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 가족의 어메이징 타일랜드(2)
- 매끌렁 시장 -
2016년 8월 7일(일). 6시 40분으로 예정된 일일투어 픽업 때문에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자료에는 7시부터 제공된다고 나왔던 조식은 실제로 6시반부터 먹을 수 있었다. 별 세 개짜리 호텔에서 조식에 무슨 큰 기대를 걸겠는가마는 그래도 볶음밥이 있어서 좋았다. 카우팟까이(게살볶음밥).
홍익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일일투어의 행선지는 매끌렁 시장(Maeklong Market). 카오산에서는 차를 타고 1시간 40분 동안 가야하는 거리이다. 막상 와 보면 태국의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재래시장이다. 다만 특별한 것은 시장 가운데로 철길이 지나고, 저 철길의 위로는 실제로 기차가 다닌다는 점이다.
시간표에 따르면 기차는 하루에 5번 다니며, 지금은 잠시 후 8시 30분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시장에는 과일, 채소, 어물, 고기 등 없는 것이 없어보였다. 이건 개구리.
아이스께끼 장수를 보았다. 냉장고도 없이 얼음을 얼릴 수 있다는 것을 저렇게 어여쁜 아가씨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저 간단한 기계의 원리는 얼음에 소금을 넣으면 녹는점이 내려간다는 점이다. 0도에서 녹아야할 얼음이 영하의 기온에서 녹으니 알루미늄 통 안에 부은 설탕물이 대신 어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놀고 있으면 안되고, 이따금씩 통을 살짝 살짝 흔들어줘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얼음물이 얼어붙는다. 저렇게 만들어진 자칭 아이스크림의 가격은 싼 것이 5B, 비싼 것은 10B이다.
이 시장의 하이라이트는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예정된 시간이 되면 상인들은 바삐 물건을 치우고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는 관광객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다. 아직도 바닥에 놓인 좌판들은 기차의 높이를 감안할 때 저렇게 놓아두어도 괜찮다.
드디어 기차 진입.
기차가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 담넌싸두악 수상시장 -
매끌렁시장에서 30분 정도 차로 이동하면 담넌싸두악 수상시장(Dumnoen Saduak Floating Market)에 이른다. 방콕의 곳곳에 놓인 수로를 따라 즐비하던 수상시장들이 방콕이 점차로 확장되면서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아직도 이곳에서는 현지인들에 의해 이른 아침부터 활발하게 물건이 거래된다고 한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도착해 보니 현지인들의 상거래는 이미 끝났고, 시장에 넘쳐나는 것은 관광객들뿐이다.
이곳을 구경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공이 젓는 배를 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터보트를 타고 도는 것이다. 전자는 150B의 요금을 추가로 내야 하고, 후자는 투어비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모터보트를 타려면 1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상점을 오가며 쇼핑을 즐길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것은 이곳을 구경하고 난 이후에 생각할 일이다. 따라서 여행사에서는 사공이 젓는 배의 탑승을 추천하지 않는데, 내가 볼 때 이 둘은 서로 성격이 다른 것이다.
사람을 여섯씩 태우고 혼자 노를 젓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매우 힘들 것 같다. 사공들 중에는 여성들도 많았는데,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경외감을 느꼈다.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인생살이는 쉽지 않다. 때로는 부부가 합심해서 하나는 노를 젓고, 다른 하나는 상점을 운영하면서 산다. 부창부수(夫唱婦隨)는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사공이 자신의 상점이라고 하면서 승객들을 데려가면 빈손으로 나오기가 솔직히 힘들다.
나는 이곳에서 쌀국수를 먹었다. 이는 오래전부터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참 맛있어 보였거든.
모터보트는 사공이 젓는 배보다 훨씬 더 넒은 영역을 운행한다. 이곳이 자연하천이 아니라 인공수로라는 점에서, 수상시장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건설된 인간의 대역사임을 느낄 수 있다.
- 람부뜨리 로드 -
일일투어를 마치고 카오산로드로 돌아온 시각은 오후 1시. 기사는 우리들을 짜끄라퐁 거리(Thanon Chakraphong)의 버거킹 앞에서 내려줬다. 점심식사는 프리마베라(Primavera)에서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길따라 똑바로 내려가다가 파쑤멘 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빠른데, 나는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유는 람부뜨리 거리(Soi Rambutri)를 보고 싶었기 때문.
이제는 여행자들보다 현지인들이 더 많아 뵈는,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라기보다는 방콕의 웬만한 곳보다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게다가 밤이면 시끄러워서 귀청이 떨어지는 카오산로드 보다는 옛날에는 사원 뒷길로 불리던 이 길이 나는 좋다.
프리마베라는 카오산 일대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탈리아 정통 레스토랑이다. 주인은 호주인과 태국인 커플. 사실 나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쿤댕 꾸어이짭 유안>으로 향했을텐데, 그렇게 하면 결정적으로 아이들이 식사하기 힘들어진다.
- 왕궁 -
내 입맛에는 그닥 맛있지도 않으면서 값만 비싼 식사였지만, 다들 맛있다고 난리들이다. 아마 배가 고팠기 때문인 듯... 이번에는 방콕의 명물, 뚝뚝을 탈 차례이다. 행선지는 왕궁.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여기서 왕궁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뚝뚝 기사들이 부르는 가격은 보통 200B. 저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솔직히 말이 하기가 싫어지고, 대신 욕이 하고 싶어진다. 택시로 예를 든다면 공항에 가지 않고 방콕 시내에서만 요금이 200B가 나오려면 도대체 어디까지 얼마를 달려야 할까?
뚝뚝은 차례로 모두 4대를 잡았는데, 요금은 60B 두 대와 80B 두 대였다.
싸남루앙 광장의 비둘기떼. 모이 아주머니는 어디에 계시는 걸까?
나프란 거리(Thanon Na Phran)에 있는 <승리의 문> 앞에는 사람들로 장사진이 쳐져 있었다. 특히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중국인들이 없는 여행지는 없을 것 같다.
일행이 많고 어린 아이들까지 있어서 무엇을 해도 진행이 느린데, 나의 일행 중에는 복장 위반자까지 섞여 있었다. 왕궁에 가는 날은 반바지, 민소매 차림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했어도 듣지를 않는 거다. 더운데 긴바지 입고 하루종일 다닐게 아니라 잠깐 천만 빌리면 된다는 논리인데, 누가 그걸 모르나? 문제는 천을 빌리는데 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거다. 아직 표는 끊지도 않았는데 천을 빌리러 간 사람들은 함흥차사(咸興差使)다. 복장 위반자가 없는 나의 네 식구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가 들고 있는 것은 디카봉에 손수건을 묶어서 만든 인솔봉이다.
천을 빌리러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자 이번에는 스콜이 쏟아졌다. 비가 쏟아지니 사람들은 모두 천막 등으로 몸을 피하기에 바쁘다. 관광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나는 지난 2011년에 네식구 데리고 이미 왕궁을 구경했고, 그동안 통산 3번이나 이곳에 왔던 터라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 다만 시간만 흐르고 있어서 500B이나 주고 끊을 왕궁표로 기껏해야 왕궁만 달랑, 그나마도 수박 겉핧기로 보고 끝나겠구나 생각하니 그저 돈이 아까울 뿐이다.
비를 피하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일행 중에 누군가가 왕궁 포기하고 그냥 호텔로 돌아가자는 소리를 한다. 바로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의 상황. 유모차 타는 두 명을 빼도 500B씩 12명이면 6천B이다. 돈은 이렇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닐 거다.
아마 이 세상의 어느 패키지도 이렇게 관광을 하진 않을 것 같다. 표도 안 끊고 그냥 멀리서 사진이나 몇 방 찍고 돌아섰다. 그래도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왓 프라깨우의 탑 3형제도 보인다. 이들은 앞에서부터 각각 부처님의 가슴뼈가 안치되어 있다는 프라 씨 랏따나 쩨디(Phra Sri Rattana Chedi), 왕실 도서관이었던 프라 몬돕(Phra Mondop), 맨 뒤의 것은 왕실 신전인 쁘라쌋 프라 텝 비돈(Prasat Phra Thep Bidon)이다.
- 전승기념탑 -
비맞은 생쥐꼴이 되어 호텔로 돌아온 일행은 수영장으로 갔다. 방콕시티호텔의 수영장은 얼핏 보면 대중목욕탕 냉탕의 느낌이 난다.
가족들은 두고 나 혼자만 밖으로 나왔다. 채 5분도 안되서 도달한 곳은 BTS 랏차테위 역.
매표소에서는 내가 전승기념탑까지 간다고 하니까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그러는지 표를 팔지 않고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주면서 표는 자판기에서 구입하라고 한다.
BTS 표는 카드이다.
두 정거장 거리의 전승기념탑 역으로 갔다. 오는 8월 12일이 왕비의 생일이어선지 어디를 가나 왕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승기념탑을 중심으로 한 로터리는 전국 각지로 향하는 버스들의 터미널 같았다.
- 호텔로 오는 길 -
돌아올 때는 걸었다. BTS 노선을 따라 걸으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무엇보다 걸으면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다. 파야타이 로드(Thanon Phayathai).
그렇게 똑바로 걸어서 씨 아유타야 거리(Thanon Si Ayutthaya)를 지나 지금까지 걸어온 만큼 더 걸어오면 펫차부리 거리(Thanon Phetchaburi)이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방콕시티호텔이 나온다. 일요일 오후의 도시 풍경. 나는 시골의 한가로운 풍경 못지않게 도시의 이런 모습을 사랑한다.
방콕시티호텔 옆의 세븐일레븐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 여기서 2번, 79번, 511번 버스를 타면 카오산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알고 갔는데도 결국 시도해 보지는 못했다.
- 저녁식사 -
호텔에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씨암파라곤에 MK수끼가 있다고 해서 저녁을 해결하러 모두들 다시 길을 나섰다. 걸어가도 충분히 괜찮을 거리이건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이용한 교통수단은 뚝뚝이다. 요금은 200B. 내가 너무 열받아 하니까 다들 나를 보고 뭐라고 했다. 왜 얼마 되지도 않는 돈에 그러느냐는 것이다. 지금 내가 돈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 뻘짓을 하고 다니는 것 같아서 그런다...
씨암파라곤에 입점한 MK는 골드였다.
2001년 12월에 내가 처음으로 아내를 데리고 방콕에 왔을 때는 MK레스토랑이 없었던 것 같다. 대신 그 시절에도 이곳 태사랑에서 정보를 얻어 카오산로드에 있는 무슨 수끼에 가서 먹었는데, 참 맛있더라구. 한국 사람들 중에 수끼를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족
1) 전승기념탑은 1941년 6월에, 프랑코-타이 전쟁에서 거둔 태국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1940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계속된 이 전쟁은 인도차이나에 있던 프랑스식민지정부와 태국간의 싸움이며, 이 승리로 인해 태국은 캄보디아 서쪽과 라오스 북쪽과 남쪽의 영토 일부를 되찾았다. 여기는 1893년과 1904년에 씨암 왕국이 프랑스에 넘겨줬던 영토들의 일부이다.
2) 이 전쟁에서 진정 태국이 승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태국인들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단지 당시에 만연해 있던 군국주의의 불명예스러운 유물 정도로 생각한다고 한다.
3) 태국은 근대 이후 만연되었던 식민지 쟁탈전에서 남을 지배하거나 남에 의해 지배된 적이 없는 몇 나라들 중에 하나이다. 이런 나라들이라는 게 히말라야 산맥 중턱에 위치한 네팔과 부탄, 그리고 노예들의 후손이 건국한 라이베리아라는 점을 감안하면, 태국은 사실상 나라다운 나라들 중에는 거의 유일하다고 하겠다.
4) 태국이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 태국의 서쪽인 인도와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동쪽인 인도차이나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완충지대를 설정했고, 그게 태국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