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냄비에서 방콕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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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냄비에서 방콕 냄새가..

barley 0 1534
엇 갑자기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60년대..우리나라 대한민국, 5일장이 번성하기 시작할 그 언제 즈음에,

가난한 국민들은 누구나 필요한 생필품을 구할 수 있었을 법한 면내 읍내 장터들, 아마 짐작컨데 그 당시의 5일장 가장자리 한켠 마다에는 넓직한 천막 식당들이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 때 시장터 천막 닭계장 국밥집에선 아마..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이런 냄새가 나지 않았을까?  약간은 어딘가 모르게 미세하게 비릿한 듯... 적당히 구수한 듯...

70년대 초에 태어나 운 좋게도.. 아주 운 좋게도 가난을 배웠고, 그 가난 속에서만 맡을 수 있는 아주 귀한 냄새를 나는 배웠다.

그땐 고깃국에 이밥이면 부자소리 듣었다.


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면내 장터에서 폴폴 풍겨나오는 각종 먹거리들의 냄새...지난한 삶의 허기를 떼워 주던 바로 그 먹거리들, 맨 밀가루에 삭카린 몇알 떨어뜨려 물과 막걸리 조금 섞어 구워 내던 십원에 열개를 사면 그위에 그 귀하다는 설탕을 맛깔나게 뿌려주던 국화빵,

한여름 더운 날씨에 줄줄 녹아 내릴까봐 밀가루로 아예 인절미 처럼 반죽을 해 버린채 팔고 있던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 철커덩 턱 철커덩 턱.

뻥이요! 한마디에 온통 하얀 연기바다를 만들어 대던 튀밥

아마 그런 냄새를 폴폴 풍기던 나의 유년시절 70년대 후반의 먹거리들이 60년대에도 고스란히 있었겠지...

80년도가 아동의 해라면서 육영수 여사 큼지막하게 기사로 실리고 표지엔 서울아이 멋드러지게 멜빵 바지 입고 폼 잡고 있던 사진...[어깨동무]
 종례시간에, 어깨동무 몇권 들고 들오어신 선생님...

 곤충채집통 선물로 준다고 꼭 사야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어깨동무]를 펼쳐 보이시던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얄미웠던 건지 그걸 사 줄 형편이 못 되시는 부모님이 얄미웠던 건지. 투덜 대던 그시절

딴나라 애들 일 거라고 그렇게 믿었던 그 잡지책 안의 희안한 요지경 세상이....

사실은 내가 몸 담은 가난에 찌든 어느 시골세상이 거짓이고 그 잡지책 안의 멋드러지고 번들거리는 도시세상이 내가 몰랐던 그때 당시의 진실이었음을....지금도 나는 혼동할 때가 있다.

그때의 나는, 잡지책에서나 도시를 알았고, 현실의 어린 나는 가난을 몸으로 배우는 유년에 불과했다.

뒤주 단지 안 보리쌀 겨를 박박 긁어 모아 다시 채로 곱게 쳐 내려 쑥이랑 함께 섞어 빻아 잘 반죽한 뒤 배고파 우는 막내 아기 등에 업고 달래가며, 꼭 등에 업은 아기 손바닥 만하게 납작하게 빚어 내어 가마 솥에 채반 얹고 쪄 먹던 보리개떡 익는 냄새를 배웠고...

일년에 한 두번 있었을까? 무슨 무슨 아주 큰 집안 경사가 닥쳐 와야만, 기름종이에 곱게 싸  오신 바알간 돼지고기 반근... 그 귀하디 귀한 돼지고기에 나는 유난히 알러지 반응을 일으켰다. 왠일인지, 보글 보글 끓고 있는 돼지고기 찌게 냄비에서 폴폴 피어 오르는 그 냄새만 맡아도 속이 니글거렸다.
역시 가난한 시골아이는 함부로 돼지고기를 먹어서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무언가 메쓰거운 듯.. 역한 듯한 그리 유쾌하지 만은 않은 약간의 미세한 비릿한 내음...아마 내가 70년대 장터 천막식당에서 맡은 냄새보다 더 짙은 내음이 60년대 우리네 시골 면 장터 천막식당에서 나지 않았을까...?

아뭏든.. 그 묘한 가난이 냄비속에서 끓고 있는 듯한 냄새.. 그 냄새...

어느 해 였던가. 마악 2000년이 시작된 그해 였던가... 그 즈음에...난생 처음 낯선 이국 땅이라고 밟아 본 일본.

부자나라인 줄만 알고 갔다가,
 가난뱅이 일본 사람들의 바쁜 종종 걸음들을 멀찌감치 지켜보면서 부자가 무엇인지.. 경제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돈은 어디로 달아나 버린건지...

경제대국 일본 땅, 가난뱅이 국민 일본인들..그 삶에 황당함을 뒤로 한 채 곧바로 당도한 태국 땅...

거기서 내가 냄새맡고 만져보고 밟아 본 그 태국 땅이 ... 내게 그리도 그곳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유년시절의 그 맛들을.. 그 냄새들을 십수년이 지난 그날 낯선 땅 태국에서 다시... 내가 눈으로 볼수 있었기 때문이란걸, 다시 코로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란 걸 오늘 깨달았다.

오늘 저녁 나는.

냄비에 냉동 닭 한 마리 집어 넣고 얼려 있던 생강과 마늘 한웅큼 넣고 편리하게 삼계탕 끓이라고 당귀 대추 등 약재 넣어 2000원에 파는 무늬만 삼계탕... 아니 당귀탕재료를 같이 넣고 한참을 끓이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방콕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70년대 시장터 먹거리 천막냄새가 났다.

그랬을 것이다. 그랬을 지 모른다.

보잘것없는 조그만 거리 행상으로 수레를끌며 밥집을 하는 그들이...신선도와 음식의 질을 따져가며 길거리에서 음식을 팔리는 없을 것이다. 궁하고 핍하게 녹록지 않게 삶이 마구 마구 덤벼들고 있을 때 밑으로 딸린 자식새끼 줄줄이... 저 야윈 젊은 부부 둘은 용기를 내서 길거리 포장마차 식당이라도 해서 어찌어찌 밥벌이라도 해야 겠다 다짐했을 터이고, 대충 대충 신선해 보이고 이왕이면 값이 싼 생닭 만을 고르고 또 골라 돈 사서.... 커다란 냄비에 던져 넣고 푸욱 과서 밥위에 얹어 내 놓고 30바트 40바트에 한끼 식사로 팔았을 것이다.

실롬로드 저 야윈 두 부부는.. 아마도..

그러다 하루가 마무리 되면 얼음 넣은 아이스 박스에 남은 고기 잘 보관해서 다음날 다시 함께 고아 손님상에 얹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네 60년대 70년대 오일장 장돌뱅이 천막 식당 할매들이 그러했듯이...

냉동닭과 함께 삶겨지는 삼계탕 약초 냄새와 어울려서 인지...

오늘 밤 내가 고아대는 냄비 속에서 꼭 그런 냄새가 났다.

이것은 방콕 냄새... 이것은 70년대 장터에 맡았던 그 냄새... 아하..그래서 방콕 거리의 음식들이 이런 냄새가...

오늘은 꼭
실롬 거리의 디제이스테이션에서 열심히 춤추고는 허기진 배를 끌고 길거리로 나와 그 골목 앞에 있던 닭고기 덮밥을 먹는 기분... 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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