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ped moment @ Somewhere in Phuket
아침 일찍 스팸전화에 잠이 깼다.
-고객님~혹시 돈 필요하지 않으세요?
-네, 돈 필요해요.
-그럼 저희 **대출회사에서...
-아, 근데 저 지금 태국인데요.
-아...고객님, 태국이세요? 좋으시겠네요.
-하하...네, 좋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고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다음에 돈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네, 그럴께요.
으하하.
저기 근데...지금 여기 시간은 아침 7시란 말이다...-_-;
뭐 어차피 11시까지 첵아웃 해주기로 했으므로 모닝콜 받았다 생각하기로 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닭장버스를 탔다.
맞은 편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이가 신기한 듯 나를 본다.
살짝 웃으며 안녕? 하고 손을 흔들어줬더니 엄마 품에 고개를 폭 파묻었다가
다시 빼꼼 나를 본다. 태국 아기들은 눈동자가 참 까맣고 예쁘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애들이 너무 싫었는데 나도 이제 시집 갈 때가 됐나보다.
어제 미리 빠통비치 근처 숙소 알아보고 예약 해 놓는건데...쩝.
뭐, 발에 치이는 게 숙소인데 설마 내 한 몸 누일 데 없겠나.
어제 내렸던 정실론에서 무작정 내려서 가방을 돌돌돌 끌고 가다가
날씨도 너무 덥고 배도 고파서 방라 복싱 스테이디움 맞은편에 있는
유로델리 레스토랑엘 갔다.
레드커리와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는데...
오오...너무 맛있다 +_+
여기 어쩐지 나랑 친해질 것 같은 예감. ㅎㅎ
-그 후 푸켓에 있던 2박3일동안 계속 여기만 갔다.
푸켓 그 자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만약 푸켓을 다시 가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이 곳 때문일거다.
으쌰-!
밥도 먹었으니 슬슬 숙소 알아보러 갈까?
멀리가기 귀찮아서 방라 복싱 스테이디움 바로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방 있어요?
-아니, 다 찼어요.
-방 있어요?
-아니, 방 없어요.
-방 있어요? 흑...
-아니 없어요.
-방....;;
-없어...;;
오늘은 1월3일.
소위 말해 극성수기.
그래도 설마설마 했는데...
나 오늘 여기서 노숙하는거야? 그런거야? ㅠ_ㅜ
힘없이 터덜터덜 돌아서는데 어떤 서양 아저씨께서 나를 불러세운다.
-헤이, 여기 방 하나 있대.
정말? +_+
정말 정말 정말? ㅠ_ㅜ
나는 눈을 반짝 빛내며 쏜쌀같이 아저씨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고
아저씨는 방금 손님이 첵아웃하고 나갔다고 운 좋은 줄 알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렇게 시암 게스트 하우스에 숙소를 잡았다.
숙박비는 극성수기 기준 900밧.
침대 두 개나 필요 없는데 방이 그거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900밧을 지불했다.
게다가 그 방엔 창문도 없어서 어쩐지 습하고 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하마터면 노숙 할 뻔 했는데...ㅠ_ㅜ
방을 둘러보는 내 표정을 주인 총각이 읽었는지
나중에 창문있는 방 나오면 옮겨주겠다고 먼저 말을 한다.
방은 stinky하지만 다행히 주인이 친절해서 그냥 이 곳에서 2박3일간 머물기로 결정했다.
대충 짐정리를 하고 밖으로 나가서 피피 가는 배를 예약하고
빠통 비치로드로 나가서 렌트카를 빌렸다.
(버거킹, 맥도날드 근처에서 CAR RENT라고 쓰여있는 간판을 찾으면 된다)
혹시 몰라서 한국에서 국제 면허증을 발급 받아 왔는데 별로 쓸모 없었다.
한국 면허증과 신분증만 있으면 OK!
좀 쌔끈한 오픈카를 빌리고 싶었는데 여기도 성수기라 차가 딱 한대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나 뭐, 대략 만족했다.
푸켓에서 2박3일동안 나의 발이 되어 준 Toyota Vios.
비용은 하루(24시간 기준) 1500밧. (비성수기에는 반값으로 내려간다)
오토매틱이고 CDP 장착 돼 있다.
일단 렌트카 직원과 함께 시운전을 했다.
오른쪽 운전은 처음 해봐서 대략 난감.
브레이크 대신 악셀 밟고, 깜빡이 대신 와이퍼 켜고. 계속 버벅버벅.
렌트카 직원이 불안한 듯 나를 보며 괜찮겠냐고...
자신 없으면 다시 반납하라고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_-;
에이, 그래도 처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그럴 순 없소.
괜찮으니까 까론까따와 나이한 비치 가는 길이나 알려달라고 지도를 내밀었다.
직원은 그 후 몇 번이나 각종 안전수칙을 주지시킨 뒤 차에서 내렸다.
미리 가져온 카팩을 아이팟에 연결하고 볼륨을 높였다.
간만에 Blur의 Song2~! 우~후~!!
자, 이제 신나게 달려볼까? 하핫.
빠통비치에서 까론까따 까지는 차로 약 15분~20분.
뭐, 별거 아니네.
어라? 그런데 차에 가솔린이 두 칸밖에 없네.
어쩐지 불안해서 우선 주유소부터 들르기로 하고 핸들을 꺾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길을 잃었다.
아무리 가도 주유소는 보이지 않고 한 시간 정도 운전을 하고 가다보니
어쩐지 영웅자매 동상이 보였고...조금 더 가니 푸켓 판타지아가,
공항 가는 표지판과 푸켓타운 표지판이!! 보였다.
그리고 수많은 시장과 학교들도...ㅠ_ㅜ
한 4시간 정도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 운전은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처음엔 성가시기 짝이 없는 바이크/뚝뚝 떼들을 피해다니느라 바빴는데
이젠 차선 물고 가는 뚝뚝이 알아서 비키게 만드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있었고...
여전히 빠통비치 가는 길은 모르겠고...
피곤이 몰려와 어둑어둑한 산골짜기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웠다.
(사이드 미러 사진 모음)
낮 동안 따갑게 내리쬐던 태양이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카오디오에선 Mika의 Happy Ending이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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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the way you left me, I'm not pretending
No hope, no love, no glory
No happy ending
(당신은 이렇게 날 떠났지, 난 아무렇지 않은 척 못하겠어.
희망도 없고 사랑도 없고 영광도 없고 해피엔딩도 없잖아)
This is the way that we love
Like it's forever
Then live the rest of our life
Both not together
(우린 이렇게 사랑했지. 마치 영원할 것처럼.
그리고 우린 남은 생을 살아가지. 함께가 아닌)
Wake up in the morning, stumble on my life
Can't get no love without sacrifice
If anything should happen
I guess I wish you well
(아침에 깨어날 때마다 내 삶이 힘겨워.
희생 없이는 사랑을 얻을 수 없으니까.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겨야만 한다면
난 당신이 잘 지내는 걸 바랄께)
Mmm, a little bit of heaven
But a little bit of hell
(음, 조금은 천국같고 또 조금은 지옥같아)
This is the hardest story that I've ever told
No hope, or love, or glory
Happy endings gone forever more...
(내가 늘 말해왔듯 이건 정말 너무 힘든 얘기야.
희망도, 사랑도, 영광도 없고
해피엔딩은 영원히 사라져버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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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늘 그리워했다.
여름나라에 왔기 때문에, 외국인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그는 Dominican American이다)
~때문에 생각난 게 아니라 매일, 매 순간 미치도록 보고싶고 안고싶었던 것이다.
비겁하게 도망치지 말고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러니까 당신도 인정할 건 인정해.
우린, 서로 겉으론 아닌 척 했지만. 연애, 했잖아.
장맛비가 쏟아지던 그 날.
당신은 말했지.
"물론 난 지금도 당신을 충분히 좋아해. 함께 있으면 즐거워.
하지만 당신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하시는 한국 남자 만나서 결혼해.
당신은 좋은 아내가 될 거야."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고 심지어 애 둘 딸린 이혼남이기까지 했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나한테 별 문제가 되지 않았어.
우린 각자 갈 길이 있고
그래서 어차피 당신도, 나도 한국을 떠나게 될 테니까.
그냥. 그 때까지만 함께였어도 괜찮았잖아.
어쩌면 난 너무 이기적인 인간이고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배려해서 스스로 물러나줬는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알겠다.
우린 서로에게 무서울만큼 빠져들었지만
우리 앞에 산적해 있는 수많은 문제를 헤쳐 갈 만큼 사랑하진 않았다.
더 정들어서 어쩔 수 없어지기 전에 끈을 놓아버리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럴거면 그 날 나를 안고 울어선 안되는 거였고
그럴거면 지금 나를 찾으면 안 되는거다.
어떤 현상을 자꾸 가슴이 아닌 머리로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나이드는 것' 같다. 약아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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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the hardest story that I've ever told,
No hope or love or glory,
Happy endings gone forever more,
I feel as if I'm wasting and I wasted every day.
(내가 늘 말해왔듯이 이건 너무 어려운 얘기야.
희망도, 사랑도, 영광도 없고 해피엔딩은 영원히 사라져버렸어.
마치 시간낭비 하며 매일을 허비하는 것 같아)
Two o'clock in the morning, something's on my mind,
can't get no rest, keep walking around.
If I pretend that nothing, ever went wrong,
I can get to my sleep, I can dream now and just carry on...?
This is hardest story...
(새벽 두 시, 뭔가가 내 맘에 걸려 있어서
쉴 수가 없어서 계속 주위를 걸어다니고 있어.
만약 아무것도 잘 못 되지 않았던 척 한다면
나는 지금 잠들 수 있고, 꿈꿀 수 있고 계속 그럴 수 있을까?
이건 너무 어려운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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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는 걸 억누르며 부르는 듯한 Mika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윈도우를 모조리 올리고 핸들에 엎드려
소리내어 울었다.
그동안 내 자신이 보는 것도 창피해서 꾹꾹 참아왔던 울음을
원 없이 쏟아냈다.
-이것은 나의 연애 이야기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