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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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13)

쇼너 1 1180
점점 쓰기가 힘들어지는군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리... 그래도...



1999년 3월 4일(수) 방콕 도보여행 코스 2

또다른 방콕의 하루가 밝았다.
내일이면 이 번잡한 카오산과 방콕이 아니라 천국과도 같은 피피의 해변에 있으리라. 하지만 아직도 방콕에서 우리는 볼 거리가 남았다.
자! 다시 출발이다.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짐을 짊어지고 체크아웃을 했다. 오늘 저녁은 버스에서 자게 될 것이다.

오늘의 일정은 방콕 도보여행 코스 2를 도는 것…

첫번째 목적지는 로하쁘라삿. 도보여행의 필수품 900㎖ 물한병 사들고 민주기념탑으로 향했다. 민주기념탑은 아시다시피 카오산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위치에 있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꽤나 조형미가 있는 기념물이었다. 그 4개의 날개가 예전에 박물관에서 보았던 그 뭐더라… 지붕에 다는 장식물… 아무튼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민주기념탑은 가운데 납골당이 있다던데 그 당시는 그걸 알지도 못했고 또 가까이 가기가 좀 어려운 위치에 있어서(우리나라 남대문처럼…) 정말로 흘낏 보고 건널목을 건너가는데 공원 비슷한 곳이 있다.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고 분위기가 괜찮아서 사진이나 한 방 찍고 갈까했는데 왠 현지인이 말을 걸어오면서 친한척 했다.

“야… 이사람 왜이러냐?”
“몰라… 어쩐지 좀 분위기가 이상하다.”

말을 한 두 마디 해보자 별로 좋은 의도로 접근한 것이 아닌것같다는 느낌이…
자꾸 들러붙는걸 과감하게 무시하고 로하쁘라삿으로 가니 비맞은 중처럼 구시렁거리며 사라진다.
지금도 가끔 그사람이 생각나는 건 우리의 판단과는 달리 그 사람이 사기꾼이 아니라 그냥 외국인과 한 번 친해보려는 맘착한 사람이었으면 어떡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사기꾼이라고 느낀 건 그냥 자꾸 치근덕거린다, 인상이 좀 그렇다. 이런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뿐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 사람이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우린 그냥 평범하고 약간 어리버리하고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는 두 여행자였을 뿐이니… 그것도 그 사람 팔자란 생각이 든다.

로하쁘라삿은 좀 못생긴 건물이었다. 전망대가 달린… 요새같이 생겼다. 사람들이 우리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냥 그 한적함이 좋았다. 다른건 특별히 볼 것이 없었으나 올라가는 계단이 무척 좁았다는 것과 옥상에서 바라보는 카오산쪽이 생소하게 느껴졌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다른 곳과 특별히 달라보이는 것도 없는 곳의 그 안쪽에 있는 그 수많은 인간들의 상호작용들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왔다.
높은 곳에 올라 산들부는 바람을 맞으니 방콕의 매캐한 공기도 어디로 가버리고 가을산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가을산 치고는 좀 덥지만…^^).

다시 내려와서 푸카오텅으로 출발.

요술왕자의 도보여행 루트와 가이드북과 지도를 번갈아 들여다보면서 걷는데 길이 점점 좁아지면서 거기에 비례해서 한적해진다. 조그만 도랑같은 운하도 있고 지도상으로는 분명히 맞는데 괜히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제 바이욕 스카이의 후유증인가? 운하옆에 목공소도 있고 철공소도 있고 사람들이 있다. 어제는 밤이었지만 오늘은 낮이다. 소심한 쇼너…
얼마나 걸었을까 가이드북에서 본 그 모습이 보인다. 왜 푸카오텅을 보면 불테리어가 생각나는 것일까? 그 각지면서도 무뚝뚝한 인상이 푸카오텅과 닮은데가 있어서라고 생각되지만 이건 순전히 나의 느낌일 뿐이다.
인공으로 산을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산처럼 크거나 높지는 않고 요새처럼 빙빙 돌아가며 올라가도록 만든 건물이다. 올라가는 도중에는 벽에 종이 쭉 걸려있는데 그 종을 다 치면서 올라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계속 치면서 올라갔다. 종이 많기도 하다. 우리나라 종처럼 밖에서 치는 것이 아니라 종 안에 막대기가 들어서 그걸 흔들면 부딪쳐서 소리가 나는 방식이다. 종소리가 꽤나 시끄러워서 살살 치면서 올라갔다.

다 치고 올라가서 레커에게 물었다.

“무슨 소월 빌었냐?”
“…… 그럼 너는?”
“…… 그냥 잘 살게 해달라고 빌었지 뭐.”

아직도 레커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좋은 소원을 빌었을게다.

태국이 중국이랑 가까워서 그런지 금색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것 같다. 무슨 사원만 가면 금색으로 도배를 해놓았으니 말이다. 금색의 탑이 빛나는 푸카오텅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시원하다. 야트막한 동산도 없는 방콕이라서 푸카오텅정도의 높이로도 멀리까지 잘 보인다. 물론 공해 때문에 좀 뿌옇기는 하지만…
사실 푸카오텅이나 로하쁘라삿에는 관광객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카오산에서도 가깝고 전망이 백만불짜리이니 한 번 들러보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내일이면 끄라비로 떠나기 때문에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 방콕의 전경(일부분이지만)을 눈에 가득 담고 푸카오텅을 내려왔다.

다음은 대리석 사원이라고 불리는 왓 벤짜마보핏이었다.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은 잘 안나는데(죄송^^) 그냥 앞에서 보고말았다. 왜냐고? 입장료가 너무 비싸고 사원은 비전문가가 보기에 그게 그거 같아서 앞에서 대리석으로 된 전경만 실컷 구경하고 위만멕 궁쪽으로 향했다.

넓은 광장에 말을 탄 라마 몇세인가의 동상이 있고 그 뒤에 국회의사당으로 쓰였다는 건물이 있다. 파랗게 녹이슨 동상과 건물의 모습이 태국이 아니라 유럽의 한 지역을 보는듯 했다.(유럽도 못가봤으면서…)

“정치인들은 둥근 지붕을 좋아하나봐…”
“어딜가나 국회는 둥근 지붕이냐?”

“그래도 태국 건물이 좀 멋지다”
“우리나라 국회는 좀 삭막하게 생기지 않았냐”

사실 우리나라 건축물은 좋게말하면 현대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삭막하게 생겼다. 유럽이나 미국등의 여러 건물들을 보면 기둥에 조각도 있고 뭣이냐 좀 무섭게 생긴 악마상 비슷하게 생긴 것도 있고 (가고일이던가?) 전체적으로 운치있게 생겼는데 우리나라 건물들은 그냥 화강암으로 밋밋하게 발라버린게 전부다.
우리나라 고전 건축물은 안 그러니까 그걸 전통이라 부를 수도 없고… 아쉽기만 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는 커브길을 가다보니 가이드북에 나온대로 두싯 동물원이 나온다. 어딜가나 동물원 풍경은 비슷하다. 약간은 유치한듯 그러면서도 뭔가 따뜻한 느낌이 있는 그런 정경이 반갑다.
시간이 있으면 좀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끄라비로 출발하는 버스를 미리 예약을 해 놓았고 위만멕이 더 비중이 있고 보고 싶은 곳인데 그곳에서 시간이 부족할까봐 그냥 지나쳐버렸다.

조금 더 걸어가니 관광버스들이 떼로 서있다. 위만멕 궁이었다.
왕궁들어갈때 썼던 표를 주니 그냥 통과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나왔다. 잘 손질된 잔디들이 푸르고 정원수들이 멋지다. 열대특유의 푸르름이 돋보이는 정원이다. 오늘 돌아본 곳은 모두 여행자들이 없고 우리 둘 뿐이었는데 이 곳은 벽안의 서양인들도 많은 것이 좀 관광지같은 분위기가 났다. 들어가자마자 무료로 보여주는 전통민속공연을 시작한다 흔히 도전!지구탐험대라던지… 풍물기행… 뭐 이런 프로에서 자주 봤던 것 같은 처녀 총각이 나와서 추는 춤이었다. TV에서 많이 봤건만 실제로 보는 것은 또다른 재미를 준다.
그 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기에 충분히 흥미로웠고 끝나고 나서 댄서들과 같이 사진도 찍었다. 레커가 사진을 찍는데 약간 쑥스러워하니까 무척 재미있어한다.

전통공연을 보고 나서 본격적으로 위만멕 궁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의 티크 건축물이라더니 장난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무로 만든 것들을 아주 좋아하는데 나무로 만든 목조 궁전이라니… 멋지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장식으로 만들어 붙인 나무 조각들의 조형미가 아주 뛰어나다. 아니 그런 것 다 필요없다. 그냥 위만멕 궁의 한 구석에 그늘에 앉아 푸른 나무들과 잔디… 어지럽도록 내리쬐는 햇볕과 산들부는 바람, 지나치게 높아 위압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멋대가리 없이 대리석으로만 처바른 네모반듯반듯한 건물도 아니고 나즈막하고 넓은, 밝은 색으로 칠해진 궁이 이루는 조화를 느끼기만 하면 된다. 그 조화가 주는 생기란 참 멋지다.
그곳에서 살고만 싶었다.
역시 조그만 연꽃이 피어있는 수분에는 뿌리마다 구피가 놀고있고… 이제까지 돌아본 방콕의 관광지에서 가장 맘에 들었다.
떠나기가 아쉬워서 앉아있다가 서있다가 서성서성거렸다.
하지만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던가… 어느덧 떠나야 할 시간이 왔고, 우리는 위만멕 궁을 떠났다.

궁밖에는 다시 일상의 분주함이 떠돌고 있었다. 다시 우리도 바쁜 여행객이 되어서 카오산에 가는 버스 번호를 물어보고 버스 정류장을 찾고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경찰과 대학생과 함께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카우싼 방랑푸를 몇번이고 되풀이하고 나서 버스번호를 알아내고, 버스를 타고 카오산에 돌아왔다. 어제 그 식당에서 느어 팟 남만 허이(쇠고기 굴소스 볶음)과 카오찌오 무쌉(오믈렛)과 깽 쯧 룩친(오뎅국)과 밥 3접시로 밥을 먹고(늦은 점심 혹은 이른 저녁) 재빨리 11번 에어컨 버스를 타고 남부터미널로 향했다.
한번 가본 것과 두번 가본 것은 거의 차이가 없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은 것과 한번 가본 것은 천지차이다. 버스표 예약할 때 한 번 가본터라 아무 불안감 없이 버스를 타고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음편에 계속…
1 Comments
레커사랑 1970.01.01 09:00  
어머, 레커 멋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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