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ped moment @ Siam
꺍끍꿹쀍~
아이아이 앙앙~
꺍끍꿹쀍~
아이아이 앙앙~
누군가가 외계인과 교섭하고 있는듯한 소리에 잠을 깼다.
낯선 공기. 낯선 풍경. 낯선 MTV의 VJ.
습관처럼 사이드 테이블을 더듬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3통. 미확인 문자 4건. 현재시각 오후 2시.
이런. 몇 시간을 잔 거냐?!
창가로 가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낯선 태양. 낯선 거리. 낯선 자동차들.
아, 참.
나 지금 태국에 있지?
역시나 습관처럼 한 손엔 휴대폰, 한 손엔 모닝 시가렛을 들고 욕실로 갔다.
꿀맛 같은 독을 입에 물고 문자메시지의 답장을 보냈다.
-Leona, 요즘 뭐해? 일 하던거 끝났다며? 잘 지내는거야?
-저 지금 태국이에요! 여기 완전 더워요. 땀나요. 음화화!
-잘 도착했냐? 태국 어때? 좋아?
-응, 완전 좋아. 아직 밖에 안나가서 잘 모르겠지만 괜히 막 두근두근 설레.
-아직 밥 안 먹었으면 빠이 13리안 가서 쏨땀 먹어봐.
-응, 나 지금 일어났어. 이따 나가기 전에 전화할께.
뭐 이런식의 염장문자를 날린 후 샤워를 하고 여행가방에서 랩탑을 꺼내 전원을 켰다.
기대는 안 했지만 혹시나 인터넷이 될까 싶어 랜선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무선인터넷이 잡힌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로.
우왕ㅋ굳ㅋ
av워커 방콕편과(헬로태국은 절판돼서 못 구했다)
다이어리에 미리 써 놓았던 원츄리스트를 펼쳐놓고 태사랑 웹페이지를 띄웠다.
일정은 여행 와서 짠다. 이게 내 여행 모토다.
참고로 나의 원츄리스트를 공개하자면...
-쇼핑(주로 태닝오일, 비키니, 샌들 등 여름 물품들)
-뚝뚝 타기
-타이 마사지
-해변에서 뒹굴며 음악듣고 책 보기
-봉지커피, 봉지주스 마시기
-레게머리, 헤나 하기
-렌트카로 드라이브
-일일 타이푸드 쿠킹클래스 수강
-해변에서 뒹굴며 음악듣고 책 보기 (두 번이나 써놨다 -_-;)
-라이브바&클럽파티
보름동안 있으면서 하고싶은 일이 이게 다다.ㅎㅎ
그러나 해변에서 뒹굴며 음악듣고 책 보기, 드라이브 이런 건
방콕에서 하기엔 좀 무리가 있으므로...우선 쇼핑부터 하기로 했다. 그러나.
방콕엔 쇼핑센터가 너무 많다.
큰 건 덥썩덥썩 잘 지르지만 의외로 인터넷 쇼핑이나 마트에서 샴푸 사기 등
비슷한 것들이 여러개 있으면 결정을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인 나. -_-;;
30분 넘게 고민하다가 배가 고파져서, 아니 우선은 커피가 고파서
제일 먼저 눈에 띈 시암 파라곤으로 무작정 가 보기로 하고 로비를 나섰다.
이 곳이 방콕에서 3박 4일간 묵었던 숙소-Veronica Residence Hotel.
말이 호텔이지 우리나라 모텔과 비슷한 수준.
독특한 인테리어의 자체 레스토랑이 있긴 있던데 아침 서비스는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른다.
어차피 아침 잠이 많아서 못 챙겨먹을 게 뻔하므로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숙박비는 극성수기 기준 하루 1700밧. 비성수기엔 반 정도로 내려가는 것 같다.
숙소가 해변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방콕에서 웹상에 변변한 후기 하나 없던 이 숙소를 선택한 건
순전히 내 스타일인 깔끔하고 모던하면서도 컬러풀한 인테리어 때문.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비스 따위 필요 없고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은 사람에겐
추천 할 만한 숙소다. 벌레도 없고. ㅎㅎ
택시를 타고 시암파라곤으로 향했다.
한겨울인 한국에서 하루만에 한여름인 태국의 햇살을 즐기게 되다니!
그냥 가만히 앉아있어도 즐거웠다. 그러나.
막상 시암파라곤에 도착하자 기분이 급 다운됐다.
한국에서도 사람 북적이고 조도 잔뜩 올린 조명이 박힌 백화점이나 아케이드에 알러지를 일으키는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길 온 건지.
게다가 이 곳은 태국이라기보단 일본 풍경에 더 가까워서 별로 정이 안 갔다.
파는 물건들도 다 비싸고.
Sugar Daddy나 끼고 오면 모를까 혼자 오긴 별로-_-;
(실제로 다 죽어가는 노인과 젊은여자 커플을 이 곳에서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다)
맞은편 시암센터는 그나마 좀 나았지만 뭐 그밥에 그나물이었다.
아, 재미 없어. 의욕상실 된 채로 벤치에 앉아있다가
누군가의 비유에 따르면 우리나라 홍대거리와 비슷하다는(실제론 전혀 안 비슷하다)
시암스퀘어가 있는 맞은편으로 육교를 건너 이동했다.
어머, 세상에.
단지 길 하나만 건넜을 뿐인데 너무 상반된 풍경.
이 곳에 발을 딛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역시 난 시장 스타일이야.
누구 말대로 스타벅스가 있으니 진짜 된장녀 같다는. ㅋㅋ
아기자기한 옷가게의 쇼윈도를 구경하며 걷다가 카페인을 충전하기 위해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한 잔 75밧. 우리돈으로 약 2250원.
Hmm...not bad.
계산하고 음료준비대에 가서 기다리려는데
점원이 다 되면 갖다준다고 자리에 가서 앉아있으란다.
야외테이블에 앉아 교보문고 핫트랙에서 단돈 2500원 주고 산
완소 여행일기장(누군가에겐 일수 공책일. ㅋ)을 꺼냈다.
힘들고 지칠 때 나를 위로 해 주는 스티커의 문구를 바라보며. ㅠ
곧이어 점원이 커피를 들고 내 자리로 왔고 저 문구를 봤는지 어쨌는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Sure. U R Pretty.
나도 웃으며 응대했다.
-Thanks. but I know.
프롤로그에서 잠깐 예고한 바 있듯이.
그렇다.
이것은 나의 연애 이야기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