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만난 R, 그리고 그녀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치앙마이에서 만난 R, 그리고 그녀

다동 17 3898

IMG_1197.jpg


IMG_1441.jpg


 

치앙마이에서 만난 R은 가는 팔 가는 다리를 지닌 예쁜 여자였다. 거제 그 촌구석에서 올라와 서울살이 하느라 힘들겠네? 하고 묻자 아니요, 재밌는데요 하고 답하던 일면 쾌활한 분위기 중에 종종 그늘이 느껴져 더욱 보기에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수가 특기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사라지곤 하는 모양이던데 어쨌거나 당신은 정유미라는 배우를 닮았어, 하고 말하자 그게 누구냐 묻더니 검색을 통해 알아내고선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고, 시큰둥했던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의 야유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를 붙들고 낮술을 마실 때였다.

 

 

박남철 시인이 그런 시를 썼어.

 

너무나 아름다운 한 여자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야. 그리고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달빛 아래 꽃피는 골목에서 그 여자를 때렸데. 죽도록 때렸데.

 

왜 그랬데요?”

 

두려웠던 거지.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존재가 무너져버릴까 봐.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자신을 갖다 바치는 거니까. 그게 너무 무서워서 그 사랑을 그렇게 때렸다는 거야. 당신은 이해할 수 있겠어?

 

아니요.”

 

어제 내가 만난 여자가 그랬어. 두렵도록 아름다웠지.

 

그래서 때렸어요?”

 

돌았니? 여자를 어떻게 때리니? 여하튼 그래서 내가 오늘 생각이 많아. 한때 나라는 존재가 깡그리 부서진 적이 있었지. 일종의 유사 죽음이지. 죽음 같은 파멸 이후의 생은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어. 절대로 전과 같아질 수 없지. 그래서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이 모양 이 꼴 난 거고. 그런데 내가 다시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야. 그 여자가 나를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는 둘째 치고, 나라는 존재를 다시 가져다 바칠 수 있냐 하는 문제로, 그 두려움으로 오늘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거야. 그러다 방금 결론 내렸지. 일단 나는 오늘 그 여자를 만나러 가기로 했어.

 

그래서 때릴 거예요?”

 

아이, 진짜......!

당신은 말을 어디로 듣니? 오빠 말이 장난처럼 들리니?

 

 

17 Comments
johnoh 2015.07.23 12:12  
시 적인 글이네요.ㅎ

2가지가 궁금한데, 여기 저분의 사진을 올리는 초상권에 대해 허락을 득하셨는지,
여자를 사랑해서 때렸다는 쓰레기 같은 놈의 말을 진짜 이해하신건지 궁금합니다.
유영철도 그런 마음이었겠죠?

...여기까지 리플 달고 박남철 시인에 대해 검색했더니 이런 내용이 나오네요.

비판[편집]
2000년대 들어 특정 여성 문인에게 성적 모욕감을 주는 언어 폭력으로 해석되는 글을 공개적으로 게시한 사건으로 기소되었다.[3][4] 또한 여성 신인 작가를 상대로 성추행 및 폭행을 한 의혹이 있으며 해당 작가에게 고소를 당했다.

위키백과에 나온 내용입니다. 위키백과는 네티즌이 만드는 백과사전임으로
"신뢰성"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져야 하는게 사실입니다만,
근거로 제시된 신문기사 링크를 보면 어느정도 사실관계 확인은 가능하네요.
(제시된 3개의 신문기사 링크중 2개는 페이지가 안뜨네요.나중에 삭제된듯.)

개인적으로 그렇게 본받을만한 인물은 아닌듯합니다. 덕분에 잘 알고 갑니다.
다동 2015.07.23 12:24  
뭐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유영철이라니... 나 원.
johnoh 2015.07.23 12:36  
저 시인과 유영철이 동일하다는건 아닙니다.
희대의 살인마와 여성을 폭행한 시인이 같진 않지요.
'죽도록 때렸다' 라고 했지, 실제로 죽인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문제'로 인해 여성에게 가하는 해를 정당화 했다는 큰 그림에선
비슷한 부류로 보이네요.
다동 2015.07.23 12:38  
네. 잘 알겠습니다.
jindalrea 2015.07.23 13:10  
음.. 말하는 이의 눈과 손끝을 따라가다보면, 정말 그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이겠지요..

결국.. 내적 자아의 붕괴를 겪어야 했던 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다가오네요.
그저 화자의 이야기를 독자의 내면에 인식하는 과정에서.. 실존이든 아니든.. 자기고백이든 허구이든.. 중요한 건.. 제 목숨을 다하는 거보다 더 까마득한 과정을 겪고, 이 것이.. 끝내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죽이고 다시 태어나게 하는.. 그 과정이.. 저미게 다가오네요.

저 여자분.. 아름다운 여성이네요. "그래서 때릴 거예요?" 했을 때, 설마.. 운 거 아니예요?
ㅎㅎㅎ 오지랖 대마왕 달래줌마한테.. 딱 걸렸어요. 다동님.. ㅎㅎㅎ

추신) 저.. 다동님의 다홍색깔 책은 꼬사멧 바닷가의 벤치에서 빨대 꽂은 맥주병을 쭉쭉 빨믄서 읽을 예정입니다. 잘 어울릴까요?
다동 2015.07.23 13:24  
실연에 소총 들고 탈영한 군바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파멸이 지닌 에너지는 실로 무시무시하지요. 온전한 폐허가 주는 복원불가능한 생, 일종의 데드라인. 그렇기에 상실, 이후의 각성, 그리고 소생이 문학의 전형적 문법으로 쓰이겠지요. '라이프 오브 빠이'에 보면 제가 겪었던 그 격동이 조금 더 길게 나와 있어요.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났는지......

사랑이 많아 술도 많이 마시고 눈물도 많은 사람입니다만... 저땐 울지 않았어요. 울 뻔 했다는 고백은 할까 말까......

추신... 책의 표지는 열대를 형상화한 것입니다(라기 보다는 제가 입고 있는 저 알록달록한 셔츠 있지요. 거기서 따 왔어요). 꼬사멧과 백프로 잘 어울립니다. 하하.
jindalrea 2015.07.23 13:33  
표지.. 아주 맘에 들어요! (뒷말은 생략! 킄)
다동 2015.07.23 13:35  
저도 마음에 들어요!(뒷말은 역시 칭찬이라 자의대로 해석! 하하)
이열리 2015.07.23 16:23  
헉.......두번째 사진 홍진경인줄 알았어요;;
다동 2015.07.23 16:32  
음... 전혀 안 반갑군요. 접니다.
타쿠웅 2015.07.23 21:50  
방배동서 여자에게 맞은 적있는데...
.
.
.
그녀... 제가 두려웠었던 거군요....
(내 널 이제 용서할께... )


짝짝짝! 다음 글... 기대해용!!
다동 2015.07.23 22:18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는 세상, 아름답지요.
마음 잘 잡수셨습니다.
어랍쇼 2015.07.25 06:13  
이번여행때 읽으려고  스포를 외연하는중...

무에타이라도 연마한 여자는 조심~ㅋ
다동 2015.07.25 08:23  
그냥 낮술 마시며 나눈 잡담인지라... 특별한 꺼리가 있는 건 아네요.

무에타이 연마한 여성이라... 태권도로 맞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더 2015.08.14 21:17  
ㅎㅎㅎ 인도 고아 아람볼에서 같이 술 마셨던 부부 기억하시려나요? 그게 벌써 5년 가까이 된 거 같긴 하네요 여기서 또 뵙네요 ㅎㅎ
다동 2015.08.15 16:55  
기억합니다. 로키카페에서 마셨지요, 음악 들으며.
반갑습니다.
낭처니 2015.09.10 08:48  
크으 시적이네요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