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수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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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맥수지탄

네버스탑맘 8 817


 

7.

  새벽이다. 기차엔 일찍 일어난 사람들이 보인다. 모델이라고 해도 믿겨질 만큼 허우대가 훤칠한 한쌍의 남녀다. 말 걸기가 머쓱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온다.

 ​자기네는 스웨덴에서 왔고 한 달 간의 휴가를 얻어서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길게 휴가를 낼 수 있냐고 물으니 스웨덴은 35일의 휴가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했다.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며 그래도 자기넨 아직 결혼을 못했다고,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하여 자기네는 동거를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여행도 이젠 거의 끝자락이라고 하길래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니 아유타야가 최고였다고 추천한다. ‘아유타야를 그냥 지나 친 적이 세 번이다. 방콕에서 농카이로 갈 때,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들어올 때, 그리고 코 따오 갈 때...이제 방콕으로 들어가는 이 기차까지 합하면 네 번째가 될 뻔 했는데, 그들이 우리에게 아유타야를 상기시킨다.

 

 좋은 정보를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우리는 일정을 급히 수정했다. 이번에 아유타야를 놓치면 영영 못 볼 것만 같았다.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아유타야 역에서 내렸다. 반듯한 이마와, 웃는 입매가 시원한 그녀가 차창 안에서 손을 흔든다.

 

 역에 내리자마자 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 기사가 벌떼처럼 달려든다. 종일과 반일, 시간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자전거를 타고 싶었으나 쏟아지는 태양 속에서 페달을 밟을 일이 두려웠고 게다가 짐이 잔뜩 있는 우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반일로 흥정을 한 뒤 툭툭에 짐을 싣고 아유타야로 향했다.

 

 첫 번째 유적은 와불이다. 규모가 엄청나게 큰 불상들에게 천으로 허리부터 발끝까지 노란천으로 덮어주고, 어깨띠를 매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발바닥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은근슬쩍 만져보기도 했다. 각국의 관광객들이 워낙 많은 가운데 수녀님들의 방문행렬도 보였다. 종교를 떠나 문화로 접근하는 태도가 신선했다. 발바닥을 만지고 있는 사이 아이가 안보여 두리번거리니 사원의 중앙탑에 올라있다.

 ​불상과 비교했을 때 점처럼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하필이면 배터리가 충분하지 않다. 생수도 비싸다고 1리터짜리를 사서 마시게 하였더니 아이는 습관처럼 당연한 듯 커다란 물통을 들고 다닌다. 그 모습이 포착되었다. 꼴이 우스웠다. 유럽처럼 몇 천 원하는 물도 아니고 비싸봐야 10바트 15바트 하는 물을 아끼겠다고 모양 빠지게 하는 구두쇠 엄마의 모습이 저절로 반성이 되었다.

 

 조금 더 머물고 싶었으나 툭툭기사가 서두르라고 하는 바람에 다음 유적지로 발을 돌렸다. 투어는 크건 작건 이러한 구속이 성가시다. 다른 사람과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는데 그는 자꾸 자신이 정한 시간에 대도록 우릴 압박한다.

 ​두 번째 간 곳은 식당과 잇닿아 있는 경내 사원이다. 20바트 현금을 나무에 매달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복을 비느라 정신이 없다. 한쪽에선 커다란 선풍기가 터덜터덜 돌아가고 있지만 후끈 달아오른 실내는 후덥지근했다. 사원에 들어갈 때마다 신발을 벗는 것도 귀찮고 구복신앙의 무지함이 싫어서 식당으로 향했다.

 ​마침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보여 반가운 마음에 코드에 꽂아놓고 타이 국수를 시켜먹었다. 식당은 한산했다. 방콕엔 더러 아이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는데 이런 현지식당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툭툭기사가 우리를 또 채근하길래 서둘러 계산을 하고 나섰는데 누가 막 우리를 따라온다. 식당 종업원이다. 아뿔싸. 배터리충전기를 놓고 온 것이다.

 

 배터리를 충전하기엔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런 대로 급할 땐 쓸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다음 유적지로 향했다. 툭툭 기사는 이곳의 입장료가 비싸다고 말한다. 우린 굳이 입장료를 내는 곳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고 다른 곳으로 들어갔지만 어찌어찌하다보니 연결이 되어 그곳에 무료입장을 한 꼴이 되었다.

 

 군청색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들어왔냐고 따지는 통에 쩔쩔매면서 해명을 열심히 하며 나오는데 그 모습을 툭툭기사가 고스란히 보고 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의 눈에 우리 모자가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 마음에 걸렸다. 스웨덴 남녀는 어디에서 아유타야의 매력을 느낀 것일까?

 

 드넓은 왕궁 터, 지금은 무너져 내려버린 축대와 목 잘린 불상들이 주는 황량함과 쓸쓸함 사이에 저항할 수 없는 짓누름이 마치 어셔가의 몰락의 한 장면 같기만 한데.... 과거에 화려하고 번성했던 왕궁이 갈라지고 무너져서 먼지가 된 채 그 자리에 고양이들이 낮잠을 자고, 리라와디 꽃나무만 흰 꽃을 자랑한다. 나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바람이 한 자락 불어온다.

 

'마침내 저녁 어스름이 나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울 때 애수에 잠긴 듯한 어셔가가 멀리서 눈에 들어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눈에 얼핏 보았을 뿐인데도 견뎌내기 어려운 우울함이 내 영혼을 잠식하는 듯 느껴졌다. 나는 그 지역의 단순한 풍경을 둘러보았다. 성벽과 하얗게 죽어버린 나무 둥치와 저항할 수 없는 영혼의 짓누름을, 거기에는 영혼을 침잠시키고 마음을 병들게 하는 구역질나는 마음의 냉정함이 있었다.' - 어셔가의 붕괴, 에드거 앨랜 포우-

추신 : 이제는 키가 나보다 훌쩍 커진 아이 사진 두 장 올립니다!!

지난 여름 라인강과 모젤강이 합류하는 코블렌츠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암스테르담이랍니다!!​

8 Comments
고구마 2017.01.15 09:35  
진짜 큰 물통 들고 다니는 아드님이네요.  물병들기... 은근히 짐스러운데 말이에요. ^^
저희도 경험이 있는데, 현지에서 운전기사 고용했을때 편리하게 이동하는건 아주 특장점인데요, 기사 잘못 만나면 은근히 이래라 저래라하면서 여정에 끼어들때가 있어요.
어떤 기사를 만나는가 하는건 당일 길거리에서 아무나 만나는 거니까 좀 복불복인데...그럴때 짜증이 나더군요.
네버스탑맘 2017.01.15 18:54  
그래도 돌아보면 아유타야에서의 알 수 없는 평화와 안식이 뼛속에 '지이잉'하고 남아있는데 너무 어둡게 써서 지금 어떻게 고칠까 고민하고 있어요~~
돌이킬수없어요 2017.01.15 11:18  
물병 1리터 넘어 보이는대요 ㅎㅎ;;
모 사람마다 좋은곳은 다 다를거에요.. 아유타야는.. 당일로 다녀오신분 보다 거기서 숙박 하신분들이
칭찬을 많이 하더군요.. 일몰의 아름다움이나 사원의 야경~~등
전 조카랑.. 자전거 탓어요.. 1월달이였는대.. 탈만 햇어요..한 4시간 탄것 같네요^^;;
 참~아드님 잘생겻어요~~ ㅎㅎ
네버스탑맘 2017.01.15 18:46  
아이가 자기 얼굴 나온 거 알면 뭐라 하겠지요?ㅎㅎ그래서 멀리서 찍은 사진 두 장 올려요!!
돌이킬수없어요 2017.01.16 09:38  
아드님 사진 잘봤어요^^ 훈남으로 커가는군요~~
우리조카는 훈남도 아닌대.. 본인사진 절대 올리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네이버 블로그 스마일 모자이크로 대부분 얼굴 가렷어요 ㅎㅎ
타이거지 2017.01.16 06:20  
오우~반쪼가리 미소가 어울리는 훈남인데요^^

상상파굅니다.네버스탑맘님.
긴머리에 무릎이 살짝^^들어 난 꽃무늬 방방^^원피스..상큼발랄..통통뉘앙스...
cafelao 2017.01.16 09:23  
분위기 있으신 네버스탑맘님이시군요.
아유타야에서 사나흘 머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일인입니다.
왠지 평화로울거 같은 느낌이 제겐 있답니다.
pororo 2017.05.10 15:53  
이번 여행에 아유타야 일정을 넣을지 고민중이었는데 왠지 올려주신 글과 사진을 보니 꼭 가야되겠다는 확신이 드네요!!! 좋은 정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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