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59 (Airplane back to Seoul)
마지막 여행기입니다.
두달 비웠을 뿐인데 한국에 오니 모든 것이 낯설군요. 헌데 몇시간 만에 적응해버리는거 같아서 뭔가 두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을 총정리하는 글 하나만 더 올리면 끝입니다. 이건 아마 조금 천천히 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봐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덕분에 홀로 다니면서 많은 심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오시는 분들은 이따 뵙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후 7시에 종로에서 뵐거 같으며 자세한 사항은 개별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심카드 사러 나가야 하네요...)
혹시라도 늦게라도 오시고 싶으신 분은 010-구사공이-0903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http://lkfar.tistory.com/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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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시작한 이후 59번째로 아침에 눈을 뜬다. 이게 마지막이다. 60번째는 없다. 내일이면 카운트는 다시 1일로 리셋될거다. 그 '1'이 무엇을 위한 카운트인지를 찾는 것은 내 몫이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온다. 비싼 호텔 조식이니 먹는건 좋은데, 이러다 퍼보를 못 먹고 떠나는건 아닐지 걱정도 된다. 사람들이 이미 조식을 먹고 있는게 보인다. 왠지 다른 이들과 엮이기 싫어서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는다. 연주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조금 덥긴 하지만 이 평화가 좋다.
아침을 가지러 가본다. 다행히 퍼보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면 다 담아놓고 자기가 국물만 넣어서 먹는 퍼보를 베트남에서 마지막으로 먹는 퍼보로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억지로 찾아갈 생각도 없다. 오늘 하루는 자연스레 흘러가는데로, 내 마음이 이끄는데로 있어보자.
자리를 잡고 아침을 먹으면서 글을 쓸려고 핸드폰을 열어보니 댓글 알람이 꽤 많이 와있다. 어제 저녁에 잠들기 전에 올렸는데 언제들 보신거지? 아마 출근할때 많이들 보시는거 같다. 하나하나 읽어본다.
이번 여행에서 글이 큰 부분을 차지했듯이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루만 여행기를 못 올려도 걱정해주고, 매번 'Have a safe trip'이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힘들고 지칠때 그리고 외로울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원래는 그냥 내 감정을 기록하고자 시작한 여행기였지만 사람들과도 감정을 교류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모임을 하는게 잘하는건가, 너무 나가는거 아닌가 걱정을 했었지만, 이런 이유로 그리 해야만 진짜 여행이 끝날거 같은 생각이 든다.
어제 여행기에 한분이 댓글로 적어주신게 이번 여행에서 내가 깨달은 것을 한번에 정리하는거 같아서 마음을 울린다.
'별거 아닌 걸로 행복함을 느끼는게 진정 행복인거 같아요. 어제 저녁에 갈증이 나서 시원한게 먹고 싶더라구요. 와이프가 커피 한잔 줄까? 라고 하길래 잘밤인데...라 하다가 디카페인캡슐을 찾아내고선 두잔 내려서 아이스로 마시는데 행복함, 여유가 느껴지는게 참 좋더라구요. 가까이 있는데 그걸 느낄 여유가 부족하다는게 아이러니 같습니다.'
파랑새를 찾아 먼 곳에 왔지만 막상 파랑새는 역시나 언제나 그렇듯 내 안에 있었다. 그 파랑새가 '여유'라는걸 두달 동안 다니면서 깨닫는다. 여행과 일상에 가장 큰 차이가 여유다. 일상에서는 단 5분도 뭔가를 안하고는 못 버틴다. 쓸모 없는 티비를 보거나, 누군가와 별 의미 없는 잡담을 하거나,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서 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 갈증이 날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이런 여행은 필요없다. 출근하는 길에 새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다면, 지하철의 작은 덜컹거림에서 음악이 느껴진다면, 한여름 내리쬐는 태양볕에서 가로수가 만드는 작은 그늘이 고맙다면, 그리고 와이프가 타주는 디카프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여행중인거다.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산다는거가 이런거일거다.
여행 마지막 날에 이렇게 정리가 될 수 있다는게 행복하고 고맙다. 기승전, 그리고 '결'이 있음이 감사하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내가 여기서 할 일은 끝났다. 내가 할일은 이제 저쪽 현실에 존재한다. 가서 부딧쳐보자. 그 악명 높은 현실이라는 놈, 어디 한번 와보라고 해봐라. 맷집을 쌓고 내공을 쌓았으니 이제 진정한 맞짱을 떠주겠다.
나는 특별하다. 모든 '나'는 특별하다. 예전에 한 여인에게 '나 똑똑하지 않냐고' 철없는 질문을 한적이 있다.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그 여인은 '모든 사람은 똑똑하다, 단지 그 똑똑한게 사회가 원하는 방향이냐 아니냐가 다를 뿐이다'라는 우문현답을 줬다. 이후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 영재는 없다. 그리고 모두가 다 영재다. 자기가 '똑똑한', 본인이 영재인 그 부분을 찾는 사람이 성공한 자이고 행복한 자이다.
나는 특별하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가면 일반적인 사회의 기준으로 모두가 나는 특별하지 않다고, 나도 별 수 없다고 끊임없이 시련을 줄거다. 돈이 그러할 것이고, 사회가 그러할 것이고, 부모님이 그러할 것이고, 심지어 여자친구마저 그러할 것이다. 이 세상에 내가 특별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특별하다는걸 잊지 말자. 이 세상에 태어나 이곳에 있는 '나'를 느끼고, 그 위대함을 깨닫자. 우리에게 단 한번 주어진 인생, 남 눈치를 보며, 남을 따라가며 살 필요 없다. 모든 정답은 내 안에 있다.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다시 한번 무너질때, 그때 이 여행기를 한번 다시 펼치고 작은 여행을 떠나보자.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저녁에 공항으로 나를 태워다줄 버스를 예약한다. 여기 호텔에서 하면 15달라라고 하기에 옆에 호텔로 가서 5달라인 11만동에 셔틀버스를 예약한다. 7시에 출발이다. 저녁을 먹고 버스를 타서 8시에 공항에 도착하면 3시간 정도가 남으니 충분하다.
숙박비 계산도 끝낸다. 이제 남은 돈은 정말 먹는데 전부 쓰면 된다. 남은 돈이 60만동이 넘는다. 한끼에 30만동이라, 역시 불가능하다. 혹시 쓸 수 있다 하더라도 분명히 만족스럽지 않을거다. 그냥 돈을 신경안쓰면서 먹되, 쓸려고 먹지는 말아야겠다.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에어컨 바람을 즐겨보자. 한국 가면 보나마나 일년에 정말 더운 날 하루 이틀만 에어컨 틀 것이 확실하다.
나도 모르게 스쿠터 검색을 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스쿠터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예전부터 눈여겨 보던 '줌머'가 땡기지만 시속 60을 못 낸다니 서울에서 탈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걸 떠나서 스쿠터를 과연 타게 될까? 난 걷는것과 대중교통이 가장 좋은 이동수단이라 믿는다. 특히 지하철은 또 하나의 독서실이다. 책 읽는 시간을 찾기 힘든 우리에게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물론 출퇴근 시간의 지옥철은 예외겠지만.
12시다. 체크아웃의 시간이다. 이번 여행에서의 마지막 체크아웃이다. 아침 먹으면서 마음 정리가 이미 끝났나보다. 진짜 아무 감정이 없다. 짐을 싸고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점심을 먹은 이후 수영장에서 모리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다. 갈아입을 옷을 맨 위에 담고 나머지는 또 다시 가방에 쑤셔넣는다. 이번에 체크아웃하면 다음 체크인은 서울 강동구 명일동이다.
마지막으로 방을 한번 둘러본다. 이 방은 비싼 방 답게 모든 것이 좋았지만 딱 하나, 수동비데가 없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 왜 이런 선진 기술이 고급호텔에는 다 빠져있는걸까. 잠깐, 서울에서 이거 설치 사업이나 해볼까? 순식간에 망하겠지.
내려와서 체크아웃을 하고 메인가방을 맡기고 마지막 점심을 먹으러 간다. 어제 저녁에 가려다가 안간 Streets Restaurant Cafe 라는 곳으로 향한다. 주소가 17 Le Loi 이길래 지도를 안피고 그냥 걸어간다. 지나가다 저 길은 이미 본적이 있다. 길만 찾으면 나머지는 어려울게 없다. 단 한번 해매지 않고 들어간다.
근데 여기 유명한곳 아니었나? 손님이 하나도 없다. 벽에는 여기저기 잡지에 소개된 내용이 붙어있지만 정작 손님은 없다. 메뉴판을 받아보니 알겠다. Lau Cao가 7.5만동이다. 두배가 넘는다. 평소라면 그냥 나왔겠지만 오늘은 사실 쓸수 있는 돈이기에 앉아서 메뉴를 흝어본다.
메뉴를 보고 있는데 그 쌀과자와 찍어먹을 커리 비슷한걸 준다. 비싼 곳이라 확실히 다르긴 하다. 뭘 먹을지 모르겠어서 직원한테 내 마지막 점심이라며 하나를 골라달라고 하니,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My Quang'을 추천한다. 뭔지 모르지만 9만동짜리 현지 로컬 음식을 주문한다. 무려 6만동의 망고쥬스도 주문한다. 가격이 미쳤다. 그런만큼 맛은 있겠지.
망고쥬스는 그냥 망고쥬스다. 길거리에 2만동짜리와 똑같다. 이건 자리세군. 미쾅은, 확실히 맛은 있다. 고급스러운 재료들도 많이 들어가있다. 하지만 9만동의 값어치는 잘 안느껴진다. 서비스업은 보면 가격과 퀄리티가 일차방적식의 곡선이 아닌 로그 방정식의 곡선을 따르는거 같다. 어느 순간까지는 낸만큼 퀄리티가 올라가나 일정 수준 이후에는 퀄리티를 조금 올리기 위하여 엄청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내 입맛은 가성비에 길들여졌는지 이런 고급스러운 음식에서는 만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저녁에는 돈 생각 안하고, 원래 먹던걸 먹어야겠다.
앉아서 글을 쓰고 있으니, 디저트를 권한다. 뭐가 있나 메뉴를 보니 또 기본 6만동이다. 안먹어. 망고주스를 다 먹으니 한잔 더 먹겠냐고 권한다. 보통 이러면 공짜 아니야? 공짜 아닌걸 왜 이리 권유한다냐. 게다가 여기 왜 이렇게 더운건지. 이정도 가격을 받을려면 에어컨은 기본적으로 틀어줘야 하는거 아닌가. 이거 막판에 괜히 투덜투덜이다. 점심은 확실히 맛있었으니 된거지 뭐.
그리 생각하려 하는데, 빌지를 달라고 하니 10% tax까지 추가로 붙는다. 처음본다. 이래서 사람은 자기 행동패턴을 벗어나면 안되는거다. 잊자, 밥은 맛있었잖아. 그리고 이제 이번 여행에서의 식사는 한끼가 남았다.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이미 수영복을 입고 있기에 바로 옥상 수영장으로 직행한다. 아무도 없다. 벌써 1시가 넘었는데 다들 어디 갔나? 난 당연히 좋다. 앞으로 덤블링을 해서 수영장에 뛰어든다. 역시 물이 좋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수영이라기 보다는 물놀이에 가까운 행위를 실컷 즐기다 가장 좋은 비치베드에 누워 자리를 잡고 모리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제 진짜 여행을 마무리 할때가 되었다.
한참 독서에 빠져 있는데 한국인으로 보는 동양인 여성 두분이 들어온다. 그리고 곧이어 서양분들도 몇 합류한다.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오면 이 시간인가보다. 내가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미안하지만 어차피 누군가는 앉아야 하는 자리이기에 미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여성 두분은 한국분 맞다. 서로 한국말을 하는걸 들으며 아는척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 말씀을 드린다. 내가 한국인처럼 안보이기에 두분이서 한국말로 무슨 말을 하실지 모른다. 미리 한국인임을 알려드리는게 예의다. 한국말로 말을 거니 역시나 깜짝 놀라신다. 한분은 수영하다 놀라셔서 물 속에 잠기더니 물을 좀 먹고 콜록이며 나오신다. 뭐 그리 놀랄 일이라고.
말을 건김에 얘기를 좀 나눈다. 전혀 안그래보였는데 쌍둥이란다. 그것도 일란성이시란다. 그러고보니 닮았다. 후천적인 차이가 외모의 차이를 가지고 온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참고로 나는 관상을 믿는다. 물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관상은 아니고, 사람이 살아온 과정이, 그 표정들이 사람의 얼굴을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항상 웃으며 살고 싶다.
두분은 여행한지 15일에 앞으로 한달이 남았단다. 너무 깨끗해서 보이셔서 안그럴줄 알았더니 장기여행자다. 다 나 같이 더러워지는건 아닌가보다. 난 마지막 날이라고 일러드리고 역시나 미얀마 홍보를 잠시 한다. 하지만 어린 분들은 아닌듯 하니 본인의 길을 잘 가실거 같다. 여행은 원래 남의 길을 따라가는게 아니다.
나는 다시 누워서 책에 집중한다. 한참 읽다 보니 두분은 언제 들어가셨다. 다시금 책에 집중한다. 이 책으로의 여행이 이번에 내가 가는 마지막 투어다.
책을 다 읽고 덮으니 오후 4시다. 모리의 죽음에 안타깝다기 보다는 저런 심적인 평온함을 얻었다는게 부럽다. 하지만 남의 깨달음을 부러워하는 것 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게다가 사실 모든 얘기가 나와 가치관이 같지는 않다. 나는 내 길을 가자.
오늘도 몇마디를 역시나 곱씹어본다. 모리의 말을 매개체 삼아 생각을 정리해본다.
'Status will get you nowhere. Only an open heart will allow you to float equally between everyone.'
돈에 관련된 얘기다. 보통 우리는 상류층에 들기 위하여, 그들과 동격으로 되기 위해 노력해서 돈을 모으려고 한다. 하지만 진정 우리를 그들과 또한 다른 누구와 동격으로 만드는건 돈이 아닌 우리 자신의 열린 마음이다.
'I believe in being fully present.'
현재에 존재해야 후회가 안남는다. 현재에 존재하고 지금 앞에 있는 사람 혹은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행복을 향한 길이다.
'If you don't respect the other person, you're gonna have a lot of troube. If you don't know how to compromise, you're gonna have a lot of trouble. If you can't talk openly about what goes on between you, you're goona have a lot of trouble. And if you don't have a common set of values in life, you're gonna have a lot of trouble. Your values must be alike.'
배우자는, 자신의 진정한 짝은 소위 말하는 단순한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욕망에 기초한 사랑은 아름다움이 식으면, 익숙해지면, 같이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보다 깊은 영혼간의 교류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존중할줄 알아야 하며,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하고,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중의 핵심은 공유해야 한다. 이게 진정한 사랑이다.
'But the big things -- how we think, what we value -- those you must choose yourself.'
진정한 '나만의' 생각은 무엇일까? 우리는 부모로부터 교육받고, 사회로부터 길들여지며, 그 이후에도 무수히 많은 매체로부터 수많은 정보를 입수한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남은 생각이 나만의 생각이라고 했지만 그게 가능할까? 그리고 진짜 그 부정을 했다는 것은 어찌 알 수 있을까?
어차피 인간은 홀로 설수 없기에 독립적으로 뭔가를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중요한건 '선택'이라고 믿는다. 여러가지 길에서 모든 것을 의심한 후에 내 가치관, 그리고 내 길을 스스로 선택해야 본인의 길을 갈 수 있다. 그 결과가 같아도 돌아가야 진정한 내 선택이 된다.
여행 다닐때, 'Tuesday with Morrie'만큼 좋은 책이 없다. 물론 모든 말을 동의하는건 아니고 기본적으로 내 가치관은 이분보다 조금 더 비판적이라고 느끼긴 한다. 하지만 생각을 시작하고 정리하기에는 이만한 책이 없다. 다음 여행때도 반드시 이 책과 함께하리라 다짐해본다.
내려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시간이 좀 남기에 2.5만동 아이스크림을 하나 달라고 하고 로비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컵에 담아주는 이쁜 디저트를 상상했지만 하드를 하나 준다. 뭐 하드라고 맛이 없는건 아니니 맛있게 빨아먹는다.
샤워를 한게 무색하게도 앉아있으니 땀이 슬슬 나기 시작한다. 확실히 베트남은 더위보다는 불쾌지수가 높은 나라다. 땀히 흐를 정도의 날씨라는 생각이 안드는데도 이렇다. 하지만 베트남은 또 배려의 나라이기도 하다. 난 가만히 있었음에도 직원들이 뭔가를 느꼈는지 내쪽으로 선풍기를 틀어준다.
앉아있는데 아까 한국 분들이 식사를 하러 가시는지 내려온다.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나를 못 보시고 지나치신다. 눈길이 분명 내가 있는 쪽을 한번 스윽 향했는데 못 알아보신다. 누가 그랬더라. 맞다,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이 그랬었다. 나는 배경 같단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눈에 안들어온단다. 까만피부에 갈색 티셔츠, 갈색 바지를 입고 있어서일거다. 나는 지각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 느낌은 뭔가 나쁘지 않다.
5시가 지나서 진정한 최후의 만찬을 먹으러 길을 나선다. 7시에 버스를 타야 하니 여유 있게 먹으려면 지금 나가야 한다. 마지막 식사는 검색해서 가지 않고, 그냥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먹기로 결심하였다. 돈이 있다고 내 여행스타일을 바꾸려고 한게 잘못된 선택이었다. 나는 나한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어제 큰길에서 살짝 봤었던 숯불구이를 판매하던 곳이 생각나서 그쪽으로 향해본다. 역시 내 기억력은 틀리지 않았다. 한번에 찾는다. 그쪽에 길거리 음식점이 여러개가 쭉 늘어서 있다. 퍼도 먹고 싶긴 하지만 고기가 역시 진리일듯 하여 숯불구이 집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하나에 1만동이란다. 저거 몇개 먹어야 하는거지? 옆에 사람을 보니 둘이서 8개를 먹고 있다. 저게 기준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단 4개를 시킨다. 막상 자리에 앉으니 퍼도 먹고 싶어져서 배를 좀 남겨놓고 싶다.
옆에 사람 음식이 먼저 나오기에 유심히 지켜본다. 라이스페이퍼를 밑에 깔고 그 위에 축축한 어떤 쌈을 올린 후에 그 안에 야채를 원하는 만큼 담는다. 그리고 그 위에 숯불구이로 구운 고기를 넣고 돌돌 말아서 스프링롤로 만든 후에 꽉 잡고 꼬치만 스윽 빼면 된다. 만들어진 스프링롤은 주어진 양념에 찍어먹는다. 별거 아니네.
조금 있으니 내것도 나온다. 아주머니가 굳이 앉아서 시범을 보여주신다. 나 다 할줄 아는데. 그래도 유심히 본다. 아 꼬치 끝에 바나나줄기 빼는 것을 아까 그 총각이 빼먹었었다. 어쩐지 고기 빼는게 고생하더라니. 역시 배움은 정석으로 배우는게 좋다.
혼자 만들어 먹어본다. 이거 마음에 든다. 쪼그리고 앉아서 먹는 것도 마음에 들고, 실제 맛도 훌륭하다. 맥주를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들지만 패스한다. 오늘은 맨정신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
맛은 잇지만 역시 4개로는 부족하다. 계산을 하고 자연스럽게 옆의 퍼 가게로 이동한다. 옆을 보니 아까 내 옆에 있던 그 총각도 여기로 와있다. 이곳을 순회하면서 밥을 먹는 것도 하나의 식사 방법인가보다.
3만동 짜리 퍼를 주문한다. 옆에서 금방 만들어준다. 이건 진짜 내 마지막 퍼다. 제발 맛있기를 바래본다. 나온 퍼를 보니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먹은 퍼와 살짝 다르다. 호이안식일려나.
익숙하게 라임을 두개 짜서 집어넣고, 고수잎을 따서 넣는다. 고추도 손으로 집어서 몇개 국수에 던져넣는다. 휙휙 비빈 후에 젓가락으로 한 웅큼 집어서 숫가락 위에 올리고 국물을 조금 담아 같이 입으로 가져간다. 생긴건 어떨지 몰라도 내가 아는 그 퍼의 맛이다. 마음에 든다. 다행이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퍼를 정신없이 먹는다. 훌쩍이는 콧물을 오른손으로 스윽 닦아내며 먹는다. 길거리 식당에서는 종이를 휴지로 주는데 이게 영 불편하다. 그리고 어차피 깨끗함과는 담 쌓은지 오래다.
마지막 국물을 천천히 음미하려 하는데 갑자기 코가 쎄하다. 쎄한 정도가 심해지더니 확 달아오른다. 아까 고추를 손으로 집고 그 손으로 코를 만져서 그런가보다. 이거 견디기 힘들다. 남은 국물을 원샷하고 계산을 하고 급하게 호텔로 귀가한다. 왜 호텔로 귀가할때면 항상 이런 식인거니.
호텔로 와서 화장실로 직행 후 얼굴을 찬물에 벅벅 씻는다. 이거 근데 만질수록 더 화끈거린다. 그냥 참고 놔둬야겠다. 그래도 씻고 좀 놔두니 괜찮아졌다.
6시다. 이제 1시간 후면 공항 가는 버스를 탄다. 앉아서 남은 돈을 한번 세본다. 10달라와 55만동 그리고 잔돈으로 7천동이 남았다. 한국돈으로 약 4만원이 남았다. 한국에서 집으로 귀가하는 버스비는 걱정할 필요없겠다. 혹시 이 복장으로 지하철 타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아 어차피 내일 이 복장으로 종로를 가기로 했구나. 뭐 민망함은 즐기면 즐거움이 된다.
7시가 되어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호텔 스탭들한테 인사를 한다. 여기분들 정말 친절했다. 하루 밖에 숙박을 안했고, 어차피 떠나는 사람임에도 끝까지 물을 주고 선풍기를 돌려주며 챙겨주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에 감동 받았다. 저런건 내가 주었기 때문에 돌려주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을 위하는 행동이다. 누가 베트남 사람이 불친절하다고 했더냐.
버스 타는 곳에서 잠시 앉아있는다. 7시 버스이지만 절대 7시에 오지는 않을거다. 핸드폰을 뒤적이며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본다. 그러다 문득 놀래서 핸드폰을 집어넣는다. 벌써 문명으로 돌아온걸까. 아무 이유 없이 핸드폰을 보고 있다. 그럴 바에는 그냥 하늘을 보며 멍때리는게 낫다.
문득 지나온 내 두달이 다 기억이 날까 싶다. 그러면서 또 기억이 안나도 된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곳에서 가져가는건 추억이나 기억이 아니다. 내 자신이다. 변화된 내 자신, 이건 어디가든 나와 함께 간다. 이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버스는 역시 7시반이 되어서야 온다. 가방을 트렁크에 던지고 버스에 올라타니 동양여성분이 한분 있다. 한국분 같다. 맞는거 같은데...
버스가 출발하고 슬쩍 한국말로 말을 걸어본다. 역시나 화들짝 놀라신다. 한국인인줄 몰랐단다. 그런거지 뭐. 그러고보면 태국에서 초창기에 한국인을 만나고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다 스트레스 받았던게 참 옛날일 같다. 지금이라면 그런 스트레스는 받으라고 해도 못 받겠다.
이분은 5일 일정으로 다낭과 호이안을 오셨단다. 그런데 오늘 목요일 아닌가? 어쩌다...? 물어보니 원래 내일까지 휴가인데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겨서 불려간단다. 정말로 우리나라 기업은 이래서 안된다. 진정 그 한 사람이 하루 없다고 업무가 마비될까? 어떻게든 돌아간다. 그냥 그 조금의 희생이 싫어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거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휴가를 붙여쓰기 눈치 보인다는 얘기를 했을때 라셸과 데이브의 황당해하던 눈빛이 생각난다.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내 첫번째 여행기를 한번 열어서 본다. 느낌이 생소하다.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 아닌거 같다. 이걸 보고 이번 여행이 나를 변화시켰음을 확실히 깨닫는다. 이 변화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세상의 잔소리 속에서 내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공항에 도착하니 8시다. 시간이 아직 많다. 갑자기 댓글로 한분이 추천했던 베트남 술인 '넴무이'를 안사온 것이 생각났다. 이거 사가고 싶은데... 같이 온 여성분한테 인사 후 공항의 기념품샵을 가서 물어본다. 넴무이를 못 알아듣는다. 뻔하다, 성조가 틀린거다. 여하튼 냉장고 안에를 보지만 안보인다. 그 술은 나와 인연이 없나보다.
티케팅을 하기 위해 대한항공 카운터를 찾는다. 역시 대한항공이라 중심에 크지막하게 자리잡고 있다. 오늘은 나도 대한항공을 탄다. 땅콩항공이라 무시 받지만 막상 이걸 탈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한다. 어쩔 수 없는 허영심 덩어리다.
줄을 서서 기다리니 곧 내 차례다. 여기는 줄도 길지 않다. 하긴 다낭에서 가는 비행기표는 아마 꽤나 비쌀거라 사람들이 많지 않을거다. 나야 마일리지로 가는거니 전혀 상관없다.
항공권 번호와 예약번호를 알려주고 여권을 건넨다. 이제 진짜 마지막 비행이다. 직원이 표를 끊어주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카드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아니 카드번호를 왜? 결제 다 된건데 왜 필요하냐고 하니 필요하단다. 뭐지? 이거 결제를 친구가 해준거라 당연히 카드 번호를 모른다. 일단 급하게 친구한테 카톡을 보내놓고 좀 따져본다. 예약은 내 이름으로 됐고, 결제는 인터넷으로 된건데 왜 또 다시 카드 번호가 필요한걸까.