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여행하는 법] 5. 냉장고의 행방...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느리게 여행하는 법] 5. 냉장고의 행방...

피비 5 2973
2006년 6월 10일



치앙마이 미소네 도미토리 침대 위에 엎드려 이 글을 쓴다.



다사다난했던 999 버스를 타고 어제 아침 미소네에 도착, 친절하신 두 분을 만났다.
그리고 잤다.



오후 늦게 일어나 미소네에서 만난 언니의 오토바이를 타고
구시가 내의 사원을 하나 구경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후, 우리는 치앙마이 대학교 근처에 있는 체육공원으로 함께 갔다. 
현지인들이 제법 많이 운동 중이었다.
나 역시 한 시간 정도 걷고, 뛰고, 스트레칭 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 동안 언니는 공원 내 나무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미소네로 돌아오니 맞은편 목장에서 국왕 60주년 행사를 진행 중이다.
타이 음악이 시끄럽게 울러 퍼졌고, 불꽃놀이도, 종이 등에 불을 붙여 하늘로 올려 보내기도 했고,
그리고 공짜 음식이 있었다.
주메뉴는 팍치 팍팍 든 굵은 면 수프였는데 한 입 떠먹고 조용히 테이블 위에 놓으며
내 것이 아닌 양 모른 척 했다.



그리고 오늘... 눈을 뜨니 아침은 건너뛰고 바로 오후이다.
어제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그 여파로 얼굴이 계속 화끈거린다.



아침에 태사랑에서 만난 그녀가 내 침대까지 왔다가
내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못 깨우고 그냥 갔다고 한다. 



올해 초, 치앙마이에 콘도를 빌려서 수개월째 혼자 살고 있다는 그녀를
태사랑에서 발견,
잊을 만 하면 한번씩 곧 그리로 간다고 실없는 쪽지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녀의 콘도 더블 침대에 엎드려 이 글을 쓰고 있다!!!



오후에 미소네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는 수개월 동안 나의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치앙마이의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정신없이 많은 얘기들을 쏟아냈다.
내가 이곳에 오기를 학수고대한 반면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여기를 뜨고 싶어 했다.
이국땅에서 혼자 사는 것이 첫 한두 달은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외롭고 모든 게 익숙해져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고 했다.



그녀가 렌트한 이 콘도는 7, 8평쯤 되는 원룸으로
작은 베란다엔 빨래를 널 공간도 있고 욕실도 넉넉하다.
붙박이장과 tv, 침대, 에어컨, 냉장고가 옵션인 이곳은 갓 지어진 깨끗한 건물로
복도며 엘리베이터까지 모두 깔끔하다.



하지만 그녀는 하얀 벽지로 도배된 월 3,500밧의 이 콘도를
정신 병원 같다며 아주 끔찍해했다.
치앙마이 생활 4개월째로 접어드는 그녀의 상태는 심각했다.
오랜 감기로 몸은 아팠고, 따뜻한 모국어에 굶주려 있었다.
무엇보다 최악은 전원이 꺼진 냉장고였다.



“이 냉장고의 전원이 꺼진 순간, 치앙마이에서 언니의 영혼이 꺼졌다고 볼 수 있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이렇게 치앙마이에서 그녀와의 동거가 시작된다.
물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냉장고의 전원을 켜는 것이었다. 



5 Comments
hiscat 2006.07.22 10:58  
  다음 편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0.0
크리미 2006.07.22 12:49  
  너무나 잘보구 있어요,,,,^^
치즈 2006.08.09 16:21  
  ^-^ 더위도 잊었다죠~
피비 2006.08.10 00:08  
  와~ 치즈님~ 지난 글들 슬슬 정리하는 의미에서 지울까 말까 그러고 있는데... 리플이 하나 달렸네요... 와,,, 기분이 뭐랄까... 생일이 한참 지난 어느 날,  축하한다며 초코파이 받은 기분이랄까.^^; 혹시나 초코파이 또 달릴까... 그냥 둬야겠어요...ㅋ 
너만좋아해 2015.09.01 16:26  
글 중간에 나온 미소네는 저도 치앙마이에서 묶었던 곳인데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ㅎㅎ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