 들어갈까? 근처에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리갈 인터넷 인’을 찾아가서 정보나 얻고 한국인이 있으면 계획이나 들어볼까? 여러 생각 중에 아직 시간이 가능하니 ‘와가보더(Wagha border)’ 에 가서 국기하기식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중에 과일 쥬스가 나왔는데 조금 특이한 상차림이었다. 약 300cc 정도 들어가는 커다란 컵에 가득 망고쉐이크가 나왔고, 그것보다 작은 우리가 흔히 맥주 컵으로 사용하는 작은 컵에 또 한잔의 쉐이크가 나왔다. 이게 무슨 뜻인지? 그러나 더욱 놀란 것은 망고쉐이크의 맛이 깜짝 놀랄만했다. 내가 이제까지 먹어본 과일음료수중 최고의 맛이었다. 그것도 그냥 최고의 맛이 아니라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또 한잔을 주문하여 먹었다.

 

박물관에서 나왔을 때는 아침에 먹은 것도 부실하고, 더위에 시달리고 해서 체력도 떨어지고 배가 고팠는데 망고쥬스 두 잔에 더 이상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렀다. 게다가 망고쥬스에 있는 당분이 내가 체력이 회복된 것 같은 착각을 살짝 일으키게 했다. 그래서 힘차게 ‘와가보더’를 향해 일어섰다.

 

인도와 열려있는 와가국경에서는 매일같이 국기하기식이 벌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하기식(下旗式)때 인도 파키스탄 양쪽에서 응원단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열렬하게 자기의 국가를 지지하며 일종의 해프닝(happening)을 벌이는데 그것이 관광거리라고 한다.

 

옆에 있던 점잖은 - 사람 뿐 아니라 옷을 - 사람에게 와가(Wagha) 가는 길을 물어보니 이번에도 재수가 있었는지 메모를 해 주며 알려준다.

 

“길을 건너가서 3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라. 그리고 그곳에서 4번 버스를 타고 다시 종점에서 내려라. 그러면 된다.”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파키스탄에서 이렇게 글을 써주는 사람은 그래도 지식인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지 못한다. 멀쩡하게 나이를 먹고, 유창하게 영어를 섞은 말로 사기를 치려고 덤벼드는 놈들도 종이와 펜을 들이대면 한사코 사양한다. 이유는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이름마저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흔하다.

 

3번 버스를 타니 조금 가서 종점이 되었다. 그 종점은 아침에 5번 버스를 타고 와서 내린 곳과 같은 장소였다. 다만 5번 버스는 ‘대우버스’라서 주차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지금의 3번 버스는 다른 버스들과 같이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내려 주차해있는 4번 버스를 타고 자리를 잡았다. 파키스탄의 버스는 남자가 타는 문과 여자가 타는 문이 구분되어 있다. 요즈음 나오는 시내 중심을 돌고 있는 버스 중 그렇게 되어있지 않은 버스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이런 버스는 타자마자 여자는 운전석 쪽으로 - 버스 앞쪽으로 - 남자는 뒤쪽으로 가야 한다. 그러니 버스 자리도 잘 잡아야 한다.

 

차장에게 국기하기식을 보러 ‘와가국경(Wagha border)’까지 가니까 내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이 버스의 종점이 바로 그곳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버스는 한참 달려 어느 마을에 섰다. 그리고 모두 내리라고 한다. 상점도 꽤 있는 번잡한 거리다. 여기가 어딘가? 잠시 멍청하게 서 있으려니 차장이 와서 앞을 가리키며 뭐라고 한다.

 

“ 코리안! 여기가 와가(Wagha)야! 버스는 여기까지 밖에 안가. 저 앞으로 가서 보더(border)가는 미니버스를 타라.”

 

흥, 버스에 따라서는 보더(border)까지 가지 않는다고 하더니 바로 이 버스군, 할 수없이 앞에 있는 봉고차 같은 미니버스를 탔다. 국경은 여기서도 몇 키로는 더 가야 한다.

 

국경마을에 도착하니 ‘이거야 정말!’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20루핀가 30루핀가 하는데 하여튼 입장권을 사야 국경을 갈 수가 있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국경의 하기식이 볼만하다고 해서 입장권을 사 가지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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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국기하기식에 모인 파키스탄 여성들. 여자의 외출이 자유스럽지 못한 파키스탄에서 이렇게 여자들이 모인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나는 육로(陸路)가 아닌 비행기로 파키스탄을 들어왔기 때문에 이곳을 통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들어와 스탠드에 앉아서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이 어딘지 이해가 되었다. 여기는 바로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이다. 건너편 인도 쪽을 아따리 보더(Attari border)라고 하며 ‘암리차르’에서 릭샤를 타고 올 수 있는 곳이고, 와가(Wagha)는 파키스탄쪽의 국경마을이다.

 

내가 앉아있는 스탠드 아래에는 이미그레이션과 세관이 있고, 건너편에는 약 100미터 정도의 - 조금 더 될 수도 - 거리를 두고 국경철책과 통문(通門)이 있다. 그리고 인도 쪽으로 또 그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인도 쪽 세관과 이미그레이션이 있다.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오는 사람은 건너편 인도에서 출국하여 200-300미터 정도를 걸어와서 파키스탄의 이미그레이션에서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 사이에 ‘인파국경’의 통문(通門)이 있는데, 낮에는 열어 두었다가 저녁에 하기식과 함께 이 문을 닫아 국경을 폐쇄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오는지 양쪽 스탠드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잠시 후에는 정말 거짓말 같이 스탠드가 꽉 찼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것일까? 폐쇄적인 파키스탄 사회에서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여성들도 따로 하나의 스탠드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저 많은 여자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이동했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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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가보더에 모인 군중의 바람을 잡고있는 노인, 국경포터다.





시간이 되니, 우선 바람잡이들이 바람을 잡기 시작한다.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이 분주히 왔다갔다 바람을 잡고, 또 이것도 무슨 행세하는 것이나 되는지 아래 잔디밭에 의자를 내놓고 거드름피우며 앉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초록색 옷을 입은 꼬부라진 할아버지가 까무잡잡한 모습으로 파키스탄 깃발을 들고 국경의 길을 뛰어가면서 바람을 잡으니 관중들이 호응해서 환호를 한다.

 

조금 더 있으려니 본격적으로 하기식을 시작하려는지 수비대의 정복인 듯한 옷을 입은 군인들이 나와서 정렬을 하거나 군데군데 감시를 하거나 하면서 수선스럽게 움직인다. 그때 멀리 인도 쪽 국경에서도 인도 군인들이 나와서 움직이는데, 두 나라 수비대 군복이 같은 디자인에 색깔만 달리하고 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氣流)가 느껴진다. 아 둘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구나!

 

군인들의 움직임이란 절도가 있고, 무게가 있고, 힘과 기(氣)가 뿜어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보는 군인들의 모습이란 마치 추억의 채플린 영상을 보는 것과 같이 빠르고 잰 걸음으로 걷거나 행동하는 것이다. 마치 작은 동물들 나오는 만화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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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를 내리고 있는 양측 군인들. 사진상 짖은 감색이 파키스탄, 건너편 붉은 벼슬에 베이지색 군복이 인도군인이다.





양쪽의 군인들이 잰걸음으로 가거나. 인사하거나, 보고하거나, 국기를 내리거나 할 때 스탠드를 메운 관중들은 ‘파키스탄’ ‘지나발-’을 외치면서 환호한다. 한참 있다 분위기가 죽었는가 싶으면 누군가가 ‘파키스탄-’하며 선창을 해서 호응을 선도한다. 그러면 건너편 인도 쪽에서도 커다란 소리의 구호가 외쳐지고, 또 거기에 반응하여 파키스탄 쪽에서도 웅성거림이 일어나고, 흥분은 주고받으며 흥분을 더해가고, 양쪽의 스탠드는 점점 더 뜨거워져 갔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아니 스탠드에 앉아서 스탠드를 치면서 후회했다. 겨우 이거라면 오지 말 것을! 이 힘들고 피곤한 몸을 끌고 여기에 와서 겨우 이런 짜고 치는 해프닝이란 말인가? 어느 여행자의 기록에 ‘두 나라가 주고받는 하기식에서 우리의 처지를 느꼈다.’ 등등 꽤 여러 사람이 하기식에 의미를 두며 관람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의견에 반대한다. 지나가는 길이라면 몰라도 우리는 다른 일정을 죽이며 일부러 와서 볼만한 가치는 없다고, 더군다나 입장료까지 내면서.

 

군중들 앞을 뛰어다니며 선동하던 노인네는 파키스탄 이미그레이션에 있다가 인도 쪽으로 출국하는 사람들의 짐을 들어다 주고 팁을 받아 사는 ‘국경포터’다. 노인이 입고 있던 티셔츠가 ‘국경포터’의 유니폼인 것이다. 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허가받은 사람만이 인파국경을 넘나들며 짐을 옮겨주는 것이다. 인도 쪽에는 똑같은 디자인에 색깔만 다른 유니폼을 입은 인도 쪽 ‘국경포터’가 있다. 그들은 이곳이 일터이고, 보람을 주고 있는 곳이다.

 

다른 사람들 보다 걸음을 빨리해서 나오니 주차장에 주차되어있는 많은 차량들 사이에 버스가 한 대 보인다. 역시 인터넷에서 라호르가는 버스가 한 대 국경까지 와서 출발한다는 정보가 맞았다. 겨우 버스를 타고 조금 있으려니 더 이상 사람이 탈 수 없을 만큼 가득 찬다. 피곤한 몸에 졸면서 라호르시내 종점까지 갔다. 그리고 아침에 보아둔 대로 ‘대우버스’터미널을 찾아 5번 버스를 탔다. 이제 한 시간 정도만 가면 몸을 쉴 수 있는 장소가 된다.

 

그러나 버스에 타니 피곤함이 몰려와 깜박깜박 졸린다. 게다가 밤이 되니 창밖의 풍경이 어디인지 인수 가 없어 차장에게 디펜스 G 블록에 내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물론 파키스타니를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두 번씩 부탁했다. 그리고 깜빡 졸았는데 버스 창밖이 깜깜하다. 퍼뜩 차장을 불렀다.

 

“ 야 차장 내가 디펜스 G 블록 내려달라고 했잖아! ”

 

깜짝 놀라는 차장의 모습으로 벌써 짐작해 버렸다. 내가 내릴 곳을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을. 차장은 황급히 차를 멈추더니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 저리로 조금만 가면 디펜스 G 블록이야, 저리로 조금만 가 ”

 

물론 차장의 말 밖에는 믿을 것이 없었다. 주변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깜깜한 어둠만 있었으니까. 5분지나 10분 정도 걸으니 멀리 그래도 밝은 불을 켠 가게가 나타난다. 가게들을 보니까 그래도 어디가 어딘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버스차장이 길을 완벽하게 알려준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골목길을 찾아다니며 20분이 넘어서 겨우 민박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피곤했다. 잠시 졸았던 것 치고는 너무 큰 손해였다.

 

근처 빵집에서 빵을 사고, 과일집에서 쥬스를 주문해서 어제와 같이 저녁을 때우고 민박집으로 들어갔다.

 

어제 같이 나갔던 세 명의 아가씨들은 인도로 건너가고 민박사장과 두 명의 남자만 있었다. 샤워를 하고 잠시 쉬다가 잠에 빠져 들었다. 에어컨을 켜니 시원한 바람이 살 것 같았다. 그런데 돌아와 생각해 보니 와가 국경을 간 것은 정말 잘못한 것이다. 만약 정보가 없이 조금 늦게 국경에서 나와 버스를 타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지도에는 라호르에서 와가국경의 위치가 나와 있지 않았다. 그저 론니 플래닛에 ‘살리마르 정원’이 시원치 않게 나와 있고, 그 방향으로 한참가면 어딘가에 와가국경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또 디펜스 지역도 지도에 나와 있지 않다. 두 군데가 모두 지도에 나와 있지 않으니 상호관계를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큰 지도에서 보니 국경과 디펜스 지역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코스 - 4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가서 다시 5번 버스를 타는 - 는 아주 미련한 방법이었다. 와가에서 오토릭샤를 타도 100루피 정도면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였다.

 

 

* 다음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살리마르 정원’입니다.

 

1 Comments
시골길 2012.01.19 03:26  
제가 인도/파키스탄을 가게 되면..반드시 봐야할 목록에 국경의 하기식이 적혀있습니다..ㅎㅎ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도, 의미는 있을 것 같거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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