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미소를 만나다-둘째날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천사의 미소를 만나다-둘째날

우이호이 0 1116
어젯밤. 몇 번을 자다깨다를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쇼파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을 많이 의식해서 그랬나보다. 게다가 공항은 너무 추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항공담요를 잠시 빌려(!)올 걸 그랬나보다.

 

역시 노숙도 둘이 즐거운가?

할 수 없잖니... 대신 더 많은 자유를 얻잖아..

 

결국 새벽 4시반에 화장실에 가서 씻고, 공항 1층에서 3층까지를 배회하다가 3층에는 의자가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2층에 와서 30분 정도 잤다가 체크 인하고 이민국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출국 신고서가 없다.

 

지난 밤 항공사 직원은 내가 이미 공항세를 냈다며 공항 밖으로 나가기를 권유했었는데..

 

"내일 아침 비행기라서, 나 여기서 하룻밤 보내야해요.."했더니,

 

"여기엔 누워있을 의자도 없고 밤이 되면 아무도 없을텐데요? 이민국 지나서 나가면 쉴 곳이 있을거에요." 하고 말해주었다.

 

아무튼.면세점을 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둘러보았다. 점원은 왜그렇게 많은건지... 따라붙는 사람마다 중국어를 해서 하나도 못알아듣겠다. 내가 타이완 사람으로 보였나보다. 겸연쩍은 미소로 살짝 고개로 인사를 하고 빠져나왔다.

 

그나저나 기력이 소진되었나보다. 배가 고파서 그런것 같다. 아아- 나의 한달 여행은 어떻게 펼쳐질까?

 

기내다. 담요 잠시만 빌려갈께요.  선반 위에 올려놓은 담요 하나를 챙겼다. 에바 항공 마음에 든다. 좌석마다 모니터도 있고 최신식이다! 앞으로 3시간 정도 걸리는구나..거기 시각으로 오전10시 45분 도착. 좋아!

 

12시 반 경.

공항에 도착해서 이민성 통과. 하지만 호객행위에 날치기에 엄청 겁을 먹은 나는 쉽사리 출국장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가방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열쇠 아니 자물쇠를 지퍼 두 개에 잠그고, 남방을 벗고 반팔위에 조끼를 덧입었다. 당연히 조끼안에 크로스백!

 

긴장하고 나왔더니 한 사람이 "택시?" 하길래 "노우~"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버스 찾느라 어리벙벙하니까 또 누가 "택시?" 그것뿐이었다.

 

계단으로 내려와 버스티켓 100밧 (우리돈 2,500원) 그런데 이런..

1000밧짜리 밖에 없다. 다행히 거스름돈을 받고 버스위에 올라 맨 앞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옆에는 버스 차장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내 뒷자리에선 서양남자가 건너편 현지인같은 여자에게 수작을 걸고 있었다.

 

뒤늦게 탄 내 앞쪽에 걸터앉은 두 서양커플. 여자애가 남자아이 팔짱을 한동안 끼고있다가 슬그머니 뺀다. 하긴..이렇게 더운날 껴안고 싶겠어? 남자애는 아까 무심한 듯 가만히 있었던 게 미안했던지 제정신(!)을 차리고 여자의 어깨를 감싸준다.

 

혼자가 편한 무더운 날이다.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렸을까? 카오산 로드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려잠시 정신을 놓고 있다가 '카오산 로드'라고 써있는 작은 표시판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니 '뉴씨암2' 라는 게스트 하우스.

 

지도를 보고 찾아간 곳은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
바깥에서 살짝 보니, 한국사람들이 당구를 치고 있다. 마치 신참내기마냥
그냥 겁이 난다. 잠시 서성이다가 입구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도미토리 100B. 라오스까지 가는 버스도 예약했다. 오늘 떠난다고 하니, 주인 아주머니는 짐을 저쪽에 두라고 하신다. 하지만 전 샤워가 절실한걸요? 친절한 아주머니는 샤워만 하면 30밧을 받겠다고 하시지만.. 제 공간이 필요한걸요? ^--^

 

4층에 안내를 받고 올라가니 2층 침대밖에 자리가 없다. 하나 골라잡고 보니 마침 태국 아주머니께서 청소를 하고 계셨다. 웃는 얼굴. 그리고 옆에 앉아있던 한국여자아이, 미리에게 인사를 했다. 호주에서 말레이시아를 거쳐 여기 방콕까지 왔단다. 딱 내가 생각했던 코스를 이 아이는 밟고 있는거다.

 

우선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열악하다. 아- 드디어 내가 방콕에 온거로구나. 물에서 먼지같은게 섞여 나오는 것만 같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일기를 쓰다가 배고프다는 미리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걷다보니 갑자기 쏟아지려는 비. 비를 피해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가서 sweet & sour chilly pineapple 어쩌구를 주문(25밧)했다. 그리고 물 20밧(이제 생각하니 비싸군.) 맛있었다!! 이 믿을 수 없는 가격이라니! 그래 여긴 방콕이다.

 

미리는 옆테이블 남자의 닭요리를 쳐다보다가 뭐나고 묻더니 결국 옆가게에 가서 같은 음식을 사와서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하는 짓이 귀엽다. 성격도 시원시원한게 마음에 드는 아이다. 혈액형을 물으니 오형. 내 그럴 줄 알았다!

 

미리의 여행담을 들으며 나의 여행은 어떻게 펼쳐질까..나도 그만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현지인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대답없는 물음을 던진다. 두고 볼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미리를 따라서 우체국으로 향했다. 미리는 베트남까지 거쳐서 중국으로 들어가서 배 타고 한국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것도 언젠가 내가 해보고 싶은건데! 난 우와우와를 연발한다.어쩜 그렇게 같을 수가 있냐면서...

 

우체국으로 가던 길에 파인애플 반쪽을 샀다. 아주머니는 능숙하게 파인애플을 조금은 딱딱한 플라스틱백에 넣으시더니 칼로 뚝뚝 한 입 크기로 잘라주신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 급하게 우체국에 들어가 에어콘 바람을 맞으며 파인애플을 길다란 나무꼬치로 찍어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다시 카오산 로드. 월요일은 노점상이 쉬는 날이란다. 그래도 몇 몇 노점상이 눈에 띤다. 슈퍼마켓에 가서 샴푸와 린스,로션,휴지 등을 샀다.

 

출발하기 삼십 분 전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이런..길거리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다. 세수만 간단히 하고 짐을 챙겨 내려왔다. 그런데 이런이런! 비가 내리고 있다. 엉엉 ㅠ_ㅠ

 

의자에 앉아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버스가 숙소앞까지 온다는 건 순전히 거짓말이었다! 픽업하러 한 아저씨가 오셨고, 얼마나 걸었는지..여기서 출발하는 나 이외에 다른 한 아저씨는 빗 속을 걸어 그 아저씨 뒤를 졸졸 따라갔다. 장장 10여분을!!!

 

그리고 기억난 내 운동화. 이거 큰일이다.

어느 숙소앞에 도착해서는 아저씨에게 말하니 괜찮다며 가서 찾아오란다. 슬리퍼를 신고 뛰었다.

 

숙소도착.

"어 왜 또 오셨어요?" 아까 안내해 준 사람이 묻는다.

 어디있지? 가만가만 정신을 차려라. 숨을 가다듬는다.

생각의 연결고리를 찾아라.

 

아차! 아까 안내받으면서 신발을 벗고 올라왔던 것이다. 이번엔 운동화로 갈아신고 슬리퍼를 들고 뛰기 시작했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그래. 추억 한 번 제대로 만들기 시작하는 나. 잘났다 잘났어.

 

내가 도착하니 다시 어디론가 떠난다. 뭐야뭐야..한참을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니 도착한 다른 게스트 하우스. 게다가 이런 8시 출발이란다. 앞으로 2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는 말.

 

시간관념 확실하다는 서양애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관례(?)에 얘들도 익숙한가보다. 별 불평도 없다. 나 역시 화는 안난다. 이미 들은 바가 있어서 그런건지 오늘의 나쁜(?) 운을 받아들이기로 한건지... 어쨋든 운동화는 찾았으니 좋은 운인거야! 하고 테이블에 앉아 일기쓰기를 시작했다.
 

0 Comments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