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도시 이야기,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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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도시 이야기, 두번째

Cal 8 881

[그 도시에 가기 이틀 전, 한 작은 시골의 기차역 창구]

 

저:(태국어로) 안녕하셔요!  내일 ***** 궁전, 10시 15분, 한 사람 표 주셔요.

 

창구 직원: (당연히 태국어로)어디라고요?  아, *** 궁전 말이네~  내일 표라면 이렇게 미리 살 필요 없어요.  내일 와도 되어요.

 

저: 내일도 의자(티낭)가 있어요?

 

창구 직원: (크게 웃으면서) 있어요, 있어!

 

저: 고맙습니다(하고 돌아선다.   어쩐지 큰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  아, 이 시골 기차역은 정말로 아름답구나!   따뜻한 햇살, 아름다운 화단, 한적한 분위기, 편안히 쉬고 있는 개...... 정말로 아름답....... 

그러다가 퍼뜩 무언가를 깨닫고, 다시 창구를 향해 돌아선다)

 

저: (착각했다는 뜻으로 내 머리를 가리키면서) 내일이 아니라, 모레였어요!  모레도 의자가 있나요?

 

창구 직원:(여전히 폭소) 있어요~

 

 

 

 

[그 도시에 도착하기 두 시간 전, 똑같은 시골 기차역 창구.  10:00 A.M.]

 

저(이 기차역에 이틀 전 처음 와 보았을 때에는 이 지역의 답사 삼아 어찌어찌 숙소에서 버스로 왔지만, 오늘처럼 짐을 다 들고는 할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길을 건넌 바로 그 직후, 내 앞에 텅텅 빈 에어컨 버스가 딱 서는 바람에 엉겁결에 올라탔고, 안내양의 [사타니롯파이?]라는 함박웃음과 함께 불과 10밧 들여서 기차역에 도착했으므로 매우 기분이 뿌듯한 상태)

:(태국어로) 안녕하셔요!   ***** 궁전, 10시 15분, 한 사람 표 주셔요.

 

창구 직원(당신, 이틀 전 바로 그 사람 아냐? 하는 미소와 함께): 일단 여권 주시고요, 14밧입니다.

**참고로, 역이 시골일수록 기차표 사는 데에 여권을 요구하더군요.  돌아올 때에는 좀 더 큰 역에서 출발했는데, 여권 보자는 이야기를 전혀 하지를 않았어요**

 

저(지갑 안에서 백 밧짜리 두세 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의외로 싼 가격에 뒤통수를 맞고): 14밧요?  (지나치게 싼 가격에 전혀 놀라지 않은 듯,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여기 있어요.  고맙습니다!

 

(표를 받고도 생각한다.  이렇게 싼 표가 대체 어떻게 가능하지?  무슨 기차표가, 방콕에서 이 도시에 올 때의 에어컨 버스 가격보다도 더 싸지?  엄청나게 싼 가격에 하여튼 기분이 좋다)

 

 

 

[그 도시에 도착하기 한 시간 반 전, 기차 안, 10:30 A.M.]

 

그 날 아침에, 저는 방콕 근교의 한 소도시에서, 더 교외를 향해서 가는 다른 도시행 기차를 탔는데요,

이 기차는 에어컨 없는 팬룸 기차이고, 지정 좌석도 없이 그냥 마음대로 앉는 기차입니다.

왜 창구 직원분께서 [모레에도 분명히 의자가 있다!]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차를 타 보니 저절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설국열차 꼬리칸처럼, 사람이 탈 게 못 되는 그런 기차도 아니어요.

이게 중요한 서민의 교통 수단이기 때문에 가격을 오랫동안 동결하고 올리지 않았구나, 하는 이해가 되는 기차랄까요?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14밧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감사하기 짝이 없는 기차입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약간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가 좀 큰 수트케이스를 가지고 있다 보니

그런 수트케이스를 가지고 좌석에 앉으면 복도를 막아서 통행에 방해가 될까 봐

저는 그냥 문 쪽에 서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같은 칸에 계신 분들이 막 안절부절하시면서

쟤를 어떻게 자리에 좀 앉혀야 할 텐데 하면서 신경을 쓰기 시작하신 것이었습니다.

서로 여기 앉아라, 저기 앉아라 하시더니, 제가 짐이 커서 다른 분들이 불편해져 안 된다고 사양하자

결국에는 차장과 부차장까지 불러오셔서, 쟤 좀 어떻게 해 보라고 하시더군요.

 

그 열차 안에는 문쪽에 가까운 곳에, 우리나라 지하철 식으로 창 쪽에 길게 붙어 있는 의자가 몇 개 있었는데

거기라면 큰 짐이라도 통행에 방해 없이 앉을 수 있긴 할 것 같았습니다.

다른 곳은 다들 승객이 앉아 계셨고, 한 자리는 어떤 분이 길게 누워서 숙면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만류했는데, 차장께서 그분을 두드려 깨우시더니 일으키시곤

저보고 그분이 몇 초 전까지 누워 있던 그 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는 겁니다-_-;;.

너무나 민망하고 죄송하긴 했지만, 제가 앉아야 다른 분들이 안심하실 것 같아서

고맙다고 하곤, 조금 전까지 누군가의 머리가 위치해 있던 곳에 그냥 주저앉았습니다.

 

(지난 회에 이은, 나 자신에게 주는  뼈저린 교훈: 방콕 교외에서 기차를 탈 때에는 큰 짐 금지!

정말 이제는 수트케이스는 방콕에 두고, 작은 괴나리봇짐만 싸서 기차를 탈 겁니다)

 

 

그 바로 직후에, 좀 재미있는 일이 또 있었습니다.

차장님과 부차장님은 제가 다음 날 아침까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일을 하나 하셨습니다.

제 표를 보여달라고 하고 행선지를 확인하시더니, 차장님이 부차장님께 말씀하시더군요.

 

[여기 도착하기 전에, 이분이 꼭 여기에서 내리는지 확인 좀 부탁해]

 

듣는 저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기차에 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가 스스로 내릴 수도 있지 않나요?

왜 이렇게 특별히 주의를 주는지 알 수 없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냥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가?  하고 이해해 버렸습니다. 

정말 그것은 다음 날 아침에 그 역에 가 보기 전까지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이날은 하필이면 변덕이 발동해서, 제가 표를 산 역의 한 역 전에서 그냥 내려버렸거든요. 

8 Comments
클래식s 2016.08.26 15:46  









Cal 2016.08.26 17:17  
오, 이 사진에는 살라야역이 상당히 규모 있어 보이게 나왔네요!  그야말로 시골의 작은 역인데......  지도까지 정성껏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남찬 궁전의 사진도, 제가 찍어 온 것보다 이 사진이 더 낫네요.
마하수카 2016.08.27 23:29  
추리소설같은 글에 빠져들고 있음~~ㅎ
Cal 2016.08.28 02:28  
처음에 의도했던 것이, 이 도시가 어디인지 맞혀 주시는 분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는데, 제 의도대로 되어서 기쁩니다.
아이시희야 2016.08.31 13:19  
소설같이 빠져드는 여행기네요~ ㅎㅎ
훈훈한 정도 느낄수 있는...
Cal 2016.08.31 14:21  
아이고, 고맙습니다!  태국이니까 이런 여행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삼천포 2016.09.02 17:54  
괴나리봇짐 ㅋㅋㅋ
혼자 낮술 마시다가 빵빵 터지네요.
Cal님 여행기보다 더 맛깔스러운
술안주는 없는 듯 해요.
Cal 2016.09.03 00:43  
정말로 보자기에 짐을 싸는 것도, 여행을 간편하게 할 것 같아요!  단거리 기차여행에, 이제 수트케이스는 안 가지고 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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