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ped moment @ Paton Beach
태국 온 지 5일째.
드디어 바다를 봤다.
어떤 아저씨가 80밧에 하루종일 비치 체어를 빌릴 수 있다길래 냅다 지르고
콜라 한 병 사들고 자리에 가서 짐을 던져놓은 후 바다로 곧장 달려갔다.
저질몸매 땜에 한국에선 절대로 입고 나돌아다닐 수 없는 비키니를 걸치고.
(알게 뭐야. ㅋ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입어보겠어. ㅎㅎ)
드디어 태국의 바다에 처음으로 발을 담궜다.
태국의 바다는 한국과 달리 모래가 곱고 파도도 약한 데다가 소금기가 덜해서
해수욕을 한 뒤 굳이 샤워를 하지 않아도 참을 만하다.
수영을 못하는 관계로...바다에서 그리 오래 놀진 못하고...
비치 파라솔 아래 누워 계속 뒹굴거렸다.
더우면 잠깐 가서 몸 적시고 다시 와서 눕고...계속 반복.
유후~! 휴가 분위기 지대 -_-b
응...바로 이거거든.
해변에서 뒹굴며 음악 듣고 책 보기(원츄리스트에 두 번이나 써놨던;;)
이렇게 한가하게 누워있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과 중국에서 고생하고 계실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나만 이렇게 좋은 거 봐도 되는거야?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ㅠ
먼저 중국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아빠. 지금 뭐해요?
-지금? 잠깐 밥 먹으러 나왔어. 여기 너무 추워. 상해 날씨 진짜 맘에 안들어.
우리 딸은 지금 뭐해?
-아...나는 지금 푸켓. 바다 보러 잠깐 나왔어요.
(여기 날씨 완전 좋아요...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ㅠ)
-그래? 밥은 먹었어?
-아뇨. 아직.
-그래...거기까지 갔는데 살 좀 빼서 와. 공주님, 사랑해~
-응, 저도 사랑해요....ㅠ
다음, 한국에 계신 어무니께 전화했다.
-엄마, 나 지금 푸켓. 여기 오니까 엄마 생각이 나서...
나 안 버리고 키워줘서 고마워 엄마...
-그러게, 지금 생각하면 진작에 갖다 버릴 걸 그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산부인과에서 애가 바뀐 거 같아. 그나저나 살은 좀 빠졌냐?
(5년 전에 갑상선 기능저하증에 걸려서 두달만에 15kg이상 체중이 늘었는데
그게 아직도 안 빠지고 있어서 부모님 걱정이 크시다 -_-;)
-아니. 여기 온지 이제 5일 됐거든?
아무튼 엄마, 나중에 꼭 엄마아빠 모시고 여기 다시 오고싶어.
-문디 가스나. 어느세월에?! 내가 가는게 빠르겠다.
-안죽고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가게 될거야. 그러니까 밥 잘 먹고 죽지 말고 기다려.
-안그래도 지금 밥 먹는 중이다. 너한테 잔소리 하려면 힘 좀 키워놔야지. 전화비 나온다. 끊어.
-알았어. 아참, 엄마 사랑...
(뚜 뚜뚜....)
성질 급한 울 엄마, 본인 하실 말씀 끝나면 바로 전화 끊으신다. ㅋ
해변에 누워 지난 날을 돌이켜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걸 보고 짐을 챙겨 빠통 비치로드로 나갔다.
애초에 여행 목적에 다이어트도 포함 돼 있었기 때문에
음식에 그리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되면 배는 고프다-_-;;
거리에 있는 수많은 음식점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음식의 종류 또한 다양했다.
하지만 종류가 많을 수록 결정을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기 때문에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여행책에 나와있는 한국 음식점엘 가보기로 했다.
해외 여행을 하면 꼭 한번씩 한국 음식점에 들르곤 하는데
태국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물어물어 찾아간 곳.
역시나...주위 음식점들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규모도 작구나...
게다가 손님도 나밖에 없고...ㅠ
이 집의 주종목은 삼겹살인가본데 혼자 삼겹살 먹긴 그렇고 해서
된장찌개 백반을 시켰다. (김치찌개를 먹고싶었으나 혹시나 해서...
파리의 경우 재료 구하기가 힘들었는지 양배추 김치를 주는 곳도 있었으므로...;)
음식 맛은 깔끔하고 단정했다. 김치도 맛있었고. 밥은 역시 태국쌀이었지만. ㅎㅎ
바로 옆 가게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시끄러운데 여긴 마치 외딴 섬처럼 조용하다.
나는 세상에서 한국 음식이 제일 맛있는데...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도 한국 음식 맛에 다들 반하곤 하는데...
왜 외국에 있는 한국 음식점들은 별로 인기가 없을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솔직히 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입구부터가 대부분 들어가기 싫게 생겼다.
자본의 한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낡고 촌스러운 간판, 먼지 낀 유리창.
언어의 한계라고 무마하기엔 어딘지 미심쩍은 무뚝뚝함.
재료 조달의 한계나 현지인 입맛에 맞춘다는 이유로 보기에도 미흡한 음식 맛.
물론 내가 가 보지 못한 외국의 한식집 중에 썩 괜찮은 곳도 있겠지만
런던, 파리, 로마, 그리고 푸켓의 한식집에서 공통적으로 느낀점은 그랬다.
나는 현재 요리유학을 준비중이다. (2MB 당선직후 나가 살기로 결심함)
유학의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해외에 한국음식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기위해선 물론 필요한 것들이 엄청나게 많지만
우리는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보면서 정작 이렇게 좋은 음식을 우리만 알고 있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국가 이미지를 좌우하는 건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음식'일 것이다.
태국 음식을 보면 태국에 가고싶은 열병을 앓듯이.
아아...말로는 뭔들 못하겠나.
괜히 음식얘기 했다가 얘기가 길어졌다. 잠깐 숨 좀 고르고...
혼자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방라 로드로 나가서 맥주를 마셨다.
여기도 신혼부부, 저기도 신혼부부, 저기는 커플, 여기는 친구...
혼자 온 사람은 나랑 나이 든 서양 아저씨들 뿐이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거리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녁 8시경.
화려한 차림의 언니들 등장!
이들의 정체는 꺼떠이. 레이디보이. 혹은 트렌스젠더.
9시부터 쇼를 한다며 광고지를 나눠주고 100밧씩 밧고 사진을 찍어준다.
뭐든지 관광상품이 되는 무서운 태국.
노천바에 앉아서 도촬하고 있었더니 언니들이 와서 같이 사진 찍자고 권한다.
그러나 해수욕 후 샤워를 안 한 관계로 웃으며 사양한 후 계속 도촬했다...;;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러는건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시원시원하고 유쾌해 보였다.
특히 저 까만 티백 언니...ㅋ
특유의 억양과 목소리로 "해피 뉴이어-매니매니 피쓰으-!" 를 외칠 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ㅎㅎ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니 어쩐지 외로워지기도 하고
더 있어봤자 할 것도 없고 해서 숙소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는 이미 끊겼고 택시든 뚝뚝이든 뭐든 타고 가려고 거리를 걷는데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그 자리에 멈춰섰다.
쏘이 에릭.
아아...또 당신이야?
(그의 이름은 eric이다. 물론, 신화 멤버 아님-_-;;)
한동안 저 간판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딪혀 넘어질 뻔 한 뒤
다시 정신을 수습하고 푸켓타운 안간다는 뚝뚝 기사들을 겨우 설득해 300밧에 딜을 하고 올라탔다.
내일은 숙소를 이쪽으로 옮겨야지 생각하며.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푸켓 타운으로 Going back~
하루동안 너무 과도하게 많은 신혼부부와 커플을 본 탓인지,
아니면 그 빌어먹을 이름을 간판으로까지 본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맞은편의 빈 의자가 어쩐지 서글펐던 탓인지 어쩐지
가는 길에 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버렸다.
-Happy new year! Now I'm in Thailand.
-이것은 나의 연애 이야기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