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ped moment - Prologue
여행의 종류와 방법은 여러가지다.
패키지 여행, 자유여행, 호화 여행, 베낭여행, 가족여행, 신혼여행, 친구나 연인과 함께 떠나는 여행,
그리고 혼자 훌쩍 떠나는 여행.
그 중에서도 혼자 하는 여행은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지만 위험부담이 커서 그다지 시도하지 않는 방법.
더군다나 유럽도 아니고, 인도도 아니고 태국을 혼자 간다는 건 사실 그리 산뜻한 발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백수인 나와 달리 다들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보름이나 되는 여행에 동참 할 사람도 없거니와
워낙 혼자 잘 노는 성격인데다가 뇌가 '겁'을 인지하지 못하는지라...
혼자, 그것도 여자 혼자 떠난다는 것에 대해선 큰 부담이 없었다.
주위에서도 이런 내 성격을 너무 잘 아는지라 걱정하거나 말리는 이도 없었다.
일례로...
#. 인천공항
-여보세요? 엄마 나 지금 인천공항.
-공항엔 왜?
-태국가려고. 한 시간 있다 출발.
-그래? 갔다가 언제 오는데?
-글쎄 한 보름 정도? 더 있을 수도 있고.
-문디 가스나. 돈은?
-모아놓은 거 있어.
-그래? 엄마 전화들어온다. 잘 갔다와 (뚝)
(...통화시간 39초. 이런 식이었다)
어쨌든 내가 태국 여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마의 아홉수'를 추운 곳에서 살벌하게 맞이하기가 싫었다는 것.
나이는 단지 숫자놀음일 뿐이고 나는 아직 만으로 27이지만 나에겐 어쩐지 아홉수의 저주가 올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지은 죄가 많아서일지도...-_-;)
음...그런데 여름나라도 종류가 많은데...어디로 가지?
인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남미? 태국?
마지막까지 박빙의 승부를 벌이던 인도를 제치고 결국 태국 당첨!
이유는 일단 인도 보다는 편할 것 같아서. 비행기 표 값도 싸고-.-;
**물론 인도 가는 비행기 표 값 보다 싸다는 얘기다.
연말, 연초 다 들어가있는 극성수기라 비행기 표값만 텍스포함 75만원 들었다. 그나마도 싸게 잘 구한거다.
대만/홍콩 경유, 리턴변경 무제한 가능, 방콕 to 푸켓 왕복 비행편 포함, 홍콩 스탑오버 무료.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은가.
물론 처음에 이 가격을 들었을 땐 차라리 이 돈이면 유럽을 가지...라고 잠깐 생각했으나
태국행을 강행한 이유는 유럽 역시 추운 겨울이었다는거다.
어쨌든...태사랑에서 틈틈이 게시판 살펴보고 티켓 끊고 여행 책 대충 훑어보고 드디어.
2007년을 이틀 남긴 12월 29일.
여름 나라, 태국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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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타 보는 타이항공. 보라색 담요가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와 자리에 앉는데...어머, 이게 왠 행운?
내 옆자리만 빈 상태로 비행기 이륙~
편하게 갈 수 있겠군. 룰루랄라 하던 것도 잠시.
창밖을 보려는데 역한 냄새가 코를 확 찔렀다.
냄새의 근원지는...내 뒷자리에 앉은 동남아계 아저씨.
그의 발냄새였던 거다.
처음엔 그래도 좀 참을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나는 뭐 발냄새 안나나?
그런데 이게 왠일. 오, 망할. 이런, 망할.
그가 신발을 벗었다.
밀폐 된 기내에 그의 발냄새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했고
나는 극심한 두통과 함께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참아보려고 했다. 면세품 책자의 향수코너를 뒤지며...
이거 지금 주문해서 여기다 뿌리면 안될까? 아...지금 당장 주는거 아닌가? 흑...ㅠ
머릿속으로 온갖 극복방안을 떠올려보면서.
그러던 중 기내식이 배급됐다.
태국인 스튜어드가 와서는 대뜸 "닭고기? 소고기?" 라고 한국말로 물어본다.
소고기 요리를 주문하고 뚜껑을 열었다. 확 퍼지는 음식냄새.
그리고 순식간에 거기에 섞여드는 발냄새. 그건 퓨어한 발냄새 보다 더 역했다.
식욕이 있을 리 만무해 그대로 뚜껑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이런 에피소드가 나왔다.
노숙자가 살인자로 몰려 수사를 받았는데 원인은 그의 발냄새였다는 것.
그리고 그 얘기는 무려 '진실'이었다.
나는 그 얘기, 이제 믿는다.
냄새로 사람을 죽이는 거? 하하...충분히 가능하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중 드디어. 비행기가 경유지인 대만공항에 멈춰 섰다.
나는 얼른 그 지옥에서 서둘러 빠져나갔다.
잠시 후 다시 기내에 탑승했다.
제발...제발...그가 대만에서 내리고 없길 간절히 기도하며.
71A...71A...
내 좌석을 찾은 순간, 신은 나를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기내에 아주 배어버린 발냄새. 그는 아예 내리지도 않았다.
방콕까지는 앞으로 약 두 시간 반.
문제의 근원은 쿨쿨 자고 있었고 옆 자리에 친구로 보이는 남자가 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혹시 나를 레이시스트로 생각하진 않을까, 자존심 상하진 않을까 잠시 고민했으나
10분 후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냄새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도 있을 것만 같았으므로.
말로 하면 주위 사람들이 들을 수도 있으니까 쪽지를 쓰기로 했다.
-Please tell him(beside you)
Wash his feet. His feet smells makes my headache.
I'm so sorry but please help me.
그리고 혹시나 그가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밑에다가 삽화를 덧붙였다.
발 그림에 ~표시 세 개하고 그 앞에 사람이 OTL 포즈로 쓰러져 있는 식이다. -_-;;
무고한 친구에게 거듭 미안하다 말하며 쪽지를 건넸고
그는 쪽지를 보더니 웃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친구를 깨워 뭐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Oh, thanks God!
발냄새가 아주 없어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훨씬 나아졌다.
아아...발냄새 얘기를 이렇게나 길게 하다니!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이므로;
비위 약하신 분들께는 죄송.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현지시각 밤 11시.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입국장에서 택시를 타야 바가지를 안쓴단 얘기를 들었지만
기내에서 너무 시달린 터라 기력이 없었다.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라차다 피섹까지 택시요금 500밧을 냈고
(이것이 내가 당한 처음이자 마지막 택시 바가지였다.
기사 아저씨도 좀 찔렸는지 나중에 호텔에서 짐도 손수 옮겨주셨다)
무사히 도착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간 태국, 방콕에서의 첫 날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좀 더 예쁜 얘기를 하고 싶었으나 프롤로그에서부터 벌써 이모냥이군요-_-;
앞으로 더 흥미진진하고 로맨틱하며 섹시한 얘기가 펼쳐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