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만난 R, 그리고 그녀
치앙마이에서 만난 R은 가는 팔 가는 다리를 지닌 예쁜 여자였다. 거제 그 촌구석에서 올라와 서울살이 하느라 힘들겠네? 하고 묻자 아니요, 재밌는데요 하고 답하던 일면 쾌활한 분위기 중에 종종 그늘이 느껴져 더욱 보기에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수가 특기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사라지곤 하는 모양이던데 어쨌거나 당신은 정유미라는 배우를 닮았어, 하고 말하자 그게 누구냐 묻더니 검색을 통해 알아내고선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고, 시큰둥했던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의 야유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를 붙들고 낮술을 마실 때였다.
박남철 시인이 그런 시를 썼어.
너무나 아름다운 한 여자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야. 그리고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달빛 아래 꽃피는 골목에서 그 여자를 때렸데. 죽도록 때렸데.
“왜 그랬데요?”
두려웠던 거지.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존재가 무너져버릴까 봐.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자신을 갖다 바치는 거니까. 그게 너무 무서워서 그 사랑을 그렇게 때렸다는 거야. 당신은 이해할 수 있겠어?
“아니요.”
어제 내가 만난 여자가 그랬어. 두렵도록 아름다웠지.
“그래서 때렸어요?”
돌았니? 여자를 어떻게 때리니? 여하튼 그래서 내가 오늘 생각이 많아. 한때 나라는 존재가 깡그리 부서진 적이 있었지. 일종의 유사 죽음이지. 죽음 같은 파멸 이후의 생은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어. 절대로 전과 같아질 수 없지. 그래서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이 모양 이 꼴 난 거고. 그런데 내가 다시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야. 그 여자가 나를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는 둘째 치고, 나라는 존재를 다시 가져다 바칠 수 있냐 하는 문제로, 그 두려움으로 오늘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거야. 그러다 방금 결론 내렸지. 일단 나는 오늘 그 여자를 만나러 가기로 했어.
“그래서 때릴 거예요?”
아이, 진짜......!
당신은 말을 어디로 듣니? 오빠 말이 장난처럼 들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