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짜나부리.. "친절한 로우씨"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깐짜나부리.. "친절한 로우씨"

날아가자~ 2 801


여행을 하는 중에도 슬럼프가 찾아오나보다. 우리의 인생을 희노애락, 길흉화복등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여행이라고 마냥 즐겁고 재밌는 추억만 있을 수는 없겠지. 더구나 홀로 떠나는 여행은 누군가와의 공감의 부재로 인해 아주 작은 일로도 쉽게 마음을 닫게 된다.

태국을 여행할 때, 내 마음을 닫게 한 주된 원인은 택시와 뚝뚝등의 바가지 요금 이었다. 물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바가지요금이 존재하고 오히려 이것이 없다면 여행하는 재미를 덜 하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경우 그저 여행의 재미를 가중시키는 양념과도 같은 요소라고 하기에는 반복되는 바가지요금이 여행을 하는 내 마음을 점점 옭아매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태국사람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를 믿을 수 없음이 곧 내 마음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나의 마지막 여정은 깐짜나부리라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2차대전 당시 무리한 철도 공사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죽음의 철도’와 ‘콰이강의 다리’가 많은 사람을 깐짜나부리로 오게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방콕과 같은 대도시에서 느낄 수 없었던 무언가 평온함이 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여행자에게 재충전 할 수 있는 곳으로 그만이다 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엄청나게 싼 물가는 한번 깐짜나부리에 발붙힌 여행자를 쉽게 떠나도록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평온함이 나의 상한 마음을 치유해주지는 못했다.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 다시 방콕으로 돌아가기로 예정한날. 오전에 3등 열차를 타고 남똑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남똑에서 시원한 폭포를 보고 돌아오는데 창 밖에서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태국은 소나기가 자주내리니 금방 그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바람까지 동반하며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깐짜나부리 역에는 많은 오토바이 택시가 마중 나와 있었다. 내가 태국 여행 중 유일하게 이용하지 않았던 교통수단이기도 한 오토바이 택시. 순간 고민을 했다.
‘비는 많이 오는데 .. 게다가 너무 춥고 기차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방법은 걸어가거나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뿐. 모르겠다!! 이제껏 그만큼 당했으면 됐지 까짓 꺼 이따위 비..’
이렇게 다짐하며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한 오토바이택시가 내 앞에서며 “Where are you going?"하며 묻는다.
나는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오토바이를 탔다. 비까지는 견디겠는데 추위 앞에서는 나의 씩씩함이 무색해질 뿐이었다.

숙소로 향하는 짧은 시간동안 내 머릿속은 택시비 생각 뿐 이었다. ‘내가 먼저 제시해? 아니면 택시기사가 제시한 가격에서 반을 깎아?’ 이런저런 고심 끝에 훌륭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차피 나는 지금 방콕으로 가기위해서 버스터미널에 가야하고 터미널에 가려면 어떠한 교통수단이든 이용해야 하는데 이왕 한번 이용한 이 택시를 숙소 앞에서 잠시 기다리게 한 다음 터미널까지 가면 두 번 따로 이용하는 것보다 비용 면에서 훨씬 이득이겠지?
스스로의 멋진 생각에 속으로 환호를 외치며 숙소에 도착한 기사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기다리는 기사에게 미안한 마음에 비에 쫄딱 맞은 내 몸을 닦을 여유도 없이 짐을 꾸렸다.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는 다행히 비가 조금씩 멈추기 시작했다.

이 친절해 보이는 택시기사는 가는 동안 나의 이름과 나이, 어디서 왔냐.. 등등 전형적인 관광객용 질문을 던졌지만 내 머릿속은 오로지 한 생각 택시비 뿐이었다.

드디어 도착.
결정의 순간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얼마에요?”
그런데 택시기사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곧 손을 내젓는다. “No no- We are freinds!"
응? 뭐라구? 내손은 이미 지갑을 열고 있는데 no라니.

그 택시기사는 지나가던 주민이었고 비를 맞고 걸어가는 내가 안되 보여 도움을 주었던 것인데, 불신으로 가려진 내 마음이 그의 순수한 호의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로우라고 영어식 이름으로 소개했다.

로우 ! 그거 아나요? 당신의 작은 친절이 여행 동안 지쳤던 나의 마음을 다 녹여주었고 작은 행복을 선물해 주었다는 것을... 마지막 여정을 따뜻하게 장식할 수 있었던 나는 정말 행복한 여행자였다.


2 Comments
한량2 2006.03.13 12:50  
  정말 좋은 경험하셨네요...
작년 터어키여행에서 집사람이 그러더군요. '왜 현지사람들을 경계하고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냐구요'
올웨즈 2006.03.17 12:05  
  괜스레 부럽네요 ....^^: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