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 도시 이야기--스펙터클한 끄룽텝으로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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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 도시 이야기--스펙터클한 끄룽텝으로의 귀향

Cal 6 723

이제 나컨빠톰에 온 지 18시간이 지났고, 이 도시를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전의 후기 (4)-4와 이어집니다.

 

저는 리셉셔니스트와 작별을 하고, 수트케이스를 끌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시각은 아침 여섯 시 경이었습니다.

전날 나컨빠톰 역에서 창구 직원과 상담을 할 때에는, 이 도시를 늦어도 여덟 시 이후에 떠날 것처럼 말해 놓고는

왜 이렇게 일찍 방콕으로 돌아가려고 결심을 했느냐 하면요,

8시까지 숙소에 있어 봤자 어디 문 연 데도 없고, 제가 이 도시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아침에 일찍 일어난 김에 일찍 정리하고 방콕으로 떠나 보자, 어제의 열차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는데

200바트 이상씩이나 더 지불하고서 더 비싼 기차를 타는 것은 별 의미도 없으니까,

게다가 이미 이 도시에 있었던 18시간이 나에게는 과분하도록 좋았고,

다음에 여기에 또 오기 전까지는 이 추억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전날 나누었던 이 도시의 교통 수단에 대한 대화는 결론이 [모떠싸이]로 끝나버리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일단 길을 나서면 뭐라도 있지 않을까,

정말로 운이 좋으면 새벽에 방콕에서 와서 떠돌고 있는 택시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제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제게 가르쳐 준 것은, 언제든 항상 첫 발을 내딛지 않는 게 문제이지

일단 발을 떼면 어떤 수라도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이었으니까요.

숙소 건물을 지키시는 경비 아저씨가, 제가 떠나는 것을 보더니 저를 급히 따라오셨습니다.

 

-지금 어디로 가요?

-사남찬 기차역이요.

-모떠싸이 타고 가야 하겠네.

 

마치 나컨빠톰 전체가 입을 맞추어 놓은 것처럼, 이 아저씨께서도 결론은 모떠싸이이시군요!

아무래도 모떠싸이는 나컨빠톰 시민들의 친숙한 벗이자 발로서 단단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가 봅니다.

속으로는 [수트케이스를 들고 오토바이를 어떻게 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저씨의 말씀에 아무 대꾸도 못 한 이유는

아저씨께서 갑자기 너무나도 열심히 사면팔방으로 뛰어다니시면서 랍짱을 섭외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신의 일도 아닌데 저렇게 노력해 주시는 분 앞에서 제가 뭐라고

[저는 그런 거 못 타요]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그냥 쥐죽은 듯이 아저씨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어쩌면 이번의 경험으로 인해 저의 경험의 폭이 더 넓어질 수도 있지 않겠어요?

 

1분도 안 되어서, 저는 오토바이의 쇠(경상도식 발음으로 하면 '쎄') 부분에 걸터앉고

제 수트케이스님은 편안하게 가죽 안장 부분에 모셔앉혀 드리고

랍짱 기사 아저씨와 합작으로 인간 햄버거를 만든 상태로 사남찬 궁전 역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짐이 정말 크신 분이 오토바이를 피치 못한 사정으로 타셔야 한다면

경험상 그 거리가 절대 1킬로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짐이야 안락할지 몰라도, 저는 아주 뼈가 아파서 죽습니다.

 

하여간 저와 제 수트케이스는 무사히 사남찬 역에 내렸습니다.

랍짱 기사님은, 역으로 올라가는 그 몇 개 층계를 제 짐이 무거워 못 올라갈까 봐서인지

한참을 지켜보시다, 제가 완전히 층계를 다 올라가는 걸 보더니 떠나시더군요.

참, 이 도시의 스윗함은 끝까지 여행자의 여행을 안전하고 풍요롭게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금세 싼 가격에 역에 도착하다니,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았......응?

정말 여기가 역이 맞긴 하나요?

그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그 역에는 표를 파는 창구도 없고

정말로 역 이름이 적힌 푯말 하나만(그것도 태국어로만) 딱 서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저의 이전 여행기에 이 부분을 기억하시나요?

 

[........차장님과 부차장님은 제가 다음 날 아침까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일을 하나 하셨습니다.

제 표를 보여달라고 하고 행선지를 확인하시더니, 차장님이 부차장님께 말씀하시더군요. 

"여기 도착하기 전에, 이분이 꼭 여기에서 내리는지 확인 좀 부탁해." 

듣는 저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기차에 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가 스스로 내릴 수도 있지 않나요?]

 

 

이분들의 행동이 이제서야 이해가 되던 것이

이 역이 너무 작은 역이라서, 내리는 사람이나 타는 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에

특별히 챙기지 않으면 이 역에서 내리는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렇다면 방콕 가는 표는 어디에서 어떻게 사고, 아니, 그 이전에 무엇보다도

여기에 기차가 서기는 하는 걸까요?

유감스럽게도 저를 그렇게 당황하게 한 사남찬 역의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이 이후의 일들이 불과 몇 분 이내로 너무나도 급박하게 흘러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그 시간의 그 역에는 저 혼자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곳이 그래도 역이라고, 벤치가 하나 있기는 했는데

그 벤치에는 [안개마을] 영화의 첫 씬에서 깨철이 안성기씨가 등장하실 때처럼

오징어처럼 늘어져 앉아 있는 한 동네 청년분이 계셨습니다.

저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그분과의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여기가 기차역이 맞나요?

-(여전히 늘어져 앉아 있는 채로, 너무나 평화로운 미소를 띠면서) 맞지요.

-그러면 여기에 기차는 언제 오나요?

-한 7시쯤?

(속으로 '어휴, 내가 검색해 본 시간표하고는 너무 다르잖아!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너무한데'라고 생각하며)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 때였습니다.

(나컨빠톰의 기행문은 '그런데 그 때였습니다'라는 표현이 너무나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의도적인 수사가 아니라, 정말로 상황이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참 신기한 도시, 아니, 신기한 여행이었죠)

저 멀리에서 기차 한 대가 빼액 기적을 울리면서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징어 덕장에 널어 놓은 오징어 같던 그 동네 청년은 갑자기 활기를 띠더니 저를 향해 외치더군요.

 

-왔다!  저걸 타요!

-(당황해서) 저게 끄룽텝에 가나요?

-맞아요, 저걸 타요!

 

저도 저걸 타고 싶긴 한데, 무슨 수로 탄단 말입니까?

기차가 버스도 아니고........

혹시나 해서, 손을 들고 [저는 이 기차에 올라타고 싶어요, 기장님!]이라는 수줍은 의사 표시는 해 봤습니다.

[자, 이렇게 손을 흔들었지만, 그렇더라도 열차가 여기에서 선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열차는 제 앞에 정차를 하더군요.

아직도 저는 의문입니다.

제가 손을 흔들어서 이 기차가 선 건지, 아니면 원래 그 기차는 여기에서 서는 기차인지가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기차는 제가 미리 검색해 본 사남찬 역의 운행시간표에는 없는 기차라는 겁니다.

몇 초 사이로 갑자기 생활의 활력을 찾은 동네 청년은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저를 보고 빨리 기차를 타라고 난리이고

저는 열차의 좁은 문에 수트케이스를 밀어 넣고 올라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낭패를 경험하고 있는데

갑자기 안쪽에서 어떤 아주머니께서 손을 쑥 내미시더니 수트케이스를 한 방에 기차에 실어 주시더군요.

진짜 감사한 손길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 카메라에 사남찬 역의 사진과

제가 올라탄 이 기차의 내부 사진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너무나도 아쉽게 생각합니다.

고마운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올라탄 열차 안에서는 제가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각종 행상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그 날의 장사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저의 짐을 올려주셨던 고마운 분 역시 행상 아주머니로서

태국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쪽에 바구니가 달린 나무 기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사실은 열심히 일하시는 그분들께 실례가 될까 봐서 사진을 못 찍은 것도 있었습니다)

상황은 저와 전혀 비슷하지 않지만, 액션 영화에서 인디애나 존스 또는 어떤 탐험가가

우산 손잡이 갈고리로, 달리는 열차를 잡아서 간신히 올라탔는데

그 안에는 한창 공연 준비중인 서커스 단원들이 타고 있었다, 뭐 이런 재미있는 장면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분들은 갑자기 그 칸에 탄 저를 보고 놀랐고, 저는 그분들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이 기차는 끄룽텝에 가나요?

-아니, 아니, 안 가!

 

그분들은 저마다 입을 열어 제게 길을 가르쳐 주려고 하셨고

저는 그분들의 정보를 종합해서

[다음 역인 나컨빠톰 역에서 내려서, 끄룽텝행 열차표를 사고 조금 기다리면 끄룽텝에 갈 수 있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와 그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딱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나컨빠톰 역에 우루루 내렸습니다.

그분들도 그 날 나컨빠톰에서 장사를 시작하시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행상 아주머니들은 모두 다 제게 한 마디씩

[여기서 기다리다 끄룽텝으로 가요]라는 말씀을 전하시고 각자 제 갈 길로 떠나시더군요.

혹시라도 제가 열차를 못 탈까 봐서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저도 그분들께 일일이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야말로 끝까지 의외성과 재미를 선사해 주는 착한 도시, 나컨빠톰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전날 조언받은 대로 17밧짜리 기차를 잘 타고 방콕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가지만 더 첨언하자면, 이제부터는 제 목적지가 방콕 시내가 아니라면

방쓰 역에서 내려서 MRT를 갈아타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것을 이번 여행으로 배우기도 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방콕의 새로 생긴 퍼플 라인 MRT 승차 경험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쓰겠습니다.

(이번 편으로 나컨빠톰 여행기는 끝입니다) 

 

 

 

6 Comments
마하수카 2016.08.28 02:10  
꼭두새벽에 갑자기 툭 올라온 Cal 님의 연작 여행기 마지막편을 때마침 읽고, 아마 첫 댓글을 다는 영광을 보네요!

여러 글가락이 재밌게 섞였다가 마침내 귀로로 합류하는 멋진 글솜씨를 탄복하며 읽었습니다. 여행기를 끝까지 읽게하여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여행 많이 하시고, 재미있는 여행기 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앞 여러 여행기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아울러 객지에서도 내내 건강하시기를.. 사두_()_
Cal 2016.08.28 02:35  
고맙습니다, 마하수카님!  언제나 태국 여행을 끝내면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여행이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게 되는데, 이번 여름의 여행 역시 그랬답니다.  몇 가지 이야기만 더 하고 이번 여름 여행기를 완전히 마치려고 해요.  마하수카님도 늘 즐겁고 풍요로운 여행 하시기를 바래요!
아이시희야 2016.08.31 22:46  
사람냄새가 훈훈한 여행기네요~
잘 보고 있습니다. ^^
Cal 2016.09.01 10:57  
역시, 제가 아닌 그분들의 빼어난 인격 덕에.......
삼천포 2016.09.02 19:07  
안개마을과 인디아나 존스는 제가
좋아하는 영환데 그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Cal님의 여행이 더 실감나게
상상이 되네요.
별 일 없는 듯 별 일 있는 참 즐거운
여행을 하셨네요.
Cal 2016.09.03 00:47  
글을 맛있게 읽어 주시는 분은, 글 중에 나오는 비유로 느낌을 유추해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데, 삼천포님 스스로가 글을 정말 잘 쓰셔서 그런지 느낌을 그렇게 잘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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