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2014년 7월 여행기--콘캔에서의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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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14년 7월 여행기--콘캔에서의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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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년 전쯤, 제가 한 교회 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항상 여러분에게,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항상 남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쟎아요?

그렇게 남들에게 권유할 수 있을만큼, 저 자신은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네가 정말 너 자신을 위한 기도를 안 한다고?'

라고 저 자신을 비웃게 된 계기가 이번 태국 여행 때에 있었기에, 자아비판 삼아 이 이야기를 해 볼게요.

 

때는 이제 몇 시간 후면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귀국길이었고, 조금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었어요.

저는 무슨 일이었었는지 숙소 쪽을 향해 바삐 걷고 있었고,

바로 그 때 숙소로 들어가는 골목에, 택시 한 대가 불을 깜박이며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어요.

제가 그 택시의 백라이트를 보면서

'하나님, 저 택시가 이 골목으로 다시 나올 때에는 다른 손님 말고 저를 태워가게 해 주셔요. 

제가 꼭 저 택시를 잡게 해 주셔요.  Please, please, please!'

라고 마구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알아채고 깜짝 놀랐어요.

무스은~  너처럼 이기적인 인간이 지금까지 너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냐,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막 하나님을 불러대면서! 라는 코웃음이 저 자신을 향해 나오더군요."

 

 

이것이 5년 전쯤 제가 했던 자아비판이었는데

부끄럽게도 1년 전 콘캔에서의 저는, 이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기적이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또 한 가지 부끄러웠던 일이 있었어요.

저는 원래 감동을 받으면 잘 울기는 합니다.

도이수텝에서 주위에 아무도 없는 때에 갑자기 걸린 무지개를 보았던 때나

모 수영장의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울었던 때도 있고

심지어는 처음 먹어 본 미앙캄이 너무나 맛있어서 울었던 때도 있지만(이건 좀 어이없죠?)

나이가 나이인만큼, 혼자서 여행할 때에 다른 사람이 눈치챌 정도로 울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럴 만한 일이 있어 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1년 전 콘캔에서의 저는, 아주 나중에 나타난 지나가는 딱 한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길거리에서 그야말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소리내어 울고 있었습니다.

여행기가 여기까지 진행되고 보니

아마도 이 부끄러운 기억 때문에 이 여행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유난히 망설여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자각이 드네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쓰던 이야기를 1년 이상을 끄는 건 좀.........)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여행기가 마무리가 안 될 터이고

또 제게는 이 여행의 의의가 상실되고야 말 터이니 솔직하게 쓰고 끝내겠습니다.

 

 

제가 저녁 콘캔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것이 8시 전후였고

간단히 싸 온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부탁하러 프론트에 내려온 것은 약 10분 후였습니다.

방콕으로 돌아갈 열차는 9시 5분 밤기차, 미리 표를 사 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따라인지 무엇인지, 체크아웃 시간이 이상하게 오래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20분은 앉아서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오래 기다린 끝에 결국 체크아웃을 했지만, 그때까지는 별 걱정이 없었습니다.

피만 가든 인에서 기차역까지는 약 3킬로 남짓 되는 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큰길에 나가서 썽태우 내지는 택시를 잡으면 될 거라는 생각이었거든요.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큰 비는 아니었으므로 그것 또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저의 무지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의외로 태국 현지인들의 하루는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매우 빨리 끝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예가, 콘캔 이야기 세 번째에서 등장한 센트럴의 폐점 시간의 사진인데

큰 백화점이지만 지방 도시이니 아홉 시에 닫는다는 사실, 그때에는 주의깊게 봐 두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차로 빽빽했던 시내버스터미널 앞 거리가 거짓말처럼 텅 비어 있더군요.

그래도 뭐라도, 하다못해 바가지 택시라도 한 대 나타나겠지 하고 늘 그러듯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 컴컴한 비 오는 거리에 지나다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정말로 불안해졌습니다.

게다가 시간은 45분, 50분, 점점 기차 도착 시간을 향해 착착 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오겠지, 오겠지] 했다가

조금 후에는 [이상하네, 정말] 이었다가

나중에는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하고

아무도 없는 밤거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게 되더군요.

그때라도 다시 호텔 프론트에서 도움을 요청할까 해도, 이미 너무 늦은 시각이었습니다.

그냥 하늘을 향해 울부짖을 따름이었습니다.

거의 55분쯤 되고 제 패닉 상태도 깊어질 때쯤

제 옆에 웬 오토바이와 함께 건장한 남자분 한 분이 서시더군요.

그 거리에 아무도 없었다가 사람이 나타난 것만도 반가운데

그분이 진심 걱정하는 표정으로 제게 말을 걸어 오시니 정말 천사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혹시 도둑 맞았어요?  왜 그래요?  경찰서 갈까요?]

 

이분은 수많은 콘캔 시민들 중 그 자리에 우연히 나타나신 한 분이실 텐데

제가 일찌기 만났던 카메룬에서 온 켄만큼이나 영어를 잘 하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훌쩍거리면서 대답했습니다.

 

[기차역에 가야 하는데, 택시가 없어서요]

[데려다 줄게, 빨리 타요!]

 

뒤에 타서도 제가 울음을 한동안 못 그치고 있으니까

그분은 다시 한 번, 정말로 경찰서에 가야 하는 건 아니냐고 확인하시더니

기차역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운전 내내 조용조용히 제게 말씀을 하시는데

[괜찮아요,  시간 안에 도착할 테니까.  아무 걱정 할 거 없어요]

라는, 마치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말씀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귀가 아니라 등으로 들려오는,

정말 신기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안심이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우리가 기차역에 도착한 시각은 9시 2분,

기차는 다행히도 약간의 연착으로 아직은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분은 현지인 특유의 능숙함으로 제가 대기해야 하는 플랫폼 위치까지 챙기시더니

기차가 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정말 괜찮다고, 사례하고 싶다고 돈을 드렸더니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정말로 혼자 있어도 괜찮느냐고 최종 확인을 하시고는 멋지게 떠나셨습니다.

 

이것이 제 콘캔 여행이 오토바이로 시작해서 오토바이로 끝났다고 말씀드렸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경험으로 참 많은 것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 때 이후로, 또 몇 주 후에 있었던 수련회 이후로는 더욱 더

서울에서든 태국에서든 길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더 신경쓰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저 자신의 안녕과 행복이 저 자신의 잘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상기했고요.

이때의 일기를 보면, 맨 마지막에 [콘캔, 고마워요!]라고 씌어져 있더군요.

 

기차는 5분 정도 연착하여 도착했고, 제 자리도 평소의 침대차 자리만큼 마음에 들고 안락했습니다.

다만 하도 이상한 냄새가 나서 [누가 바닥에 젓국을 쏟았나?]하고 한참 동안 이상히 여겼었는데

그 진원지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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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에 신경을 쓸 만큼 정신을 차렸으니,

그 오토바이 운전자분이 얼마나 감사하겠어요!

저는 아직도 그분을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쉽게 잊을 수가 없는 것이........ 이건 여담인데

그분이 유난히 닮으신 우리나라 가수분이 계십니다.

저희 부부가 [탑밴드] 애청자였을 때부터 익히 봐 왔던 분인데

처음에는 [꺅!  뭐 저런 그룹이 다 있어!]라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쪽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뭐라고, 그런 호의를 받아 놓고는 어떻게 그분을 닮은 분마저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이이(남편)는 콘캔의 그 분의 호의 덕분에 당신 취향까지 바뀌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콘캔 기행 사진의 끝은, 만 16시간 30분 동안의 제 애큐페도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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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꽤 많이 돌아다녔더군요.

이렇게 콘캔에서 체력을 하얗게 불태운 탓인지, 방콕에 복귀한 이후에는 겨우 가계부 정도만 썼을 뿐

매일매일 쓰던 일기도 전혀 쓰지 못했습니다.

숫자와 품목들 말고는 단 두 마디, 매우 재미있는 말들이 있더군요.

이것은 2014년 7월 여행기의 에필로그 삼아서 써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제 일기에서 그대로 붙여 봅니다.

 

[1. 가장 마지막으로 들은 공식적인 말: 사랑해요!]

 

이것은 태국을 꽤 많이 드나들었다고 생각하는 제게도 전무후무한 일인데

출국장 여권심사관이 제게 우리말로 해 준 말입니다.

저를 매우 많이 웃게 해 준 말이라서 그분께 감사했습니다.


[2. 무슨 파시미나가 3만바트가 넘어가더라]

 

이것은 출국심사를 끝내고 면세점을 구경하다가 쓴 말인데

이 파시미나 브랜드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로로피아나였습니다.

반 년쯤 후에 조** 그 분이 하고 나오셔서 유명해진 바로 그 목도리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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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오래 끌고 있었던 여행기를 끝내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다음에는 지역별 단편 여행기를 써 볼게요.

미리 말씀드리면, 이제 제가 다니는 지역은 방콕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콘캔과 같은 곳은 이제 별로.........  제 마음의 별로.

 


2 Comments
삼천포 2015.09.12 21:50  
Cal님 여행기는 예전부터 참 예쁘고 순수해서
읽고나면 기분이 막막  좋아졌어요ㅎㅎ
마치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Cal 2015.09.12 23:17  
삼천포님께서 댓글을 달아 주셔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요,
저 정말로 이 여행기를 쓰면서
[이 여행기가 삼천포님의 여행기처럼 좀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 아직도 삼천포님의 글들 중 많은 부분을 기억하거든요.
아버님께서 다녀오신 인도를 꼭 [인디아]라고 하셨던 일,
라오스 뱃사공이 부르던 [컵짜이 라이라이~~~]노래,
그리고 요즘 읽었던 맥글로드 간즈 이야기 등등,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행기를 쓰신 분이 제 글에 대해 좋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행복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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