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밥의 14박 15일 태국-캄보디아 여행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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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밥의 14박 15일 태국-캄보디아 여행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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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표지 사진은 기타치는 B씨>

예능을 써도 다큐가 되는
노잼 누룽지밥의 태국 - 캄보디아 여행기
    1. 총 기간 : 14박 15일 (2015/1/25-2/8)
    2. 총 경비 : 1,620,761 원 / 1인
    3. 총 인원 : 누룽지밥 외 7인
    4. 전체 경로 : 인천 - 방콕 - 메솟 - 치앙마이 - 방콕 - 씨엠립 - 방콕 - 인천

 드디어 R씨와 D씨, J씨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여행기의 존재를 공개했다.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다행히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데다가 사진을 올려도 된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받았다. 하하하!

*

<태국 여행 그 세 번째 날 (1) : 다시 찾은 버웨끌라>  

 05:50 am 오늘도 어김 없이 피부에 오스스 와닿는 추위에 일찍 잠이 깼다. 어제도 오늘도 추워서 깬거라지만, 어제는 메마르고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에어컨 바람 때문이었다면 오늘은 순수한 새벽공기 탓이다. 비록 춥지만 아주 산뜻하게 느껴졌다. 사진을 찍으러 나가볼까하다 온통 깜깜해 더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먼 곳의 개짖는 소리. 아주 나지막하게 찌륵거리는 벌레소리. 누군가 또 일어나 있는지 자박거리는 발소리. 기분 좋은 작은 소음들이 메솟의 방갈로에 누워있음을 실감나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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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 중 발견한 어린 스님. 탁발하고 들어가시는 건가? 태국 스님들의 선명한 주황색 승려복은 언제봐도 눈을 잡아 끈다. 스님 몰래 찰칵.>

날이 어느정도 밝은 후, 아침 산책을 한바퀴 돌고 오자 어느덧 집합시간이다. BMWEC쪽에서 픽업을 하러 오기 전에 다 같이 큰방에 모여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메뉴는 내가 현재 너무너무 그리워하고 있는 편의점 포켓 토스트! 따끈하게 커피와 토스트로 속을 채우고, B씨의 기타 소리를 들으면서 숙취로 일어나지 못하는 W씨와 D씨를 기다렸다. 멍텅구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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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맛있다. 따끈따끈하게 데펴진 토스트를 한입 깨물면, 잘 녹은 치즈와 짭짤한 소세지가 나온다. 게다가 매우 저렴! 도대체 왜 한국에는 없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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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치는 B씨와 바라보는 R씨. 저 기타는 도대체 왜 저기까지 가져갔던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치는 거 이 때 딱 한 번 봤다. 한국까지 무사히 갔니, 기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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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EC*  Burmese Migrant Workers' Education Committee. 
 (http://www.bmwec.org/)
 버마에서 이주해 온 난민과 그 아이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NGO단체로, 2013년도 해외봉사를 왔을 당시 봉사단과 학교를 연결해 주었다. 


 BMWEC 차량을 타고 버웨끌라로 이동했다. 버웨끌라의 거의 모든 선생님들은 영어를 구사할 줄 모르기 때문에 영어-카렌어 통역을 맡아 줄 BMWEC 스태프 한 분이 함께 했다. 메솟 시내에서 20분에서 30여분 쯤 달리면 버웨끌라 학교가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스태프와 가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음 한 쪽이 아주 불편하게 두근거렸다. 태국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느꼈던 감각, 두려움이다. 

 2년 전 우리가 했던 활동은 아이들에게 예체능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것과 통나무로 지어진 낡은 기숙사를 해체해서 재건축하는 것이었다. 땀흘리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었다. 그렇지만 도움이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과연?
 내가 그 때 하고 온 일들의 결과물을 보는게 무서웠다. 그들에게는 실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저 우리만의 자기 만족이었을까봐. 또한 그 때 목격했었던 모든 좋지 않았던 상황들이 아직도 그대로일까봐 무서웠다. 
 문득 내 옆에 앉아있는 BMWEC의 스태프가, 그리고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활동가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졌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가 방향을 틀더니 마을로 들어섰다. 기둥을 세워 지면과 떨어트려 놓은 특유의 가옥들과, 익숙한 풍경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왔었을 때의 장면들이 오버랩되었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다들 울먹거리면서 트럭 뒤에 앉아있을 때의 풍경들. 일주일간 정들었던 아이들도 따라 훌쩍거리며 트럭 뒤를 쫓아오다 손을 흔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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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버웨끌라 학교의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깜짝 놀랐다. 2년 새 생겨난 이 학교의 변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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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버웨끌라 학교의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깜짝 놀랐다. 2년 새 생겨난 이 학교의 변화라니.

 6학년 아이들과 남자 단원들이 세팍타크로를 하던 울퉁불퉁한 공터가 말끔한 놀이터로 바뀌어 있었다. 변변한 놀이시설조차 없었던 예전에 비하면 정말 딴판이었다. 더 놀라운 건 시멘트로 된 건물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유아동 이라고 했다. 예전의 나무를 엮어 벽을 만들고, 흙바닥에 돗자리를 깔아썼다. 그 좁고 허름한 공간에서 놀고, 먹고, 공부하는 다섯살배기들이 마음 아팠었는데, 정말 기분좋게 놀랐고, 가슴 벅찼다. 

 '아, 이래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거구나.' 

 활동가와 NGO 단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이것이리라.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되는 모습들, 그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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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재건축했던 기숙사. 부서진 곳이 있을까봐 마음 졸였는데, 아직까지 괜찮아 보였다. 재건축하기 전에는 나무가 부서진 곳도 있고, 못이 튀어나온 곳도 있어 상당히 위험했다. 집이 먼 아이들이 이곳에서 숙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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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을 기다리며 교실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B와 W가 2년 전 만났던 남학생을 발견했다.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우리와는 달리 이 친구는 조금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그럴만도 하지. 그는 지금보다 더 어렸고, 우리말고도 다른 봉사단들이 왔다가 또 떠나갔을테니까. 그 때 입었던 단체복을 입고 있었더라면, 혹시 조금 더 알아봐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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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찍고 있는 J씨. 사실 어사였는데, 이번 여행으로 나름대로 친해졌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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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K씨를 신기해하는 아이들과, 조그만 아이들을 신기해하는 K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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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신경써주셨던 여자 선생님과, 당시에는 일반 선생님이셨는데 이번에 새로 승진하신 교장선생님. BMWEC에서 나온 상냥한 통역사님과 나와, 내 뒤에는 아마 B씨인듯.> 

 학교를 돌아보고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 여기 상황은 좀 나아졌는지.
지난 번에 왔을 때보다 조금은 진전이 있어 보였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았다. 화장실과 샤워실,등 아이들의 생활과 관련한 부분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았다. 샤워실에는 가림벽이 없어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남녀가 번갈아가면서 이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 번부터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씻을 때나 설겆이할 때 사용하는 물도 그리 청결해 보이지는 않았다. 상태가 열악한 화장실은 그마저 한 쪽은 배수 문제가 있어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라도 온다면, 학생들이 직접 오물을 퍼내야했다. 전기도 문제였다. 이 학교 어디에도 전등이 없어, 낮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 햇볕을 받아 수업을 했지만, 저녁 때는 불이 없으니 기숙사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싶어도 곤란을 겪고 있었다. 전기가 연결되지 않는다기보다, 전기세 지불이 문제인 듯 했다. 

 교장 선생님은 원래 아주 과묵하신 분인데, 좋지 않은 상황을 얘기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마땅한 정기적인 수입원도 없는, 이 작고 열악한 학교(난민 학교 중 그나마 좋은 축에 속하리라 생각되지만)를 운영하는 그가 얼마나 고민이 많을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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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신축된 유아동. 정말 상상도 못하게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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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웨끌라를 떠올리면 생각이 많아진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분명, 내가 보고 온 것은 아주 일부일텐데.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가. 어떤 미래가 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나.
 왜 이다지도 삶이 달라야 하나. 무슨 이유 때문에? 
 내가 누리는 것,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것을 왜 누릴 수가 없나. 
 나는 당장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만 하고, 나는 이 아이들에 대해 얼만큼의 책임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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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봉사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으리라. 
 버웨끌라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내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책임이 있다. 상황을 아는데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유죄라고 생각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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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모두가 합류한 날. 메솟의 방갈로에서. 낮술을 하며.>

 버웨끌라를 떠나기 전, 미리 준비해두었던 소정의 기부금을 전달하고 사진을 찍었다. 
 처음 이곳을 떠날 때는,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겠어? 라는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헤어질 때는, 다음에는 또 언제 오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J씨와 헤어질 시간이었고, 치앙마이를 향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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