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미와 신양의 태국 여행기 9 - 전쟁
5월 1일 여행 10일째
자고 일어나다 비명을 지른 그 기분을 알까.
으아악…
팔이..
다리가!
아파 아파 죽겠다.
저리고 땡기고…
눈물이 찡 나온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며 일어섰다.
7000바트!!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내 7000바트!
이미 태국 물가에 익숙해 질 데로 익숙해 져있는 나에게 7천밧이면 이미 100만원이나 마찬가지!
강력한 현실감으로 나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그렇게 비몽사몽이 되어 나섰다.
입맛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굶을 수야 있나.
마트에서 우유나 한 개 사 들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빨대로 쭈욱 빠는데….
오오오오!!!
맛있당
이렇게 진하고 고소할 수가.
한국 우유와 틀리다.
다 같은 소이건만 이 젖소들은 도대체 뭘 먹고 자란 것일까.
너무 맛있다.
엄마 젖 빨 듯 쪽쪽 빨아 먹었다.
^_^
이 넘치는 행복감..
에이 우유 맛이 다 똑같지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겪어보니 틀리다!
우유가 나라마다 맛이 다른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비교를 해보자면 태국의 우유는 진하고 고소했고 일본의 우유는 설탕 탄 것처럼 달콤했다.
한국의 우유는 어떨까?
한국의 우유는 짠 맛이 돈다.
진짜다.
나의 이 예민한 혀로 분석한 결과 한국 우유는 간이 되어 나온다.
-_-;;
아마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우유를 먹으면 분명 기절할 듯이 놀라겠지.
어메이징~!!
ㅋㅋㅋㅋ
하나 그 소박한 행복도 잠시 버스에 내려 스쿨에 도착하여 그 웃기는 불경 송을 듣고 나서 다시 마사지 지옥이 시작 되었다.
분명 똑같이 배우고 똑같이 고생했건만 태국인 소녀 파는 너무 쌩쌩했다.
이럴수가…
이것이 무시할 수 없는 나이의 차인가…
그냥 마구 쑤시는 팔 다리를 억지로 뻗어가며 움직이니 그냥 살아있는 피노키오가 다름없다.
쪽 팔리지만 어쩌랴…
내 팔이 아닌 것처럼 힘 제어도 제대로 안 된다.
고무인양 싹 미끄러지는 손가락들…
으윽.
없던 힘도 짜내어 꽈악 누르니…
너무 과도한 힘이 들어 간 듯 파가 비명을 지른다.
아아…괴로워 하는 파.
내 마루타가 되어준 파가 안쓰럽지만 원래 아이들은 시련이 있어야 빗나가지 않고 무럭무럭 잘 크는 법이다.
나도 조절이 안되니 어쩔 수가 없구나…
미안 -_-
이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이 훌쩍 흘러 점심 시간이다.
밥 때다 자각 하면 그때부터 미친 듯이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_-;
자자 나의 생명 줄이자 이 상황에서 유일한 즐거움!
제일 중요한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느냐?
걱정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밖으로 나가면 점심때 포장마차에서 국수와 여러 음식을 판다.
나의 즐거움이었던 쌀국수.
특이하게 국물이 시꺼멓고 걸쭉했다.
쇠고기 맛이 진하게 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헬로 태국군에서 나왔던 싸이 쏘이 쌀국수와 같은 종류가 아닐까 생각된다.
귀여운 파에게 사진기를 들이 데었다.
김~~~~~치!!
바로 귀엽게 포즈 잡아준다.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즉석 공부가 시작되었다.
어느 식당에서나 볼 수 있었던 양념통.
시키지도 않았는데 파가 일일이 이름을 가르쳐 준다.
이것은 남 쁠라오 이것은 뭐 이런 식으로….
내가 발음을 흉내내면 마구 웃는다.
-_-
내가 땅콩 가루를 짱콩 가루로 하는 것 같이 들리나 보다.
아니면 찡콩 가루로 들리던지…
너무 좋아한다.
이 재미로 계속 가르쳐 주나 보다.
그렇게 놀다가 드디어 국수가 나오고 파가 아무렇지도 않게 양념통에 수저를 댄다.
허거걱!!
경악을 금치 못했다.
땅콩 가루를 수저 가득히 뜨더니 국수 위에 뿌리고 또 설탕 한 가득 퍼서 국수에 붓는다.
이럴수가!
국수에 설탕을 타다니…
내가 놀라는 눈으로 보자 파 니는 왜 설탕 안 뿌리냐는 식으로 오히려 쳐다본다.
-_-;;
허허허허…..
왓포 너머로 보이는 것은 왕궁인가.
문화차이가 갑자기 너무 선명하게 느껴진다.
너무 맛있게 먹는 파.
으으으…
도저히 설탕에 수저가 가지 않는다.
이를 악물며!
에잇!
과감히 땅콩가루를 뿌리며 만족하는 소심한 나.
포장마차 주변
점심을 먹는 태국인 들이 많았다.
포장마차는 이렇게 생겼다. 이렇게 허접 해도 맛있는 쌀국수가 나온다는 게 불가사의
하긴 울 동네 포장마차도 허술 하지만 떡볶이는 최고다.
우연히 포착한 장면.
쏨땀 만들기! 주인장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무슨 요술 같이 그냥 슥슥슥 하면 하얀 실 같은 파파야가 흘러내린다.
쏨땀과 꼬지의 궁합은 최고다. 이렇게 한번 먹으면 쏨땀 없는 꼬지는 생각 할 수 조차 없다. 완전 마약이다. 신종 마약.
밥을 먹고 좀 쉬다 보면 시간이 어찌나 후딱 지나가는지…
태국인과 코쟁이를 제외한 동양인은 다 일본인이었다.
여길 봐도 일본인 저길 봐도 니혼징.
한국인은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인다.
ㅜ.ㅜ
여기서도 왕따 신세구나…
일본인이라고 눈 두개 콧구멍 두개 똑 같은 인간이지만 확실히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내 옆 자리에 있었던 일본인 남자 두 명은 일본인의 전형적인 아저씨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이름까지도 어찌나 흔한지…
오히려 너무 흔한 이름이라 잘 기억 나지는 않지만 다나카와 나카무라인가 그랬다.
그저 취미로 배우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일본인들은 그 쪽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듯했다.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 일본에 샾을 낼꺼라는 나카무라씨.
훌륭하십니다요.
하지만 그 기하학적인 파란 바지는 좀….
일본에 대해 독도도 그렇고 조금 안 좋은 이미지가 있었는데 며칠 같이 부대끼다 보니 개인적으로 나쁜 사람이 없었다.
다들 인사성도 밝고 늘 웃고 성실하고…
하나 일본인 확실히 개성이 있다!
일본인을 제외한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마사지 지도사들을 그냥 티쳐 라고 부르는데 꿋꿋하게 센 세 를 고집하는 특이함!
무조건 센 세 란다.
그래 자기 돈 내고 배우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 인가.
나도 선생님 하고 부르러 하다가 일본인 따라 하는 것 같아서 관뒀다.
에이…
파와 함께 장난치면서 그렇게 놀고 있는데 조금 느끼하게 생긴 콧수염 기른 태국 마사지 선생이 나보고 아는체한다.
그분만 보면 며칠 전의 락카페에서 콧수염 멕시코인이 생각나 화들짝 놀라곤 했는데…
^_^;
내가 코리아라니깐 바로 나오는 한국 말!
“안녕하세요”
호오…
그 말은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제 신선함이 떨어진다굽쇼.
후후후.
날 뭘로 보고…
“이뻐요”
후후후…이정도야 길 가다가 미친 듯이 들었단 말씀.
“감사합니다”
오….제법 하는데?
“아파요”
헉?
-_-;;;;
이때 모두들 웃으면서 따라 한다.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메아리처럼 여러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아파요 공격!
마지막으로 씨익 여유롭게 웃으며 하는 한마디.
“사랑합니다”
흐메…
그냥 벙쪄 있었다.
고수다 고수….어쩜 저리 한국말을 잘하지?
콧수염아저씨의 사랑합니다 에는 그냥 소름이 짝 올라온다.
어찌나 느끼한지..-_-;
특히 아파요 는 마사지 선생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오기 전에 왔었던 한국인 연수생들이 어찌나 길을 잘 딱아 났던지…
ㅋㅋㅋㅋ
그 심정 이해는 가는데 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조금!
재밌잖아요^^
땡큐!
오늘은 어제보다 더 독특한 자세를 가르쳐 주는 뚬 티쳐.
적응할 틈새도 안 주고 어느새 진화를 마친 마사지군…
마사지 군 우리 사이에 너무한 거 아냐?
이렇게 진화를 거듭하다 나중에는 어떤 괴물이 되어 나올지 겁이 난다.
으으…
죽겠다.
현지인이기 때문일까 파는 정말 잘 따라 한다.
나중에는 자기가 나의 선생인양 나를 지도할 정도였다.
-_-;
그래 나 순서 다 까먹고 다 틀렸다.
안 되는 걸 우짜라고…
마지막 날에 테스트를 한다고 하는데 영 자신이 없었다.
다나카상에게 테스트를 통과해야 증을 준다는 소릴 듣고 비로소 경악한지가 몇 시간 전.
머리도 안 따라주고 몸도 안 따라주고 죽을 맛이다.
어제 했던 것만 일단 한번 반복하니 벌써 어깨가 쑤신다,
팔은 내 팔이 아닌 것처럼 무늬만 그렇게 덜렁덜렁 달려 있는 듯하고 특히 엄지손톱이 빠질 듯이 아프다.
한대 치면 쓰러질 것 같이 비리 비리 하게 생긴 파는 아주 멀쩡했기 때문에 진짜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고 그냥 이를 악물고 했다.
쟤는 국수에도 설탕 타서 먹는데 왜 저렇게 살이 안 찌는 것일까.
아 짜증이…
그렇게 수업이 마치고 드디어 다리를 질질 끌며 53번 버스를 탔다.
빈자리가 없었는데 나에게 어느 분이 자리를 양보한다.
-_-;;
나이도 나보다 많으신 분이다.
내가 그렇게 지쳐보였나?
물론 얼굴 판데기가 매우 두꺼운 나는 웬 떡이냐 하고 땡큐 한 번 날려주고 냉큼 앉았지만..
앉아서 가니 참 좋다.
버스에서의 시선 집중도 얼굴이 철판이 되어가는지 이젠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
버스 문이 열리면 누가누가 타나
여자가 탈까 남자가 탈까 하며 시덥찮은 생각이나 지루함을 달래고 있는데 어느 정류장에서 노란 가사를 입은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스님이 오르신다.
헉.
스님이 올라서자 마자 그 순간 바로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 주는 늙은 할아버지.
스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무표정하게 그 자리에 앉는다.
고맙다고 인사도 안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주위사람 모두가 그런 것쯤 원래 일상사라는 듯이 태연한 것이다.
심지어 어느 아주머니는 살아있는 부처라도 본 것처럼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한다.
정말 대단한 불심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스님들은 공짜로 버스를 타는지 오라이 언니가 표 끊으라고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_-;
이제는 오라이 언니가 알려주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잘 내린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방에 들어서니 그냥 침대로 몸을 날렸다.
씻기도 귀찮고 만사 다 귀찮았다.
억지로 몸을 한번 헹궈주고 침대에 몸을 걸치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갑자기 너무 피곤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또 그렇게 기절 같은 잠에 빠져 들었다.
내일은 어떤 진화된 마사지를 배울꼬…
혹시 무한 진화 아냐?
-_-;;;
갑자기 왜 포콋몬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