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벙이부부 배낭(종회 9-10. 이층버스 풍경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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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벙이부부 배낭(종회 9-10. 이층버스 풍경 외)

꺼벙이 7 1555
9. <이층버스 풍경>

 □ 치앙마이(09:00 발) - 방콕( 19:40분 북부터미널 착) - 방콕 숙소: Mango Lagoon Place -        쨔이디 맛사지- 카오산

밤새도록 바지춤을 잡고 늘어지는 처자들(어젯밤 무대에서 전통춤을 추던 여인) 때문에 귀국 비행기를 놓치는 꿈을 꾸었다. 잠들기 전 골몰했던 버스표 때문이었나 보다.
곰곰이 머리를 굴려 봐도 뭔가 잘 못된 것 같다. 분명히 시간표에 적혀있는 09:00발 VIP 버스티켓을 예매한다고 했는데, 숙소에 와 비교해 보니 분명히 200b 이나 싸다. ‘장사가 안돼서 요금을 깎아주나’. ‘혹시 잘못 알아듣고 2등 버스표를 준 것은 아닌가.’

07:00시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식사도 생략한 채 터미널로 향했다.
밥줄 걸린 귀국일정 때문에 내 진즉 치앙마이의 유혹을 싹둑 잘라 버렸다고는하나, 막상 다시오기 힘든 발길을 돌리려고 맴이 저민다.

뚝뚝에서 내리자마자 황급히 어제 예매한 창구를 찾아갔다.
혹시라도 교환이 가능하면 일찍 손을 써야 한다. 10시간이나 소요되는 장거리 버스에서 다리도 제대로 못 펴고 가는 불상사가 생기면 큰일이다. 시간이 너무 이른 탓인지 많은 매표창구 가운데 오로지 한 명의 언니가 지키고 있었다. 퉁퉁한 덩치에 빨간 입술을 칠한 말총머리 뚝순이(?) 언니는 한가하게 손톱을 갈고 있었다.

나는 만연의 미소를 지으며 창구에 표를 내밀었다.
“이 티켓에 대해서 아십니까 ...”
뚝순이 언니는 표를 쳐다보는 것은 고사하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짤막한 한마디를 던졌다.
“아이 돈 노, 아이 돈 노”  무슨 말을 물어봐도, 오직 그 말뿐이다.
그래, 이 뚝순이 영어 배운거 밑천 드러날까 봐 그러는 게지.

방콕행 이라고 적혀있는 창구와 타는 곳, 어디에 가서 물어도 뚝순이 창구를 가르쳐 준다.
다시 뚝순이 창구로 갔다.
“아이 돈 노”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똥 싼 놈이 큰 체’ 한다는 말은 바로 뚝순이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아서라. 터미널 내 경찰부스에 가서 티켓을 내밀고 물어본다.
“32인승 1등 버스다. 타는 곳은 27번에서 기다려라” 자세하게 가르쳐 준다.
한국말 모르는 뚝순이 하고 입씨름해서 24인승 타느니 포기하고 말자.
영문도 모르고 혼자 기다리던 아내는 뭐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지청구를 해댄다.
‘아, 싸나이 불타는 이 가슴을 어이 알랴’

아침부터 속 터지는 해장 말발을 세웠더니 국수 맛은 더 좋다. 여유 있게 식사도 하고 주변도 둘러보며 맺힌 매듯을 풀어본다.

출발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승객은 우리 포함한 4명뿐이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이러다 승객 없다고 출발이 취소되는 것은 아닌가. 노선버스가 그럴 리가 있나.
버스는 정시보다 10분 늦은 09: 20분에 출발했다. 걱정했던 버스는 의외로 좋아 보였다. 더구나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32인승 좌석에 승객은 열 명에 불과하여 좌석을 충분히 눕힐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출발하자마자 안내양 ‘맨발언니’의 서비스가 시작된다. 체중이 조금 나가는 ‘언니’는 반듯한 제복을 입은 것 까지는 좋은데 발은 맨발로 다녔다. 밀크샌드과자와 사과쥬스팩으로 시작해서 수시로 차안을 오가며 물과 얼음음료수를 날라다 준다.     
차안에는 유일하게 외국인은 우리들 뿐 이어서 그런지 조금은 신경을 써주는 것이 고마웠다.

계획에 없던 먼 길을 돌아오느라고 분주했던 여정과 아침소란으로 불탔던 가슴이 녹아 내려서 그런지 긴장이 확 풀어진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너른 평원과 드문드문 이어지는 조용한 마을들을 연실 뒤로 보내며 내 몸이 달리고 있다. 달리는 도로 중앙분리대 공간에는 정원수로 조각한 많은 동물, 새의 형상들이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정지해 있고 차창의 그림이 화면 속으로 바르게 지나쳐 가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이내 한 낮의 더위는 차창을 투과해 넘어 오고 긴장이 풀어진 몸으로 잠이 몰려온다.

팔을 건드리는 ‘맨발 언니’의 인기척에 잠이 깼다. 찌는 더위에 마스크까지 착용한 폴리스(경찰)가 검문을 하고 있다. 뒤쪽부터 거쳐 온 ‘폴리스’는 우리의 여권은 표지만 보고 돌려주었다.
그러나 폴리스는 마약이라도 발견할 듯이 저 만치에 있는 우리의 배낭을 만지작거리며 입구를 찾고 있다. 나는 흰 밀가루 분말 봉지라도 하나 꺼내줄듯 선 듯 다가가니 그냥 지나쳐간다.
‘폴리스’는 앞자리 자국민 소녀의 티켓을 쥐고 내렸다. 소녀들은 작은 짐을 들고 어디론지 사라졌다가 한 참 만에 돌아오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5시간을 내리 달리던 버스는 휴게소(PTT: 주유소를 겸한 휴게소 체인 인 듯 함)에 정차했다. 
달리는 버스 내에서도 생리적인 볼일은 해결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는 조바심이 보통이 아니다.

먼저 내렸다가 다시 올라온 ‘맨발언니’는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와서 밥숟가락을 입에 대는 흉내를 내며 ‘30분’ 이라고 했다.
우리는 한참 눈치를 살피며 돌아보았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 입맛대로 음식을 고르고 있다. 우리는 뷔폐식 덮밥 식단에 줄을 섰다. 그때 다시 나타난 ‘맨발언니’가 우리에게 오더니 티켓을 보이며 자르는 시늉을 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예매할 때 매표소 직원이 티켓 뒤에 부록으로 붙은 쿠폰을 가르키며 열심히 설명하던 것이 점심 쿠폰이라는 것이었구나.
그 북적이는 휴게소 테이블 중에 자기 버스 손님은 어떻게 알아보는지 ‘맨발언니’는 일일이 승객을 찾아다니며 얼음물을 제공한다.
이날 ‘맨발언니’로부터 받은 서비스는 과자와 쥬스를 포함해서 콜라, 사이다, 물, 핫커피, 태국 전통차(자스민 향), 물수건 까지 다양한 이색 버스서비스를 경험했다.
 
다시 뜨겁던 태양의 기세는 시들어가고 사람들의 움직임, 차량의 행렬은 늘어간다. 방콕이 다가 올수록 휴일의 차량은 늘어갔다. 반대편 차선까지 열어가며 방콕에 도착한 시간은 하루가 다 저물어 어두워진 9시, 12시간이 걸렸다.

북부터미널에서 방람푸까지 400b에 호객하는 택시를 물리치고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승강장은 택시를 타려는 손님들이 잔뜩 몰려있다. 차례를 기다리는 줄도 없고 어느 통로의 줄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순서도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 하나보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그들 모두가 서두르거나 급하게 뛰어나가 가로채는 모습도 없이 무심하게 기다리고 있다. 마치 어디로 갈지 마음을 정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무표정한 모습이다.
오히려 서두르는 나의 행동이 머슥해 진다.

대한민국 새치기 본성은 신기한 듯 구경을 하다가 슬며시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 택시 잡아탔다.
나이 지긋한 노인기사는 새치기로 승차한 우리에게도 아무내색도 없이 묵묵하다. 고속도로로 가자는 말도 없이 정체되는 도로를 피해 좁은 도로의 이면을 돌아 방람푸에 내려준다. 긴 운행시간에 비하면 120b의 요금은 조금 미안할 따름이다.

도착하던 날 묵었던 ‘람푸하우스’는 풀(full)이었다.
‘쏭크란’ 축제 때문에 방 잡기가 어려울 것이라던 동대문 사장님의 조언이 맞았다.
하는 수 없이 몇 군데를 둘러보다가  ‘망고’에 짐을 풀었다. 예상외로 일정 중 묶었던 어떤 방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여보, 이제 저잣거리 입맛 좀 바꾸어 봅시다.”
“그러지 뭐, 뱃속에 남의 살 좀 한번 채워 봅시다.”

그러고 보니 내내 시장만 뒤지고 다니며 국수로 연명을 한 셈이었다. 작년의 실패를 만회하려고 음식에 있어서는 토를 달지 않던 아내는 집에 갈 때가 되자 조금 서운했던 모양이다. 
오늘만 해도, 종일 차만 타고 이동하느라고 제대로 음식구경도 못했다.
그러나 근사한 저녁을 약속했던 계획은 역시 계획에 불과했다. 버스는 예상외로 늦어지고 몸은 긴장이 풀어져 이미 우리가 운신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넘어서고 말았다.
역시 말뿐이라는 지청구를 면치 못하고 ‘랍스터’는 또 영원한 미궁으로 빠졌다.

“신물 나게 먹어도 질리지 않는 된장찌게나 먹읍시다”
땀을 뻘뻘 흘리고 호호 불어가며 먹는 동대문 된장은 정말 진하고 뜨거웠다. 차갑거나 미지근한 음식에 제법 적응되었던 내 입은 또 수난을 당하고 말았다. 첫날 씨푸드 새우꼬리에 찔린 입이 마지막 된장찌개로 사정없이 허물이 벗겨지고 말았다.(이후로 귀국 후 일주일 동안을 고생함)

손맛에 비해 비속어가 너무하다 싶은 ‘짜이디’ 맛사지의 씁쓸한 기분을 달래려고 거리로 나섰다.
자정이 훌쩍 넘었지만 ‘카오산’과 주변 거리는 여전히 천연색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모여 앉아 병채 나팔을 불고 있는 모습,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어대는 광경도 보인다. 여기저기서 귀에 익숙한 내 나라말도 또렷이 들렸다. 거의 벗다시피한 옷차림으로 도로에 주저앉아 거품을 들이키고 연기를 뿜어대는 남여의 모습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는 너무 무디어진 나의 감정 탓인가.

자유이기에는 조금 어색한 느낌의 발길이 스스로 이방인임을 자처 하는지도 모르겠다.
버거운 생각으로 터덜거리며 돌아가는 아스팔트 포도 위에 빗방울이 툭! 툭! 떨어진다.
‘망고’의 창을 때리는 빗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한 차례의 세찬 소나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10.  한 여름밤의 꿈

  □ 방콕(돈무앙 11:20발 ) -홍콩경유- 인천공항(19: 40분 착) - 대전(11:40착)
  ※ 나가는 글                                                   
새벽 창문을 여니 후두둑! 후두둑! 빗소리가 요란하다.
텃밭에 무성하게 자란 넓은 바나바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살갑다. 일탈의 껍질을 벗고 회귀하는 여행자의 마음을 씻어내는 빗소리처럼 들린다.
떠나 있으니 일탈의 순간도 긴장이고, 일상은 다시 일탈의 그림자를 꿈꾸며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시선의 발견을 가지고 돌아가는 걸음이 생을 이어가는 충만한 삶이어야 하지만 바램 만 큼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주섬주섬 배낭을 꾸리는 손길이 짧은 ‘한 여름 밤의 꿈’인양 아쉬움이 밀려온다.

망고(숙소)를 나서자 숙소 앞에서 기다리는 택시의 호객(300b 에 고속도로)에 못 이기는 척 올랐다. 월요일 러시아워 탓인지 도로는 심한 정체를 빚고 있다. 빗줄기는 더욱 거칠어지고 앞이 잘 안 보인다. 떠나는 우리의 짧은 여정을 못내 아쉬워하는 빗소리가 세차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출발이 늦어졌다.
아내의 주장대로 기내식을 믿고 아침식사까지 걸른 얄팍한 계산에 쓴 웃음이 난다.
만석에 가까운 기내는 예년과는 달리 내나라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굵은 빗줄기를 둟고 상승한 구름 위는 정말 안온하구나. 
구름위에 떠있는 비행기는 비행을 전제로 정착하는지, 정착을 위해 비행하는지 나는 잠시 모호한 자문에 빠졌다. 여행의 긴장과 설레임도 아주 잠깐 동안 이지만 그 기억은 오래도록 일상의 활력으로 남아 줄 수 있을까.

홍콩을 경유한 비행은 점차 빠른 속도로 여행의 틀을 벗어나 일상의 저녁하늘로 영락하고 있다.
날개 끝에 매어달린 붉은 노을 한쪽이 옅은 무지개를 세우며 구름 위를 넘나들고 있다.
저런 자유는 아주 오래전, 태고적 부터 있었겠지.

밤 8시, 김포공항은 인적도 썰렁, 봄을 향한 기온도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맺으며 〉
□ 지금까지 꺼벙이의 장터(시장통) 여행기를 읽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적다보니 조금 감상적인 분위기로 흘러 식상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워낙 제 시야의 각도가 그런 쪽으로만 발달해 있어서 그런가봅니다.

□언젠가는 떠나기를 준비하시는 여러분들!
철저한 정보수집과 준비도 좋지만 지나친 과잉정보는 오히려 여행의 신선도를 반감 시킬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합니다. 열린 마음과 용기만 있으면 지금 출발하세요.
 
늘 즐겁고 알찬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글에 첨부했던 사진에 찍힌 시각은 한국시간이며, 현지시각으로는 2시간의 시차가 있음을 첨언합니다.                      감사합니다.=======
                                                --- 꺼벙한 세상---

7 Comments
거부기 2005.04.19 20:10  
  님의 여행기 맛깔나게 써주셔서 잘 보고 갑니다.
작년에 비해 사모님 애피소드가 많지 않은것으로 보아 사모님이 현지적응을 완전히 하셨나 보네요.^^
너무 서두르지 않으시고 즐겁게 여행하시는 두 분의 여행기에 왠지 제 마음도 흐믓한 이유는 왜 일까요?
다음에도 좋은곳 여행 하시고 따뜻한 여행기 부탁 합니다.
곰돌이 2005.04.19 20:23  
  참 맛깔나는 여행기 감사합니다.
다리 짧은 사람도 좋은 점이 있다는 걸 꺠달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아쉽지요...
님의 말이 맞습니다. 너무 철저하게 정보를 수집하면 재미가 반감되지요^^* 그렇지만 저 같은 단기 여행자는 뭐 하나 삐끗하면 안되기 떄문에 이리저리 정보수집합니다.
내년에도 좋은 여행 하실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원츄]]
수민아빠 2005.04.20 12:46  
  마직막 글은 잘 정리된 한편의 수필같습니다. 혹시 글쓰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것은 아닌지요? 특히 '떠나 있으니 일탈의 순간도~ ' 부분은 예술입니다.    [[원츄]]
슬리핑독 2005.04.20 13:06  
  "떠나 있으니 일탈의 순간도 긴장이고, 일상은 다시 일탈의 그림자를 꿈꾸며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시선의 발견을 가지고 돌아가는 걸음이 생을 이어가는 충만한 삶이어야 하지만 바램 만 큼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몇번이나 반복해서 읽어봤습니다. 제가 본 가장 휼륭한 여행기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님의 여행기를 읽으려면 1년을 기다려야한다는게 못내 아쉽습니다. 건강히 지내시길...
선미네 2005.04.20 17:49  
  맨발언니~ ㅎㅎ 재미 있었습니다. 서비스도 무지하게 받으셨군요. 12시간이라니..끔찍합니다.다음 여행으로 그쪽을 계획하고 있는데..;;
문장력이 정말 예사롭지 않네요. 다음번 여행때 다시 만날때까지 늘 건강하십시오~~~
주종천 2005.04.21 10:34  
  그동안 좋은 말로 격려해주신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행은 계속 되얍니다!~" 
요술왕자 2005.04.25 23:08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곧 다시 좋은 여행 떠날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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