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태국,캄보디아 배낭여행 18일- 마의 캄보디아 행 14시간
4. 3일째(1월 9일): 앙코르왓으로(마의 캄보디아 국경 14시간)
오늘은 앙코르왓으로 간다. 캄보디아 국경을 어떻게 넘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게스트하우스 앞의 여행사에서 티켓을 끊으면 같이 간 이들과 함께 행동을 하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걱정되었고 또 스릴 넘치는 장면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싱겁게 넘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캄보디아 무서운 나라, 나는 정말 혼자 다니면서 아무 일 없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크메르루즈, 킬링필드 등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캄보디아. 이런 생각에 잠겨 일곱시 예정된 시간 버스가 15분이 넘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앞에 택시 기사가 있어 물어보았더니 전화로 친절히 알아봐 준다. 7:30분에야 도착한다고... 시간은 후진국일수록 안 지키기는 것인가 보다. 옛 우리 선조들이 코리안 타임을 만들어 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게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이 늦는다는 것, 그러고도 별 일 없이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서로 용납할 수 있는 사회였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나중에 우리도 빨리빨리 사회로 접어들었다. 그것은 바로 약속이 늦은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서양인들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도 약속을 따지는 사회, 각박한 사회로 접어들게 된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래 우리 지금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어떻게 살고 있는가.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씨, 여유 있는 마음의 화평을 간직하고 있는가? 조금만 잘못하면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 속에서 오히려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는 모습은 아닌가.
버스가 지나간다. 차량이 좌측 선을 따라다니고 운전석이 우측에 있는 차를 보았을 그때 너무나 신기했는데 여기선 이제 그런 신기함은 사라졌다. 세상살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씩 신비로움과 놀라움과의 이별을 고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세상에 호기심과 기대감이 사라질 때 자신의 삶은 어쩌면 끝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물론 자신이 갖고 있는 사고의 깊이에 한정된 것들이겠지만...
그러나 나는 지금 놀라움, 보는 것마다 경이로움에 가득 차 있다. 저들의 눈동자, 저들의 삶의 방식, 저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잡다한 물건들, 먹거리들,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어쩔 땐 꼭 한국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얼굴에서, 목소리가 크고 높은 알 수 없는 말들이 튀어나올 때 나는 얼마나 신기했던지 모른다.-그리고 아직 이해하기 힘든 저들의 사고방식, 모든 것들이 내겐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8시쯤 출발한 캄보디아 행 버스에서 중년의 내 나이 또래쯤 되는 프랑스 여자가 옆자리에 앉았다. 매기라는 첫인상이 선하게 생기고 40살 안팍으로 보이는 그녀와 긴 시간을 같이한다는 것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영어가 짧고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길게 한다는 것이 한편 부담도 되었다. 어떻든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중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점심을 먹고 국경을 넘을 때 비자발급을 받고 버스를 갈아타고 캄보디아 시엠립에 도착하기까지 행 긴 시간을 같이했다. 심리상담치료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그녀는 평생 여행을 즐기며 살고 있는 듯했다. 70여 개국을 벌써 다녔으니 이미 세계일주를 거의 다 한 것처럼 보였다. 이번 여행도 2개월 시간을 가지고 동남아 일대를 돌아볼 계획이라고 한다. 프랑스인답지 않게 영어는 유창했다. 오히려 내게 또박또박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하면서도 친절하고 또 하찮은 나의 이야기도 흘려듣지 않았다. 몇 시간 지났을까. 우리의 이야기 속에 옆 좌석의 캐나다 녀석이 끼어 들었다. 둘은 영어로 나보다 쉽게 친해지는 것 같았다. 어떻든 셋은 무려 15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그런 대로 가까워지고 여행에 관하여 또 자기의 주요 관심사에 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중에 나는 나의 직업과 우리 학교 교육의 현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한국민의 사고방식 그리고 현재의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때론 비판적으로 때론 우쭐대며 한국을 잘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내 목소리가 크고 단호하게 이야기할 때가 있었는지 뒷좌석의 다른 서구인들이 내 이야기 중에 웃기도 하고 탄성을 내뱉기도 하면서 관심을 보여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캄보디아로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풍경은 태국과는 많은 차이가 났다. 첫인상에 벌써 그들의 생활상이 짐작이 될 정도로 모든 것이 초라하고 비참하게도 느껴지고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무섭기까지 했다. 처음 길거리에서부터 구걸하는 인파가 줄을 이었고 허름한 옷차림, 맨발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 더러 곳곳에 총을 들고 지키는 군인들.... 입국 시간은 상당히 지루했다. 비자를 받는 시간, 다시 입국허가증을 받는 시간만 해도 늘어선 인파로 인해 한 시간은 족히 기다린 것 같았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캄보디아로 들어 시엠립으로 향한다. 길가로 늘어선 농가들, 그리고 그 앞에 서성이는 농민과 가게를 보는 사람들. 태국도 단정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캄보디아의 검게 그을리고 맨발에 허름한 옷을 걸쳐 입은 저들의 모습을 보니 태국은 그렇게 깨끗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고, 비슷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단지 하나의 체제를 달리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아, 내가 차분히 생각하고 다른 때처럼 아무 문제가 없었더라면 나는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내 배를 움켜쥐기 시작했다. 갑자기 배가 아파온 것이다. 사르르 아프기 시작하더니 차츰 통증으로 변하고 거의 시엠립까지 5~6시간의 지루하고도 고통스런 버스 안에서 나는 정말 죽음까지도 생각하며 별별 생각을 다 떠올려 보았다. 도착하면 혹시 병원 없느냐는 나의 물음에 차장이 잘못 알아듣고 거기에는 병원이 없다는 말을 했다.(도중에 쉬는 곳에 없다는 뜻인 듯) 아, 정말 죽음의 도시로 가는가, 나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며 사랑스런 사람들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비포장같은 포장길을 이어서 장갑차가 다녀야 적당할 것같은 비포장길에서 온몸은 뒤틀리고 속은 뒤집히는데 갑자기 속배까지 쓰라리게 아파 온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옆자리의 그들에게 미안해서 크게 아프단 표시를 하지 못하고 참아내는 고통은 더욱 컸다. 아무도 모르게 쉬는 장소에서 남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모든 것을 토하고 물로 씻어내고 무려 20여 년 만에 배 아프다고 알약을 구해 먹었어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마의 캄보디아 행, 기나 긴 시간 괴롭히던 통증은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야 거짓말처럼 나았고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우리 셋은 2불짜리 겟하우스(sidewalk guesthouse)에 들었다. 캄보디아 여행은 무려 15시간을 투자하고 그 엄청난 고통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과연 있는 것일까.
겟하우스, 먼지가 창들에서 푸석이고 바닥은 꾀죄죄한데도 그들은 별 불평 없이 방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래층에 자릴 잡았고 둘은 아래층이 방이 없으니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중에 나도 시끄럽고 해서 2층으로 가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옆방에서 계속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가만히 들어보니 바로 그 프랑스 여자와 캐나다 녀석의 목소리 아닌가. 옆방에서 놀러 왔으면 적당히 이야기하다 갈 것인데 한참을 지나도 차분한 이야기만 계속 들린다. 그 여자가 돌아가기 전에 내가 먼저 잠이 들었으니 나는 그 다음은 알 길이 없지만 너무나 괴씸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에 회의가 밀려들었다. 남의 일에 무슨 신경을 쓰나 싶어 애써 다음날 아침 일찍 동이 트기 전에 숙소를 나와 앙코르왓으로 향했다.
오늘은 앙코르왓으로 간다. 캄보디아 국경을 어떻게 넘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게스트하우스 앞의 여행사에서 티켓을 끊으면 같이 간 이들과 함께 행동을 하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걱정되었고 또 스릴 넘치는 장면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싱겁게 넘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캄보디아 무서운 나라, 나는 정말 혼자 다니면서 아무 일 없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크메르루즈, 킬링필드 등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캄보디아. 이런 생각에 잠겨 일곱시 예정된 시간 버스가 15분이 넘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앞에 택시 기사가 있어 물어보았더니 전화로 친절히 알아봐 준다. 7:30분에야 도착한다고... 시간은 후진국일수록 안 지키기는 것인가 보다. 옛 우리 선조들이 코리안 타임을 만들어 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게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이 늦는다는 것, 그러고도 별 일 없이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서로 용납할 수 있는 사회였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나중에 우리도 빨리빨리 사회로 접어들었다. 그것은 바로 약속이 늦은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서양인들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도 약속을 따지는 사회, 각박한 사회로 접어들게 된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래 우리 지금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어떻게 살고 있는가.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씨, 여유 있는 마음의 화평을 간직하고 있는가? 조금만 잘못하면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 속에서 오히려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는 모습은 아닌가.
버스가 지나간다. 차량이 좌측 선을 따라다니고 운전석이 우측에 있는 차를 보았을 그때 너무나 신기했는데 여기선 이제 그런 신기함은 사라졌다. 세상살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씩 신비로움과 놀라움과의 이별을 고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세상에 호기심과 기대감이 사라질 때 자신의 삶은 어쩌면 끝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물론 자신이 갖고 있는 사고의 깊이에 한정된 것들이겠지만...
그러나 나는 지금 놀라움, 보는 것마다 경이로움에 가득 차 있다. 저들의 눈동자, 저들의 삶의 방식, 저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잡다한 물건들, 먹거리들,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어쩔 땐 꼭 한국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얼굴에서, 목소리가 크고 높은 알 수 없는 말들이 튀어나올 때 나는 얼마나 신기했던지 모른다.-그리고 아직 이해하기 힘든 저들의 사고방식, 모든 것들이 내겐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8시쯤 출발한 캄보디아 행 버스에서 중년의 내 나이 또래쯤 되는 프랑스 여자가 옆자리에 앉았다. 매기라는 첫인상이 선하게 생기고 40살 안팍으로 보이는 그녀와 긴 시간을 같이한다는 것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영어가 짧고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길게 한다는 것이 한편 부담도 되었다. 어떻든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중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점심을 먹고 국경을 넘을 때 비자발급을 받고 버스를 갈아타고 캄보디아 시엠립에 도착하기까지 행 긴 시간을 같이했다. 심리상담치료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그녀는 평생 여행을 즐기며 살고 있는 듯했다. 70여 개국을 벌써 다녔으니 이미 세계일주를 거의 다 한 것처럼 보였다. 이번 여행도 2개월 시간을 가지고 동남아 일대를 돌아볼 계획이라고 한다. 프랑스인답지 않게 영어는 유창했다. 오히려 내게 또박또박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하면서도 친절하고 또 하찮은 나의 이야기도 흘려듣지 않았다. 몇 시간 지났을까. 우리의 이야기 속에 옆 좌석의 캐나다 녀석이 끼어 들었다. 둘은 영어로 나보다 쉽게 친해지는 것 같았다. 어떻든 셋은 무려 15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그런 대로 가까워지고 여행에 관하여 또 자기의 주요 관심사에 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중에 나는 나의 직업과 우리 학교 교육의 현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한국민의 사고방식 그리고 현재의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때론 비판적으로 때론 우쭐대며 한국을 잘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내 목소리가 크고 단호하게 이야기할 때가 있었는지 뒷좌석의 다른 서구인들이 내 이야기 중에 웃기도 하고 탄성을 내뱉기도 하면서 관심을 보여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캄보디아로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풍경은 태국과는 많은 차이가 났다. 첫인상에 벌써 그들의 생활상이 짐작이 될 정도로 모든 것이 초라하고 비참하게도 느껴지고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무섭기까지 했다. 처음 길거리에서부터 구걸하는 인파가 줄을 이었고 허름한 옷차림, 맨발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 더러 곳곳에 총을 들고 지키는 군인들.... 입국 시간은 상당히 지루했다. 비자를 받는 시간, 다시 입국허가증을 받는 시간만 해도 늘어선 인파로 인해 한 시간은 족히 기다린 것 같았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캄보디아로 들어 시엠립으로 향한다. 길가로 늘어선 농가들, 그리고 그 앞에 서성이는 농민과 가게를 보는 사람들. 태국도 단정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캄보디아의 검게 그을리고 맨발에 허름한 옷을 걸쳐 입은 저들의 모습을 보니 태국은 그렇게 깨끗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고, 비슷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단지 하나의 체제를 달리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아, 내가 차분히 생각하고 다른 때처럼 아무 문제가 없었더라면 나는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내 배를 움켜쥐기 시작했다. 갑자기 배가 아파온 것이다. 사르르 아프기 시작하더니 차츰 통증으로 변하고 거의 시엠립까지 5~6시간의 지루하고도 고통스런 버스 안에서 나는 정말 죽음까지도 생각하며 별별 생각을 다 떠올려 보았다. 도착하면 혹시 병원 없느냐는 나의 물음에 차장이 잘못 알아듣고 거기에는 병원이 없다는 말을 했다.(도중에 쉬는 곳에 없다는 뜻인 듯) 아, 정말 죽음의 도시로 가는가, 나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며 사랑스런 사람들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비포장같은 포장길을 이어서 장갑차가 다녀야 적당할 것같은 비포장길에서 온몸은 뒤틀리고 속은 뒤집히는데 갑자기 속배까지 쓰라리게 아파 온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옆자리의 그들에게 미안해서 크게 아프단 표시를 하지 못하고 참아내는 고통은 더욱 컸다. 아무도 모르게 쉬는 장소에서 남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모든 것을 토하고 물로 씻어내고 무려 20여 년 만에 배 아프다고 알약을 구해 먹었어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마의 캄보디아 행, 기나 긴 시간 괴롭히던 통증은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야 거짓말처럼 나았고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우리 셋은 2불짜리 겟하우스(sidewalk guesthouse)에 들었다. 캄보디아 여행은 무려 15시간을 투자하고 그 엄청난 고통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과연 있는 것일까.
겟하우스, 먼지가 창들에서 푸석이고 바닥은 꾀죄죄한데도 그들은 별 불평 없이 방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래층에 자릴 잡았고 둘은 아래층이 방이 없으니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중에 나도 시끄럽고 해서 2층으로 가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옆방에서 계속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가만히 들어보니 바로 그 프랑스 여자와 캐나다 녀석의 목소리 아닌가. 옆방에서 놀러 왔으면 적당히 이야기하다 갈 것인데 한참을 지나도 차분한 이야기만 계속 들린다. 그 여자가 돌아가기 전에 내가 먼저 잠이 들었으니 나는 그 다음은 알 길이 없지만 너무나 괴씸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에 회의가 밀려들었다. 남의 일에 무슨 신경을 쓰나 싶어 애써 다음날 아침 일찍 동이 트기 전에 숙소를 나와 앙코르왓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