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처음 오신 부모님 혹서기훈련하고 귀국한 이야기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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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처음 오신 부모님 혹서기훈련하고 귀국한 이야기 - 3

딸기맛환타 12 1256
오늘은 멘붕의 아유타야 이야기입니다.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조식을 먹고 짐을 챙겼다.

아유타야에 갔다가 깐짜나부리까지 쭉쭉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괜히 마음이 급하다.

엄마는 삼일 동안 달걀요리를 맛있게 해 준 주방언니한테 성의표시를 하고 싶다고 팁을 건네주고 바로 골목입구까지 걸어나와서 후아 람퐁 기차역으로 가는 택시를 탄다.

역에 도착 해 어딜 가나 자주 하는 말 '@@까지 제일 빠른 거 한 장요' (feat.늘 먹던 걸로) 을 창구에 얘기하니 30분 뒤 기차의 3등석을 3장 준다.

탑승 시간은 지금 당장부터여서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고는 바로 기차에 올랐다.

아직 출발이 좀 남아서 자리가 많을 걸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자리가 꽉 차있어서 서로 무릎이 맞닿는 곳에 꼭꼭 구겨서 앉았다.

물 파는 아주머니가 지나가셔서 물 두개를 사고 출발을 기다리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그 때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양평에 살 때였고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영월에 계신 아빠를 만나러 가는 게 일과였는데 그래서인지 격주에 한 번은 '후랑크소세지'를 맛볼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맛있는 소세지가 기차 내 판매품목 중에서는 꽤 비싼 축에 속해서 매주 먹기는 아마 불가능 했었던 것 같다.

동생이랑 둘이서 야금야금 껍질을 벗겨가면서 먹고 사이다 한 모금 먹으면 그게 기차타고 가는 재미라 기차를 좋아했던 것 같다ㅋㅋㅋ

기차는 간이역 수준의 역에도 들르면서 외곽으로 갈수록 속도를 냈지만 빠르지는 않았다는 함정이 있었다.

처음 삼십분 쯤 사진을 찍고 나서는 딥슬립에 빠져서 사진은 없고 자는 와중에도 아빠가 내 옆자리 독일여자애랑 몇 마디 대화를 나눴던 게 얼핏 기억이 난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등은 땀에 쩔어있었고 아유타야에 도착하기 직전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에서 나와 직진을 했더니 소문대로 강을 건너는 배를 타는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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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 먼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여행사에 들어가서 저녁에 깐짜나부리로 가는 롯뚜를 예약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런 거 없다고 한다.

아유타야에서 깐짜나부리로 가는 롯뚜는 하루에 딱 한 대 아침 아홉시에만 있다고 한다.

순간 식은 땀이 난건지 아니면 원래 흐르던 땀이 더 흘렀던건지 급 뒷골이 땡기는 느낌이 났다.

형식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바로 옆 여행사로 가서 똑같은 내용을 말했더니 역시나 내일 가야한다고 한다.

멘붕.

나의 계획은 아유타야에 도착하자마자 저녁에 깐짜나부리로 가는 롯뚜를 예약하고 여행사에 짐을 맡긴 후 유적지 투어를 한 후 리버콰이브릿지 리조트에서 여유있게 밤수영을 하는 거였다.

ㅋㅋㅋㅋㅋㅋㅋ역시 계획은 세우는 게 아니었어!!!

상하이에서 쿤밍으로 가는 기차를 예약하려고 했던 그 때도 그랬고, 4박5일만 있다 가려던 첫 태국 여행을 결국 이 주 가까이 있는 걸로 연장했을 때도 그랬다.

그래, 계획이란 건 항상 자의든 타의든 변경되기 마련이고 해서 역시 계획따위는 안 세우는 게 마음 편하단 걸 내가 왜 잊고 있었는지.

보통 혼자 다닐 때는 나름 큰 범위의 계획을 세우고 만약에 그것이 실패했을 경우에는 포기가 꽤 빨라서 바로 거기에 눌러앉아 버린다거나 아예 다른 일을 해 버리는데 지금은 아빠엄마랑 같이 있고 심지어 짐까지 들고 있다.

그리고 지금 시간은 이미 두 시를 향해 가고 있고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방콕에서 왕복하는 일정이 나았을텐데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ㅠㅠㅠㅠㅠ

멘붕이 된 표정을 감추지 못 하는 나, 땀만 뻘뻘 흘리고 있는 부모님을 보던 직원이 안타까웠는지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수판부리까지 가는 롯뚜를 타고 가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면 갈 수 있다고.

저도 압니다. 찾아봤어요. 태사랑에서.

근데 지금은 멘붕이라 정신이 마비상태.

마치 작년 치앙마이 썽테우 사기사건(결론은 사기가 아닌 것으로 밝혀짐) 때의 긴장감이 몸을 휘감으면서 일단 에라 모르겠다 하고 여행자거리가 있을만한 곳으로 쭉 걸어간다.

큰 길이 나오고 백화점도 있는 걸 보니 여기가 중심가구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수판부리 가는 롯뚜 타는 곳을 알아내고 아빠엄마는 잠깐 기다리시게 한 뒤 롯뚜정류장으로 간다.

나는 오늘 깐짜나부리에 도착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자 수판부리로 먼저 가라고 하는데 거기서 깐짜나부리까지 가는 버스가 다섯시에 끊긴단다.

그리고 아유타야에서 수판부리까지는 세 시간이 걸린단다.

음? 그렇다면? 지금 바로 출발하란다.

말도 안돼. 난 방금 여기에 막 도착했는데 절대 그럴 수 없어.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었지만 결국 그 방법 하나뿐이란 걸 알아내고 부모님이 기다리시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지금 타야된다니까! 안 그러면 못 가! 하는 주변 모든 사람들의 친절한 참견과 내가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영어를 할 줄 아는 대학생까지 끌어들여 설명하기 시작한다.

정말 고맙기는 하나 오늘은 아닌걸로ㅜㅜ

초점 없는 눈으로 돌아오자 아빠엄마는 뭔가가 이상했는지 왜 그러냐고 물어보시는데 막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니- 거기 가려면 경유해서 가야되는데-

그럴라면 지금 출발해야 된다고-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갑자기 어린애처럼 징징거리면서 대답을 해버렸다.

똑똑한 척 아는 척은 다 해놓고 바보가 돼버린 기분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내 말을 다 들으시고는 그럼 여기서 하루 자고 가자 하신다.

아, 이건 정말 큰 계획에도 없던건데.

이런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동네에서 하루를 자다니.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머리를 빠르게 굴려보니 고구마 님이 쓰신 글에 굿럭게스트하우스 라는 곳이 있다는 게 생각이 났다.

구글을 켜서 찾아보니 바로 건너편에 있는 길이 바로 여행자거리였고 게스트하우스도 그 안에 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은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발길을 옮긴다.

굿럭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주인아주머니와 딸로 추정되는 대학생 여자애가 한 명 있었다.

일단 방이 얼만지 물어봤더니 제일 큰 방이 800밧이라고 한다.

방을 보러 갔더니 말 그대로 진짜 큰 방에 생각보다 시설이 꽤 괜찮다.

다시 일층으로 내려가서 오늘 하루 방값과 내일 깐짜나부리 행 롯뚜를 결제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들어가자마자 에어컨을 제일 낮은 온도로 설정하고 옷은 다 벗어버린 상태에서 바닥에 털퍼덕 앉아 샤워 순서를 기다린다.

아빠엄마도 많이 지치셨는지 샤워를 하고 잠깐 누우시길래 시간을 보니 어느덧 세 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유적지 구경은 아예 못 하고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정보를 좀 얻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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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층에 내려가자마자 어떤 동양인 남자와 마주쳤다.

딱 봤을 때 한국인으로 보여서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건넸더니 안 그래도 만나러 올라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도 방금 도착했는데 여기서 하루 자고 가려고 왔더니 아주머니가 한국가족이 위층에 있다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유적지 투어를 할건데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바로 오케이한다.

네 명이 로비에 앉아서 여러가지를 얘기하다가 선셋보트 투어는 지금 하기엔 너무 볼 곳이 적고 시간이 많이 든다고 판단되어 나가서 뚝뚝을 대절하기로 한다.

뚝뚝 여러 대 중에 인상 좋아보이는 아저씨에게 다가갔더니 그림카드를 보여주면서 어디를 갈 거냐고 묻는다.

우리가 체크해 놓은 곳 중에 다섯 곳을 골라 얼마냐고 물었더니 800밧이라고 한다.

더 깎아줄수는 없냐고 하니 태국사람도 똑같다 하길래 인원 수도 많고 해서 700밧까지만 깎았다.

나와 '오늘의 임시 아들'이 흥정하는 동안 아빠엄마는 시장에 가서 꼬치 몇 개를 사오셨다.

생각해보니 점심도 안 먹고 이 시간까지 멘붕하고 있었다는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런것까지 생각하지 못 하는 내가 바보같았다.

배가 고프셨을텐데 말씀도 안 하시고 나는 지금 가야된다고 재촉하고...

못났다, 정말. 하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뚝뚝을 타고 꼬치를 먹으며 첫 번째 유적지에 도착했더니 여기가 왓 야이 차이몽콘이었다.

목이 마른 나머지 콜라를 하나 샀는데 주저없이 얼음을 봉다리에 붓는 할머니를 보고 아빠엄마는 어린시절 소풍가던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그 때는 저렇게 봉다리에 음료수도 넣어서 가고 병사이다도 많이 가져갔다고ㅋㅋㅋ

나중에 사진을 안 찍어놓은게 아깝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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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야이 차이몽콘을 시작으로 나무 뿌리에 박힌 부처님 머리가 인상적인 왓 마하탓,

세 개의 탑이 있고 버마의 침공으로 머리 잘린 불상이 보존되어 있는 왓 프라 시 산펫,

무려 42미터에 달하는 와불이 있는 왓 로까야수타람에 차례대로 들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는 아유타야는 자전거 타고 둘러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어느 유적지에 가도 자전거 세우는 곳이 잘 되어있어서 만약 다시 오게 된다면 (체력 한계 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에 들른 유적지들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했지만 점점 본전찾기에 급급해지고...ㅋㅋㅋㅋㅋ

왓 프라 시 산펫에서는 어린 여자아이가 와서는 열쇠고리를 팔아달라고 하기에 나는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는데 엄마는 어린애가 안쓰러웠는지 하나 사주셨다.

그랬더니 어디서 또 다른 남자아이가 와서 내꺼도 사 달라고... 미안하다고 하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태사랑에서 봤던 좋은 정보가 있길래 오디오해설로 빙의하여 유적지에 도착할 때마다 읽어드렸더니 은근히 좋아하셨다.

왓 로까야수타람으로 가는 길 코너에 야시장 같은게 열리길래 마지막 유적지로 가기 전에 잠깐 들르자고 뚝뚝아저씨에게 말씀드렸다.

역시 그 곳에는 내 사랑 망고스틴이 있었고 망고도 있고 커무양도 있고 하길래 어마어마한 양을 샀다.

커무양은 뚝뚝을 타고 가면서도 살짝 맛을 봤더니 아...이 맛이다...싶으면서 콜라가 필요하다는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왓 차이 왓타나람에서는 해질 때가 다 되어 사진만 간단하게 찍고 투어를 마무리했다.

숙소 앞에 도착해서는 아저씨에게 차비를 드리면서 (아까 깎았던) 백 밧은 팁이라고 하고 드렸더니 좋아하신다.



아유타야 유적지 정보를 참고한 글
(덕분에 도움 많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http://m.cafe.naver.com/taesarang/135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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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짐만 놓고 나와서는 큰 사거리에 있는 노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맥주는 편의점에 가서 사다먹으라고 하기에 패밀리마트에 가서 창 세 병 묶음을 사왔다.

여러가지를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한참을 있어도 안 나오길래 다시 물어봤더니 재료가 없다고 새로 주문을 하라고 한다.

배고픈 한국인들은 맥주와 아까 샀던 커무양으로 배를 채우며 기다릴 수 밖에...

음식이 나오자마자 후딱 먹고서는 아까 낮에 건넜던 그 강 주변을 산책하다가 숙소로 들어왔다.

동네가 작아서 그런지 저녁 여덟시인데도 벌써 어두워져서 밝은 곳이라곤 여행자거리뿐이었다.

임시아들에게는 씻고 과일 먹으러 올라오라고 하고 우리도 샤워를 하고 쉬고 있었다.

막상 망고를 먹으려고 보니 칼이 없길래 아래층에 가서 빌려다 무슨 망고주물럭처럼 만들어서 손맛나는 망고를 먹게 되었다.

대신 망고스틴 2키로를 샀는데도 사람이 넷이라 그런지 금방 동이 났다.

엄마아빠는 피곤하셨는지 일찍 주무시고 임시아들이랑 조용한 여행자거리에서 쏨땀을 안주삼아 맥주 한 병씩 더 먹고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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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omments
필리핀 2016.07.26 12:12  
와우~ 덕분에 아유타야 구경 잘했어여~ ㅎㅎ

근데... 임시 아들이 아니라... 임시 사위 아닌가여? ^^;;
딸기맛환타 2016.07.26 15:54  
아... 사위 하기에는 너무 어려서요...
저랑 아홉살 차이가 나서 그건 좀...
rainymood 2016.08.15 19:09  
아..ㅋㅋㅋㅋㅋ죄송해요 ㅋㅋ 큰소리로 웃어버렸어요 ㅋㅋ
왠지 정독하는 내내 환타님 말투가 익숙해진데다가 아유타야사진에 넋이 나가며 스크롤을 내렸는데  장난반(?)+진담반(?)조의 댓글,,ㅋㅋㅋㅋㅋㅋ
딸기맛환타 2016.08.15 20:27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잘 생겼다고 해도 연하는 싫어요...진짜...정말입니다...
태사랑구름빵 2016.07.26 13:07  
와... 하나씩 보면서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밖에는... ㅋㅋ 부모님 모시고 여행하기 쉽지않은데ㅠㅠ 전 대만 다녀와서는 다시 가기 망설이고 있거든요 ㅋㅋ
딸기맛환타 2016.07.26 15:54  
우주가 도우면 할 수 있어요!!!
준 패키지 수준이라서 좀 힘들기는 했죠
오즈마법사 2017.01.25 10:19  
헉 저는 엄마랑 대만 예약해놓고, 지금 아칩 먹으면서 이글 보면서 대단하다..대만은 좀 쉽겠지 했는데 대만도 난이도가 있나요 ??
커피캣 2016.08.04 10:29  
과일이랑 맥주랑 너무 맛있어 보여요~ 이렇게 여기서 님의 글을 보는것은 좋은데 막상 가려고 하니까 막막하기만 해요 ㅠㅠ 암튼 님의 후기를 읽으며 용기를 얻고 있어요~^^
딸기맛환타 2016.08.07 17:39  
용기내세요!!!
도착하는 순간부터 술술 풀리시길 바라요ㅎㅎ
무소의뿔 2016.08.09 15:59  
부모님 모시고 멋지게 계획을 짜서 좋은곳 많이 보여 드리고 싶었을텐데
계획이 어긋나서 많이 속상하셨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알차게 여행 잘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ㅇ 듭니다.
딸기맛환타 2016.08.10 14:35  
교통편은 정말 잘 알아보고 가야겠더라구요
아유타야랑 깐짜나부리는 꽤 유명한 관광지들인데 그 사이에 연결편이 많이 없는건 좀 아쉬워요
교통 법칙? 비슷한걸 본 것 같긴 한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 ㅎㅎ
세상만사 2016.09.17 19:46  
간만에 왓 야이 차이몽콘 이름을 듣네요. 저도 간만에 내가 쓴 글을 다시 보게 됩니다.
http://blog.daum.net/tigerahn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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