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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네버스탑맘 3 468


 

5.

  짐을 싸서 다음 여행지로 가는 날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일찍 잠이 깬다. 여권을 확인하고 항공권도 다시 살피고 아귀 맞춰 현금을 단속한다. 빨래가 아직 축축하다면 한편으론 드라이기로 말리며, 화장실에 두고 온 것은 없는지, 혹시 장롱에 겉옷을 그냥 놔두진 않았는지 꼼꼼히 챙긴다. 그마저도 끝났다면 이제 떠날 채비는 얼추 마무리된다.

  우리가 묵는 리조트 곁, 해변을 따라 올라가보니 일출 포인트가 있다. 좋은 위치를 차지한 4성급 호텔, 심지어 7성급 반얀 트리 브랜치도 그 길가에 줄지어 있다.

 ​어제도 오색 깃발이 바람에 흩날리는 해변을 걸으며 반라로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여인들을 보았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그 여인들은 아마도 이곳의 술집에서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여인들은 소리 내는 것을 잊은 것처럼, 웬만한 시선에도, 아무 관심 없이 그림처럼 누워만 있다. 무엇을 바라 이곳까지 떠밀려 온 것일까? 덧칠 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나와 달리, 아들아이는 여인들 옆에서 무심하게 모래성을 쌓았다.

 

 백사장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다 보면 우리가 묵는 숙소의 10배 가량 돈을 더 받는 반얀 트리 방갈로가 나온다. 내 주변엔 한국의 팬션 가격에 조금만 더 보태면 풀 빌라에서 귀족처럼 지낼 수 있다는 장점으로 태국여행을 택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45일 정도 짧은 휴가를 보내는데 그 정도는 흔쾌히 지불할 테니 불편하고 비위생적인 것은 사절이라고 못 박는다.

 

 사람마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니 그것을 나무랄 마음은 없다. 다만, 우리의 소비가 섬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서는 작은 숙소에서 머물고 그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돈이 흘러들어간다. 여행사에서 묶어주는 호화호텔에 머물고 그들이 제공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다니면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관광지를 오염시키고 대기업의 배만 불리게 할 뿐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프랑스, 미국, 스웨덴 등 말로만 듣던 나라들의 여행객들을 무수히 만난다. 그들도 불평 없이 하루 만원, 이만원 하는 숙소에서 자연스럽게 묵는다. 나는 종종 내가 그들보다 더 넉넉한가?’ 뼈아프게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일정부분 스스로 포기가 된다.

 

 가난한 장기여행자가 여우의 신포도논리를 펴는 것일 수도 있으나, 어찌되었든 우리 형편엔 그런 7성급 호텔은 어림없어서, 그냥 넘겨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체크아웃을 미리 한 뒤, 한 번 더 가고 싶은 곳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일출도, 일몰도, 아쉽지 않게 보았다. 바다는 쿨럭쿨럭하더니 어제 삼킨 태양을 오늘도 토해놓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는 태양이지만 해돋이, 지금 이 순간은 가슴이 쿵쾅거린다.

 

 우리의 남은 여정에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소망했다.

또 다시 오픈카를 타고 선착장에 내렸다. 이번엔 배 멀미로 고생하지 않길 고대해본다. 미국인의 조언대로 수평선으로 시선을 두고 심호흡을 하면 된다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마음에 품고 승선했다.

  페리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선상에는 상자 속의 상자처럼 에어컨을 쐴 수 있는 VIP룸이, 그 안에는 또 더 쾌적한 Executive실이 있다. 100바트씩의 추가요금이 필요하다. 푼돈으로 사람을 줄 세우고, 더 편한 자리를 유혹하는 자본주의 모습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다.

 

 아이가 페리의 아래 위를 올라 다니며 이곳저곳 구경을 다닐 때, 나는 그동안 머물렀던 섬에서의 삼일을 떠올려본다. ‘코 따오다녀오기 전의 나다녀온 나는 어느 만큼 같고, 또 어느 만큼 다를까? 웬만한 풍경에는 놀라지도 않는 내게, 과연 이 광경을 보고도 놀라지 않겠느냐며 들이민 보트 트립, 자전거를 타고 섬 곳곳을 쏘다니며 동네를 훤히 꿰던 시간들, 석양을 등지고 오색물고기들과 벗 삼아 무작정 걷던 바다, 이방인인 우리에게 보여주던 섬사람들의 호의. 후식으로 먹던 망고, 겅중겅중 뛰며 따라다니던 누렁이, 하물며 참새까지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고 빛나게 해준 것이 분명하다.

 

 삼일이란 물리적 시간을 헤아려보는 건 무의미하다. 홍길동이 율도국에서 이상국을 세우듯,

 우리도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 무릉도원을 세우고 돌아왔다. 이 추억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언젠가는 부스스 떨어져 나와 우리에게 용기를 줄 것이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나를 소 닭 보듯 할 때조차 멀미하는 자신의 등을 두드려줬던 나를 기억해 내주며 조금은 덜 고약하게 대해줄 수도 있다. 아이와 나 사이엔 따오 섬이 있다. 우리가 서로를 미워할 때 언제나 마음으로 이 섬에 오리라.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 - )

 

3 Comments
타이거지 2017.01.14 06:19  
헉!
방금 옆집에서 놀다가..
우리 패밀리..나를 소 닭보듯 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서로를 미워할때..홀로 찾은 따오도 좋았습니다.
함께한 추억을 떠올릴수 있어서...
시간이 지나..서로를 어느정도 이해하게 됬을때..함께..다시 찾은 따오.
돈이 많이 들어가더라구요 ㅜㅜ.
돌이킬수없어요 2017.01.14 11:15  
모 돈을 쓰는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니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호텔은 절대 안가지만.. 요~
저도 초5 짜리 조카 데리고 태국여행 갓엇는대.. 공감 가는부분이 많아요~
네버스탑맘 2017.01.14 15:28  
자식도 데리고 가기 힘든데 조카를~~애들 눈높이 맞춰 여행을 만들어야하는 어려움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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