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다신 없을 상전들과의 11박 13일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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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다신 없을 상전들과의 11박 13일 - 5

딸기맛환타 12 869

 










밤새 환자가 발생했다. 큰애가 체했다고 한다.

조식을 먹으러 가면서 이모네 방에 들렀는데 다들 걱정되는 표정으로 큰애만 바라보고 있었고, 큰애는 몸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조금씩 물을 마시고 있었다.

새벽 내내 토하고 힘들어해서 이모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어젯밤 편의점에서 산 음식으로 야식을 먹은 것이 잘못된 것 같다고 얘기했다.

빅씨 푸드코트에서 나랑 나눠 먹은 국수부터가 잘못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시암 니라밋을 보고 나왔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다행히 오늘은 '상황 봐서 아유타야 갔다오자'가 계획이었기 때문에 일정 상의 문제는 없었지만, 체크아웃 날이어서 '아예 쉬자'를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아유타야는 포기하고 일단 조식을 먹으러 갔는데, 체한 데에는 아예 아무것도 안 먹는 게 낫다는 이모의 얘기에 큰애는 작은애가 가져다주는 과일주스 밖에 먹을 수 없었다. 불쌍...

야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밥이 너무 잘 들어간 나머지 세팅되어 있던 과일 6종을 하나씩 다 먹어버렸다.

우리가 묵고 있는 방 두 개 중에 하나만 체크아웃을 하고 하나는 워크인 가격으로 연장을 해서 저녁에 치앙마이 행 기차를 타기 전까지만 있을까도 했지만, 왠지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일단 체크아웃 시간까지는 방에 있어보고 그 이후에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짐은 이미 다 싸놓은 상태여서, 뭘 해야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의 가장 좋은 여행친구 구글에 별표 쳐놓은 곳을 뒤져봐도 딱히 갈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거의 좀비처럼 걷는 애를 데리고 어디를 다닐 수도 없고, 하...

엄마는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거라며, 어차피 기차에서도 쉴거지만 오늘은 아예 하루 쉬어간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이런저런 고민 속에 어느덧 시간은 지나 체크아웃 때가 왔고, 다들 짐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큰애는 아까보다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힘이 없어 보였다.

작은애는 맨날 즈그 언니랑 싸우다가 아프다고 하니까 본능적으로 불쌍하게 느꼈는지 가방 메는 것도 도와주고 캐리어를 들고 직접 내려주기까지 했다.

진작에 좀... 어제는 언니 울려놓고 오늘은 챙겨주고...

생각해보니 나도 동생이랑 과자 한 봉지(평균 나이 30세)를 가지고 내꺼를 왜 니가 먹었니, 일부러 니꺼까지 두 봉지 사놨는데 그걸 다 먹으면 어쩌냐며, 빨리 슈퍼 가서 과자랑 맥주까지 사오라고!!! 하면서 싸우다 엄마한테 혼나는 터라 뭐... 형제자매남매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ㅋㅋㅋㅋㅋ

29년 차의 베프이기도 했다가 또 그만큼의 원수지간이기도 했다가 같은 목적 - 예를 들면 치맥, 심지어 내 동생은 나를 '오밤중에같이치킨먹는사람'이라고 저장해놨다 - 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벽 두 시에도 의기투합하는 사이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괜히 거실에 누워 티븨를 보는 상대를 향해 궁딩이킥을 날리는 사이었던 동생, 갑자기 아빠랑 둘이서 밥은 잘 챙겨먹는지가 걱정이 됐다.

성인 남자 둘인데, 알아서 어련히 챙겨먹겠거니 하고 스치는 생각을 종료한다.

일단 택시를 두 대 나눠서 타고 기차역에 가있기로 했다.

택시를 하나 잡아 이모네를 먼저 태워 보내고, 엄마랑 나도 바로 다른 택시를 잡아탄다.

역시, 유심은 나에게 약간의 자유를 보장해주었으며 그들에게 자립심을 키워주었다 ㅋㅋㅋㅋㅋ

기차 밖에 없는 기차역에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하는지 의논하다 후아 람퐁역에 도착했다.

이모네는 이미 도착해서 택시 정류장과 떨어진 입구 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게 보였다.

짐을 끌고 그 쪽으로 갔는데 아까는 보지 못했던 두루마리 휴지 하나가 있었다.

이건 뭐냐고 물었는데 작은애가 고자질하듯? 대답을 한다.

'언니가 택시 내려서 여기까지 짐 가지고 왔는데 갑자기 토했어~ 근데 경찰아저씨가 휴지 줘서 닦았어~

아, 숙소에서는 괜찮았는데 택시를 타니 그 특유의 냄새가 속을 자극했나보다.

그저께 짜뚜짝에서 산 원피스의 앞부분이 살짝 물 묻힌 것처럼 되어버렸다.

한참 예민한 사춘기 여자애가 얼마나 민망하고 짜증이 날까.

눈물을 조금 보이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안쓰러웠다.

괜히 국수를 먹여서 이랬나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근데 경찰아저씨라니? 여기에도 경찰이 있었나? 보안직원을 얘기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너무 감사하게도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한테 친절을 ㅜㅜ 하면서 내가 처음 태국을 좋아하게 됐던 이유가 생각났다.

아무 정보도 없이 쏭크란에 대한 얘기만 듣고 비행기표만 달랑 사서 왔던 이 곳.

처음 본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나에게 귀찮은 내색 없이 친절을 베풀어줬던 사람들.

새삼 혼자 (속으로) 감동하면서 휴지를 큰애 가방에 잘 넣어주고는 짐 맡기는 곳으로 갔다.

혹시나 기차역 밖으로 나갈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짐을 맡겨놓고 앉아 있기로 했다.

각자 캐리어와 가방 하나씩, 난 배낭만 한 개로 총 9개를 맡기고 보관증을 받았다. 

대합실로 나가 어쨌든 역에 왔으니 사진을 하나 찍자고 해서 위치를 잡아준다.

큰애는 다행히 웃을 정도의 여유는 있는지 사진에 같이 찍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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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합실 의자에 앉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해봤다.

큰애는 아예 눕는 건 오히려 불편한지 이모한테 절반쯤 기대있었고, 작은애는 옆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기차는 저녁 6시10분에 치앙마이까지 가는 최신형 9호차였다.

아직 출발까지는 다섯시간이나 남은 상황, 무작정 여기서 기다리기는 힘들었다.

엄마도 방콕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이렇게 보내기는 아쉬웠는지, 작은애한테 제안을 했다.

언니는 아프고 엄마는 언니 봐줘야되니까 이모랑 큰언니랑 같이 나갔다 오자, 했지만 엄마껌딱지님께서는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하... 좀 도와줘!!!!!!!!!!!!!! ㅠㅠ

이모도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자기는 엄마가 신경 안 써줘도 좋으니까 굳이 엄마랑 언니랑 같이 있겠다 하여... 

이모한테는 미안하지만 들어올 때 기차에서 먹을 것도 같이 사온다고 하고 엄마와 나는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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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바깥 세상.

태국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는 하지만 기차를 타고 어디에 간 것은 아유타야 갈 때와 꼬 파얌을 가기 위해 일단 춤폰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라농에서 롯뚜를 갈아타고 갔던 일, 두 번 뿐이었다.

치앙마이를 갈 때는 어쩌다보니 항상 비행기를 타고 왕복했고, 이번에는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인 '침대기차 타기'를 하기 위해 나에게도 첫 경험이 될 이 방법을 선택했다.

나는 괜찮은데, 지금 대합실에서 화장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저들도 괜찮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를 가야할까 고민하는데 엄마는 박물관을 가고 싶다고 하고,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박물관에 가보는 것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엄마한테 사과함ㅋㅋㅋ)
 
시암박물관에 갈까 싶기도 했지만 이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에서 새로운 곳을 찾아가기도 귀찮았고 아침만 먹고 나왔더니 슬슬 배가 고프기도 한 참이었다.

내가 힘들 때 발휘되는 이런 이기적인 마음을 결국 엄마에게 박물관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엄마의 태국 여행에 오점?을 남겼다.

나의 귀찮음으로 우리는 '카오산에 가서 밥이나 먹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오늘따라 길을 왜 이렇게 막히는지, 이모한테도 미안하고 엄마한테도 미안한, 모두에게 미안한 사람이 된 나는 왜 이 여행을 오겠다고 했는지, 자문자답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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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에서 꼭 해야할 일곱 가지' 표지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하나 찍었다.

카오산에서 해야할 일? 그냥 놀고 먹고 쏘다니면 된다 ㅋㅋㅋㅋㅋㅋㅋ

뭘 해야할 지 정하지 않는 것, 그게 카오산에서 해야할 일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아는 동네에 오니까 기분이 조금 나아져서 엄마와 밥집을 찾아 나섰다.

제일 먹고 싶은 메뉴는 커무양에 쏨땀이었는데, 막상 카오산에서는 그런 것들을 먹은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 회전이 안 된 나머지 눈 앞에 보이는 저렴할 것 같은 식당에 들어갔다.

이것이 오늘의 결정적인 실수라면 실수일 수 있었다.

직원에게 커무양이 있는지 물었지만 없다고 하기에 그 비슷해 보이는 무언가를 시키고 쏨땀과 볶음밥도 하나 시켰다.

콜라가 먼저 서빙되어 나오고 커무양과 비슷하지만 다른 고기도 나오고 볶음밥도 나왔는데, 어쩐지 쏨땀이 나오지를 않는다.

쏨땀이 아직 안 나왔다고, 언제 나오냐는 나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하며 쏨땀 없는데? 하는 그녀의 대답...

없으면 나한테 얘기를 해줘야지... 또 혼자만 알고 있는 직원...

아무 말 없었지 않냐고 따지니 어차피 주문은 안 들어갔다며 나를 예민한 사람 만드는 그녀의 스킬...

기차역에서 같이 '친절한 태국사람들'을 만나면 나의 태국사랑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다가도 이런 막가파 식의 직원들을 보면 그들의 나태함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느... 즈금 으믄흐드그... 흐그는드... 근드르즈 믈르그...

나의 표정이 변한 걸 보더니 엄마는 그냥 나온 것만 먹고 빨리 나가자고 한다.

그치, 이럴 때는 드러워서 피하는거다!

밥이 언친듯한 느낌을 받으며 계산을 하고 나와 깡생수를 들이킨다.

시간은 왜 이렇게 잘 가는지 기차에서 먹을 간식을 사서 다시 돌아가면 딱 맞을 시간이 되었다.

세븐에 들러 인원 수대로 빵과 물을 고르고 혹시 큰애한테 필요할까 싶어 죽도 같이 샀다.

눈 앞에 맥도날드가 보여 세트도 하나씩 구입, 바리바리 싸들고 다시 택시를 타고 후아 람퐁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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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착!

이모랑 애들은 예상대로 지쳐있었고, 화장실에만 거의 20밧을 썼다고 한다.

큰애는 많이 게워내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좀 나아보였지만 음료수 빼고는 아무것도 못 먹어서 그런지 기운이 없어보였다.

그래도 작은애랑 이모는 아까 역 안에 있는 던킨 도너츠에서 뭘 좀 사먹었다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우리만 나갔다 온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다같이 여기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는 생각을 하며 합리화시키기 ㅋㅋㅋㅋ

이럴 줄 알았으면 짐을 맡기지 말걸 그랬다는 이모의 말, 듣고 보니 그럴 걸 그랬다.

아까는 그래도 뭔가를 할 수 있을거란 희망이 조금 있었지만, 이미 지금은 시간이 늦었다.

사 온 먹을거리를 풀어놓고 햄버거를 먹는다.

큰애꺼는 이따 속 좀 나아지고 하면 기차에서 먹으라고 따로 담아놓는다.

시간은 또 흘러흘러서 드디어 기차에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맡겼던 짐을 찾으러 갔는데, 직원이 작은애를 보고 내 딸이냐고...

나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냐고ㅠㅠ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 것 같았는데...

동생이라고 했더니 이번엔 이모가 우리 언니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기요 아저씨... 왜 그러시는거에요... 나 울거임...

열심히 관계를 설명해줬더니 러어~? 하면서 그제야 수긍하는 직원아저씨...

이모 의문의 1승... 난 의문의 1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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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우리가 탈 신형 9호 기차이다.

겉모습만 봐도 확실히 새거 느낌이 났고, 속도 물론 깔끔했다.

두 달 전에 러시아에서 고생하며 예매했던 표를 오늘 드디어 쓴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참 극성이지, 싶었다.

도대체 여행이 뭐라고 ㅋㅋㅋㅋㅋ 여행은 나에게 무슨 의미였던가 ㅋㅋㅋㅋㅋ 

오늘은 여러가지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는 하루이다.

자리를 찾아 들어가니 내가 미처 예매하지 못했던 자리에는 일본인 남자가 있었다.

처음에는 이모/작은애, 엄마/큰애, 나/아무개 식으로 1층/2층으로 자리를 배정해 예매할 생각이었으나, 이모네 표를 먼저 예매하고 엄마랑 내꺼를 예매하다보니 그 때 잠깐 생각이 잘못 됐는지 결국 큰애 예정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게 된 것이다 ㅋㅋㅋ

하지만 자리 배정은 큰애/작은애, 이모/일본인남자, 엄마/나 이렇게 1층/2층으로 앉게 되었다.

이모는 모르는 사람과 마주보고 앉아 가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애들을 챙길 겸 일단 애들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엄마와 나는 각자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발 뻗어서 편하게 앉기로 협상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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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아보이기 위한 하트 만들기...ㅋㅋㅋㅋㅋㅋ

기차에 타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래서 좀 추리한 모습...

엄마는 어디선가 샀던 냉장고바지...ㅋㅋㅋㅋ

나의 저 꽃무늬 바지는 그 옛날 만나던 외국인 남자친구가 고향에 갔다 사다준 것으로 일명 '터키 할머니 일바지'이다 ㅋㅋㅋㅋㅋㅋ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랑이가 거의 무릎까지 오기 때문에 통기성이 좋고 편하며 날다람쥐같다...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허리가 고무줄인데도 벗겨지기 직전이라 도대체 터키 사람들의 체형은 어느정도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 ㅋㅋㅋㅋㅋㅋ

주황색을 사랑하는 나의 배낭... 제품명은 아이더 듀크55로 가격은 9만원 정도, 이름처럼 최대 55리터가 들어가고 방수덮개는 눈에 잘 띄는 형광노랑색이다. (갑자기 제품 설명)

하지만 나는 이 배낭을 최대로 늘려도 12키로 넘게 넣어본 적이 없다. 사실 12키로도 좀 무거움...

이 배낭과는 재작년 쏭크란을 포함한 4월 남부 일주(꼬 따오, 팡안, 피피, 끄라비)를 함께 한 사이이며 6개월의 태국생활을 마치고 아예 한국으로 들어갈 때 무려 기내에도 들어갔던 관계이다. (아시아나여서 그런지 다행히 실어주었음)

기동성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캐리어와도 비교할 수 없어 '배낭여행 스타일'로 다니는 여행에 항상 이용한다.

갑작스러운 제품 설명을 뒤로 하고 다시 기차 얘기로 돌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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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에는 우리 말고도 두 팀의 한국 가족이 있었는데 다들 '한국인은 없겠지'라고 생각했는지 마주치고는 서로 좀 놀란 눈치였다 ㅋㅋㅋㅋㅋㅋ

피켓팅(피 + 티켓팅-표를 구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음 의미하는 단어)에 성공한 여러분, 탑승을 환영합니다!

중간 통로에 있는 모니터에는 현재 위치, 시간과 다음 정류장, 최종 목적지 도착 시간 등의 정보가 안내되고 있다.

이 때쯤에 차장 정도 되는 승무원아저씨와 각 객차 담당 승무원이 와서 승객들에게 목적지를 확인하고 간다.

아이들을 보더니 귀엽다고 한 마디 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 차장 아버님...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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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반나절이 지나서인지 속이 좀 괜찮다고 하는, 목베개까지 하고 잘 준비하는 큰애의 뒷모습과 우리 객실 담당 승무원.

돈므앙을 지나면 각 호실의 담당 승무원이 와서 침대를 만들어주는데, 잠깐 일어나서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의자 두 개가 어떻게 침대가 되는지의 과정과 빠른 속도에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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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는 2층!

러시아에서 선배들에게 도미토리의 1층을 양보하고 열받아서는 기차에서는 1층을 차지했던 약은 나, 하지만 왜 예매할 때는 또 2층을 선택했는지 참 바보같다 ㅋㅋㅋㅋㅋㅋㅋ

다행인 것은 머리만 대면 자는 스타일에 잠귀도 어둡고 화장실도 안 간다는 것, 나의 둔감함에 위안을 얻는다.

이렇게 누워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

때는 2007년 겨울, 하얼빈에 교환학생을 갔던 나와 친구 두 명은 학기를 마친 기념으로 상하이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중국에도 국내선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총 소요시간은 31시간... 다섯 번이나 자다 깨고 나서야 겨우 도착했던 ㅋㅋㅋㅋㅋ

그 때는 스마트폰도 없었던 시절인데, 어떻게 다녔었는지 ㅋㅋㅋㅋㅋㅋ 

이모는 어느새 엄마와 마주 앉아서 종이접기를 하며 수다 타임을 갖고, 애들은 그 좁은 자리에 둘이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었다.

난 뭔가 얼큰한 게 땡겨서 이모가 가지고 있던 컵라면을 하나 받아 식당칸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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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물 값으로 20밧을 내고 자리를 찾으려고 보니 합석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앉아있는 사람들 중 제일 인상이 좋아보이는 태국사람의 건너편으로 가 앉아도 되냐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눈인사만 주고 받은 후 라면을 먹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훅 올라와 사레가 들려 기침이 나온다.

앞자리의 그는 내가 웃겼는지 고개를 떨궈가며 웃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나도 이 상황이 웃겨 같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라면을 다 먹고 다시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오늘까지의 일을 적을 시간은 이 때 뿐이라는 생각에 다이어리를 꺼내 적는다.

시간이 늦어져도 복도 불이 꺼지지 않아서 안대를 쓰고 잠을 청한다.

이불이 생각보다 따뜻해서 금방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 밝아왔다.

다들 잘 잤는지 얼굴들이 팅팅 부었다 ㅋㅋㅋㅋㅋ 물론 나도...

객차 담당 승무원이 침대를 다시 좌석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동안 자리를 비워준다.

드디어,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거의 열시간 정도의 침대기차 여행이 끝났다.

바람이 썰렁할 것 같아 입던 옷 그대로 일단 짐을 들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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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앙 마 이 !

쌀쌀한 북쪽의 아침...

다행인 것은 큰애가 자고 일어나서인지 속이 괜찮아졌다는 것이고, 엄마도 약을 먹고 어깨가 점점 괜찮아졌다는 것이다.

이제 환자는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 밖으로 나간다.

썽태우 기사들이 사람들을 불러 어디 가냐고 묻고 방향이 맞는 사람들은 기사를 따라 차에 탄다.

우리에게 숙소 이름을 물어본 기사님은 어디인지 안다며 어서 타라고 했고, 가는 길이 맞는 서양남자 한 명도 같이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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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기차역의 시계탑 뒤로 해가 뜬다.

숙소에서 일찍 체크인을 해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잠깐 쉬고 나가서 일찍부터 관광을 하자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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썽태우 안에서 본 바깥 풍경.

해는 거의 다 떠서 하늘에 붉은 빛이 묻었다.

우리와 같이 탔던 서양남자를 내려주고 10분 정도 더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썽태우 아저씨는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어디 갈 일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50밧씩 총 250밧을 내고 숙소 입구로 들어간다.

마침 조식시간이었는지 직원들이 다 나와있었고, 잔여 객실이 없어 체크인을 일찍 하지는 못한다는 안내를 받는다.

로비 쇼파에 앉아 잠깐의 회의 시간을 가진다.














12 Comments
애월지키미 2018.03.28 09:50  
글을 너무 잘 쓰셔서 너무 재밌게 읽었네요^^
딸기맛환타 2018.03.28 17:30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돌이킬수없어요 2018.03.28 10:22  
환타님 일기를 읽는..기분이랄까요?
잘 읽엇어요~
전 여행에서 체해도..바로 약먹고..다음날이면 괜찮던대요..
아이가 약을 잘 챙겨 먹엇는지는 글에 안나오네요?
이제 치앙마이인가요?
저도 기차....좀 탓어요..치앙마이..
새 기차는..금연이고..
오래된 기차는..어찌나 덜컹거리는지. 
1층에 누워있으면 ...잠을 못 자요..
그래서 비행기를...터기 시작햇죠 ㅎㅎ
딸기맛환타 2018.03.28 17:36  
한국에서 가져온 상비약이 있긴 했어요
근데 이모는 약을 먹으면 잘 내려가는 스타일인데 큰애는 약 먹어도 별 효과가 없는 스타일이라 그냥 과일주스 같은 종류로 당만 보충해주고 내려가게 냅둬야 된다 하더라구요 ㅋㅋ
저도 약이 큰 효과가 없는 스타일이라 이해됐구요 ㅋㅋㅋ
태국에서는 처음 타보는 기차라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깨끗하고 편하더라구요! 그래도 비행기 타고 올라가는게 제일 좋아요 ㅋㅋㅋㅋㅋ
서울시민 2018.03.29 17:55  
이 글을 읽으면서 저도 혼자여행은 잘 할 자신이 있는데 식구든 누구든 같이 리드하면서 여행하는 일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딸기맛환타 2018.03.30 18:59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도 많아요 ㅋㅋ 수영이나 하고 과일이나 먹고 그러는데 ‘첫 해외여행’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주고 싶은 나머지...무리를 좀 했죠 ㅋㅋ
길군 2018.03.30 11:41  
이번글을 보니 방콕에서 페낭 기차여행갔던게 떠오르네요 생각보다 편하고 재밌었는데....ㅎㅎ 이번편도 고생 많으셨어요~
딸기맛환타 2018.03.30 19:02  
헉...그 전설의 기차를 타보신 분이 진짜 있었군요! 전 아직 육로로 국경을 넘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네요 ㅋㅋ
북경에서 출발해 하얼빈을 거치는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보고 싶긴했는데, 어쩌다보니 아직 시도를 못 했어요 ㅋㅋ
rony2109 2018.03.30 21:17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혼자 태국의 매력을 느낀 다음 가족들을 데리고 다녀요.
치앙마이편도 기대하겠습니다~
딸기맛환타 2018.04.01 14:54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해보겠습니다...ㅋㅋㅋ
가족들과 하는 여행은 항상 새롭네요 ㅋㅋ
나는나요 2018.04.16 13:33  
생생는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태국에서도 기차에서 침대를 이용할 수 있다니.. 새로운 사실이네요.
진즉 알았으면 한번 시도해 봤을 텐데... 다음 번에 참고해야 되겠어요~~
쪼이짱 2018.04.16 16:04  
우아!!! 태국에서도 기차에서 침대를 이용하다니.. 정말 멋집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참.. 의미 있고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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