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처음 오신 부모님 혹서기훈련하고 귀국한 이야기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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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처음 오신 부모님 혹서기훈련하고 귀국한 이야기 - 4

딸기맛환타 6 1159






아유타야의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의 조용함은 간데 없고 활기찬 모습들이 보인다.

아홉시에 출발하는 깐짜나부리 행 롯뚜를 타야하기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숙소 일층으로 내려간다.

조식은 포함돼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과일뮤즐리, 아빠는 땅콩바나나샌드위치, 엄마는 튜나샌드위치를 시켰다.

각자 80밧씩이었는데 왜인지 내 접시만 계속 비어간다.

건너편의 토니플레이스에서 그 맛있다는 스테이크를 못 먹었다는게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여덟시오십분쯤 되어서 롯뚜가 도착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제일 앞줄에 자리를 잡는다.

우리 포함 여섯명 정도 탄 차는 다른 게스트하우스도 하나 들른 후에 본격적으로 깐짜나부리로 향한다.

가는 동안 차 안에 비치되어 있는 투어 브로셔를 보면서 어떤 투어가 최선인지, 특히 코끼리 트레킹은 없지만 웬만한 관광지는 다 들어있는 투어는 뭔지 찾아본다.

깐짜나부리 여행자거리에 거의 도착해서 기사아저씨가 숙소가 어디인지 물어보길래 리버콰이브릿지 리조트라고 알려주고 났더니 졸리프록이 보인다.

작년 11월에 터미널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가 더위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나면서 같이 못 온 동생 생각이 잠깐 났지만 밥은 먹고 다닌대서 금방 접는다.

다른 사람들을 거의 다 내려주고서야 우리의 숙소에 도착한다.

사실 어제 저녁에 도착했어야 되지만 예상치 못한 일정변경에 급하게 예약했던 이틀 숙박을 하루로 바꿨었다.

다행히 당일 도착 전까지만 취소하면 되는 규정으로 예약을 한터라 위약금을 물지 않았지만 여행의 마지막을 여유롭게 수영도 하고 느적느적 보내려 했던 계획이 망가진 상태라 꽤 아쉬웠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내일까지 알찬 1박2일을 보내기로 하고 체크인을 했다.

리셉션과 짐 옮겨주는 직원 전부 너무 친절하고 웃는 얼굴로 맞아주었는데 심지어 방도 강 바로 앞이다!

물론 리조트 구조 상 강을 정면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발코니에서 몸을 쑥 내밀면 바로 강이 보인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여태까지 숙소에 대한 칭찬 한 마디 없으셨던 아빠가 발코니의 긴 의자에 몸을 누이면서 좋다고 하시는 걸 보니 엄지손가락 품을 팔아 알아 본 보람을 느꼈다.

시간은 이미 정오를 넘었고 둘러볼 곳은 많은 까닭에 짐만 놓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숙소 바로 건너편에 전면 오픈형 식당이 있길래 바로 들어가서 무까띠얌카이다오(돼지고기마늘볶음계란덮밥) 등을 시켜서 냠냠.

음료를 시킨 김에 컵에 담긴 얼음을 텀블러로 옮겨 담아서 떠날 채비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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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니 태양은 중천에 떠서 늘어지는데 일단은 뚝뚝을 찾기 전까지 터미널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보도블럭이 좁게 깔려진 길을 걷다보니 뚝뚝이 보여 제스 전쟁박물관으로 가는데 100밧으로 딜을 하고 출발한다.

깐짜나부리의 골목은 여러 나라들의 이름이 붙어있는데 그 중 가는 길 왼쪽에 한국길이 있다고 하니 신기해하시면서 내려서 사진을 찍고 갔다.

아마 2차 세계대전 참전국의 이름이 아닐까 했는데 그 때 우리는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아닐것이고 그럼 군사동맹국의 이름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확하게 아시는 분 답변 좀 부탁드려요)

가는 도중 뚝뚝아저씨가 길을 헷갈려 다른 길로 잠시 들어가기도 했지만 나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제스전쟁박물관에 도착했다.

이 곳은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주요 국가들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고 하는데 안에 전시된 내용은 전쟁포로들의 참혹했던 실상과 그들이 남긴 그림들이었다.

거구의 서양인들이 포로가 되어 '로무샤'고 불리며 그 가파른 산 위의 철도를 건설하는 데에 동원되었던 비디오도 상영하고 있었는데, 피골이 상접하고 수면부족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면서도 언젠가는 전쟁이 끝날거라고 믿었는지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사람도 있었다.

관람객 중에는 일본인도 있었는데 과연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여기를 둘러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제 2전시관까지 둘러보고 나오니 앞에는 잘 정돈된 강변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정자에 걸터앉아 물을 마시며 잠깐 쉬어가기도 했다.

강에는 바나나보트와 제트스키 등 수상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어 마치 가평에 온 느낌도 들었다.

다시 시내 쪽으로 들어가려고 방향을 잡고 걸어가는데 그 흔한 뚝뚝이 한 대조차 보이지 않아서 결국에는 유엔군 묘지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바로 옆에는 화교 묘지가 있었는데 태국식의 탑 모양으로 꾸며져 있는 대신에 묘비명은 한자로 쓰여 있어 그들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엔군 묘지에 도착해서는 괜히 숙연해져서 묵념을 하고 들어갔는데, 세계 각지에서 파견된 많은 군인들이 여기 잠들어 있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었던 것 같다.

하늘이 흐리다 개었다를 반복해서 시간 가늠이 안 되었던건지 태국-버마 철도센터에 들렀을 때는 이미 다섯시가 되어서 문을 닫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대신 깐짜나부리 기차역을 구경하러 간 길에 야시장을 준비하는 분주한 모습과 고기 굽는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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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시간을 보니 아무래도 개별적으로 에라완폭포까지 가기 힘들겠다고 생각해서 결국 투어를 신청하기로 했다.

메인 거리까지 나와서 이쯤이면 여행사가 나타날 때가 됐는데- 할 때쯤 정말 여행사가 눈에 띄었다.

코끼리 트레킹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에라완폭포가 오전 일정으로 들어있는 기본 투어를 신청하고 인당 100밧씩 깎아서 총 3300밧을 결제했다.

사실 그 가격대로 할 의향도 있었는데 아유타야에서 타고 온 미니밴 안에 있던 다른 여행사 종이를 꺼내서 보고 있으니까 바로 할인을 해주겠다고 해서 덥석 물었다.

그리고 투어가 끝나고 방콕으로 가는 일정이 제일 중요했는데 터미널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길래 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이 투어가 이번 여행에서 썼던 돈에서 단일 품목으로 제일 비싼 것인듯 하다.

심지어 콰이강의 다리를 보러간다고 하니 지나가는 뚝뚝을 불러서 60밧에 흥정도 해주어서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리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기차가 올 때쯤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인증샷 찍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기차는 비켜서라는 듯 기적을 울리며 들어왔고 꼬리칸까지 다 지나간 후에는 바로 멈춰섰다.

갑자기 아빠가 핸드폰을 달라고 하면서 사진을 좀 찍고 오겠다고 하신다.

위태위태하게 기차길을 걸어가시는 꼬부랑 할머니의 뒷모습을 찍고 싶다고 하시면서 급하게 뛰어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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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아빠가 안 오신다.

지금 우리 중에는 나만 유심을 끼웠고 저 쪽 너머로는 가본 적이 없어 나도 길을 모른다.

엄마는 이런 기다림이 익숙한 듯 했지만 나는 어디를 나갈 때마다 아빠 특유의 여유로움과(시간 없는데) 지각(시간을 너무 딱 맞춰서 가는)에 이골이 난 상태였다.

집에서도 이럴 때 항상 나는 엄마를 끌어당겨 먼저 나오곤 했는데 여기는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데다 아빠는 2G폰을 쓰고 어디로 갈건지 방향만 알려주고 가셨다.

그리고 오늘 체감온도는 43도에 육박했고 우리는 하루종일 돌아다닌 상태였다.

화가 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해서 그냥 가버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제는 해도 거의 다 졌다.

미간에 주름을 잔뜩 만든 채로 서있는데 아빠가 나타났다.

우리는 멘붕이 된 상태로 있는데 아빠는 잔뜩 웃으면서 걸어오시는데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큰 소리를 내버렸다.

왜 항상 우리는 기다려야되고 어디 간다고 말이라도 하면 걱정은 안 할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만히 있는게 얼마나 힘든줄 아냐고.

여태까지 쌓였던 것이 결국 여기에서, 아빠엄마의 첫 해외여행에서 터져버렸고 주변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도 있었다.

아빠는 저 할머니를 따라가다보니 다리 아래에 비석이 있어서 사진도 찍고 읽어보고 왔다고 하셨지만 난 이미 아무것도 듣고 싶지가 않았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는 얘기도 밥맛 없어졌다고 난 숙소로 갈테니 두 분은 드시고 오세요 하고 뒤돌아서 가는데 저쪽에 앉아있는 엄마가 보인다.

이 별거 아닌 상황이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혼자였으면 울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도 사라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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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찍은 사진들 나는 건너가지 않았던 곳이다)


이럴 때는 항상 엄마가 중재를 한다.

오늘도 역시 똑같았고 난 여전히 미간을 구긴 상태에서 플로팅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일단 술이나 먹어야겠다 싶어 맥주를 시키고 메뉴는 보지도 않고 있다가 대충대충 메뉴판을 넘기면서 엄마랑만 얘기를 한다.

튀긴 민물생선, 파인애플밥, 맑은 국물? 여태까지 먹은 적 없었던 것들이다.

모기에 물리더라도 강변 기분은 내보고 싶었는데 영 별로다.

맥주가 나오고 성의없게 건배를 하고 한 모금을 들이키는데 갑자기 기분이 좀 괜찮아지는 느낌이 든다.

슈퍼매직. 비어파워.

그제서야 미간이 풀어지고 하지만 눈은 여전히 엄마만 보면서 말만 아빠쪽으로 던진다.

음식이 하나둘씩 나오고 생선을 한 입 먹었더니 맛이 있다.

기분이 점차 좋아지는 걸 느낀다.

나는 배가 고프면 모든 게 귀찮아지는 사람이고 그럴 때면 초콜릿이나 태국식 연유커피로 급속 당충전을 해야 움직일 수가 있다.

아까는 힘이 든데다 지친데가 지겨운데다 배까지 고파서 더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이제서야 아빠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빠도 나름 아빠만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던 것 뿐인데 내가 뭐라고 그걸 재단하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하고 있는건지.

울컥-했지만 울면 지는 것 같다는 괜한 오기가 또 발동해서 고개를 숙이고 입에는 파인애플밥을 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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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위의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미 저녁이 되어 날은 저물었지만 삼 분 정도 걸으니 바로 숙소에 도착한다.

낮에 나가기 전 수영장은 밤 10시에 닫는다는 것을 미리 알아둔 우리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에어컨을 한껏 켜고는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입었다.

엄마는 물에 들어가는 건 질색하는 터라 수영복도 없고 해서 발이라도 담그러 같이 가기로 했다.

수영장에는 아무도 없고 물은 잔잔하고 별은 밝고.

나는 개인적으로 수영을 배우다 금방 그만 두기도 했고 수중이던 공중이던 발이 닿지 않으면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1.2미터 수심에서만 잠영을 하고 있었다.

아빠는 운동이라면 뭐든 잘 하시는 분이라 손을 잡아줄테니 한 번 저기까지 가보라고 하신다.

사실 무섭기는 했지만 딱 한 번만 해보기로 하고 발장구를 친다.

엄마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계곡에 온 것처럼 발만 물에 잠그고 있다.

동생은 아마 퇴근해서 밥먹고 씻고 자는 중이겠지.

손을 잡고서라도 수영이라는 것 자체는 나한테는 영 안 맞는 것이었다.

얼마 전 끄라비에서 수영장에 빠졌을 때 아무도 없었다면 정말 죽었을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드는 것이 이유였던걸까.

결국 그냥 잠영만 왔다갔다 하면서 말 그대로 '물놀이'를 즐기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6 Comments
필리핀 2016.07.26 12:16  
와우~ 슈퍼매직~ 비어파워~ 대단해여~ ^^*

근데 저 레스토랑... 내 단골 레스토랑이랑 비슷하게 생겼네여? ㅎㅎ
딸기맛환타 2016.07.26 15:55  
음... 주변에 비슷한 데가 좀 여러군데 있긴 하던데
조명이 저렇게 된 데는 저기뿐이더라구요
무소의뿔 2016.08.09 16:55  
사진 잘 보았습니다.
몇년전에 죽음의 철도와 콰이강의 다리 투어한것이 생각나에요..

저는 이곳을 구경하면서
태국은 2차대전때 일본에게 협력하고 일본을 위해서 죽음의 철도도 놓고 한것을 보면서
일본에게 협력한 태국이 괘씸하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태국 국왕이 정치를 잘해서 일본침략군으로 부터 국민을 지킨것이 잘한것이고
그렇게 때문에 아직까지도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딸기맛환타 2016.08.10 14:38  
식민지 역사를 가진 우리로서는 태국이 일본을 그렇게 좋아하는게 잘 이해가 안 되긴 했어요
세상만사 2016.09.17 19:56  
정말 애매한 것이, 깐짜나부리에 있는 저 묘소는 UN군이 아니라 연합군(사실 2차대전때 이야기니니까 연합군이란 개념도 희박; 유엔군의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난 뒤에 김일성 괴뢰집단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때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묘소인데, 언제부터 잘못 알려졌는지 모르겠네요.

Floating Raft Restaurant(Mueang Kanchanaburi District, Kanchanaburi, 태국)에서 마신 시원한 맥주 맛(물론 얼음에 탄 것)은 지금도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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