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추억을 나누어드립니다. 시베리아 열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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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추억을 나누어드립니다. 시베리아 열차 (1)

부하라 4 2755

                     시베리아열차

지난 해 가을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리칸트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인 러시아호를 탔다. 이 철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열차코스다.
 
비행기가 발달된 요즈음에 오히려 여행인 들에게 인기가 있다. 모스크바에서 불라디보스크(극동)까지는 9,198킬로미터 밤 낮 없이 일주일이 걸린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450킬로미터)의 20배가 넘을 뿐더러 출발지와 종착지의 시차만도 무려 6시간이나 된다.

시베리아는 우랄산맥에서 태평양까지 그리고 북극해에서 중국 국경까지의 광대한 지역이다. 그것은 아시아의 3분의1 의 해당한다.
 
열차에 흔들리며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본다. 자작나무 숲과 작은 시내와 연녹색의 들판이 수채화처럼 이어진다. 열차의 2등 객실은 4인 용이다. 침대가 위 아래로 2개씩 있고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이 창가에 붙어있다. 객실 문을 열면 긴 복도가 화장실과 식당으로 연결된다.
객차마다 승무원이 있고 승무원 실에는 뜨거운 차가 준비돼 있다. 주전자에서 딸그락 딸그락 물 끓는 소리가 긴장되려는 마음을 달래준다.

열차가 정차하는 곳에는 이동 시장이 열린다. 주민들은 작은 손수레에 집에서 만든 따듯한 빵과 찐 계란, 우유 등을 식지 않도록 보자기에 싸 들고 나와 팔고 있다. 더러는 물물교환으로 생필품을 건네는 몽골 인들도 보인다. 승객들은 워밍업을 하며 바람도 쏘일 겸 열차에서 내린다. 소박하기만 한 시골 아주머니와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면서 지루했던 여로의 피로를 잊는다. 기차는 승객이 모두 승차한 것을 확인한 후 발차하는데 승무원은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할일을 수행한다.

나는 이 열차 안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사귈 수 있었다. 야로스라바리역에서 탔던 첫날은 50대의 부인 케티와 갓 대학에 입학한 청년(아들)뽀로호스키를 만났다. 부인은 골격이 다부지고 과묵한 전형적인 러시아 여인이다.

청년은 잘생긴 이목구비와는 어울리지 않는 마디 굵은 큰손을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 어려운 일을 오랫동안 해온 것 같다. 뽀로호스키는 소련이 붕괴된 후 처음으로 영어과목이 생겼다며
초급 영어 교과서를 꺼내놓고 읽기도 하고 또 사전을 뒤지기도 한다. 영어 실력이 나와 비슷한지라 손짓발짓 그림까지 그려가며 의사를 주고받았다.

나는 K 대학마크가 있는 딸의 학교 러닝을 선물로 주었다.
다음날은 소냐라는 여인이 돌이 안 된 아기를 안고 탔다. 웃음과 눈빛만을 주고받았던 하룻밤이었지만 오랫동안 정붙였던 사람들처럼 헤어질 때는 섭섭했다. 소냐는 밤새도록 코바늘로 뜬 화병 바침을 선물로 주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목을 끌어안고 볼을 비비며 서운해 한다.
 
첫 번째 만났던 모자와 헤어질 때도 그랬다. 뽀로호스키는 선로 변에 피어 있는 과꽃을 꺾어서 병에 꽂아 테이블 위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들 모자는 기차가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키스를 보냈다. 두 손을 입에 뎄다가 날려 보내고 가슴을 쓸어서 역시 날려 보낸다. 마음도 보낸다는 정 표현이다. 잠시 만났다가 기약도 없이 헤어지는 사람끼리의 석별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뜨거운 감격이 가슴을 밀치고 올라와 목을 메운다.

기차역마다 보내고 가는 사람들의 살 겨운 모습들을 본다. 떠나는 사람들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눈물을 찍어낸다. 이러한 소박한 인정은 동구라파와 구소련 연방국가들, 그리고 러시아의 지방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의식은 서구적이면서 물질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 때문인 것 같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별은 대체로 덤덤하다. 점잖아서 인지 아니면 급성장한 경제의 여유로 감성이 숙었는지.........우리에게도 가슴이 찡한 이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자기 피붙이에 한한 경우이다. 아들을 군에 보낸다든지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곳 시베리아 사람들처럼 생판 모르는 사람 더구나 외국 길손에까지 인정을 나누는 일은 거의 없다. 쓸데없는 정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이리쿠츠크 역에서 내렸다. 앙카라강의 수원인 바이칼 호에서 70킬로 정도 하류이다. 제정러시아 시대에는 차, 금, 모피 등의 교역지로 번성했던 도시다. 삭풍에 시달려 뒤틀려진 아름드리 가로수와 창문에 예쁜 덧문이 달린 목조 가옥이 늘어서 있다. 문 듯 지난날에 왔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겨울을 재촉하는 회오리바람이 낙엽을 몰아 거리를 쓸고 다닌다.

나는 바이칼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이틀을 묵었다. 거대한 흰 산줄기가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바이칼 호의 면적은 3만 1,500평방미터, 수심은 1,620미터이다 세계에서 제일 깊다. 투명도도 뛰어나며 수온은 비상히 차다.
호텔 뒤 숲 속의 통나무집은 러시아 사우나탕이다. 차돌을 뜨겁게 달군 화덕에 물을 끼얹어 수증기를 일으켜서 탕을 데운다. 그리고 자작 나뭇잎과 향나무 잎으로 다발을 만들어 달군 몸을 두들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돌려가며 두들겨준다. 풋풋한 풀 향내가 살 갓에 묻어난다.
잠시 시원한 공간에 나와 차를 마시며 쉬기도 하고 카츄샤 노래에 맞춰 춤도 춘다. 타월로 몸을 가리고 모두 어우러져 춤을 춘다. 그러고는 다시 사우나를 한다. 이러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열차에 시달렸던 시달렸던 피로가 일시에 날라가 버린것 같이 몸이 가뿐해졌다.

낙엽이 쌓인 오솔길로 들어서니 어디서인지 여안들의 노래소리가 들린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통나무집에서 여인들이 흥겨웁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춘다. 여인들은 나를 손짓해부른다. 여인들은 이곳 주민인둣하다. 모닥불 가에는 빵과 소시지, 오렌지, 포도 그리고 보드카가 있다. 예일곱살 된 어린아이가 모닥불을 뒤적이며  군감자를 집어낸다. 금발의 아기는 유보차에서 잠들었다. 그들은 아주 흥에 취해 있었다. 이방인인 나에게 보드카를 권한다. 그리고 소시지를 집어준다. 정다운 눈길에 이끌이러어  나도 함께 어울렸다. 내가 볼가강의 뱃노래를 선창하니 여인들은 놀랍다는 듯이 웃으며 따라부른다. 여인들은 스카프를 흔들며 가벼운 동작으로 춤을춘다. 사람들의 소박한 정이 가슴을 적신다. 아름답고 순박한 바이칼의 여인이여.

해는 서산을 넘고 노을의 여명도 호수에 떨어졌다. 이리쿠츠크역을 출발한 열차는 왼쪽으로는 망망한 바이칼호를 오른쪽으로는 설산과 침엽수림과 계곡을 끼고 달린다.  열차는 장장 5시간을 달렸어도 호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산은 높고 물은 깊다. 들은 넓고 수목도 울창하다. 호수에서 끌어올린 오무리(바이칼 호에서만 사는 물고기)도 먹고 사우나에서 매도 맞았으니 노곤하다. 창 가리개를 내리고 발을 뻗었다. 간헐적인 열차의 진동에 몸을 맡기니 눈까풀이 무거워온다. 종착지에 닿을 때까지 이대로 잠들었으면 좋겠다.

4 Comments
한구름 2010.07.20 22:40  
선미네 2010.08.19 13:44  
말로만 듣던 그 열차로군요. 2등 객실은 요금이 얼마 정도 하나요..
zoo 2010.08.26 22:29  
정말 말로만 듣던 영화에서나 볼 것 같던 그 열차를 타셨군요^^ 정말 멋진 여행 하시고 이렇게 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여행 하시기바랍니다^^
sun123 2010.09.20 04:58  
저도 20대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 봤어요~
말도 안통하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여행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는 아직도 이야기 거리입니다!
기차타기전에 물은 필요할꺼라 생각하고  샀던 가스 들은물!!!
그물로 이닦고 세수하고 마시고~ ㅋㅋㅋ
다시금 생각나네요~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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