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8박9일 여행기 2편-태국경찰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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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8박9일 여행기 2편-태국경찰 무서워!

지지퍼그 6 1444
뭐, 여러분의 비난도 있었지만 저보고 죄송하다고 하신 요술왕자님의 탁월한 인간성에 감동하여 2편을 씁니다. 우선적으로 왜 첫날부터 쇼핑을 먼저 하게 되었는지 궁색한 변명이라도 늘어놓고 싶지만 원래 진짜 파렴치한은 변명조차 안하고 끝까지 다소 뻔뻔하게 버티는 법이니 극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악녀 역을 맡아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그날밤 얼마나 피말리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는지 들려드리면 동정을 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면서... 8박9일 중 셋째날입니다.
제 남편은 아주 극도로 말이 없는 사람이고 너무 착해서 소심하기 까지 합니다. 그에 비해 저는 다혈질이고 변덕이 죽끓는 듯 한 성격이라고...남편이하 많은 이들이 말하곤 합니다. 뭐, 전 그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요즘 인기있는 엽기적인 그녀가 인터넷에 뜰 때부터 아, 저건 우리 커플 얘기로구나, 하는 감이 확 오더군요. 그런데 그 영화에서도 남자가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우리 신랑은 평소에 곰같이 우직하다가 일단 화가 나면 폭발도 우직하게 합니다. 핸드폰, 지갑 등등을 고스란히 놔두고 기냥 사라져 버리는 거죠. 사실 인터넷 상의 익명성을 무기로 고백하는 건데 그래서 결혼 하고 나서 파출소에 남편 실종되었다고 도움을 요청한 적이 서울에서도 한번인가 두번(?) 있었답니다. 제 덕분에 자기 이름이 경찰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남편이 그러더군요. 그런데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우째 이런 일이. 저희가 묵은 방콕팰리스 호텔 입구에 눈에 띄는 입간판이 있고 거기 두리안이 그려져 있고 에~ 그 위에 빨간 글씨로 "노 두리안"이라고 써있거든요. 이날 밤의 소동 뒤 남편은 여기서도 자기가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거라며 노 두리안 밑에 노 코리안이라고 곧 씌여 질거라더군요. 그러나 그런 불상사가 없기를 바랍니다.
어쨌든 그날 밤 얘기를 하자면 일단 사소한 말다툼 끝에 먼저 등을 돌린 건 저였습니다. 100미터 넘게 걷다 보니 저 멀리 에라완 사당의 불빛이 보이더군요. 그 땐 그게 에라완 사당인지도 몰랐지만요. 이 때까지는 인적도 드문드문 있는 편이었구요. 에라완 사당 앞까지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가서 잠시 서 있다가 뒤돌아보니 따라 올 줄 알았던 남편이 따라오질 않았더군요. 약간 불안한 맘으로 30분 가량 서있어봐도 남편은 오질 않았습니다. 저는 달랑 갸날픈(?) 몸뚱이뿐 돈도, 카드도, 여권도, 글구 중요한 호텔 방 키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저 건너편에 월텟이 있다는 것 뿐 지리도 잘 모르겠구 밤은 깊어가구요. 좀 화가 나지만 슬쩍 꼬리를 내리고 저는 비굴하게 아까 남편과 헤어진 빅씨 앞쪽으로 다시 걸어갔습니다. 이 때는 이미 인적도 끊기고 건물 지키는 경비원들만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손가방 하나 안들고 혼자 밤거리를 활보하는 하얀 치마 입은 차림의 동양여자를 쳐다보더군요. 저기 남편이 보인다 싶은데 (이 때 남편은 좋은 데 안내하겠다는 뚝뚝 기사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저에게 휘적휘적 다가 오더니 돈과 호텔 방열쇠와 여권 등 모든 것이 들어있는 작은 손가방을 저에게 아주 거칠게 휙 던지더니 돌아서서 예의 그 에라완 사당 쪽으로 혼자 가버리는 겁니다. 챙피하더군요. 사람들 있는데서 그래도 우리가 신혼 부분데..어찌 나에게 이럴수가...저는 화도 화지만 혼자서 택시타고 호텔로 돌아가 버릴 엄두가 나질 않아 남편을 쫓아 갔습니다. 그리고 손가방을 다시 남편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죠. 밤거리에서 돈 한푼 없이 어떻게 되든 상관 않는다는 듯이 나를 기냥 세워둘 때는 언제고!
이 때부터 손가방을 서로 토스해가며 과격한 말싸움이 몇차례 오고 갔습니다. 서로 너 가져라, 나는 될대로 되게 내버려 둬라, 처음부터 그속셈 아니었냐, 말같지도 않은 소리로 부아를 돋구어 가면서 말이죠. 그렇게 티격 태격 하면서 저희는 빅씨와 아노마 호텔, 에라완 사당 앞을 왔다리 갔다리 하며 지루하게 건물 지키는 경비원에게 훌륭한 구경거리를 제공해 준뒤 마침내 르 메르디앙 호텔 주차장 들어가는 뒷골목 음산한 곳에서 파경(?)을 맞이했습니다. 이 곳에서 남편이 더욱 크게 폭발하면서 길 한가운데에 손가방을 집어 던진 뒤 니 맘대로 해. 악을 지르고 진짜 어디론가 가버리더군요. 전 주차장 뒷켠으로 가서 잠시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대고 있었죠. 여기서 중요한 건 저는 남들 눈을 피하려고 그 와중에 그 외진 곳으로 남편을 몰고 들어온 셈이고 남편은 보아하니 쥐새끼 한마리 오갈 리가 없는 뒷골목이다 싶으니까 맘 놓고 폼나게 손가방을 바닥에 버리고 가버렸기에 그 뒤 30여분간 그 가방은 도난 당할 위험 없이 그 자리에 고스란히 누워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 다니는 골목에서 그랬다면 임자 잃은 가방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을테고 저희는 여권과 모든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국제 미아가 되었을테지요. 아, 그러니 사람이란 얼마나 영민한 존재입니까. 그 와중에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다니....
그리하여 30분 정도 지난 뒤 저는 다시 비굴하게 기어나와 손가방부터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아까와는 좀 다른 길로 접어들어 가다보니 (지금 생각해보니 수쿰윗 거리로 들어선 것입니다) 우연히도 남편이 건너편에 걸어가고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눈 질끈 감고 좋다, 마지막 교섭이다, 생각하여 남편에게 무단횡단으로 뛰어갔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남편이 얘기 좀 하자는 저의 말을 무시하고 세상에 막 도망가버리는 것입니다. 진짜 벌레라도 본 듯이 뒤도 안돌아보고 전력 질주해서 도망가 버리는 겁니다. 황당하고 서글펐죠. 잠시 망연자실해 있던 저는 정 그렇다면 그래, 갈라서자, 하고 택시를 탔죠. 낯선 곳에서 오밤중에 외국인으로서 택시를 타자 불안함마저 엄습해 오더군요. 옷은 왜그리 노출도 심하게 입었는지, 호텔은 왜 하필 외진 곳에 있는지, 이거원, 길이나 알아야 제대로 가는 지나 알지...
호텔에 돌아와서 30분 가량은 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딱 30분 지나자 남편에 대한 걱정으로 눈이 뒤집히겠더군요. 제 성격이 원래 그래요. 대략 계산을 해보니 아무리 길을 잃고 헤맨다 해도 2시간 정도면 걸어서라도 돌아올 수 있을 것같았는데 2시간이 지나고 새벽 3시를 넘겼는데도 돌아오질 않자 남편이 워낙 융통성 없는 사람인데 돈한푼 없이 어디서 뭘하나, 걱정되더군요. 여권도 없이 있다가 어디 잡혀갔나 등등...아들이 안들어오면 엄마가 하는 온갖 상상들 있잖아요. 결국 저는 3시 30분경 한차레, 4시 30분경 한차례 무서운 마음을 뒤로 한채 이를 악물고 홀로 겁없이 택시와 도보를 통해 호텔에서 월텟까지 왔다갔다 수색 작업을 펼쳤습니다. 왜그리 길바닥에 누워 자는 남정네들이 많은지...호텔 엘리베이터 앞 안내 직원과 아까 그 경비원의 눈길은 얼마나 부담스럽던지...그보다도 완존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에 처절하게 다가오는 두려움...피가 마르더군요. 급기야 새벽 5시경부터 무릎꿇고 앉아 기도를 시작했죠. 제발 남편만 무사히 돌아와준다면 내 과거를 묻지 않고 무조건 빌어보리라, 앞으로 진짜 성질 안부리고 잘해주리라, 깊이 다짐하면서요. 그러나 새벽 6시가 다가오는데도 남편은 돌아오질 않더군요. 그리하여 저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에 이른 것입니다. 호텔 카운터에 내려가 짧은 영어로 상황을 설명했죠. 처음엔 웃더군요. 틀림없이 어디서 즐기고 있을것이라고...머쓱해지고 챙피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의 경우 있을지도 모를 남편의 불행앞에 저는 다시 주먹을 꼭 쥐고 남편이 돈 한푼도 없고 여권도 없는 상태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러자 사태가 약간 심각해지더니 호텔 직원들이 모두 몰려와 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더군요. 지배인이 한 직원을 붙여주면서 함께 경찰에 가줄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뭐, 도움을 구해놓고 또 갑자기 됐다고 하기도 뭐해서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월텟 근처의 한 경찰서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태국 경찰 무섭더군요. 아마도 우리나라 역시 예전에 그랬듯이 경찰이 엄청 권위있는 존재인 모양이었습니다. 함께 간 호텔 직원은 그 군복같은거 입고 완전무장한 채 거만하게 웃고 있는 경찰 앞에 서자 완전 부동 자세가 되어 매우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하더군요. 쬐끔 얼어서요. 저도 덩달아 얼어서 뒤에 서있었죠. 뭐, 태국 말을 모르니까 나도 정중한 자세다, 라는 걸 보여주려고 연신 매우 애타고 불안한 듯한 표정으로 울상이 되어서요. 좀 오버해서 말예요. 그래야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질 않죠. 그러나 그런 저의 노력도 허사였는지 그들은 도와줄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모양이더군요. 호텔직원은 이번에는 저 멀고도 먼 무슨 경기장 옆에 있는 관광 경찰 본서로 택시를 타고 저를 데려갔습니다. 여기는 정반대 분위기,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의아해 하니 잠시 뒤 책상 밑에서 머리에 까치집 지은 남자가 평복 차림으로 부스스 일어나 저희를 맞이 하더군요. 짧은 영어나마 통하니까 넘 다행. 무슨 경위서를 쓰라는데 이번엔 또 전 이런 상상이 되었습니다. 이게 접수되면 내일 아침 서울 방송에 최 모군 태국서 실종이라고 나오나...실은 시댁에는 비밀로 하고 온 여행인데... 아아, 저는 이렇게 철없는 아내랍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번 물었습니다. 이걸 쓰면 혹시 남편이 지발로 돌아왔을 경우 우리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냐구요. 그 관광 경찰은 (잘생겼더군요. 친절하고..흐흐.) 이런 사건 신고가 무지하게 많이 들어온다. 걱정마라, 아마 어디서 술마시고 있을거다. 현지에 친구가 있냐, 문신을 했냐, 머리가 기냐, 묻더군요. 여기서 저는 내 남편은 굿펄슨이다, 라고 짧게 강조해준뒤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함께 다니며 수고해준 직원에게 경황과 돈이 없어 팁도 제대로 못주고요. 그런데 제가 막 엘리베이터를 타고 룸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여러 직원들이 한꺼번에 왁자지껄 웃으며 저를 부르더군요. 제 남편이 그 때 돌아왔고 대번에 직원들은 그를 알아본 것입니다. 롱롱타임 마사지 받고 왔다며 놀리는데 저는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며 여러직원들에게 민망한 웃음을 날리고 있는데 윽, 이 인간 챙피하게 제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입 꾹 다문채 로비 저쪽 귀퉁이에 가서 앉아버리더군요. 저는 어색한 모습을 무마시키고 싶어 억지 웃음을 날리며 그에게 다가가 올라가서 얘기하자고 달랬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약속한대로 무족건 잘못했다. 이제 잘해주겠다고 얘기했죠. 남편은 화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이렇듯 납작 백기를 들고 사과하는 건 그를 알고 난 후 9년 만에 첨 있는 일인데도 말이예요. 저는 밤새 지칠대로 지쳐 구토를 시작했습니다. 넘 힘들었거든요. 특히 정신적으로. 10번인가 들락날락하며 위액까지 다 토해내는데도 남편은 따뜻한 위로조차 없더군요. 난생 처음 잘못했다고 빌었는데 나에게 계속 화를 내다니, 열받았지만 기도하면서 맹세한 것도 있고 넘 피곤하기도 해서 토하다 지쳐 잠들었습니다. 물론 그는 저보다 먼저 곯아떨어지더군요. 여기까지가 태국 경찰 체험기입니다. 낯선 곳에서 남편을 잃어버린 경우의 대처 기록이기도 하구요. 어쩌다보니 하소연 같이 되어버렸는데 넘 길어졌으니 이날 낮동안의 여행기는 다음 편에 올리죠. 그리고, 싸움은 계속됩니다....쌈박질~
6 Comments
*^^* 1970.01.01 09:00  
좀 지나면 덜 싸울꺼에요....
*^^* 1970.01.01 09:00  
지지퍼그님 다음얘기 빨리올려 주세요 너무 궁금하고 또 재밌어요 제가 읽은 여행기중 젤
*^^* 1970.01.01 09:00  
사랑은 인내와 희생과 고통이라는데 어찌 그리사시는지......
*^^* 1970.01.01 09:00  
동갑내기..힘들지만..좋은점도 많아요..평생 행복하게 사세요...
*^^* 1970.01.01 09:00  
하여간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사시길 바랍니다.
*^^* 1970.01.01 09:00  
서로 조심하시면서 사시는게 부부겠져.. 승질죽여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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