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 가족의 어메이징 타일랜드(1)
- 들어가며 -
2016년 3월 12일(토). 장모님이 담낭암으로 돌아가셨다. 장인어른은 한국전쟁 때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월남하신 분으로 평생 사업을 해왔다. 따라서 그녀의 삶도 남편의 사업이 부침을 거듭할 때 마다 넉넉함과 빠듯함 사이를 오고 간 모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가들이 그러하듯이 장인도 큰돈을 모으지는 못했고, 그녀가 사망하면서 남긴 것은 2천5백만원 정도의 현금이 전부였다.
유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 돈의 활용처를 두고 그녀의 네 딸과 사위들 사이에서 약간의 논의가 있었다. 그리고 내려진 결론은 가족 모두의 여행을 떠나자는 것이었다. 생전에 장모는 여행을 좋아하셨고, 다른 부모들도 그렇겠지만 자식들의 우애를 중시하셨다. 뭐 그런 점을 생각하면 <가족여행>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기에도 적합한-꽤 괜찮은-결정이었다.
가이드는 내가 맡았다. 3년 전에 17명의 가족 모두가 필리핀 세부로 단체여행을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서 다녀온 일이 있는데, 그 때 모두가 깨달은 바는 패키지관광은 할 것이 못 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의견은 논의할 것도 없이 배낭여행으로 결정되었고, 동남아 배낭여행의 권위자를 자처하는 나는 가이드라는 중책을 자진해서 맡았다. 만일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가이드 자리를 가져갔다면 나는 몹시 서운했을 것이다. 그만큼 내가 하고 싶었다.
가이드로 임명된 나는 태사랑 배너에 올라 있는 일성여행사를 통해 14장의 항공권을 구입하는 것으로 소임을 시작하였다. 여행지는 방콕-푸켓이다. 열세명의 인원을 인솔하고 다니려면 우선 내가 친숙한 장소여야 했다. 방콕은 지금까지 네 번을 다녀온 곳이다. 아울러 나도 여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수년 전부터 가보기를 꿈꿔왔던 푸켓을 포함하였다. 비록 가 본적은 없었지만 태사랑의 여러 글에서 보아온 푸켓에 관한 이야기들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푸켓이 좋은 휴양지인 것은 맞지만, 추가로 많은 비용이 들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콕에서 버스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파타야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때는 아니다.
여행에 필요한 기본 정보는 태사랑과 AATNB(구: 트래블게릴라)에서 구했다. 여행에 필요한지도는 명동에 있는 태국관광청 서울사무소에 가서 요술왕자의 것을 받아왔다.
현지에서 할 일일투어는 홍익여행사와 사우스타이에서 예약했다. 그리고 외환은행에서 바트를 사왔다.
- 출발 -
2016년 8월 6일(토). 설레는 마음과 무더위에 전날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 새벽을 맞았다. 새벽 4시에 컵라면에 밥을 말아 아침을 때우고, 우리 가족 전체 14명을 태우러 온 미니버스를 맞았다.
오늘도 인천공항 출국장은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뉴스에 따르면 인천공항 출국자 수는 지난주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했다. 하여간 아침 7시도 되지 않은 시각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모습은 난생 처음 보는 것 같다.
인천발 방콕행 TG 659편. 기내에서 나눠준 아몬드를 벗삼아 방콕 시내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지도만 보고 있어도 마음은 날아갈 듯 하다.
타이항공 기내식. 국적기만큼 좋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오전 9시 3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1시25분에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장을 빠져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유심카드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299B. 14명으로 구성된 팀이니만큼 3대 정도의 전화기는 있어야 유사시에 서로 통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 실제로 이것이 여행하면서 얼마나 유용했는지 모른다.
- 공항철도 -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씨암(Siam)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은 공항철도(ARL, Airport Rail Link)였다. 짐을 끌고 이동하는 것이 불편하기는 해도 서너 대의 택시로 나눠 타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좋다. 자판기도 있지만 대량으로 구매해야 하는 나는 매표소로 갔다.
종착역인 파야타이까지 요금은 45B. 승차권은 토큰이다.
산뜻하고 날씬한 외양의 열차는 오래지 않아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공항철도는 합리적인 가격에 지상철이라 바깥 구경을 하면서 이동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종착역에 내려서 숙소인 방콕시티호텔까지의 거리는 1km 정도. 뚝뚝을 타는 것이 가장 좋고, 미터택시를 타면 너무 가까운 거리라 엉뚱한 데로 끌려 다닐 염려가 있으며, BTS를 타면 불과 한 정거장에, 내려서도 또 걸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차라리 그냥 걷기로 했다. 뚝뚝 가격을 물어보니 한 대에 200B을 부른다. 뜨거운 날씨에 무거운 짐을 끌고 이리저리 길을 건너 마침내 숙소에 도착.
- 짜뚜짝 주말 시장 -
방에는 짐만 던져놓고 곧바로 다시 나왔다. 다들 마음이 들떠서 그런지 배도 고프지 않다고 했다. 여기서 식사하겠다고 시간을 보내느니 빨리 목적지인 짜뚜짝 시장(Jatujak Market)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방콕시티호텔에서 짜뚜짝 시장으로 가는 수단으로는 BTS(Bangkok Mass Transit system)를 이용하기로 했다. BTS는 1999년 12월 5일에 국왕의 생일을 기념하여 개통되었으며, 지반이 약한 방콕의 특성을 고려하여 지상에 건설되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고 방콕 특유의 극심한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어 좋지만, 요금은 버스에 비해 많이 비싸다. 일행이 4명만 되어도 미터택시를 타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이익이 될 것이다. 내부는 조금 전에 탔던 공항철도와 거의 비슷하다.
BTS 모칫(Mochit)역에 내려 밖으로 나오는데 파혼요틴 거리(Thanon Phahonyothin)의 버스정류장에 사람이 저렇게 많다.
시장으로 가는 지름길은 <짜뚜짝 공원>을 통과하는 것이다. 1982년에 방콕을 태국의 수도로 정한 200주년을 기념하여 싸남 루앙(Sanam Luang) 광장에 있던 벼룩시장이 이곳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이곳에는 공원만 있었다. 시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주말에만 열리는 짜뚜짝 시장은 4만평의 부지 위에 15,000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어서 하루 평균 방문자가 30만명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금요일 저녁에는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도 하는 모양이다. 이미 나의 가족들은 오후 5시가 넘은 시각에 도착한지라 무엇을 구경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냥 패키지 관광객처럼 입구 현판에서 기념사진이나 한 장 찍고, 가게도 대충 둘러보았다. 진짜 수박처럼 생긴 쿠션에 눈길이 간다.
그래도 명색이 시장이라는데 그냥 돌아서기가 서운해서 아이들이 머리띠를 하나씩 구입했다. 내부의 가게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는데, 거리에는 여전히 인파로 넘쳐난다. 저녁 6시가 되니까 확성기에서 음악이 나오는데, 사람들이 모두 부동자세로 서 있는 모습으로 보아 국기강하식을 하는 듯 했다. 이번이 태국여행이 다섯 번째이지만 과거에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다소 의아했다. 아니면 씨리킷 왕비(Queen Sirikit)의 82주년 생일을 앞두고 하는 퍼포먼스인가?
- 아시아티크 -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이 힘들어진 우리는 빨리 아시아티크(Asiatique)로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일행 중에는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만 4세와 5세의 아이들도 있어서 547번 버스를 타면 한번에 갈 수 있다는데도 이를 포기했다. 택시 또한 엄두가 나지 않으니 결국 또다시 BTS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구경하는 시간보다도 이동하는 시간이 더 길고, 앉아서 가지도 못하고 짐작처럼 실려 가려니 몸도 피곤했다.
중간에 씨암에서 씰롬선(Silom Line)으로 갈아타고 싸판탁신(Saphan Taksin)역에 내리니 몸이 파김치가 되는 듯 했다. 아시아티크로 가는 무료셔틀을 타겠다고 선착장에 앉으니 강바람은 제법 시원했고, 강 위를 오고 가는 디너크루즈들의 불빛이 화려했다.
밤이라서 그런지 배는 아주 천천히 운항했다. 그래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이동하는데도 또 다시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도착한 아시아티크. 대관람차가 화려한 불빛을 쏟아내며 돌아가는 모습은 야시장이라기보다는 놀이동산같았다. 그러나 때 마침 쏟아 붓는 스콜에 이런 좋은 기분들은 모두 상쇄되었다. 우기에 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 여행기간 내내 날씨의 영향을 너무도 많이 받았다.
사족
1) T.A.T(Tourism Authority of Thailand) 서울사무소가 자리한 대연각 빌딩은 화재사건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1971년 12월 25일 오전 9시 50분. 전날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고 모두 단잠에 빠져있던 시각에 대연각 호텔 커피숍에서 프로판 가스가 폭발했다. 불은 단 20분 만에 호텔 전체로 번졌고, 탈출구를 찾지 못한 투숙객들은 옥상으로 대피했는데, 마침 옥상으로 가는 출입문마저 잠겨 있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질식사하거나 호텔 밖으로 몸을 던졌다. 사고의 결과는 질식사 35명, 추락사 38명, 행방불명 25명, 부상자 68명이었다.
2) 이 사고는 훗날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의 육지버전이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안전에 취약한 국가이고, 정부가 얼마나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건물은 22층이었는데, 고가사다리차는 당시에 가장 좋다는 것이 7층에 닿았다. 건물 옥상에 이르는 문은 굳게 잠겨 있었으며, 헬기를 타고 옥상에 내려서 문을 열려고 해도 옥상에 헬리포트가 없었다.
3)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의 과실이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돌아감에 따라 1971년에는 호텔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는 청계천과 중랑천에 판잣집이 즐비했던 시절이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인생을 향유하고 있었다.
4) 피해자 통계를 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행방불명>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시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타면 행방불명으로 처리하는가? 혹시 누군가는 그날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 본문의 일부 내용에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운영자의 권고를 받아들여 관련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