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에서 만난 야전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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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에서 만난 야전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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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뚜짝에서 월텟으로 가기 위해 BTS를 탔다.

자리가 없어 서서 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낯익은 군복이 눈에 띄었다. 옆의 동료도 보았는지 날 툭툭 치며 "김현태" "김현태" 한다. 낡은 육군 야전상의에 이름이 선명하다. 김 현 태.

씨엠리업에서 '투쟁! 노동조합!' 조끼를 많이 본 지라 별 감상은 없었다. 한국에서 수거된 옷이 캄보디아나 베트남으로 많이 간다는데 방콕에도 있네 하는 심정이었다.

어느 역에선가 빈 자리가 생기고 '김현태' 야상을 입은 태국 사람과 옆자리에 앉게되었다.

"혹시 대한민국에서....?"
말끝을 흐리는 어눌한 한국말이 옆자리 태국 사람에게서 흘러나왔다.

완젼히 풀어질 대로 풀어진 여행자 차림과 자세로 앉아있다 순식간에 서울 지하철을 탈 때의 자세와 정신상태로 돌아왔다.
"네, 한국에서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일하신 적이 있으신가 봐요? 한국말 잘하시네요"
"한국에서 3년 일했어요. 한국사람 착하고 좋아요. 한국 좋아요"
"태국사람도 좋아요. 친절하고 착하고 너무 좋아요"

BTS 같은 칸에 타고있던 사람들 중 반 이상이 우리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너무나 불안해졌다.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이 지금 이 사람에게 상처를 줬을까? 얼마만큼이나 매맞고 얼마만큼의 돈을 못받았을까?'
솔직히 두려웠다. 내가 아는 한국사람의 악행이 모두 이사람에게 가해진 건 아닐까. 여기서 이 사람이 나 한국에서 매맞으며 일하다가 돈도 받지 못했어요라고 소리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는 나와 얘기를 시작할때부터 절대 나쁜 기억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아줌마 좋아요. 배아파요라고 말하면(배고파요라고 정정해줬다) 배고파요라고 말하면 밥을 계속 줘요"

'아~ 우리가 이사람을 배고프게 만들었구나! 왜 넉넉히 먹여주지 못하고 일을 시켰을까'
괜한 자책이 들었다.

그는 안산에서 부천에서 시흥에서 서울 주변 위성도시를 돌며 3년간 일했다고 한다. 이싼의 집에 홀로 있는 딸을 생각하며 돈을 벌었다고 했다.
'아니~ 왜 이렇게 이싼은 가난한거야. 마사지 가게의 실력있는 20살짜리 아가씨도 이싼출신, 버스 안내양도 이싼 출신, 술집에 팔려오는 10대 후반의 소녀들도 이싼출신. 이싼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땅이란 말인가'
괜한 감상이 들었다.

"돈은 많이 버셨어요? 근데 왜 3년만 계셨어요? 좀 더 계셔서 돈 마니 벌지 않고"
괜한 질문이었다. 내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잘못된 질문이었다.

수갑을 차는 시늉을 하며 그가 말했다.
"불법이라 잡혔어요. 그래서 왔어요"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의 한국 칭찬은 끊이질 않았다.

그는 훨람퐁으로 간다고 했다. 이싼에 홀로 있는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했다.

어느 역에서 나는 내렸다. 내리기 전에 그 사람에게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반가웠다고 건강하시라는 인사와 함께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그의 손의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버릴 것만 같았다.
 
BTS의 문이 닫힐때 그에게 손을 흔들며 홀로 있는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11 Comments
강쥐 2005.05.02 17:41  
  동남아시아 사람이 한국말 하면서 한국에서 일했다고 하면 갑자기 두려워지죠...지은 죄가 많아서..
고구마 2005.05.02 18:10  
  한국에서 좋은 경험 가지고 태국으로 돌아갔다니, 두루두루 잘됐네요. 불법체류 라서 잡힌건 어쩔수 없는 부분이고....3년간 돈 떼이거나 하는일 없이 꾸준히 벌었다면 그 아저씨네 형편도 꽤 나아졌을듯 하네요.
2005.05.02 18:57  
  처음 외국인 근로자 들어올때
일부 악덕업주들만 부각되서 그래요.
좋은 업주들은 TV에 안나오잖아요
태국인 근로자들 대부분 열심히 일하고 구타하거나 욕하는 한국사람들 별로 없어요.
오히려 한국사람들이 외국인만 우대한다고 파업하는 공장도 봤어요.
공장에서 외국인들 없으면 문 닫아야 되요.
그래서 대우도 좋아요.
물론 공장 안되서 망하면 그땐 어쩔수 없지만 외국인들이 더 성실하니까 망해도 외국인 월급부터 챙겨주는 업주들 많이 봤어요.
헤라 2005.05.02 22:00  
  눈물나요. 님 글 읽으니...

우리도 모르게 편견에 의해서 서로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건 부인못할거예요. 특히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저는 오늘 괜시리...카오산에 넘쳐나는 서양인들 보면서 미웠어요. 지네가 여기 왕인줄 아는 것같은 저 거만함...

오면서 홍익인간 근처 술집에서 어떤 양코배기 3명과 태국인 아가씨 3대 3으로 미팅하는거 봤어요.

왜케 하얀 얼굴 인간들이 미워지죠? 오늘~

태국 사람들 너무 순박하고 좋아요. 우리도 외국인 노동자들한테 정말 잘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봄길 2005.05.03 00:19  
  명님, 이전에 명님 맞으시죠. 이사하고 집들이 하시던(?)... ㅁㅏ음이 와닿습니다. 태국에 계신가보죠. 꼭 보고싶은데... 마음이 고우신 분들. 남자라도 그런 분들이 소중하게 여겨지는건 제가 사는 세상이 너무 살벌하다고 여기기 때문이겠죠. 내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이 세상이...
차라도 한번 하죠. 언젠가.
Bua 2005.05.03 02:21  
  전 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려고 노력은 합니다.
저희 동네도 동남아에서 오신분들  계시던데,TV에서 하도 안좋은 얘기들을 듣다보니 눈마주칠때 마다 제가 죄지은 기분이 들더군요.
가끔 다가가 묻고 싶습니다... 특히,직장에서(돈이 관계됌으로) 부당한 대우 받고 계신건 아닌지... 조만간 진짜로 물어볼래요. (이상한 사람 취급받더라도 ㅠㅠ;)
주니애비 2005.05.03 10:23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는 태국근로자들이 10여명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합법적인 최대한의 기간 3년을 채우고 7명은 귀국하였고 4명이 계속 근무하고 있습니다. 월급여는 매월 100~120만원 정도이며 숙식은 제공합니다.
근무중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하면 회사부담으로 병원치료를 하고 몸이 아파 쉬는 날이라도 급여는 지불합니다.

매스컴에서 떠드는 제3국인 근로자에 대한 부당대우는 대부분 합법적인 테두리를 벗어난 불법체류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일부의 악덕고용주의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근무하고 있습니다. 죄지은 마음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낙화유수 2005.05.03 13:34  
  주니애비님 글이 동남아 근로자들에 대한 우리 한국의 정서를 대변하는 사실적이며 실제적인 상황일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어디에서나 음지에서 태동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부의 사연은 심정적인 면에서 더욱 동정적으로 각광을 받게 마련일 것이니........
한마디 2005.05.04 03:06  
  명님 벌써 돌아 오셨어여?
매운어포 사오셨져~~~!!!
2005.05.04 11:14  
  이주노동자 (외국인근로자라는 말보다는 이주노동자라는 말이 그들의 위치를 더욱 정확히 나타낸다는 점에서 이 단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들은 주니애비 님 회사같은 좋은 회사를 만나지 못한다면 아주 어려운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은 구조적, 제도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습니다. 월급을 못받아도, 관리자가 폭행을 해도, 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작업장이라도 묵묵히 참고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거기에 항의라도 했다가는 1년째 되는 날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에 오기위해 빌렸던 700만원~1,500만원에 달하는 빚과 함께 한국에 오기 전보다 더 힘겨워진 생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계약이 갱신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어떤 고통과 어려움도 참고 견딥니다. 한국에 오는 순간부터 그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단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만약 벗어난다면 바로 불법이란 딱지가 붙습니다. 불법외국인근로자란 딱지가.

지금의 현실은 말 잘듣는 노예로 조용히 3년간 죽어라 돈만 벌다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불법이란 멍에를 쓰고 출입국관리국 직원들의 눈을 피해 숨어살거나 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잡혀 집단 수용소에 있다 목을 매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우리가 필요해서 부른 이주노동자들을 언제까지 써먹다 버리는 일회성 소모품으로 대할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얼마전 노말헥산에 중독되어 하반신 마비가 진행되고 있는 태국여성 노동자들을 감금하고 있다가 몰래 한명씩 출국시킨일이 발각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2005년 2월의 일입니다. 한국인은 절대 들어가지 않는 독가스가 꽉 찬 작업장에서 하루 12시간 일했던 태국여성노동자들의 월급은 식대포함 68만원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둘씩 하반신 마비로 쓰러지자 치료해주기는 커녕 하나씩 태국으로 다시 버려버렸습니다.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가 이주노동자들을 이땅에 들어오게 한다면 그들도 하나의 인간으로 정당한 대접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람은 주니애비님 같은 사람들로만 이뤄져 있지 않기때문입니다.
아부지 2005.05.04 20:23  
  전에 외국인들이 자격도 없이 울나라에서 영어가르치며 불법으로 일하는거 추적60분인가 나왔을때..그때 동남아시아사람들이 일하는곳에 공무원들 출동해서 동남아분들은 도망치고 울나라공무원들은 무턱대고 때리고 수갑채우고..그런거 나왔었죠. 불법아닌 노동자였는데도 그사람은 겁이 나서 도망쳤고 확인하기전에 때렸고..그거보면서 어찌나 화가 나던지..다만 같은 공장의 책임자이신듯한 분이 마구 화를 내시면서 이런법이 어디있냐고 하시더군여. 그래서..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때리고 왕따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그런 모습을 본게 아니라서 너무나..다행이라고 생각했어여. 저도 태국에서 한국에서 일했다거나..이런분 만나면 가슴 한구석이 뜨끔합니다. 이러지 않을날이 언제 올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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