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빠이(Life of Pai) 12. 아따, 인간들 세월 좋구나
타고난 성정이 원체 소홀하고 학습을 향한 의지가 워낙에 박약하며 주어들은 사상이 유달리 회의적인 까닭인지 시간을 들이고 몸을 움직여 어딘가를 찾아가야 하는 것에 그다지 열정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 가진 것 없는 몸뚱이에 떡 하고 달라붙어 있는 목구멍이 후안무치한 깡패인지라 달리 방도가 없어 마음에도 없이 시간을 들이고 몸을 움직여 어딘가를 찾아갔어야만 했던 자질구레한 세월을 숱하게 보내왔으니 이제라도, 전 생애를 담보로 잠시간의 낙원을 살아가는 지금이라도 하기 싫은 일 하지 말고, 듣기 싫은 말 듣지 말고, 먹기 싫은 것 먹지 말고 그저 내키는 대로 살아보자는 취지하에 소홀한 성정과 박약한 의지와 회의적인 사상을 적극 활용하여 어떤 강요와 외압에도 굴하지 않으며 노세 노세 젊어서 노는 세월을 보내오던 차, 여기도 좋고 거기도 좋으니 한 번 가보시라는 추천을 강력하게 쌩 까고 말았던 것은 일견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 빌리지(Moon Village) 역시 개중 하나였다.
문 빌리지, 문자 그대로 달 마을이라는 근사한 정취를 풍기고 있었음에도 처음 들었을 당시 그게 뭐하는 잡것들인지 별반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마도 공동체(Community)라는 개념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일 터, 이는 나고 자란 고국의 부실한 토양과도 무관하지 않을 일이니 강제와 폭압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에서 사랑과 평화를 모토로 삼아 그들만의 이상향을 쫒으려 하던 순진하고도 용맹한 무리들은 빨갱이와 이음동의어로 오역되는 바람에 남산으로 끌려가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하기 십상이었던바 이 나이 먹도록 뭐 그런 걸 겪어봤어야 알지.
공동체, 커뮤니티란 무엇인가? 생성배경과 성장과정과 현재상황에 대해 소상히 밝히려면 상당부분 애로점이 뒤따를 것이므로 차치하려 하니 정말이지 궁금해 환장하겠다 싶으신 분들은 주말이나 공휴일을 이용하여 서점의 존재론적 취지에 합일하시거나 짬이 정 안 되시는 자들은 인터넷을 사용하여 한권의 책 주문 배송 받아보셔도 좋을 일이다.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지향하는 모습에 따라 각각의 사람들이 모여 삶을 공유하면서 공존하는 일종의 조직생활 같은 것이다. 특질을 고려하여 분류하자면 음…… 그러니까…… 여러 가지가 있다. 꽤 많다. 제법 다양하다. 개중 문 빌리지가 다른 여러 가지, 다시 말해 꽤 많고 제법 다양한 커뮤니티들 중에서 도드라지는 부분이 있다면 이걸 과연 공동체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하는 의문을 제기하리만치 공동체적 의무감에서 자유롭다는 점인데 각자 주어진 임무라는 게 있기는 하나 누군가 나서서 없다고 소리 높인다면 슬그머니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정도? 1년 365일 중 108일이라는 무시무시한 기간 동안 벌어지는 축제에 있어 음식을 함께 만들고,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틈만 나면 합을 맞추어 공연하고 하는 뭐, 그 정도?
공동체 유지, 확립 자체가 목적이 아닌 공생을 위한 공동체, 개체성을 인정하고 정체성을 잃지 않는 분권적인 공동체랄까. 통상 이러한 지향에는 히피즘이 결여될 수 없는 바, 빠이의 태생이 그러했듯 문 빌리지 역시 넘치는 히피즘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빠이의 원형을 가장 적확히 물려받은 그야말로 적통이랄 수 있다, 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그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접착제는 단연 음악, 이름하야 문 빌리지 밴드가 있다.
뭔가를 하지 않으려는 습성에 별 관심도 없었다가 한번 다녀가고 나선 늦바람에 첩질하듯 틈만 나면 들락거리는 문 빌리지에 처음 발 도장을 찍게 된 것은 진강 덕분이었으니 아, 이 자식 짧은 시간에 뭘 많이도 하고 갔다. 진강이 떠나기 전날이라 하여 M은 본래 가려고 했던 타콤빠이 유기농장(Tacomepai Organic Farm)를 패스하고 문 빌리지로 향하는 길에 합류, 다 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어리바리하며 길을 헤맬 수 있었다.
“어디 있는지 아세요?”
M의 물음에 잠시 당황했다. 난 그가 어디 있는 줄 알거라 믿었기에.
“대충 들었지.”
저기 저 어딘가에 있다고.
해마다 자체 제작되어 아무데서나 무료 배포되는 빠이의 지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고 여행자들의 필수 아이템이라는 구글맵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 그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문 빌리지로 향하는 길은 상당한 거리와 험난한 도로를 통해 불안을 배가시키며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인가? 회고하게 만들고 이런 촌구석에 뭐가 있다는 말이지? 의심하게 만들다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회의가 난무하는 와중에 에라, 돌아가자! 포기를 결정할 때쯤에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어느 여행자의 말마따나 천연 비포장 길이 아주 Shit! 이다.
남부럽지 않게 헤맨 끝에 도착한 문 빌리지는 한눈에 봐도 따로 수질검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맑고 깨끗한 개울이 기다랗게 흐르고 개울을 따라 소담스런 파파야가 줄지어 열려 있었다. 얼기설기 만들어진 나무다리를 밟고 농작물 사이로 걸어 들어가자 룽타(Lung Ta)와 타르초(Tarcho) 휘날리는 조그마한 사당과 함께 색감이 화사한 티피(Teepee)가 높이 올라서 있어 히말라야 수도승들과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동시에 연상되었다. 즉각 마음에 들었다.
빠이로 이주해온 어느 일본인 히피 가족에 의해 처음 생겨난 문 빌리지는 일본인 위주의 생활을 영위하다 2008년을 즈음하여 대대적인 이사를 단행, 지금의 문 빌리지로 재단장하기에 이르렀는데 문 빌리지 시즌 1에 일본인 가족이 있었다면 시즌 2에는 태국인 히피 하나가 있었으니 바짝 오른 시내의 땅값을 외면하고 외곽에 땅을 사들여 무료 임대하는 것으로 금전적 편의를 제공하며 마이 뺀 라이(Mai Pan Rai), 올 테면 오고 갈 테면 가고 마음대로 하시라는 돈 워리 비 해피 사상을 바탕으로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진화발전을 거듭하고 있어 초기의 단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현재 다양한 인종들을 포용하기에 이르렀다고 후일 들었다.
면면을 살펴보자면 센터 헛(Center Hut)이라 하여 두루 모인 사람들이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고, 밥도 먹고 하는 등 우리네 마을회관 비슷한 게 있으며 가네쉬 가든(Ganesh Garden)이라 하여 초목 우거진 공터에 숙박을 해결하기 위한 텐트촌이 있는 데다 아트 갤러리라 하여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커피와 차이를 파는 카페가 있는가 하면 하루 50밧짜리 도미토리, 음식을 하는 공용부엌, 레스토랑 등등에 이어 문 빌리지의 정신적 지주랄 수 있는 태국인 히피의 집이 삐딱하게 기울어 세워져 있는데 통상 거주민들이 하는 일이란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러 재끼거나, 노가리를 풀거나, 낮잠을 처자거나, 농작물을 키우거나, 책을 읽거나, 저글링을 연습하거나, 공중천을 타거나, 포이(poi)를 돌리거나 하는 등등 아주 그냥 하나 같이 놀고 자빠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이것이야말로 노동해방이 아니던가, 퍼뜩 깨닫게 하는 한편 아따, 인간들 세월 좋구나, 감탄해마지 아니할 수 없게도 한다.
“우리도 선 빌리지 하나 만들까요?”
M 역시도 곧장 마음에 들었던지 못할 건 또 뭐냐는 듯 말했다. 언젠가는 단출한 텐트 하나로 자리를 깔고 전기도 없는(아! 내가 얘기 했던가? 전기 안 들어온다. 그래서 밤마다 불놀이다), 전기가 없으니 “라디오 TV도 없고, 신문 잡지도 없고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 문 빌리지에서 한 시절 넉넉하게 탕진하게 될 것을 진하게 예감할 수 있었다. 각국의 히피들과 어울려 조선 한량의 굳센 기상과 굳은 절개를 드높이며.
보름이 다가오던 날이었다.
텐트가 밀집한 곳에선 썩 훌륭하지 못한 음색으로 노래를 불러댔다.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the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