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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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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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0대 중반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던 막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부득이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2007년 7월 15일 출발하여 파키스탄의 라호르 - 라왈핀디 - 탁실라 - 칠라스 - 훈자를 거쳐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타고 7월 27일 중국으로 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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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나의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2007년 7월 15일

 

파키스탄 라호르 도착

 

- 관광 후진국의 특징 택시 기사의 바가지 환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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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르포트에서

 



비행기가 천천히 선회(旋回)를 시도하는지 검은 하늘만 보이던 창가에 별안간 휘황찬란한 불빛이 비치는 도시가 나타난다. 멀리 손바닥만 한 넓이로 비치던 불빛은 정말 이런 도시가 있을까 할 정도로 신기루와 같이 나타나 작은 비행기 창을 모두 환한 불빛으로 덮었다.

“라호르! 라호르!”

옆에 앉았던 파키스타니가 자랑스럽게 외친다.

“오- 라호르!”

내가 대꾸해주자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한마디 더 추워주지 않을 수 없다.

“오- 그레이트 시티-”

“라호르 이즈 빅”

 

2007년 7월 15일 11시 40분. 방콕행 TG. 엔진출력을 높이며 기장은 랜딩기어를 당겼나보다, 드륵드륵 활주로와 마찰하던 바퀴의 진동이 멈추며 매끈하게 기수를 쳐든다. 이상하게도 나의 여행계획에는 마(魔)가 잘 낀다. 이번 ‘파키스탄-중국’의 카라코룸하이웨이를 통한 실크로드는 작년 5월부터 목표를 세우고 무려 1년이나 계획하고 준비한 여행이다.

 

높은 고도를 올라가야 하므로 폐활량을 늘이려고 담배마저 끊고 뒷동산을 열심히 다녔다. 그러던 중에 지난 4월에는 원인도 없이 오른쪽 발목이 부어서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일이 생겨 그동안의 준비가 물거품이 될 뻔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파키스탄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

 

이번 여행의 최대 적은 배낭의 무게였다. 실제로 배낭의 무게는 17.5키로나 나갔다. 옷의 무게를 줄이고 줄였지만 여기에서 더 줄이기에는 여행지 자체가 무리였다. 파키스탄의 라호르나 이슬라마바드는 한여름의 더위가 40도를 육박했지만 쿤자랍고개 쪽으로 가면 빙점(氷點) 가까운 온도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 실제로 빙하(氷河)를 찾아가는 길 이었으니. 그렇다고 여름옷을 버릴 수도 없는 것이 다시 중국으로 가게 되면 투루판은 해발고도가 수면(水面) 아래로 내려가는 분지로 그 더위는 살인(殺人)도 치룰 정도라고 한다.

 

가장 많은 무게를 차지하게 된 것은 아마도 약(藥)이 아닌가 싶었다. 정기적으로 먹어야 할 약이 한보따리에, 혼자가게 됨으로 모든 것을 혼자 넘겨야 하는 위기감에서 준비한 상비약이 또 한보따리, 그리고 여러 가지 사이즈의 전기약, 충전기 등이 많은 부피와 무게를 차지했다. 그러나 내 건강은 이정도의 배낭을 손쉽게 지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배낭+트렁크=끌낭이란 것이다. 어쩔 수 없을 때는 메고 다니지만, 좋은 조건이라면 끌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끌낭의 선택으로 짐의 무게의 걱정을 어느 정도 덜 수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마(魔)는 마지막에 찾아왔다. 출발을 며칠 남기고 불안을 더해가던 파키스탄 국내 사정이 드디어 폭발하고 만 것이다. 파키스탄 반군들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폭탄테러로 20여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반군들은 시내의 ‘붉은 사원’을 점거하고 있는 소식에서부터, 정부군이 이들을 진압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불안하고 위험하게 전해져 왔다. 하지만 애써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사람 사는 곳이니까 살 수 있겠지’하는 마음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방콕에서 나는 자리 운이 없었다. 서울에서 방콕까지의 비행은 여행사에서 말하던 것과는 달리 비행기 좌석이 80%정도 밖에 차지 않았다. 옆에 앉은 사람은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조사장’이었다. 조사장은 체구도 그리 크지 않고, 또 한국인 특유의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습성과, 사업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관광객은 귀찮아’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지나치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왔다.

 

4시간을 기다린 끝에 방콕에서 갈아탄 파키스탄행 비행기는 100여명 밖에 못 탈 정도의 작은 비행기였으며, 빈 좌석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내 옆에는 강호동 만한 거구가 앉아있다. 처음 내 좌석을 찾아갔을 때 나는 좌석발권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도저히 하나의 좌석으로는 불가능한 엉덩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파키스타니는 서투른 영어로 - 나하고 수준이 비슷해서 오히려 중요한 단어만 가지고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 - 자기를 소개하고 파키스탄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엉덩이가 의자에 꼭 끼어서인지 자력(自力)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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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내가 무료한 시간 잠이나 청할 생각으로 ‘위스키’를 주문하자 자기도 똑같이 위스키를 달라고 한다. 내가 ‘너 무슬림 아니냐?’ 하자 ‘나는 무슬림이지만 여기는 무슬림 땅이 아니다’라고 응수한다.

 

라호르 공항은 앞선 인천공항이나, 태국의 수완나폼 공항과 비교하여 작고 지저분했다. 기억에 에어컨도 없는 것 같았다. 입국절차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으나 입국수속창구가 몇 개 되지 않았으며, 관리들의 자세는 바쁜 것이 하나도 없어 기다림의 시간은 매우 지루했다. 그러나 짐을 찾거나 세관검사는 의외로 만만했다. 가방속의 술도 검색하지 않았다. -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파키스탄은 금주국(禁酒國)이라서 술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처벌을 한다고 하였다.

 

작은 공항의 로비를 나오자 금세 뜨거운 먼지바람이 몸을 감싼다. 새로운 땅에 내릴 때 마다 느끼던 불안감은 상대적으로 덜한데, 공항 밖은 정말 무질서 했다. 파키스탄 현지시간 밤 11시 가까운 시각, 몰려드는 삐끼가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우선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둔 라호르 ‘코리아나’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야 했다. 정보에는 200루피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몇 대의 택시를 보내도 모두 300루피를 부른다. 200루피에 가자고 하면 흥정도 없이 가버린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니 아마도 공항을 드나드는 택시 운전사들이 어디는 얼마 하고 담합을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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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는 뚝뚝이라고 불리는 오토릭샤. 서민의 발로 사랑받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지 않은가! 공항택시들이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워 시내를 뱅뱅 돌다가 겨우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거나,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메타에 나오는 요금과 상관없이 일정금액을 받아내고 하는 -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 그래서 외국 여행자들 사이에 한국 특히 서울의 택시는 악명이 높았고, 상대적으로 일본의 택시는 매우 친절하고 모범적으로 비쳤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일본은 외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우리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고 말지 않았는가? 몇 년 전 “한국 관광의 해” 행사를 크게 했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말이 나온 김에 지금의 제주도는 어떤가? 지금의 경주는 어떤가? 모두 한때 바가지가 엄청나던 곳이 아니던가? 한대의 택시에 두 팀을 교묘하게 실어 나르지 않았던가! 그 결과 지금 내국인 관광객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지 않았는가?

 

파키스탄 라호르의 택시운전수들이 담함을 했다면 할 수 없이 그 가격에 탈 수 밖에 없었다. 택시 한대를 잡아 갈 곳을 말하니 300루피라고 한다. 확실하게 ‘디펜스 G 블록’을 데려다 달라고 하니 문제없다고 한다. 다시 메모지에 [디펜스 G블록]이라고 쓰고 “얼마?” 하니 300루피라고 답한다. ‘요기에다 써 달라’고 하니 냉큼 받아서 300루피라고 적어준다.

“됐어, 이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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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수완나폼 공항을 누비는 스님들. 오른쪽 분은 비구니스님이다.





사실 공항에서 ‘디펜스’ 지역은 그리 먼 곳이 아니다. 보통 정상적인 요금을 받는다면 100루피 조금 넘을까 한 정도다. 또한 파키스타니들은 그 정도에서 또는 많은 짐을 가지고 있다면 150루피 정도로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자신 있게 ‘디펜스 G 블록’을 안다고 한 운전사가 빙빙 돌기 시작한다. 지도상으로 보아서 확실하게 다 왔는데 헛소리를 해 댄다.

“ 나 피곤하니 빨리 가자.”

라고 해도 주소를 못 찾는 것 같이 횡설수설한다. 할 수 없이 내가 이리 저리로 골목으로 들어가라고 했지만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 근처 지나가는 파키스타니한테 길을 물어본다. 현지인 파키스타니도 횡설수설한다. 운전수는 핸드폰도 없다고 한다. 내가 지나가는 파키스타니한테 전화를 빌려서 전화를 했다. 그제야 운전수는 알아차린 듯 차를 돌린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끝이 아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는데 누군가 소리쳐 부른다.

 

라호르 코리아나 사장이 골목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수상한 택시를 발견하고 소리친 것이다. 그제야 겨우 찾은 듯 기쁜 얼굴로 다가가는 운전수 - 나중에 내가 직접 확인했지만 주소를 가지고 코리아나를 못 찾는 다면 그 사람은 장님이 틀림없었다.

 

사장님은 고생하셨다면서 내 짐을 들어 주었다. 택시비 300루피를 주자 운전사가 뭐라고 한다. 뭐라고 하기는 그냥 보아도 ‘자기가 고생을 했으니 돈을 더 주어야 한다.’는 것이겠지. 사실 우리나라였다면 이런 경우에 택시비를 주지 않았거나 귀싸대기를 한대 때려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는 파키스탄! 화가 나지만 꾹 참고 300루피를 준 것인데 철없는 택시운전수는 고마운 줄 모르고 더 달라고 한다.

 

코리아나 사장이 말한다. 운전수 말이 ‘공항에서 한 시간이 더 걸렸으니 100루피를 더 달라고 한다. 파키스타니 운전수 놈들의 횡포이지만 한 시간 이상 걸리면 보통 그렇게 요구한다.’ 는 것이다. ‘그런 소리 말아라! 요기 조놈이 이렇게 써 준 것이 있다. 제가 300루피 만 받겠다고 하고 뭘 더 달라고 하느냐.’며 메모 쪽지를 주니 사장이 그것을 들이대며 따지니 꼼짝없다. 이러한 파키스탄의 첫 인상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였다. 마치 아직 장사할 준비가 되지 않은 식당에 밥 먹겠다고 찾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침 7시 30분에 집을 출발해서 지금시간이 12시가 넘은 시간이다 보니 16시간 이상을 길에서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한국과의 시차 5시간을 더하면 21시간이 넘는다. 정말 피곤하고 힘들어 간단하게 샤워하고 바로 쓰러져 잤다.

 

 

* 다음은 시내버스를 타고 ‘파키스탄 미나르’까지 가는 길입니다.

2 Comments
시골길 2012.01.19 02:29  
첫날 숙소에만 탈없이 도착하면..여행의 반은 해결된 것 같더만요..ㅋㅋ
2007년 7월에 다녀오셨는데..생동감이 넘치는데요..^^
지금은 어떤지 궁금해 지는 대목이군요.. ㅎㅎ
고망쥐 2012.02.01 11:49  
파키스탄은 여행금지국가 아니예요?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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